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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세포들로 이루어지는 유기체, 그리고 사회 - (1)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7-11-24 21:15
조회 : 155  



세포들로 이루어지는 유기체, 그리고 사회 - (1)

 

 

 

김태진

 

 

 

 

신체에서 사상감각(思想感覺)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뇌수의 집합이라 하더라도
 사회는 결코 이와 같을 수 없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자 역시 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일신(一身)의 사상감각은
 오직 신체 중 하나의 국부인 뇌수에만 있지만, 
사회에서는 사상감각이 전적으로 사회 사이에 분포하고 있다.
─바바 타쓰이(馬場辰猪), 「본론(本論)」(1882)

 

 

 

 

 

‘organism’과 ‘有機’

 

우리는 신체를 표현할 때 유기적이다, 유기체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이는 사회나 국가를 사용하는 데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때 유기적이라는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근대 동아시아를 볼 때 우리는 서구의 개념어들을 번역한 말들을 주로 다룰 수밖에 없다. 개념어들이 부재한 상황에서 개념어들의 수입의 과정이 필요했고, 그런 점에서 근대 동아시아는 ‘번역된 근대(translated modernity)’라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때 서구의 개념어와 그 번역어 둘을 동일하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가령 ‘organism’과 ‘유기체(有機體)’라는 말은 동일한 ‘의미’를 가지며 동일한 ‘쓰임’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초기에는 그 개념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불일치가 일어났을지 몰라도 적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차이는 근본적으로 줄어들거나 없어지며, 이 두 개념 간의 완벽한 동일성이 추구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유기체’라는 말이 쓰인 곳에서 이를 ‘organism’이라고 읽어내며 그 뜻을 서구식의 개념으로 등치시킨다. 물론 번역이란 이를 의식하고 쓴 텍스트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둘이 항상 같은 개념과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번역이론에서 같은 경험을 전달할 표현이 존재할 수 없다는 번역의 불가능성(impossibility)과 복수의 번역문 중 어떤 번역이 원문과 같은지 결정할 근거가 없다는 번역의 불확정성(indeterminacy)이 흔히 이야기되듯이, 번역에서 ‘등가성’이란 성립할 수 없다.우리가 번역을 통해 원어와 번역어 사이에 흔히 등가관계가 있다고 가정하지만 실은 무엇이 같은 것인가는 사후적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결국 번역은 같은 것이 먼저 있고 나서 교환행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환행위 그 ‘자체’에서 같은 것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번역이란 미리 존재하는 일대일의 번역어들이 존재하고 그들을 이어주는 작업이 아니라, 이들에 앞서 번역행위가 존재하고 이들을 동등하게 사후적으로 같은 가치(의미)를 갖는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번역(교환)이 성립하게 된다. 따라서 “등가라서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교환된 것이 등가가 된다.” 이처럼 번역은 다른 언어와 자국의 언어 사이의 가교의 역할을 하지만 이 다리는 언제나 불완전하기 마련이다. 저쪽(원어)과 이쪽(번역어)이 있고 다리(번역과정)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리가 있음으로 저쪽과 이쪽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번역의 문제는 원본과 복사본의 문제로 치환될 수 없다. 복사본이 얼마나 원본을 잘 베꼈느냐의 문제로 번역이 파악될 때 그것은 기껏해야 당시 그들이 어떤 개념이나 문헌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는 식으로, 혹은 잘못되었다면 오역의 결과로 그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단지 불만족스러운 그러나 성급한 결론만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이처럼 번역 과정에서 한계에만 주목하는 결론은 한 언어 맥락에서 다른 맥락으로 의미를 전달하고, 재구성하는 구체적 문제를 무시하게 된다.

 

따라서 번역의 기저에 숨어 있는 논리구조의 차이를 볼 필요가 있다. ‘organism’을 ‘유기체’로 번역했을 때 이 유기체라는 개념을 통해 어떤 생각을 받아들였고, 어떤 생각은 받아들이지 못했는가, 이는 신체를 어떤 식으로 사유했는가, 좀 더 크게 보자면 생명을 어떤 식으로 사유했느냐는 보다 근원적인 논리구조의 차이를 통해 그들의 정치·사상적 특이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organism에서 organ이라는 말은 14세기 영어에 편입되었으며 처음에는 악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후 피아노류의 악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되었다. 그런데 이 어원은 고대 희랍의 órganon에서 왔다. 이 말은 공구(instrument), 기계(implement), 도구(tool) 등을 의미하는 말로 여기에서 두 가지 파생적인 의미, 첫째는 추상적인 기구(instrument)를 의미하는 말과, 악기라는 말로 파생되어 사용되었다. 15세기 초에 들어서면 organ이 신체 일부분에 해당하는 기관 등으로 사용되는 예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용법과 관련하여 organism이라는 단어가 17세기에 새로 등장한다. 즉 organize라는 동사와 관련되어 조직(organization)이나 사회 시스템(social system)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19세기 들어서는 동물이나 식물에서도 사용된다. 이렇게 해서 organism이란 말은 기관으로 구성된 생물 혹은 이처럼 살아있는 것으로서 구조나 기능을 갖는 조직을 유비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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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organism이란 말은 기관으로 구성된 생물 혹은 이처럼 살아있는 것으로서

구조나 기능을 갖는 조직을 유비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의미의 organism이 일본에서 ‘유기체’라는 말로 번역되기 시작한 것은 에도 후기 난학자들에 의해서였다. 네덜란드어로 ‘유기적’이라는 뜻의 bewerk'tuigd는 말과 ‘기관’이라는 뜻의 orga'nisch을 번역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植學啓原』(1834)에서 보이듯 기성체(機性體), 무기성체(無機性體)와 같은 말로 번역했으나, 이후 유기체, 무기체로 정착하게 되었다. 유기체, 무기체라는 말은 『氣海觀瀾廣義』(1851–1856) 에도 보이며, 일본 최초의 병리학서인 오가타 고안(緒方洪庵) 의 『病學通論』(1849) 에도 유기체라는 말이 실려있다(杉本 620). 이후 organism의 번역어로서 유기체가 등장하는 『和譯字彙』(1891)의 예를 보아도 메이지 중기에 들어서면 이 번역어는 정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유기’(有機)라는 말 자체로 생명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로써 사회적인 것을 유추할 때 이것이 어떤 이미지를 낳는가는 서구의 의미망과는 다를 수 있다. 주지하듯이 유기체라는 개념은 독일식의 국가유기체론, 즉 블룬칠리(Bluntschli)-슈타인(Stein)-헤켈(Haeckel)의 논의들을 받아들이는 국권론 쪽 지형이 있다. 이는 주지하듯 머리를 정점으로 하는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유기적 결합체임을 강조한다. 반면 민권론에서 주로 원용했던 것은 영국의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의 ‘Social Organism’(사회유기체) 논의였다. 이는 앞으로 살펴보는 것처럼 전혀 다른 형태의 유기체였다. 이처럼 유기체론은 근대 동아시아에서 하나의 담론이 아니었다. 스펜서의 유기체론이 보여주듯이, 유기체론이 꼭 권위주의나 전체주의 담론과 결합해야 할 필연성은 없다. 오히려 유기체론은 정치체를 신체에 은유하는 나름의 오랜 전통 속에 있다는 점에서 독자적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유기체론은 독자적인 역사적 맥락 속에서,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신체관 좀 더 넓게는 생명관을 통해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유기체설 혹은 신체를 통해 국가를 이해하는 방식은 의학사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이해될 수 없다. 종종 유기체론은 시대에 뒤떨어진 유물이라거나,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고 다시 나타난 사상적 잔해로 이해된다. 그러나 신체를 통해 정치를 사유하는 이러한 담론은 의학사 내지 과학사와 동떨어져서 존재하지 않으며, 신체에 대한 이해보다 조금은 늦게 혹은 빨리 나타나며, 의학과 정치학이라는 전혀 상관없는 분과학문 사이를 매개하는 고리로 존재한다. 특히나 18세기와 19세기 사회를 유기체로 파악하는 방식은 단순히 유비나 수사학적 차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18세기 이후의 유기체론에서 생물학적 논의와 사회학적 논의는 구별될 수 없는 것이자, 사회는 생물 그 자체, 적어도 생물로서 파악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서양의 유기체론 역시 이를 정치적 이론의 관점뿐만이 아니라 생물학과 관련되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콩트도 지적하듯 자연철학의 중심적 시좌가 천문학으로부터 생물학으로 이동한 시기였다. 따라서 정치학을 생물학을 준거로 해서 이루어진 당시 시기의 전체적인 학지의 지형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시기의 사회진화론이나 정치학에서의 신체에 대한 비유는 단순히 수사학적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물학과 정치학, 생물학과 언어학 등의 관계에서 생물학이 활용되는 시기였다.

 

 

 

유기체로서의 사회 – 주권은 어디에 있는가 
 
스펜서의 사회유기체론은 근대 일본에서 사회를 신체에 비유해 사유한 담론의 본격적인 시작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스펜서는 민권론자들의 주요한 이데올로기가 된 『사회정학』(Social Statics, 1851)의 번역서 『사회평권론』(1884)등 저작들을 통해 ‘사회’라는 말을 유행시킨 장본인이기도 했다. 주지하듯 스펜서는 사회를 ‘유기체’(organism)로 파악한다. 일본에서도 19세기 들어 화학 등의 용어에서만 쓰이던 유기라는 개념이 1870년대 들어 요한 카스파 블룬츨리(Johann Kasper Bluntschli)나 스펜서의 organism 개념을 소개하면서 유기체라는 말이 정치체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영미권에서 스펜서의 영향력은 당대 사상가 중 최고라 할 수 있었다. 이는 일본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 메이지 헌법 발표 전까지 총 21종의 스펜서 저작이 번역되어 간행되었다. 이는 같은 시기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의 번역본 9종,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번역본 12종을 훨씬 능가하는 수치였다. 그뿐만 아니라 스펜서의 저작은 도쿄대학, 게이오 의숙을 비롯해 여러 학교에서 교과서로 광범하게 사용되었으며, 일본 지식인들과 정치가들이 앞 다투어 스펜서에게 찾아가 의견을 얻기도 했을 만큼 직접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스펜서의 논의는 자유민권론자의 논리적 기반이었던 것과 동시에 정반대로서 메이지 정부가 의존한 것이기도 했다. 시미즈 이쿠타로(淸水幾太郞)가 평가한 ‘스펜서의 두 개의 혼’이라는 말이 잘 보여주듯 근대 일본에서 스펜서 수용은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는 스펜서의 논의 속에 자연법의 사상과 낭만주의적 유기체설이 혼재되어 있어서, 상용하기 어려운 두 개의 혼이 메이지 시기 격렬히 대립한 민권론과 국권론 양 진영에 수용되었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두 개의 혼설은 스펜서의 논의를 ‘개인적 자유주의’와 ‘유기체설 전체주의’가 극명하게 나뉘어 전자가 전기에 후자가 후기에 받아들여졌다는 식의 논의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스펜서의 이중적 성격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뿐만이 아니라 출판 당시 유럽에서도 논쟁적이었다. 그의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와 유기체 이론은 서로 같이 할 수 없는 모순된 주장들을 하나로 합쳐놓은 것이라는 비판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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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개의 혼설은 스펜서의 논의를 ‘개인적 자유주의’와 ‘유기체설 전체주의’가 극명하게 나뉘어

전자가 전기에 후자가 후기에 받아들여졌다는 식의 논의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너무 편의적이고 도식적인 것처럼 보인다. 스펜서의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철학체계가 그의 유기체설과 결합해 보수적 이데올로기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고 해도 스펜서의 유기체론이 필연적으로 보수적 이데올로기, 가령 권위주의나 전체주의와 결합할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이렇게 보자면 그의 사상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자유주의적 정치철학과 모순된다. 또한 유기체라는 사유를 통해 근대 일본의 지식인들이 어떤 점을 더 부각시켜 받아들이고, 무엇을 받아들이지 못했나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에서도 재고의 여지가 있다.

 

우선 근대 일본에서 스펜서의 논의를 받아들인 사상가 중에 바바 다쓰이(馬場辰猪, 1850–1888)를 들 수 있다. 바바는 1882년 『자유신문』(自由新聞)에 연재한 미완성작인 『본론』(本論, 1882)에서 사회를 유기체로 비유하고 있다. 그는 천하 사물의 성질을 따지고 들어가면 두 종류, 이른바 유기체와 무기체라고 말하며, 사회란 유기체에 가까운가 무기체에 가까운가 어떤 종류에 속하는지를 결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회는 생장 발달함을 쉬지 않는데, 이는 변화하지 않는 무기체와 대립한다. 그런데 바바는 이 유기체를 가지고 사회를 조직하는 이유에 관해서 설명한다.
 

신체에서 사상감각(思想感覺)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뇌수의 집합이라 하더라도 사회는 결코 이와 같을 수 없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자 역시 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일신(一身)의 사상감각은 오직 신체 중 하나의 국부인 뇌수에만 있지만, 사회에서는 사상감각이 전적으로 사회 사이에 분포하고 있다. [...] 원래 우리들이 사회를 조직하는 것은 사회를 위해서 인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필경 인류가 그 천부의 자유를 향유하고자 사회를 조직한다. 이로써 보자면 그 상등동물의 신체에서 목적은 사상감각의 하나의 국부에 있다. 그러나 사회의 목적은 이와 달리 원소나 인류에 있다. 우리당이 전문(前文)에서 우리들의 천부한 자유를 향유하고자 하는 사회를 조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는 까닭이다.


사상감각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뇌수’의 집합이라 할 수 있지만 사회라는 유기체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로서 유기체는 감각이 하나의 국부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온몸에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천부의 자유를 갖는다고 말한다. 이때 스펜서의 유기체는 개인의 민권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인용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기체의 상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스펜서에게 매료되었던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 이 글은 『Trans-Humanities』 9권 2호(2016)에 실린 글입니다. 자세한 주석이나 참고문헌은 그 글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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