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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초보학인의 어설픈 공부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7-09-08 09:18
조회 : 286  

4. 내 몸의 주인이 되자(2008~2017)

 

초보학인의  어설픈  공부

 

오창희

 

 

 

 

『면역 혁명』을 읽고

2013년 11월 중순, 대중지성 1학년 말에 『면역 혁명』(부광, 2008)을 읽었다. 일본 의사 아보 도오루가 쓴 책이다. 이 의사의 주장은 이렇다. ‘서양의학과 약학이 감염증이나 사고에 의한 부상 등 급성 질환에서는 그 역할이 지대하지만 만성질환에 대해서는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특히 조직의 장애를 동반하는 질병의 경우가 그렇다. 류머티즘도 그런 질병 중 하나다. 류머티즘이 지금까지는 면역이 지나치게 강해서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면역 억제제와 스테로이드를 복용함으로써 면역력을 철저하게 억제하는 방향으로 치료를 해 왔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잘못 알고 있다. 오히려 면역 억제 상태에서 이런 질병이 발생한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고 현대의학에서 하는 설명과는 완전 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어서 의구심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치료를 해 왔고,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 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라,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내가 앓고 있는 병에 접근하면서 내 몸에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고 싶었다.

 

이런 결심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진통 소염제를 오래 쓰면 몸이 차가워진다’는 것. 처음 발병 당시에는 열이 높아서 한기가 드는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기도 했고. 그때는 여름에도 내복을 입고 긴팔 티셔츠에 양말까지 신고 지냈다. 그러나 꾸준히 약을 먹으면서 체온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일상생활도 큰 무리 없이 꾸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도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물론 처음처럼 그렇게 한기가 들진 않았지만 여전히 여름에도 주로 긴 팔 옷을 입고 다니고 양말을 신고 지냈다. 그러다가 어머니 병구완을 하던 2013년 여름, 갑자기 왼팔에 열이 나고 움직일 수가 없어서 병원에 갔더니, 조금 더 쎈 놈으로 소염제 처방을 바꿔줬다. 통증은 금세 완화가 되었지만 그 이후부터 한기가 더 심해졌다. 특히 에어컨 아래서는 냉기가 피부 깊숙이 들어가 뼈에까지 스며들었다. 그러다 보면 몸에서 냉기가 나오기 시작하고 그때는 옷을 껴입어도 소용이 없다. 특히 인공관절 수술을 한 두 무릎 아래 발목은 족욕을 해도 쉬 풀리지가 않았다. 에어컨 아래 오래 있었던 날은 발목 부위가 너무 차가워서 자다가 깨기도 하고, 뜨거운 물에 다시 한 번 더 족욕을 하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읽었고, 한기의 원인이 몇 십 년을 먹어온 소염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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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약을 한 번 끊어 보자. 도저히 안 되면 다시 먹으면 되지. 두 달까지는 약을 먹을 때보다는 못했지만 그런 대로 견딜 만했다. ‘아, 이 정도면 됐구나!’ 하는 자신감을 가지려 할 무렵인 2014년 3월, 대중지성 2학년 1학기가 중반에 접어들 무렵부터 관절들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무릎은 인공관절로 교체한 상태여서인지 별 이상이 없었고, 발목도 늘 아픈 채 생활해 왔고 약을 끊은 이후에도 그 이상으로 통증을 느끼진 않았다. 힘든 곳은 목 관절과 양쪽 어깨 그리고 작년 여름 갑자기 통증이 심해졌던 왼쪽 팔꿈치와 손목이었다. 컵을 들어 물을 마시는 것도, 세수를 하는 것도, 단추를 끼우는 것도 어려웠고, 반찬 그릇의 뚜껑을 여는 것도, 현관문을 여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처음 류머티즘을 앓던 그때의 통증과 불편함이 종일 따라다녔다. 하는 수 없이 류머티즘 약을 다시 먹었다. ‘약 한 봉지’를 먹은 지 겨우 두세 시간이 지났을까? 몸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엄두도 못 내던 샤워를 할 마음이 생길 정도로 통증이 가셨다.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 다음날 오후가 되자 통증은 다시 시작되었고 참기가 어려웠다. 또 약을 먹었다. 그리고 금세 통증은 가라앉았다. 그러면서 겁이 났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강력한 효과를 내는 약이라니! 지금까지 온갖 치료를 하면서 알게 된 바로는 효과가 빠르고 강력할수록 부작용 또한 그만큼 크다는 것. 통증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것은 신경이 둔해졌다는 걸 의미하지 않을까? 이런 의심이 들면서 뱃속에 들어간 약이 신경을 마비시키는 과정이 눈에 훤히 보이기라도 하는 듯 불안했다. 이런 경험은 누차 해 왔는데 새삼 불안감이 들끓었다. 

 

먹자니 독^^을 먹는 것 같고 안 먹자니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고. 집안에서 생활하는 것도 불편했지만, 어머니를 보러 가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편한 마음을 비롯해서 관계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도 컸다. 통증 그 자체도 힘이 들었지만 이렇듯 그것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오만가지 생각들이 나를 들볶았다. 약을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다시 맘 편히 약을 먹기로 했다. 일단 생활은 해 나가야 하니까. 다시 길을 찾아보기로 하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그러던 와중에 2학년 1학기 텍스트로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책세상, 2005)를 읽었다. 대학 1학년 때 읽으려다가 몇 장 못 읽고 덮었던 전력이 있는 책이다. 그때 이 책을 손에 든 건 니체가 궁금해서도 이 책에서 무얼 말하려는가를 알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대학생이 되었으니 왠지 철학책을 좀 읽어줘야 할 것 같아서 삼성출판사에서 보급판으로 나온 50권짜리 사상서를 구입했고, 그 중 가장 읽기 쉽겠다 싶어서 고른 게 이 책이었다. 제목에 "......말했다"가 들어가니, 말하는 걸 듣는 건 좀 쉽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그러나…도무지 뭔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건만 다시 읽어도 책장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꼭 읽어야 하는 교재이다 보니 이해를 하든 못 하든 끝까지 읽었다. 그 중에서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다. “나는 전적으로 신체일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며, 영혼이란 것도 신체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붙인 말에 불과하다”(52)라거나, “생각과 느낌 배후에는 더욱 강력한 명령자, 알려지지 않은 현자가 있다. 이름하여 자기다. 이 자기는 너의 신체 속에 살고 있다. 너의 신체가 바로 자기이기도 하다”(53)라는 글귀들인데, 내가 생각하던 것과 달라서 여러 번을 읽었다. 

 

근대교육을 받은 세대는 나를 비롯하여 대부분 육체와 정신에 대해 비슷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 정신이 육체를 좌우하며 육체는 정신보다는 좀 열등한 것이고, 육체는 통제하고 억압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생각. 그러니 정신력을 길러야 한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이렇게 가르쳤고, 나 또한 그것을 삶의 중요한 태도로 여기며 살았다. 2001년 어느 여름날 교통사고를 계기로 되살아난 불안에서 벗어날 방법으로 ‘인간적 성숙’이라는 화두를 잡고 안도했을 때도 그랬다. 인간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라는 그 말 속에는 여전히 정신이, 의지가 강한 존재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몸을 어찌할 수 없게 만드는 통증, 그런 통증을 겪으면서 그것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을 들여다보니 거기엔 수많은 생각, 감정, 그리고 타자와의 관계, 미래, 과거 등등이 뒤얽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중심에는 ‘몸’이 있었다. 정신이니 육체니 하고 나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이런 경험은 그 동안 수도 없이 되풀이했고 대퇴부 골절상을 입었을 때도 나는 ‘몸이 건네는 말’이라는 글에서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보다 몸이 하는 말을 따르면 되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런 경험들을 내 입으로 고백하면서도 나는 정신의 우위를 굳게 믿고 살아왔다. 그런데 니체의 저 글을 읽으면서 나의 생각과는 배치되는 이런 경험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그리고 작년 가을 어머니가 하신 말씀, “마음이 자꾸 어디로 갈라 칸다.” “지금까지는 내가 내 맘을 까라 앉추면서(가라앉히면서, 다스리면서) 살았는데 인제는 그럴 힘이 없다.”와 겹쳐지면서 조금은 정리가 되었다. 그렇구나. 맘을 가라앉히는 그 힘이 몸에 있구나. 문제는 몸이구나. “생각과 느낌 배후”에 있는 “더욱 강력한 명령자, 알려지지 않은 현자” 그게 바로 나의 신체구나! 

 

그렇다면 오로지 신체일 뿐인 나, 내 몸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내 몸을 알자고 감이당엘 왔고 이렇게 공부를 하고 있는데 몸을 안다는 건 어떤 거지? 또 다른 질문이 생겼다. 몸만 따로일 수가 없다는 건 알겠다. 생각해 보면 이는 주치의가 내 몸을 알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을 때의 그 ‘몸’도 정신을 포함하는 몸이었다. 그렇다면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 몸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움직임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으면 지금 겪고 있는 몸을 모른다고 할 때의 그 모름에서 오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내 공부가 이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면 그건 왜일까? 도대체 공부라는 건 뭔가? 머리가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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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슈나무르티의 책을 읽고

크리슈나무르티는 『배움과 지식에 대하여』(고요아침, 2008)에서 이렇게 말한다. “배움은 시작도 끝도 없는 삶의 움직임”이며, “고정된 지식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말라”라고. 그냥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하라고.(163) “모든 생각이 정지해야만 비로소 실제 있는 그대로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170) 맞는 말이긴 하다. 약을 먹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에서도 그랬다. 먹자니 해로울 것 같고 안 먹자니 힘들고 거기에 이어지는 생각에 의해서 나중에는 머리가 터질 지경이 되어버렸다. 정작 약을 먹느냐 안 먹느냐 하는 것보다도 그 둘 사이에서 오락가락 갈등하느라 진을 뺐다. 그렇지만 생각을 멈춘다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이미 오랜 세월 ‘착실하게’ 훈련된 생각은 요청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작동을 한다. 미처 생각을 한다는 걸 알아차리기도 전에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해 온 매뉴얼대로 신속정확하게. 통증이 오면 불안한 생각부터 일어난다 자동적으로. 그러니 이런 잡다한 생각 없이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건 실현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게다가 문제를 본다는 건 그에 대해 생각을 하는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생각을 멈추고 있는 그대로 본다니! 뭘 본다는 걸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는가?

 

다시 크리슈나무르티가 말한다. “뭔가를 갑자기 한순간에 지각하는 일이 있지 않았는가, 문제를 지각하는 그 순간 문제가 완전히 끝나버리는 일이 여러분에게도 일어난 적이 있었을 것”(164-165)이라고. 순간 떠오르는 두 개의 장면이 있다. 앞에 쓴 내용 중 ‘동작대교 위 사건’과 ‘통증과 하나가 되었던 순간’. 달리던 택시 안에서 치료에 올인하며 전전긍긍하던 내 모습이 전체적으로 보였고 그 순간 문제가 순간적으로 사라지면서 가슴이 뻥 뚫리면서 ‘그래 꼭 나아야 하나? 그냥 이대로 살면 안 되나?’ 하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났던 그날. 돌아보면 그때는 내가 생각을 했던 게 아니었다. 어디선가 그런 생각이 갑자기 내 머리를 때렸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통증과 하나 되었던 순간’도 마찬가지다. 통증을 둘러싼 온갖 불안한 ‘생각’들이 멈추는 찰나 통증은 있는데 통증이 사라져버렸다. 

 

생각을 멈추고 문제를 직면한다는 것. 그랬을 때 그렇게도 나를 힘들게 했던 문제가 해결되어버리거나, 문제는 그대로인데 더 이상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경험으로 알겠다. 그런데 문제는 내 경험치 안에서는 그건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앞의 두 가지 사례-동작대교 위에서 일어난 인식의 전환과 통증과 하나되는 순간의 경험-도 그냥 어느 순간 그런 상태가 된 것이지 내가 노력해서 그런 상태를 만든 게 아니었으니까. 어떻게 그런 상황을 맞닥뜨린 건지 설명할 수 없다. 억지로 설명을 하자면, 전자는 한 십 년 명약을 순례하다 보니 더 이상 그런 식으로는 안 된다는 걸 자기도 모르게 알게 되었기 때문에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할 수 있고, 후자는 인간이 아주 절박한 상황에 내몰리면 자기 자신을 보존하기 위한 방책을 스스로 찾는데 그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나는 이런 정도로 그때의 상황을 스스로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상황이 오기를 그저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은가? 평생 그런 상황이 오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감이당에 온 이유도 지금까지는 오랜 시간에 걸친 경험으로 그런 지점들을 넘어왔다면 이제는 지성의 힘으로 이런 마디들을 넘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학기마다 책을 읽고 어떻게 하든 그걸 내 삶에 적용해 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막상 구체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막막하다. 읽는 책들은 내가 지금까지 보고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참신한 내용들로 가득했다. 읽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그 매력에 푹 빠져든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책들도 그랬다. 그런데…. 그 다음은? 어떻게 하면 생각을 멈추고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지를 좀 친절하게, 상세하게 제시해주면 좋으련만 내 질문에 속시원한 답은 없고…. 참 답답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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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다 이런 일이

어떻게 하든 읽은 내용을 내 삶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려고 어설픈 공부를 하며 대중지성 2학년을 힘겹게(!) 보내고 있었다. 대구에 가신 어머니와는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오빠 내외와 휠체어를 타고 바깥나들이도 하고 그럭저럭 잘 지내시는 것 같았다. 그래도 늘 막내딸인 나를 보고 싶어 하셨다. 그러다가 점차 귀도 더 어두워지시고 기력도 떨어지고 하면서 통화하는 것조차도 수월치가 않았다. 오랜만에 어머니를 뵈러 갔다. 2014년 10월 3일. 화창한 가을날.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작은올케와 코스모스가 무더기로 핀 둑길을 걸었다. 어머니가 노래를 부르신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아 참, 타~고 갑~니다.” 올케와 한바탕 웃었다. 걷는 게 아니라 휠체어를 타고 가신다는 뜻이다. 오랜만에 막내딸과 하는 나들이에 기분이 좋으시다. 어머니는 꽃을 좋아하신다. 서울에 계실 때도 벚꽃이 필 때면 남산이나 과천 국립 현대 미술관 부근의 벚꽃 구경을 하러 갔고,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줄지어 피어 있는 길을 달리기도 하고. 

99년 여행지에서 홀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둘이서 살았다. 내가 못하는 집안일은 어머니가 도와주시고 나들이를 할 때면 보행이 불편하신 어머니보다는 운전을 하는 내가 앞장을 섰다. 개포동에 살 때는 분당 율동공원이나 남한산성엘 자주 갔고 올림픽 공원이나 남산을 한 바퀴 돌기도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잠원동 집으로 이사를 온 뒤로는 아무리 추운 겨울이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한강 시민 공원에 나갔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걷는 운동을 하셨고 나는 멀리서 어머니를 지켜보며 한강 잔디밭을 걷곤 했다. 겨울이면 한강에 무리지어 있는 오리를 보러 가기도 하고 때로는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즉석 라면을 끓여 저녁을 해결하고 들어오기도 했다. 그렇게 바깥나들이를 하고 나면 어머니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어머니가 나가는 걸 귀찮아하셨다. 그해 여름 많이 편찮으신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참 오랜만에 하는 나들이로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어머니와 이틀을 보내고 서울로 온 며칠 뒤 어머니가 다쳤다는 연락이 왔다. 앞으로 엎어져서 광대뼈가 부러진 것이다. 어머니는 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원래 얼굴뼈는 다쳐도 그다지 통증을 심하게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어머니도 수술할 의사가 없었고, 의사도 어머니의 의사를 따랐다. 워낙 고령이시라 두고 보자고 했다. 12월 무렵 뼈가 거의 붙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왔다. 어머니는 원래 뼈대가 굵고 건강한 신체를 타고 나셨다. 당신 스스로도 몸을 많이 움직이는 편이었고. 어지간히 아파서는 누워 지내질 않으신다. 사람의 몸은 기계와 같아서 안 놀리면(안 움직이면) 녹이 슨다고 하면서. 어머니가 병상에 계실 때 지압하는 분을 집으로 모셔 치료를 받았는데, 어머니 뼈는 60대라고 했다. 그때 연세가 아흔 다섯이었다. 그 정도로 튼튼하셨다.

 

어머니가 다른 탈 없이 무사히 넘어간다고 안도하고 있었는데 2015년 1월 중순 큰오빠한테서 연락이 왔다. 어머니가 갑자기 머리가 너무 아프고 몸에 마비 증상이 있어서 병원에 가셨다고. 안면 골절상을 입을 때 뇌혈관이 조금 터져서 미세한 출혈이 있었는데, 그것이 석 달이 지난 시점에 극심한 두통과 마비 증상으로 나타났다는 것. 고령이시라 수술은 곤란하다는 게 의사의 소견이라고 했다. 오빠한테 어머니 의견을 들어보라고 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어떤 선택을 하실지 여쭈어 보라고. 당시 어머니는 그런 판단을 하실 만큼 정신이 명료하셨고 판단력도 있으셨다. 그리고 당신 몸에 일어난 일이니 당신이 판단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곧바로 대구로 출발했다. 어머니가 대구로 가신다고 해도 말릴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나도 어머니도 둘이 사는 게 좋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같이 살자고 했었는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가는데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이미 수술을 받으셨다고. 큰오빠가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그냥 지켜볼 수가 없어서 그렇게 결정했다고! 한편 안도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어머니가 그 이후를 잘 견뎌낼 수 있을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채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을 보는 듯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과연 나는 이 상황에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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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첫마음   2017-09-11 20:59:25
 
창희샘~ 반값습니다. 감동이 밀려오는 글이네요. 샘께서 약 드시는 걸로 고민하고 계셨던 기억이 납니다. 글 읽으니 제가 참 사소한 일로 감정의 파고를 겪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주 가끔 얼굴 뵙지만 워낙 담담해 보여 글에서와 같은 심정을 겪으신 분이란게 잘 다가오지 않았는데.... 다음 글 또 기대합니다^^
     
無心이   2017-09-21 14:35:30
 
정랑샘이시죠? 여기서 이렇게 만나니 더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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