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e.basic
커뮤니티
양력 2018/10/19 금요일
음력 2018/9/11
사진방
감성블로그
홈 > 커뮤니티>감성블로그

[MVQ 글소식] 바쁜 세상에 안티를 거는 윤리, 도락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7-12-29 07:30
조회 : 530  



[소세키의 질문들] (14)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바쁜 세상에 안티를 거는 윤리, 도락

 

박 성 옥

 



1. 인간 세태를 관찰하는 고양이의 시선

  

대스타는 맨 마지막으로 무대에 등장하는 법이다. 소세키가 제일 처음 쓴 소설을 맨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데는 나의 사사로운 애정이 깔려있다. 소세키의 장편소설 14편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이다.(이하 『나 고양이』)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 끝까지 공을 들여 생각해보고 싶었다. 『나 고양이』 (나쓰메 소세키, 송태욱 옮김, 현암사, 2017년)는 가장 소세키스러운 작품이자 소세키 문학의 원점이다. 무명작가가 쓴 등단작이 출세작이 되고, 생애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되다니 희귀한 사례라 하겠다. 이 소설은 근대문명 비판론과 자기본위의 개성시대, 근대인의 마음의 심연에 대한 탐사, 자본주의 시대의 직업과 도락 등, 소세키의 주요한 사상을 총망라하고 있다. 소세키의 작품 중에서 가장 웃음과 해학이 넘치는 재기발랄한 소설이다.  

 

5ab0b4fa42fa5c61250c9391a00a993e_1514212 


 1905년 1월 소세키가 <호토토기스>라는 잡지에 『나 고양이』1회를 발표하자마자 열화와 같은 인기를 얻었다. 소설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단 한 번 쓸 예정이었던 『나 고양이』는 1년 7개월 동안 연재가 길게 이어지고 총11회로 마무리된다. 연재소설은 상,중,하권으로 묶여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소세키는 상권 자서에서 “고양이가 살아있는 동안, 고양이의 기분이 내킬 때는 나도 다시 붓을 잡아야 한다.”고 썼다. 작가의 의지로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소설 속 고양이가 작가에게 글을 쓰도록 추동한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이 소설은 이름 없는 새끼고양이가 구샤미의 집으로 기어들어와 함께 살기 시작한 날부터 고양이가 물독에 빠져 죽을 때까지의 이야기다. 이 소설의 독창성은 고양이라는 화자(話者)를 내세운 점이다. 고양이가 바라보는 근대의 문명세계는 한 마디로 표현해서 “바쁘다. 바빠”이다. 인간은 쓸 데 없는 일을 만들어서 얽매이고, 바빠서 허둥대는 존재다. 고양이가 얼마나 인간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는지는 간게쓰의 논문에 얽힌 소동만 봐도 알 수 있다. 간게쓰는 <목 매달기의 역학> 같은 연구를 하면서 언제부터 사람들이 목을 매서 자살을 했는지 연설하곤 하는 물리학자다. 돈 많은 사업가 가네다는 그를 사위로 삼고 싶어 한다. 단 박사학위를 먼저 따야한다. 간게쓰는 <개구리 눈알의 전동작용에 대한 연구>에 착수한다. 그는 개구리 눈알과 유사한 렌즈를 만들려고 사과만한 유리알을 깎지만 자꾸 콩알만해 진다. 결국 간게쓰와 부자집 딸과의 혼사는 실패로 돌아간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소동은 돈과 결혼, 학문과 사회적 신분과 얽혀서 돌아가는 문명사회의 허위의식을 예리하게 풍자한다. 
 

소세키가 고양이를 화자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고양이는 인간 군상의 진면목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관찰카메라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생각하는 존재다. 인간의 행동과 세태를 냉정하게 관찰하고 비판할 수 있는 인식력을 가졌다. 심지어는 주인의 심리까지 꿰뚫어보는 독심술도 구사한다. 고양이는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자유자재로 인간과 동물을 넘나드는 관찰자이며, 해석자이다. 소세키가 고양이를 화자로 삼은 것은 인간세상을 넓게, 깊게 조감할 수 있는 냉정한 카메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문명세계의 인간은 다양한 복장으로 자신의 신분과 지위의 차별성을 나타낸다. 인간이 유일하게 평등해지는 곳은 다 같이 벌거숭이가 되어 들어가는 공중목욕탕이다. 고양이가 보기에 집주인 구샤미는 “목욕탕과 탈의실 사이에 놓인 문지방을 딛고 서있는 사람”이다. 문명사회와 개인적 인생의 경계에 선 사람, 구샤미는 소세키를 대변하는 캐릭터다. 때로 고양이가 소세키일 때도 있다. 소세키는 고양이를 통해서 자아와 타자의 세계를 공평하게 넘나든다. 소세키는 방관자적인 위치가 아니라 시대와 사회를 증언하고 해석하는 참여자의 위치에 자신을 올려놓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2. 무사태평 한가한 사람들
 

5ab0b4fa42fa5c61250c9391a00a993e_1514212

 

소설은 고양이가 목도한 구샤미 집에서 벌어지는 일상사를 사생화처럼 촘촘하게 묘사한다. 문자 그대로 일상사이다. 특별한 사건이랄 게 없다. 10년째 영어교사를 하고 있는 구샤미의 집에 친구들과 문하생들이 드나들면서 나누는 대화가 거의 다다. 사람들이 만나서 나누는 재담으로 이렇게 두꺼운 장편소설을 써내려갈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구샤미 선생 집을 드나드는 지인들은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다. 미학이나 물리학, 문학을 전공하고 노는 사람도 있고, 대학교수를 하는 사람도 있고, 중학교 선생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돈벌이에는 최소한으로 에너지를 기울인다. 남는 시간은 모여서 시시껍질한 농담 따먹기로 소일하고 있다. 고양이 눈에 인간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써 입을 놀리는 족속”으로 보인다.  

미학자 메이테이가 있지도 않은 ‘도치멘보’라는 서양요리를 주문해서 식당 종업원을 골려먹은 이야기로 새로운 하이쿠 문예운동을 암시하면, 구샤미는 땅속에 사는 거인이 끌어당기는 힘(중력)이야기로 화답한다. 메이테이가 러일전쟁에 나가 죽은 친구들 이름을 편지에서 읽고 ‘목매는 소나무’를 찾아간 이야기를 하면, 간게쓰는 ‘강물 아래서 자신을 부르는 아가씨의 목소리를 듣고 다리에서 뛰어내린 자살미수사건’으로 대응한다. 거의가 과장된 뻥이다. 뻥을 쳐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 허허 웃고 넘긴다. 허풍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안목”(162쪽)에 속한다며 구샤미 측근들은 해학과 익살, 장난과 허풍을 즐기며 살아간다.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었다.”는 시인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이들을 키운 것은 팔 할이 수다였다.”
 

어떻게 이렇게 무사태평하게, 한가롭게 살아갈 수 있지? 의문이 든다. 소세키가 『나 고양이』를 연재하기 시작한 1905년이야말로 일본에서는 군국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일본이 뤼순을 함락하고 전승의 열풍에 사로잡혀 있던 때이다. 러일전쟁의 승리는 메이지 유신으로 시작된 개화의 불꽃에 기름을 부었고, 일본은 세계사의 주역에 합류했다. 정치적으로는 국가라는 이름으로 하에 모든 국민이 일사불란하게 집결하고, 경제적으로는 황금만능주의와 한탕주의가 주식과 경마 열풍으로 몰려들고, 물가와 집세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취업난으로 고통을 받으며 자본주의가 고도화되고 있던 시국이다. 바쁘기 한정이 없는 세상이다. 
 

그런데 그들은 하릴없이 세상을 비꼬고, 재치 있게 세태를 패러디한다. 세상의 낙이라곤 입담뿐이다. 이런 한가로운 사람들 같으니. 구샤미 일당 한량들은 근대문명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 몹시 낯설고 이질적이다. 이래도 되나? 이렇게 살아도 사회로부터 뒤처지지 않고 도태되지 않고,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근대화의 물살을 탈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세상은 구샤미 같은 사람을 시류의 흐름에 동떨어진 고집쟁이라고 부른다. 사실 구샤미도 자신이 실속을 계산하는 데 둔한 사람이라는 것 잘 알고 있다. 울타리는 무너지고, 지붕 위에는 풀이 자라고, 문패 대신  밥풀로 명함을 붙여놓을지라도 그의 삶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자유”다. 정신적 자유를 위해 추구하는 가치는 도락(道樂)이다. 도락은 이해득실에 연연해하지 않고 마음의 즐거움을 꾀하는 것이다. 구샤미 지인들은 수다를 떨면서 마음의 자유를 즐긴다. 재미삼아 자발적으로 나누는 수다는 실리와 이해타산을 따지는 속셈이 없기에 즐거운 도락이 된다. 
 

소세키는 <도락과 직업>을 대비시켜서 연설을 한 적이 있다. 근대의 자본주의는 철저히 분업화되었다. 기계화가 진행될수록 노동을 세분화시키는 것은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생산성을 얻기 위해서다. 공정이 분업화되고 직업이 전문화될수록, 다른 사람보다 2배 일 하던 것이 3배, 4배로 속도가 빨라진다. 생존경쟁이 심화되면 인간의 정신은 서서히 불구가 되고, 노동하는 사람을 협소한 생산공정을 담당하는 부품의 하나로 전락시킨다. 자본주의가 진행될수록 노동의 소외현상은 심화된다. 
 

철저히 파편화되고 외로워진 개인의 시대에 소세키는 ‘인간적인 심성을 느끼기 위해’ 도락이 필요하다고 했다. 소세키가 말하는 도락은 취미에 빠져드는 열정이기도 하고, 학문과 예술이기도 하고, 도를 즐기는 일이기도 하다. 방탕한 주색잡기가 아니다. 소세키는 서로를 이해하고 다정하게 살기 위해서 문학서를 읽을 것을 권장했다. 도락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고수해가며  순리(順理)대로 사는 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휩쓸려 실리를 추구하지 않고, 자신의 개성에 맞게 독립된 인간으로 사는 것이다. 이런 도락을 소세키는 ”활력을 소모하는 일“이라고 한다. 활력을 소모하면 피곤하지 않을까? 아니다.
 

소세키가 말하는 활력 절약과 활력소모는 평소에 우리가 쓰는 표현과는 완전 다르다. 활력은 생명력을 고양시키는 힘이다. 먹고 살기 위해 의무적으로 일하면 체력이 소모되고 정신적으로 황폐해진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활력을 절약”하는 일이다. 의무와 도덕을 위해 하는 일은 아무리 열심히 하는 활동이라도 “활력을 절약”한다. 사람들은 빨리 의무와 속박을 벗어나서 자유롭게 되고 싶다는 생각에 활력을 절약하려고 기차도 만들고 터널도 뚫는다. 활력 절약은 개화라는 형태의 원동력을 구성한다.  

 

 이에 반해 자신이 좋아서 하는 예술과 학문, 취미활동은 “활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이런 정신이 문학도 되고 과학도 되고 철학도 된다.”(나쓰메 소세키, <현대 일본의 개화>, 김정훈 옮김, 책세상, 88쪽) 어떤 강요받음 없이 자신의 활력을 소모하고 기뻐하는 행위를 소세키는 도락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도락은 정신을 자극하고 활력을 소모시켜서 살아있는 생생함을 즐기는 것이다. 취미와 도락은 사회를 매끄럽게 돌아가게 만드는 윤활유가 된다. 무사태평, 한가하게 수다를 떨며 살아가는 구샤미 일당에게 도락은 당대의 문명사회의 도도한 물결을 도외시하며 걸어가는 안티의 윤리였던 것이다. 

 

3. 소세키의 문명비판

 

 여유와 도락을 즐기는 지식인을 소세키는 천연거사(天然居士)라는 이름으로 표현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공(空)하고, 간(間)하게 살아가는 삶이다. 이 단어는 나중에 소세키가 이후의 작품에서 고등유민(高等遊民)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게 하는 단초가 된다. 도락을 즐기는 태평한 사람들은 소세키가 추구했던 메이지 시대 지식인의 자화상이다. 천연거사는 빠르게 앞을 향해 나아가는 근대화의 속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느릿느릿 논다. 천연거사의 도락은 속물성에 저항하는 느림의 윤리를 의미한다. 
 

 『나 고양이』 소설이 유명해지자 구샤미 지인들은 고양이 그림을 그린 연하장을 보내온다. 주인은 그림을 보고도 자기 집 고양이라는 걸 알아보지 못한다. “올해가 고양이 해인가?”하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 시내는 뤼순을 함락했다고 난리법석이다. 일본사람들은 러시아인을 곰에 비유하곤 했다. 구샤미는 “곰의 그림인가?” 고개를 갸웃한다. 자기 소설에 대한 대중의 인기나 평판에는 관심이 없다. 국가의 대 관심사인 전쟁에는 전혀 무신경하다.  

 

 끼리끼리 만난다고, 고양이의 성품도 주인 구샤미를 똑 닮았다. 고양이는 한 번도 쥐를 잡은 적이 없다. 이웃의 인력거꾼 고양이 검둥이는 완력을 자랑하며 30~ 40 마리의 쥐를 잡았다고 거드름을 피운다. 당시 도쿄시는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쥐를 가져가면 마리당 5전씩 주고 사들였다. 쥐잡기를 장려하는 국가시책임을 알고 나자 고양이는 앞으로 절대로 쥐를 잡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차라리 낮잠을 자는 게 마음 편하다. 고양이도 주인 구샤미에게서 도락을 배워나간다. 
 

당시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이 풍미했던 문단에서는 소세키를 고답파니 여유파니 하면서 비판했다. 현실에 초연한 천연거사는 현실도피일까? 현실을 부인하는 허무적인 태도일까? 도락은 집단적으로 획일화되는 세태에 맞서서 내 취향과 신념을 고수하며 홀로 버티는 안티적 윤리다. 모든 안티적 행동의 속성에는 외롭고, 고단하며, 비극의 냄새가 동반되는 법이다. 재치 있는 이야기꾼들이 아무리 재미나게 세태를 꼬집고 익살을 부려도 그 밑바닥에는 인간사의 서글픔과 쓸쓸함이 흐르고 있다.

 

5ab0b4fa42fa5c61250c9391a00a993e_1514212
 

소세키가 천연거사와 속물적 세속인을 양분하는 것은 아니다. 양분 할 수도 없다.  고양이가 보기에 구샤미는 서재에 딱 들러붙어 일찍이 외부 세계를 향해 입을 연 적이 없다. 사소한 일에 욱 하고 화를 내면서 “자신은 아주 달관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가소롭기 짝이 없다.” 돈에 연연하지 않고, 태평스럽게 살아가는 천연거사를 자처하지만 그들도 속물적 삶을 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소세키는 자기 자신도 시대와 상황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는  한계를 반성하고 있다.  

 

 구샤미 집의 수다판에 새로운 화제가 올랐다. “20세기 사람들은 탐정처럼 되는 경향이 있다.” 왜 현대인은 서로를 의심하고 감시하는 탐정이 되는 걸까? 물가가 높은 탓일 거다. 예술 취미를 이해하지 못해서다. 문명이라는 뿔이 나서 인간이 삐죽삐죽해졌기 때문이다 등 풍류남들은 제각기 주장을 펼친다. 구샤미가 내놓는 이론은 높아지는 ‘개인의 자각심’ 이다.

  

“탐정은 남의 눈을 속이고 자기만 좋은 일을 하려는 장사니까 자연히 자각심이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되지. 도둑놈도, 붙잡히지나 않을까, 들키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염두에서 떠나는 일이 없으니까 자연히   자각심이 강해지지 않을 수 없고. 요즘 사람들은 자나 깨나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이익이 되고 손해가   되는지를 생각하니까 자연히 탐정이나 도둑놈과 마찬가지로 자각심이 강해지지 않을 수 없네. 하루 종   일 두리번두리번, 살금살금, 묘에 들어갈 때까지 한시도 안심할 수 없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심정이지.   문명의 저주야. 한심한 일이지.” (『나 고양이』, 581~582쪽)

 한시도 안심할 수 없는 불안은 문명이 근대인에게 내린 저주다. 현대인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맞선을 보는 남녀처럼’ 예민하게 긴장하며 살아간다.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는 자의식으로 지쳐간다. 사람들은 유유자적, 느긋하게 사는 법을 잃어버렸다.  
 

61deceeeab4ac0605097880a0ad8f041_1514213 


최고의 입담을 자랑하는 메이테이는 문명사회의 미래를 예견한다.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은 자살이 증가할 것이다. “죽고 싶은 남자 있음”이라는 팻말을 집 앞에 걸어두면 경찰이 와서 처리해줄 것이다. 자살로 행복해지도록 돕는 게 국가 공무원의 의무다. 총이나 칼로 험악하게 죽이는 게 아니라 놀려대서 죽이는 게 공덕이 된다는 둥 농담은 끝이 없다. 하지만 구샤미 일당의 실없는 농담은 소세키 시대로부터 불과 150년 남짓 건너온 오늘날 그대로 실현이 되고 있다. 이혼의 증가, 자살의 증가, 핵가족과 나홀로 가족 증가 등 1900년대 초에 이미 문명의 어두운 이면을 감지한 소세키의 날카로운 안목이 돋보인다. 
 

이 소설은 돈이 인간관계를 사로잡기 시작한 근대의 진풍경을 풍자하고 있다. 갈수록 경쟁은 치열해지고, 삶의 속도는 가속화되고, 아무리 가져도 만족스럽지 않고, 아무리 발전해도 불안해진다. 문명의 속도를 따라잡는 유능한 사람은 거짓말을 잘하고 약삭빠르고 남을 함정에 빠뜨린다. 구샤미처럼 무능한 사람이 오히려 고급스럽다. 명품 가방을 사기 위해 몇 달치 월급을 바치지 않고 비닐 봉다리를 들고 다녀도 마음이 태평한 사람은 문명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인간의 심중과 위선적 행태를 읽노라면 웃음을 멈추기 힘들다. 청개구리처럼 문명세계를 조용히 비웃을 수 있는 여유. 누가 뭐래도 한가하게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견지하는 뚝심. 이것이 소세키의 도락에 담긴 비장의 무기일 것이다. @ (2017. 12. 26) 

 


-> MVQ "소세키의 질문들"에 관한 글을 더 보고 싶으시다면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맨앞이전다음맨뒤
이전글 다음글
목록

감이당| 주소  서울시 중구 필동 3가 79-66 깨봉빌딩 2층   전화  070-4334-1790

copyright(c) 2012 gamidang.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