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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질투라는 이름의 전차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7-10-21 07:21
조회 : 277  

[소세키의 질문들] (9) - 『우미인초
 
질투라는 이름의 전차


박 성 옥

 

1. 인기 만점의 대중소설

 

 『우미인초』는 소세키가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아사히신문사의 전속작가가 되어 처음으로 신문에 연재한 소설이다. 신문이라는 대중매체에 선보이는 첫 소설인 만큼 보편적인 대중성을 실험하는 글이었다. 소설의 구도는 세 명의 남자와 세 명의 여자가 만들어내는 삼각관계이다. 애정의 삼각관계에 돈이 빠질 수 없다. 돈과 사랑이 얽히고 도의와 욕망이 설키면서 갈등이 벌어진다. 신문연재가 시작되자 『우미인초』 는 선풍적인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어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 여주인공이 착용한 옷과 핸드백, 화장방법, 심지어는 머리핀까지 유행을 하듯이 그 때도 그랬다. 우미인초 반지, 우미인초 오비아게, 우미인초 유카타지와 같은 기념품이 생산되어 인기리에 팔렸다. 우미인초는 경국지색을 상징하는 양귀비꽃이다. 항우의 애첩이었던 우희가 자결하고 난 후 무덤 앞에 핀 꽃이라고 한다. 지극히 아름답고 고혹적인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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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에서 양귀비꽃에 해당하는 매력적인 도도녀는 후지오다. 후지오는 화려한 미모와 영리한 머리를 자랑한다. 자존심은 하늘을 찌른다. 화술도 뛰어나다. 웬만한 남자는 기가 죽는 속칭 ‘센 언니’라 하겠다. 후지오는 24세의 노처녀다. 당시 풍속으로는 스무살이 넘은 여성이 시집을 못 가면 이상하다고 수근거리던 때다. 그녀는 몇 달 전 죽은 아버지가 내심 정해놓은 혼처가 성에 차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양쪽 집안에서 암묵적으로 결혼상대로 여겨왔던 남자는 무네치카다. 그는 작년에 외교관 시험에 탈락한 취준생이다. 시험이야 또 보면 되고 집안도 빵빵하지만 후지오가 꺼리는 이유가 있다. 후지오가 생각하기에 무네치카는 자기 맘대로 조종하기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남자다.

 

 후지오가 남자를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은 주도권이다. 자기가 장난감처럼 쥐락펴락할 수 있는 남편을 얻고 싶다. 후지오는 자기 집에 와서 영어를 가르치는 오노와 썸을 탄다. 오노는 후지오의 말 한마디에 절절 매는 유순한 남자다. 길들이기 쉬운 남편감이다. 비록 가진 것 하나 없는 고아지만 대학을 수석졸업해서 천황에게 은시계를 하사받은 수재이다. 박사학위만 따면 데릴사위로 안성맞춤이다. 두 사람만 있는 방안에는 후끈 달아오른 감정의 기류가 흐른다.  “이렇게 하면 돋보여요.” 후지오는 오노의 조끼에 금시계를 달아준다. “드릴까요?” 후지오는 곁눈질로 묻고는 이내 “그럼 그만두죠.”하면서 오노의 가슴에서 금시계를 빼낸다.“ 후지오는  금시계를 가지고 남자를 희롱한다. 아버지가 런던에서 사온 금시계는 원래 무네치카가 졸업하면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나이가 차면 집안에서 정해주는 대로 순순히 결혼을 하지 않고 자기 맘에 드는 남편감을 직접 선택하려는 여성의 욕망은 성취될 수 있을까? 후지오는 전적으로 근대의 개인주의를 반영하는 여성이다. 좋게 보면 독립적이고 당당한 여성상이다. 하지만 때는 1900년대 초반, 근대로 진입한 일본사회에서 후지오 같은 여성은 위험하다. 그녀는 전통적인 남성중심의 사회질서에 균열을 일으키는 악녀성으로 드러난다. 원래 악역을 맡은 캐릭터가 강렬할수록 드라마가 흥미진진한 법이다. 강한 악인은 선악의 갈등을 뚜렷하게 대비시킨다.

 

2. 문명의 불빛, 박람회장

 

 후지오의 마음은 오노에게 기울어졌다. 오노의 마음도 후지오에게 끌린다. 후지오는 곧 집과 유산을 상속받을 예정이다. 후지오와 결혼만 한다면 경제적 안정이 딸려온다. 오노가 꿈같은 미래를 상상하고 있을 때 그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등장한다. 옛 은사의 딸인 사요코가 도쿄로 이사를 온 것이다. 옛 은사는 오노가 자기 딸과 정혼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집도 절도 없이 험한 꼴을 당할 때 오노를 키워주고 돌봐준 부녀다. 과거에 신세진 도의를 갚을 것인가, 부와 출세가 보장되는 미래를 취할 것인가. 오노는 번민한다. 후지오가 도쿄를 상징한다면 사요코는 교토를 상징한다. 후지오가 금시계를 가지고 있다면 사요코는 거문고를 가지고 다닌다. 후지오가 근대를 연다면 사요코는 전통을 이어간다. 후지오가 시대를 앞서간다면 사요코는 시대에 뒤쳐졌다. 도리와 욕망의 기로에 서서 오노는 눈을 질끈 감기로 한다. 오노의 마음은 과거의 족쇄를 버리고 욕망의 세계로 기울어진다.

 

세계는 중첩되어 있다. 후지오를 사이에 두고 오노와 무네치카라는 삼각관계가 있다. 오노의 입장에서 보면 후지오와 사요코라는 삼각관계가 있다. 이들 모두는 우연히 박람회장에서 운명적인 조우를 한다. 그들의 갈등이 극적으로 촉발되는 장소가 박람회장이라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우미인초』 는 1907년 6월부터 10월까지 연재되었다. 같은 시기에 도쿄의 우에노공원에서는 박람회가 열리고 있었다. 박람회장은 근대 서양문물의 정수가 모이는 곳이다.

 

개미는 단것에 모이고 사람은 새로운 것에 모인다. 문명인은 격렬한 생존 가운데서 무료함을 한탄한다.(...) 문명인만큼 자신의 활동을 자랑하는 자도, 문명인만큼 자신의 침체에 괴로워하는 자도 없다. 문명은 사람의 신경을 면도칼로 깎고 사람의 정신을 나무공이로 둔하게 한다. 자극에 마비되고, 게다가 자극에 굶주린 자는 빠짐없이 새로운 박람회에 모인다.(...) 자극의 주머니에 대고 문명을 체로 치면 박람회가 된다. 박람회를 무딘 밤 모래로 거르면 찬란한 일루미네이션이 된다. 만약 살아있다면 살아 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일루미네이션을 보고 앗 하고 놀라지 않으면 안 된다. 문명에 마비된 문명인은 앗 하고 놀랄 때 비로소, 살아 있구나, 하고 깨닫는다. (나쓰메 소세키, 『우미인초』, 송태욱 옮김, 현암사, 2016년, 193~194쪽)

 문명은 끝없이 욕망을 부추기고, 문명인은 끝없이 새로운 자극을 추구한다. 가질 수 없는 욕망은 환상처럼 부서진다. 박람회장은 실상과 환영(幻影)이 뒤섞여서 눈부신 불빛을 이룬다. 바로 이곳에서 후지오는 오노가 사요코와 앉아있는 장면을 보았다. 믿었던 사랑의 실체가 한 순간에 일루미네이션으로 바뀐다. “내 남자가 다른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 친숙하게 마주보고 있을 때, 당목으로 심장을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가질 수 없는 것도 탐하는 시대에 자기 소유라고 여겼던 것을 빼앗기는 것은 더 못 참는다. 경쟁에서 밀렸다고 생각하자 후지오는 질투의 팜므파탈로 돌변한다. 분노와 질투에 사로잡힌 후지오는 파멸로 가는 쾌속열차에 올라탔다. 자존심 때문에 진심을 드러내지도 못한다. 무네치카를 만나면 오노와 오모리에 놀러간다고 살짝 내비치고, 오노를 만나면 무네치카와 박람회에 놀러갈 거라고 살짝 흘린다. 후지오는 두 남자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이제 공중에서 헛발을 내딛는 수순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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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결말은 후지오의 돌연한 죽음으로 끝난다. 오노가 마음을 고쳐먹고 은사의 딸과 혼인을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당황한 후지오가 무네치카에게 금시계를 건네주자 그는 시계를 대리석 바닥에 내팽개친다. 시계는 박살이 났다. 후지오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그 길로 끝이다. 여자는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해서 죽었다. 정말 뜬금없는 결말이다. 소세키는 왜 급작스럽게 후지오를 죽여 버렸을까. 남자들에게 여자는 원천적으로 소통 불가능한 타자이다. 하물며 후지오는 소세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들 중에서 가장 지독한 팜프파탈 아닌가. 경쟁과 질투의 화신인 후지오는 소세키도 감당할 수 없었던 타자가 아니었을까? 부득이 그녀의 죽음으로 모든 갈등을 봉합할 수밖에.

 

3. 진지하게 자기 속도로 걷기
 
 신여성과 전통적인 여성, 도의와 욕망, 근대와 과거가 충돌하는 소설은 지금의 우리에겐 낯설지 않다. 『우미인초』 는 근대소설의 전형적인 대립구도를 제시했다. 『우미인초』 가 나온 지 10년 후에 조선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삼각관계가 재현된다. 이광수의 『무정』은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한국 최초의 장편소설이다. 경성학교 영어교사인 형식은 김장로의 딸 선형을 가르치는 과외교사로 발탁된다. 소문난 재산가인 김장로는 자기 딸의 미국유학을 뒷바라지할 데릴사위로 삼기 위해서 형식을 골랐다. 형식은 닷새 만에 선형과 약혼하는 행운을 거머쥔다. 가난한 고아였던 형식의 앞길에 신분상승의 기회가 펼쳐진다. 이 때 과거에 자신을 거두어준 은사의 딸 영채가 찾아온다. 구시대의 빚이 형식의 발목을 잡는다. 돈을 택할 것인가 의리를 지킬 것인가. 『무정』의 형식도 『우미인초』 의 오노처럼 도의를 버리고 욕망을 선택한다. 이처럼 근대소설에서 뻔한 갈등구조가 변주되는 것은 화폐라는 기준으로 모든 것이 균질화되는 시대적 특성 때문이다.

 

  『우미인초』의 갈등관계가 박람회에서 증폭되듯이 『무정』의 세 사람은 기차 안에서 만나 불꽃이 튄다. 박람회나 기차는 그야말로 근대의 표상이다. 결론만 보자면 이광수에게는 갈등을 한 방에 해소시킬 만병통치약이 있었다. 『무정』은 잠든 조선사회를 깨우는 계몽의 깃발 아래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대동단결하면서 끝난다. 소세키에게는 계몽이나 근대라는 환상이 없다. 소세키가 보기에 문명은 ‘도덕이 쇠퇴하고 인정이 메마른 말세’다. 소세키가 찾은 출구는 무엇일까?

 

 근대인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이다. 근대인은 생존경쟁을 위해 교양과 체면으로 겉모습을 포장하고 본심을 속인다. 20세기의 대화법은 “바늘을 스펀지에 숨기고 상대에게 꽉 쥐게 한 후 상처가 나면 고약을 발라주며 달래는” 방식이다. 내면과 외면이 불일치한다. 겉과 속이 반대방향으로 발달하면 내면이 갈기갈기 찢기는 형벌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끄달리지 말고 태연해야 한다. 자신에게 진지해야 한다. 소세키는 도의의 세계를 되찾는 진지함으로 문명의 세계를 돌파해 나간다.

 

 또 하나, 소세키에게 중요한 키워드는 속도감이다. 소세키는 문명의 사회에서 겪는 개인의 무력감을 종종 걸음걸이에 비유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발뒤꿈치로 걷는다. 도쿄에서는 까치발로 걷는다.” 박람회장처럼 어마무시한 인파에 휩쓸린 사람들은 밀리는 대로 떠밀려간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돈다. 어지러운 세상이다. 눈을 떠보면 세상은 아찔하게 변해있다. 근대인의 발걸음은 불안하다. 자기가 속도를 조절할 수가 없다. 한 쪽 발은 고무신을 신고 다른 쪽 발은 축구화를 신은 격이다. 절룩거리며 걷다가는 허방을 디딘다. 다른 사람을 이기려고 뛰다가는 반드시 넘어진다. 태산 같이 무겁게, 자연스럽게 걸을 일이다. 소세키가 강조하는 삶의 윤리는 자기 속도로 걷기다.  (2017.10.10.)


-> MVQ "소세키의 질문들"에 관한 글을 더 보고싶으시다면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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