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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7-10-27 17:49
조회 : 331  

[소세키의 질문들] (10) - 『갱부』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박 성 옥

 

1.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다

 ‘살림을 탕탕 뽀사 뿌리고’ 집을 나가버리고 싶다든지, 단 한 명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살고 싶다든지, 뭐 이런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소세키의  『갱부』에 깊이 매료될 수 있다. 이유가 뭐든 간에 당신은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다고 절망해본 사람임에 분명하다. 얽혀있는 모든 일과 인연으로부터 나 몰라라 도망치고 싶을 때, 어떤 목표나 목적지가 있을 리 없다. 그냥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현실을 도피하고 싶다는 절박감만이 강렬하다. 설령 그 길이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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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삶의 밑바닥으로 전락하는 이야기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전락을 수련하는 이야기다.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수련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5월의 어느 날, 밤 아홉시, 열아홉 살 청년이 맨몸으로 집을 뛰쳐나온다. 갈아입을 옷도 없고 돈도 없다. 가출한 청년은 밤새 소나무 숲길을 걷는다. 그는 세상을 등지고 싶다. 두 소녀와 삼각관계에 얽혀 세간의 비난을 받고 ‘도리에 어긋난 일이라든지 의리, 인정, 번민 같은 것이 파열하여 대충돌을 일으킨 결과’(『갱부』, 송태욱 옮김, 현암사, 2014년, 42쪽)다. 살기 힘들 때는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위안이 된다. 그렇다고 자살을 감행하기는 두렵다.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애매한 상태다.

 

가출 이틀째, 청년은 길에서 만난 사내의 한 마디에 낚였다. 사내가 “임자, 일할 생각 없나?” 하고 묻는 순간 청년은 속세에 집착하는 마음이 싹튼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 생각을 하던 그다. 단 하루도 자기 힘으로 벌어먹고 산 적이 없다. 전에는 돈만 벌면 된다는 주의를 비웃던 청년이 하릴없이 조조 씨를 따라 광산으로 향한다. 조조 씨는 광산에 갱부를 소개해주고 소개료를 버는 야바위꾼이다. 조조 씨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갱부를 대단한 직업인 양 돈을 아주 많이 벌게 해주겠다고 꼬신다. 자기가 알선을 해주면 바로 갱부가 될 수 있다고 허풍을 친다. 길을 가는 도중에 붉은 담요를 두른 사내와 떠돌이 꼬마를 만났다. 조조 씨는 또 “임자, 일할 생각 없나?” 묻는다. 돈을 벌게 해준다는 말에 두 사람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순순히 따라나선다.

 청년은 그들을 보며 세상살이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그동안 내가 사는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했던 걸까? 삶의 선택이 이토록 수월하게 흘러간다니 놀랍기만 하다. 어차피 버린 몸, 청년은 함께 전락해주는 길동무가 생긴 게 고맙고 유쾌하다. 처음으로 그는 ‘뿌리 뽑힌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사람이 없는 지옥보다는 반드시 요괴가 있는 지옥을 택할 것이다.” ( 『갱부』, 92쪽)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전락을 해보고 얻은 선물이다. 죽음에 대한 욕망이 아주 작은 이유로 인해 순식간에 삶의 의지로 전환한다는 것도. 

 

그들은 산 속의 산을 걷고 또 걷는다. 이틀 동안 고구마 하나 먹었을 뿐 물 한 모금 먹지 못했다. 깊은 산 속 오두막에서 이불도 없이 자고 난 다음 날 아침밥을 거르고 또 걷기 시작했다. 이 때 청년은 자신의 삶이 전락했다는 것을 몸으로 실감했다. 살면서 아침밥을 안 먹는다는 건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마침내 도쿄의 부잣집 도련님은 구리광산에 도착했다.

2. 살아서 자신을 구원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이 소설의 절반이다. 가출한 청년이 광산으로 가는 이틀 동안 길에서 체험한 일이다. 나머지 절반은 땅 속 깊이 내려가 갱내를 둘러보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다. 소세키는 마치 직접 체험한 것 같이 갱부의 현장을 촘촘하게 사생화처럼 묘사하고 있다. 한 컷 한 컷 동영상을 보는 것처럼 생동감이 있는 문체다. 『갱부』 는 소세키가 유일하게 다른 사람의 체험담을 듣고 쓴 소설이다. 역시 인생은 상상력으로 구성한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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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에 도착한 날, 청년이 느낀 최초의 감정은 당황스러운 이질감이다. 갱부들은 평소 그가 보았던 사람의 얼굴과는 완전히 달랐다. 퍼렇고 까만 안색은 도회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빛깔이다. 광대뼈는 높이 솟아있고 눈은 움푹 들어갔다. “요컨대 살이라는 살은 모두 퇴각하고 뼈라는 뼈는 모조리 함성을 지르며 나아가는” ( 『갱부』,167쪽) 얼굴이다. 갱부들의 거칠고 난폭한 눈빛을 보고 청년은 완전히 기가 죽는다. 갱부들도 청년에게 이질감을 느낀다. 청년이 학교 교육을 받으며 곱게 자란 도련님이라는 걸 한 눈에 알아챈다. “여기가 지옥의 입구야. 들어갈 수 있겠어?” 너 같이 연약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돌아가라고 말한다. 여기까지 와서도 조롱과 모욕을 받는 인생이라니.

 

 광산에는 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들어와 있다. 더러 서생이 들어왔어도 열흘을 견디지 못했다. 갱부가 되려면 조수일 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일당 35전으로 버텨야 한다. 이불 빌리는 데 6전, 밥값으로 14전 5리를 내고 5퍼센트는 십장에게 내야 한다. 남는 게 없다. 남는 돈이 있다한들 주사위 도박을 하고, 색주가에 돈을 바치느라 빈털터리가 된다. 하루에 두세 명은 도망치고, 거의 매일 죽는 사람이 나오는 곳이다. 청년도 도착한 첫날부터 사체를 운구하는 장례행렬을 보았다. 방 안에는 병이 들어서 빚을 내고, 빚을 못 갚아서 마누라를 저당 잡힌 갱부가 죽은 듯이 누워있다.

 

절망의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체험은 죽음에 대한 성찰과 닿아있다. 머릿속에서 관념으로 상상해왔던 죽음이 생활의 실체로 다가온다. 다음 날 청년은 안내자를 따라 갱내를 구경하러 내려간다. 칠흑같이 깜깜하다. 칸델라에 물이 떨어져 꺼질 듯 지지직 소리가 난다.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는 굉음 소리와 연기를 맡으며 진흙 굴을 기어가고, 허리까지 물에 빠지고, 90도 각도로 깎아지른 절벽을 출렁거리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다. 사다리 열다섯 개를 내려가야 하는 깊은 막장이다. 청년은 길을 잃고 땅 속을 헤맨다. 이러다 죽겠구나 의식이 희미해진다. 차라리 사다리에서 손을 놓아버리고 거꾸로 떨어져 머리가 박살나면 좋겠다는 죽음 충동이 되살아난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했던가. 맨 밑바닥까지 내려가면 올라올 일만 남다. 죽음의 문턱에서 청년은 깨닫는다. 살아서 자신을 구원해야 한다는 것을. 생의 의미가 없을지라도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얻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전락의 수련만 쌓는다면 삶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층 노동자로 전락한 체험이 예기치 않게 가져다준 삶의 의욕이다. 여기서 약간의 반전!  청년은 갱부가 되지 못한다. 건강진단을 받아보니 기관지염에 걸렸다. 기관지염은 폐병으로 발전할 수 있기에 갱내는 못 들어간다. 청년은 대신 한바집에서 장부 정리하는 일을 하게 되고, 오 개월 후 도쿄로 돌아온다. 지옥에서 한 철을 보낸 청년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3. 모순된 자아를 긍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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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그 때 가출을 하지 않고 귀여운 도련님으로서 얌전히 성인이 되었다면, 내 마음이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것도 모른 채, 변하면 큰일이다, 죄악이다, 하며 끙끙 앓다가 나이를 먹었다면...” 어쩔 뻔 했을까 청년은 생각한다. 그가 길 위에서 깨달은 것은 인간은 모순덩어리라는 사실이다. 모순된 존재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변적이다. 사람의 마음이 끝없이 움직인다는 것을 모르면 변하는 자신을 자학하며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타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조건과 상황을 무시하고 타인에게 불변의 마음을 강요하게 되면, 결과는 뻔하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외친들 소용없다. 원망과 불신에 사로잡혀 불안만 커진다. 모순된 감정과 모순된 생각의 덩어리를 긍정하고 나면 변하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점이라는 걸 안다.

 

 병에 잠복기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사상이나 감정에도 잠복기가 있다. 이때에는 자신이 그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감정에 지배당하면서도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 그 사상이나 감정이 의식의 표면에 드러날 기회가 없으면 평생 그 사상이나 감정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자신은 결코 그런 기억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 증거는 이런 거라며 줄기차게 반대의 언행을 해 보인다. 하지만 옆에서 보면 그 언행은 모순되어 있다. (나쓰메 소세키, 『갱부』, 송태욱 옮김, 현암사, 2014년, 62쪽)

 모순된 감정에 지배받는 인간은 변한다. 자신은 이런 사람이라고 정리할 수가 없다. 인간은 “신까지도 애먹을 정도로 정리되지 않는 물건”이다. ( 『갱부』 24쪽) 그러니 고정 불변의 자의식에 대한 믿음은 얼마나 허무맹랑한가. 소설은 청년의 자의식이 변모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광산에 도착한 날 청년은 갑자기 눈물이 나올 뻔 했다. 한바 책임자가 “당신은 날 때부터 노동자는 아닌 것 같은데...” 했기 때문이다. 임자나 자네라고 부르지 않고 옛날처럼 당신이라고 불러준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워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전락하기 전의 자신을 인정받으니 기쁘다. 자의식은 인정욕망과 붙어있다. 청년은 자살도 폼 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변소나 창고에서 목을 매는 건 저속하다. 갱내에서 광석처럼 굴러 떨어져 죽는 건 분하다. 갱에서 나가 게곤 폭포까지 가서 멋지게 자살해야지 생각하며 죽을힘을 다 해 사다리를 올라갔던 것이다.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의 부질없음을 잘 나타내고 있는 장면이다.

 

 

헛된 욕망이 고통을 부른다. 고통의 중심에는 자아가 있다. 청년은 자신이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인간이라는 성찰을 하게 되었다. 죽을 것 같이 괴로웠던 세상의 평판이 무의미하다는 걸 실감했다. 자신을 칭칭 동여매고 있던 자아라는 쇠사슬을 벗어던질 때 한층 고양된 존재를 느낀다. 나를 버리는 체험이 묘하게도 삶의 활력소가 된다. 청년은 전락과 죽음의 체험을 통해 그동안 집착하던 자기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삶을 몸으로 체험하는 시간은 신체를 변화시킨다. 전락의 체험은 다른 신체로 거듭나게 한다. 광산에서 잠을 자던 첫 날 밤, 청년은 빈대가 물어대는 통에 이불 위에 눕지도 못하고 기둥에 기대어 앉아 밤을 새웠다. 그토록 괴롭히던 빈대가 이삼일이 지나자 아프지가 않다. 갱부와 같은 냄새가 나는 인간이 되자 ‘살에 품격이 생겨’ 빈대도 두 손을 든 거다. 처음에는 짐승처럼 보였던 갱부의 얼굴도 이제 평범하게 보인다. 이질적인 타자였던 갱부들이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자각이 생긴다. 비로소 다른 사람의 고통이 보이고, 타인에 대해 공감할 수 있다. 다른 신체가 된 것이다.

 

신체가 바뀌면서 삶의 방식도 바뀐다.  청년은 전에는 자기가 얌전한 사람이었는데 이제 뻔뻔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도덕도 윤리도 무시하는 파렴치한이 아니다. 모순되고 변화하는 자아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자의식을 벗어나면 인정욕망에서도 자유로워진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괴로울 이유도 없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칠 필요가 없다. 고정된 자아에서 벗어날 때 다른 삶의 가능성이 보인다. 전락을 통해서 자의식과 인정욕망을 버릴 때, 살아서 자신을 구원해야 한다는 것이 청년이 길에서 배운 지혜다. (201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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