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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인디언 추장의 존재 양식 (1)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7-08-04 14:11
조회 : 198  

1. 위신에 바탕을 둔 추장제

 

  우리는 지난 번 클라스트르의 관점을 따라 인디언들에게 국가는 권력과 불가분이기에 그 출현에 대항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까지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인디언 사회에서 우두머리격인 추장은 권력과 분리되어 있었다는 것인데, 실질적 힘이 없는 추장권은 어떻게 작동하였을까?

1948년의 논문에서 로위는 앞에서 언급한 형태의 추장을 명목상의 추장이라 명명하고 그 본질적인 특징 세 가지를 정리하고 있다. 이러한 세 특징은 남북 아메리카 모두에서 계속 발견되기 때문에 두 지역에서의 권력의 필수조건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 세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추장은 “평화의 중재자”이다. 그는 집단의 조정자로서 그것은 때때로 평화로울 때와 전쟁할 때의 권력의 분화로 나타난다. 2) 추장은 자기의 재화에 대해 집착해서는 안 된다. “피통치자들”의 끊임없는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 거절하는 것은 곧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3) 말을 잘하는 자만이 추장의 지위를 얻을 수 있다.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피에르 클라스트르, 39쪽)

  나는 여기서 첫 번째 중재자 역할에 대한 이미지로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최불암 아저씨가 연기한 양촌리 노인회장, 김 회장님이 생각났다. 전원일기에서 마을 사람들은 간혹 관계에 갈등이 생겼는데 쉽게 풀리지 않으면 김 회장을 찾아가서 상의하곤 했다. 김 회장은 업둥이를 거둬 막내아들로 키울뿐더러, 노모께서 심심하실까봐 매일 민담이나 전래동화를 들려드릴 정도로 효자이기에 동네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때문에 그의 의견은 충분히 무게감이 있지만, 당사자가 수긍하지 못해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면 강제할 수단은 없다. 결국 양측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중재안을 제시하기 위해선 여론 조성도 해야 하고 기계적으로 균형을 맞추는 것보다 각자의 기질이나 욕구에 맞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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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촌리 김회장님의 효도

  이것은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과는 상당히 다르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부서간 업무 영역에 대한 분쟁이 있을 때 규정집이나 매뉴얼에 명확한 내용이 없으면 임원에게 의사결정을 받게 된다. 김 회장과 달리 회사에서 상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평가가 그의 결정을 수용하는데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위계에서 권력이 나오기 때문에 상사는 누구를 설득하기 위해 굳이 노력할 필요가 없고, 부하직원은 상사가 훌륭한 사람인지 아닌지에 따라 동의 여부를 달리하지 않는다. 뭔가 자신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윗사람에게 잘못 보였나 라는 의구심과 자기검열,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체념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권력관계와 달리 실질적 강제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집단의 조정자 역할을 하려면 추장은 어떤 사람이여야 할까? 권력과 다른 용어를 찾아 클라스트르는 추장에게는 위신이 있다고 표현했다. 이 위신을 세우는 방법 중 하나가 위 두 번째 특징인 자신의 재화를 나눠주는 모습일 것이다.

프랜시스 헉슬리는 우루부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물건에 연연해하지 않고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주는 것이 추장의 역할이다. 어떤 인디언 부족에서는 추장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왜냐하면 추장은 다른 누구보다도 소유물이 가장 적고 가장 초라한 장식물만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모두 선물로 줘버리고 없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가 기술한 남비콰라족의 경우도 비슷하다. “새로운 추장의 인기는 그가 얼마나 관대한가에 따라 결정된다.” 때때로 반복되는 요구에 화가 난 추장은 “전부 바닥났어! 더 이상 줄 것이 없어! 누구든 내 대신 추장을 해봐라!”하고 소리친다.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페에르 클라스트르, 41쪽)

  사실 요즘 우리도 ‘윗사람 대접 받으려면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어라’ 라고들 한다. 자기 말에 무게가 실리기 위해선 베푸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것은 사주명리에서 재성이 관성으로 흘러가야 상생이 가능한 구도와 같다. 재성은 돈, 일의 결과물을 뜻한다. 때문에 흔히 재성 발달인 사람은 돈과 인연이 깊기도 하고 일복이 많기도 하다. 재성에서 관성으로의 흐름을 해석해보면, 돈을 버는 것까지 재성이고 그 돈을 조직에 풀어 나의 명예나 리더십을 높이는 것이 관성이다. 또한 업무를 마무리하는 것이 재성이라면 그것으로 평가를 받는 것이 관성이다.

  어떤 의미에서 인디언 추장이 일부다처인 것은 일종의 특권이라기보다는 부족민들에게 더 많은 것을 나눠주기 위한 것. 즉 자신의 재성에 해당하는 일, 재화를 충분히 채워서 관성으로 순환시키기 위해서이다. 사실 재성은 남자에게 부인을 의미하기도 하기에 추장은 재성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다.

나(저자인 서구 인류학자)는 우리 나라에서는 아무리 대추장이라고 해도 아내는 단 한 사람뿐이며, 다른 일들은 하인들이 맡아 하는데 대추장은 백성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에서 일부를 떼어 그들에게 지불한다고 단호하게 말해주었다. 이에 그는 이렇게 응수했다. “대추장이 많은 아내들을 거느려 그의 밭을 매게 하고, 그 대가로 백성들을 보살펴주는 편이 더 낫죠. 그렇게 하면 백성들은 많은 것을 주면서도 자기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 대추장을 더 좋아하고 따를걸요. 세금은 나쁜 것이예요.”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한국문화인류학회 엮음, 39쪽)

 

2. 추장의 말하기 의무

 

  지난 정권에서 대통령에게 ‘나쁜 사람’으로 지목되어 좌천된 공무원이 있었다. 권력자의 말은 바로 명령의 언어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인데, 사실 ‘나쁜 사람’이라는 말은 어쩐지 권력 혹은 폭력의 언어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에 한동안 회사에서 프로젝트 진행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중단되거나 이런저런 제안서가 위에서 거절되면 “나 나쁜 사람 된 거야?”라는 유머가 떠돌았다. ^^   

 앞에서 ‘윗사람 대접 받으려면 입은 다물고 지갑을 열어라’라는 말을 언급했는데, 그만큼 말하기는 위계와 관련이 깊다. 서열이 위에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아도 공간의 분위기를 주도하는데 말까지 독점하면 그 정도가 너무 과하니 입은 다물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추장은 ‘지갑을 열어라’에 걸맞게 모든 재화를 아낌없이 퍼줘야 할뿐만 아니라 입도 열어야 했다. 로위는 말을 잘하는 자만이 추장의 지위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말하기는 추장의 의무사항 중 하나였다. 추장은 매일 새벽이나 황혼녘에 부족민들에게 그들의 신화, 꼭 지켜야 하는 생활 규범 등에 대해 끊임없이 떠들어야 한다.

  학창시절 가장 지겨웠던 시간은 아마도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이었을 것이다. 한여름 땡볕에 전교생을 세워놓고 매번 반복되었던 틀에 박힌 말이 이어지면 여기저기서 픽픽 쓰러지는 아이들이 속출하곤 했다. 그래도 우리는 속으로 딴 생각은 할지언정 대놓고 딴 짓은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추장의 연설이 시작되면 부족민들은 다들 편안하게 해먹에 누워서 혹은 불가에 모여 앉아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흘려 듣는다. 말하기가 추장의 의무라면 부족민들은 주의 깊게 듣지 않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추장의 언어가 명령권이 되지 않도록 작동하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추장은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는데 매일 같은 내용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루함과 무의미함을 극복하고 어떻게 말하기 의무를 수행했을까?

  영화 ‘빅 피쉬’에서 주인공은 본인 일생의 여러 일화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아들을 비롯하여 주변의 사람들에게 말해준다. 아들은 그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고 치를 떨지만 막상 그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마녀를 찾아간 일, 거인과 함께 고향을 떠나온 일, 도중에 어떤 슬픔도 없는 동네에 잠깐 머문 일, 자기 부인을 만나기 위해 서커스장에서 일했다는 것, 로맨틱한 청혼 과정, 군 복무 중의 임무수행, 아이 출산과 관련된 일 등을 모두 판타스틱한 에피소드로 구성해서 끊임없이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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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과 함께 고향을 떠나는 모습

어쩌면 주인공은 그냥 키가 조금 더 큰 사람과 길을 함께 했을 수도 있다 ^^

  ‘빅 피쉬’ 주인공은 자기 직업인 영업사원에 딱 맞는 성격으로 항상 낙천적이고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었다. 어쩌면 추장도 그처럼 스스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자질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때 언어는 의사소통이나 정보전달과 같은 기능보다는 시어와 같이 그 자체를 풍요롭고 정교하게 다듬는 것이 목적이 된다. 한번 사용할 활에 보석을 박았던 몽골 전사처럼 추장도 매일 반복되는 웅변이 지루해지지 않도록 표현양식을 종종 새롭게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재미있거나 아름답거나 슬프거나 어떤 식으로든 말이다.

  결국 영화의 주인공은 숨이 넘어가려 할 때 아들에게 자기 죽음을 이야기로 만들어 들려달라고 재촉하여, 아들의 말을 들으며 죽음을 맞이한다. 그에게 삶이란 자기만의 서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어쩌면 추장도 부족의 서사를 다양하게 변주하면서 자기 존재를 구성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도 듣지 않는 혹은 듣지 않는 척 제스처를 취하는 상황에서 유일한 청자인 자기 자신의 기쁨으로 만들어야할 절박한 필요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보통 ‘위신’은 근엄한 것과 어울리는 느낌인데, 추장은 이야기 덕분에 무겁지 않은 위신을 구현해야 하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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