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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연민으로 바라보는 광기의 세상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7-07-07 23:07
조회 : 107  

[소세키의 질문들] (7) - 『풀베개』
연민으로 바라보는 광기의 세상


박 성 옥

 

 

1. 느긋하게, 여유롭게

 

 『풀베개』는 세상 천지에 꽃잎 떨어지는 소리만 들리는 봄날, 며칠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화공이다. 서양화를 그린다. 그는 깊은 산속 마을에 그림을 그리러 들어간다. 온천장에 손님이라곤 화공 한 사람뿐이다. 세상사를 떠나 그림 그리기에 알맞은 곳이다. 자연 속에 있으니 화공의 입에서 저절로 시가 흘러나온다.

 

“마음은 왜 이리 그윽한지/ 한없이 넓어 옳고 그름을 잊었네./
서른이 되어 나는 늙으려 하고/ 봄날의 한가한 빛은 여전히 부드럽네.”
(나쓰메 소세키, 『풀베개』, 송태욱 역, 현암사, 2015년, 168쪽)


  한적하고 그윽한 마음이 묻어나는 시다. 한가하게 만물을 비추는 봄볕처럼 자연은 누구의 편도 아닌 제3자의 위치를 견지한다. 자연은 세속의 시시비비를 잊게 한다. 순진한 자연예찬론인가 싶지만 오히려 소설은 지극한 세속의 괴로움을 환기시킨다. 세상은 집요하고 독살스럽고 좀스럽고 지겨운 놈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엉덩이에 탐정을 붙여 방귀 뀌는 횟수를 헤아린다. 남의 방귀를 분석해서 똥구멍이 세모라는 둥 네모라는 둥 쓸데없는 짓을 한다.” (『풀베개』,147쪽) 인신공격과 처세술에 사람들은 지친다.


 인적 드문 산속에 들어오니 아무런 괴로움이 없다. 자연을 그저 한 폭의 그림으로 보고 한 편의 시로 읽을 수 있다. “땅을 얻어 개척할 마음도 없을 뿐 아니라 철도를 놓아 한몫 잡자는 생각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화공이 원하는 건 오직 느긋한 삶이다. 하지만 도쿄에서 발걸음을 늦추고 여유를 부리면 금방 전차에 치여 죽는다. 전차가 죽이지 않으면 순사가 내쫒는다.  세상은 전력질주하고 있다.

 

 기차가 보이는 곳을 현실 세계라고 한다. 기차만큼 20세기 문명을 대표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수 백 명이나 되는 인간을 같은 상자에 집어넣고 굉음을 내며 지나간다. 인정사정없다. 집어넣어진 인간은 모두 같은 속력으로 동일한 정거장에 멈추고 똑같이 증기의 은혜를 입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들은 기차를 탄다고 한다. 나는 실린다고 한다. (『풀베개』, 182쪽)

 

 원하든 원치 않든 인정사정없이 기차에 실려 간다. 기차로 상징되는 문명은 인간을 균질화시킨다. 문명사회는 속도전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피곤하다. 20세기에는 수면이 필요하다.  화공은 “기선, 기차, 권리, 의무, 도덕, 예의로 기진맥진한 뒤 모든 것을 망각하고 품 잠든 것 같은 천지의 공덕”을 찾아 산속으로 들어왔다. 화공이 생각하는 예술은 “세상에 있을 수 없는 느긋한 움직임”이다.  인간 세상을 느긋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화공은 비인정(非人情)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다. 과연 화공은 인정에 얽매이지 않고 예술을 얻을 수 있을까. 숨 막힐 것 같은 이해관계를 떠나 해탈과 관조의 세계에 다다를 수 있을까.


 이 소설의 배경은 러일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한 가운데다. 심심산골의 나룻배에서도 전쟁담이 한창이다. 『풀베개』는 러일전쟁이 끝난 직후인 1906년에 <신소설>에 연재되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에 이어 세 번째로 쓴 소설이다. 소세키가 본격적으로 전업작가가 되기 직전의 작품이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사회는 더 황폐해졌다. 군비확충으로 인해 불황에 휩싸이고 삶은 불안하다. 물가와 세금이 올라 일상은 궁핍하다. 이렇게 엄혹한 시대에 예술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대학교수 직위를 버리고 소설가로 변신을 하려고 하는 소세키에게 너무도 절실하게 존재론적 질문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2. 그녀의 얼굴에 2% 부족한 것

  

 거울처럼 맑은 연못 위로 새빨간 동백꽃이 뚝뚝 떨어져서 붉게 물든다. 천지가 봄꽃으로 가득한 산골에서 화공은 그리고 싶은 그림의 주제를 얻었다. 밀레이가 그린 <오필리아>처럼 연못 위에 떠있는 아름다운 여인의 이미지이다. 그림의 모델이 되기에 적합한 여인도 만났다. 온천장의 딸 미나다. 자유분방하고 매혹적인 여자다. 미나는 도쿄로 시집을 갔다가 러일전쟁으로 은행이 폭삭 망해 남편이 먹고 살길이 막연해지자 이혼을 하고 친정에 돌아왔다.


  동네사람들은 그녀를 미쳤다고 말한다. 어느 날 인근 절에 있는 스님이 그녀에게 반해서 연서를 보냈다. 그녀가 절에 뛰어 들어와 “그렇게 귀엽다 생각하시면 부처님 앞에서 같이 자자” 고 하면서 스님의 목에 매달렸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여자가 남편을 버리고 돌아온 것부터 미친 짓이라고 마을사람들은 비난한다. 하지만 그녀는 세간의 이목을 개의치 않는다. 그녀는 도발적이다. 자신이 연못에 뛰어들어 죽으면 괴로운 얼굴이 아니라 편한 얼굴을 예쁘게 그려달라고 화공에게 당돌하게 농담을 던진다.


 화공은 그녀가 동백꽃이 떨어지는 연못에 여인이 영원히 떠있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그림 한 장을 못 그린다. 그는 그림 속 얼굴 표정을 얻지 못했다. 그림도 결국은 사람의 마음이 담기는 것이다. 증오는 너무 격렬하고, 분노는 조화를 깨고, 원한은 너무 속되다. 그녀의 얼굴에서 2프로 부족한 그 무엇은 뭘까? 
  그러던 어느 날 화공은 미나와 함께 그녀의 사촌동생을 배웅하러 기차역으로 간다. 동생은 러일전쟁에 참전하러 멀리 만주벌판으로 떠나는 길이다. 어린 청년을 전쟁터로 몰아넣는 시대다. 그녀는 동생에게 “죽어서 돌아오라”고 모질게 말한다. “살아서 돌아오면 좋지 않은 소문이 나니까.” 국가를 위해 죽는 게 영광이다.

 

 “이런 꿈같은, 시 같은 봄 마을에, 우는 것은 새, 떨어지는 것은 꽃잎, 솟는 것은 온천뿐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것은 잘못이다. 현실 세계는 산을 넘어, 바다를 건너 헤이케의 후예만이 오랫동안 살아온 외진 마을까지 다가온다. 중국 북방의 광야를 물들일 피의 몇 만분의 일이 이 청년의 동맥에서 내뿜어질 때가 올지도 모른다. (『풀베개』, 121쪽)

 

 기차는 생사를 넘나드는 길로 사람들을 태우고 달린다. 기차에는 이혼한 남편도 타고 있다. 그도 만주로 떠나는 길이다. 돈을 벌러 가는 건지 죽으러 가는 건지 모른다. 그들을 바라보는 미나의 표정에는 연민이 묻어난다. 그녀의 얼굴에 비치는 연민의 정을 보았을 때, 화공의 가슴 속에 화면이 완성된다. 이제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화공이 그녀의 얼굴에서 발견하고 싶었던 것은 연민의 정이었다. 남을 무시하는 표정도 아니고 남을 이기려드는 초조한 기색도 아니다. 냉정한 제3자적 관찰자로는 대상을 그릴 수가 없다. 현실 세계를 떠나서는 어떤 예술도 공허하다. 화공은 세속을 떠나서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결국 세속의 인정(人情)에서 예술을 성취한다. 연민의 정 없이는 붓 하나 들 수가 없다. 그가 말하는 연민은 하찮은 동정이 아니다. 연민은 “신에게 가장 가까운 인간의 정이다.” (『풀베개』, 138쪽) 타인을 바라보며 너도 나처럼 살기 힘들구나 동질감을 느끼는 정서에 가깝다. 외면할 수 없이 공감하는 얼굴이다.


 소세키는 연민의 정이라는 창문으로 속세를 바라보면 어떻게 보이는가를 설명하고자 했다. 연민은 가진 자가 없는 자를 내려보는 시선도 아니고, 지식인이 우매한 자를 바라보는 태도도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어른이 어린아이를 보는 태도”(나쓰메 소세키,『문학론』, 황지헌 역, 소명출판, 2010년, 62쪽)이다. 아이가 울고 있을 때 따라 우는 부모는 제정신이라고 할 수 없다. 사생문(寫生文) 작가는 자신은 울지 않으면서 울고 있는 다른 사람을 서술하는 존재다. 객관적으로 세태를 묘사한다고 해서 몰인정한 것이 아니다. 소세키는 비인정(非人情)의 시선으로 세상을 그려야 한다는 문학론을 펼친다. 연민은 타인과 공감하되 냉철하게 삶을 바라보기가 아닐까. 이해관계에 함몰되지 않고 거리를 둘 때  삶의 이면까지 통찰할 수 있다.

 

3. 전쟁에 대처하는 소소한 항변

 

 소세키는 살면서 세 번의 전쟁을 경험했다. 1894년의 청일전쟁과 1904년의 러일전쟁, 그리고 1914년의 제1차 세계대전이다. 성인이 된 후 내내 전쟁 속에서 산 셈이다. 소세키는 세계대전이 확산되는 중에 세상을 떠났다. 소세키는 처음부터 전쟁에 반대하는 노선을 걸었다. 당시 대학생은 26세까지 징병을 유예할 수 있었다. 소세키는 25세 때 호적을 홋카이도로 옮겼다. 청일전쟁에 나가기 싫었기 때문이다. 홋카이도는 식민지 취급을 받는 섬이었기 때문에 징병이 면제되었다. 
 이에 반해 소세키의 절친한 친구인 마사오카 시키는 대학을 중퇴하고 종군기자가 되었다. 결핵에 걸려 병약한 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청일전쟁에 참전한다. 소세키는 졸업하고 시키의 고향으로 가서 중학교 선생이 되었다. 나중에 <도련님>이라는 소설의 무대가 되는 작은 섬이다. 시키가 전쟁터로 떠나는 장면과 소세키가 교사가 되어 부임하는 장면이 쓸쓸하게 교차된다. 

 



 소세키는 일등국가가 되려는 광기가 군국주의로 치닫는 것을 경계했다. 전쟁은 국가라는 하나의 중심으로 사람의 욕망을 결집시킨다. 소세키는 국가라는 것이 중요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아침부터 밤까지 “국가, 국가”하며 마치 국가에 매달리는 듯한 행동은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니라며 위선을 꼬집는다. 소세키가 전쟁을 바라보는 입장은 1916년 1월 아사히신문에 연재한 <점두록>이라는 글에 잘 나타나있다. 그는 전쟁을 선도 아니고 진실도 아닌, “정말로 가치가 없는 허울뿐인 허무한 사건” ( 『나의 개인주의』, 김정훈 역, 책세상, 174쪽)이라고 질타했다. 군국주의는 문명에 아무런 이득도 가져오지 않는다고.


 혹자는 작가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것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소세키가 대단히 용기 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나라인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일본에 대해 열광하지 않고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기란 쉽지 않다. 만약 우리나라가 전쟁을 일으키고 옛 고구려 땅을 회복했다면 애국과 민족을 앞세우는 열기에 사로잡히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러일전쟁이 끝나고 소세키는 대학교수의 자리를 버리고 소설가로 변신했다. 본격적으로 문명을 비판하는 직업적 글쟁이가 된 것이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로 나가는 사람의 운명의 끈과  남아있는 사람의 운명은 연결되어 있다. 이런 시대에 소설이 무슨 힘이 있을까.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소세키의 고민이 깊었을 것 같다. 때론 소설쓰기가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일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을지도 모른다..


 『풀베개』에도 소설가에 대해 자조적으로 묘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화공이 소설책을 읽고 있을 때 나미가 말을 건다. “그 나이가 되어도 홀딱 반했다는 둥 여드름이 났다는 둥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습니까?” 그까짓 소설, 줄거리 말고 읽을 게 뭐가 있냐는 식이다. 화공은 줄거리가 무슨 대수냐고 아무 데나 펼치고 읽으면 된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읽으나 마나한 게 소설이다. 
 그래도 소세키는 죽을 때까지 소설을 썼다. 시시한 일상 속에서 뒤엉키는 소시민의 마음을 파고 들었다. 그의 천황제와 국가라는 중심으로 사람들을 싸잡아 몰고 가려는 힘에 저항했다. 소소한 항변이지만 고집스러운 자세였다. 그는 한 명 한 명 고독한 개인을 관찰하고 세밀하게 스케치하듯 묘사했다. 소세키 소설 속의 인물들은 찌질하고 시들하다. 그래도 정감이 가는 이유는 소세키도, 읽는 독자도 연민의 정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2017. 6. 14) 


-> MVQ "소세키의 질문들"에 관한 글을 더 보고싶으시다면 여기를 클릭해주세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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