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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아버지,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 카프카의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8-01-10 09:17
조회 : 380  


* 

아버지,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 카프카의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오 선 민

 

 

 

1. 당신의 겨울 왕국  

 

“나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처럼 혹한의 세계에서 살고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에스키모인처럼 삶의 바탕도, 모피도, 또 다른 생존 수단도 갖고 있지 않아요. 그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는 모두 벌거벗은 몸이죠. 오늘날 가장 따뜻하게 옷을 입고 있는 것은 양의 탈을 쓴 늑대들뿐이에요. 그들은 아무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그들은 꼭 맞는 옷을 입고 있죠.”

 

구스타프 야누흐, 『카프카와의 대화』 

카프카는 프라하에서의 삶이 혹한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사막의 재칼들이 아랍인을 잡아 죽이겠다고 시뻘건 눈을 번뜩이며 돌아다니는 것처럼, 도시의 거리 곳곳에서는 체코 민족주의와 독일 민족주의, 시오니즘 각각이 순결한 땅을 갖겠다며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체코의 유대 청년 카프카는 이 혹한을 정치적 열기로 불태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카프카는 시오니즘에 대해, 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어떤 글도 남기지 않았어요. 일기나 친구와 나눈 서신에서도 사회 정치 문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작품에서도 광장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 카프카가 그린 것은 응접실이었을까요? 맞습니다. 카프카는 장편 세 작품을 제외한 다수의 작품에서 가족의 문제를 다룹니다. 우선 대표적으로는 1912년에 완성하고 1913년에 발표한 『선고』와 『화부』가 있고, 1913년 겨울에 써서 1915년에 발표하게 된 『변신』을 꼽을 수 있습니다. 단편 작품집 안에 들어있는 글들 중에 가족 문제를 다룬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도의 아이들」, 「독신자의 불행」, 「집으로 가는 길」(모두 『관찰』, 1913), 「가장의 근심」(『시골의사』, 1919)은 발표된 작품들입니다. 유고로는 「시골의 결혼준비」, 「나이든 독신자 블룸펠트」, 「부부」가 있습니다.  

    

그런데 카프카의 응접실은 단란하지 않습니다. 갑충이 된 아들과 군복을 입은 아버지, 울기만 하는 어머니, 신경질적인 여동생, 무엇보다 갑자기 들이닥친 하숙생들이 살 거든요. 사실 가정이 문제가 될 때 가장 중요하게 그려지는 공간은 벌거벗은 채 이불 밑에서 떨고 있는 아들의 방입니다. 게다가 결말에서 이 아들은 언제나 집을 떠납니다. 카프카의 집안에서 스윗한 것을 찾다가는 큰코다치기 일쑤! 응접실도 찬바람이 쌩쌩 부는 혹한이기 때문입니다. 카프카의 세계에서는 담장 밖도, 그 안도, 춥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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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가 아닌 카프카에게는 집도 세상도 춥습니다

 

 

 

카프카는 친구 구스타프 야누흐에게 혹한에서도 따뜻하게 사는 이들은 ‘늑대’뿐이라고 했습니다. 이 늑대의 형상이 가장 잘 그려져 있는 작품은 「재칼과 아랍인」입니다. 여기에서 재칼의 무리는 원수의 피를 얻는답시고, 먹이인 낙타와 메시아인 화자를 향해 동시에 이빨을 들이미는 탐욕스러운 순혈주의자들로 나옵니다.  

 

 

“우리는 불쌍한 동물들입니다. 우리는 단지 이빨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요.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 간에, 그 모든 것을 위해서 우리에게는 유일하게 이빨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무엇을 바랍니까?” 하고 나는 약간 누그러져서 말했다.

 

“주인님”하고 그가 소리쳤고, 모든 재칼들이 울부짖었다. 그것은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어떤 멜로디처럼 느껴졌다. “주인님, 당신은 이 세계를 이간시키고 있는 이 싸움을 종식시켜야 합니다. … 우리는 아랍인들로부터 평화를 찾아야 합니다. 숨을 쉴 수 있는 공기, 그들로부터 풀려나 순결해진 수평선 주의의 전경. 아랍인이 찔러 죽이는 숫양의 비애에 찬 울부짖음은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모든 짐승들은 조용히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들은 방해받지 않고 우리들에 의해 완전히 비어져야 하고, 뼛속까지 깨끗이 순화되어져야 합니다. 순수함, 우리들은 순수함 이외에는 아무것도 원치 않습니다.”

─ 「재칼과 아랍인」

 

그렇다면 집 안의 늑대는 누구일까요?  

 

 

 

2. 늑대의 사생활  

 

카프카의 문학에서 가족은 중요합니다. 가족 중에서도 문제가 되는 인물은 아버지이시죠. 카프카 자신도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작품 속에서도 아버지는 아들에게 나가 죽을 것을 명령하거나(『선고』), 사과를 던져 치명상을 입히는(『변신』) 폭군으로 그려집니다. 카프카는 자기 스스로 ‘아버지는 될 수 없다’며 세 번의 약혼을 모두 무효로 만들고, 끝까지 누군가의 아들로서만 생을 마감했습니다. 세 번의 결혼 시도라니요? 그는 아버지의 집을 벗어나려고 세 번이나 시도했으나, 결코 자신의 집에는 이르지 못한 삶을 살았군요. 실제로도 카프카는 집을 갖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하숙인처럼 지내거나 아예 하숙방을 구하거나, 결혼한 누이의 가족이 잠깐 비운 집을 빌리거나, 요양원의 여기저기를 전전하면서 살았습니다. 

    

카프카가 집 안의 늑대에 관해 이론적으로 고찰한 글은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입니다. 카프카는 1919년, 아버지가 세 번째 약혼녀 율리 보리체크를 노골적으로 무시하시자, 이 편지를 썼습니다. 표면적으로 이 편지는 아버지와의 화해를 목적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카프카는 이 편지를 아버지께 직접 전해드리지 않았어요. 이 편지의 운명도 참 드라마틱했는데요, 카프카가 어머니께 전해드린 뒤, 그 어머니는 어떤 이유에선지 아버지에게 드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카프카 사후에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전달되어, 막스가 모든 원고를 불태워달라는 유언을 무시한 덕분에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정말 카프카다운 ‘카프카의 편지’입니다. 카프카는 편지란 늘 제때에 도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글이란 늘 쓰는 자의 손아귀를 슬그머니 빠져나가, 원래의 의도를 훌쩍 뛰어넘는 ‘사후의 삶’을 살게 마련!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 1922.3월 말) 카프카는 오직 자기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만, 편지는 어쩌다가 살아남게 된 그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읽히게 됨으로써, ‘아버지’라는 존재에 관한 인류학적 보고서가 되었습니다.   

       

아버지. 도대체 아버지란 어떤 존재일까요?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에 나오는 아버지는 왕입니다. 그는 정신적으로 왕국의 모든 존재를 지배합니다. 그에게는 어떤 신화적 권위도 이성적 판단도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는 내 땅이다. 내가 낳았고, 내가 길렀다. 끝!’ 

 

 

아버지의 정신적 지배도 계속되었지요. 아버지는 혼자 힘으로 출세하신 분답게 자신의 생각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갖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아이인 저한테는 나중에 청년이 되어서 받았던 것만큼 그렇게 눈부신 인상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팔걸이의자에 앉으셔서 세상을 호령하셨지요. 아버지의 의견은 언제나 옳으셨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모두 다 정신 나간 것이고 터무니없고, 엉뚱하고, 정상이 아닌 것이었지요. 아버지의 자신감은 너무나 커서 끝까지 고집부리지 않으셔도 될 일에도 아버진 끝내 자신의 말이 옳음을 주장하셨습니다. 어떤 문제에 있어서 아버지는 전혀 아무런 의견도 없으셨지만 그로 인해 그 문제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죄다 틀린 것이 되어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는 체코인들을 욕하다가 독일인들도 욕하고 유대인들도 욕하셨지요. 선별적으로만이 아니라 무차별적으로 욕을 퍼부으셨지요. 그러다 보면 마지막엔 아버지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아버지는 역사상의 모든 폭군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떤 수수께끼 같은 면모를 지니시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저한테는 그렇게 보였지요. 그들은 자신의 권리가 어떤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의 탁월함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겼던 자들이었으니까요.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헤르만 카프카(1852~1931)는 가난한 백정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천민 중의 천민에서 출발해 프라하의 거상으로 자수성가했고, 아들 프란츠 카프카(1883~1924)보다 더 오래 살았습니다. 아들 이름을 독일 황제 요제프 프란츠를 따라 지을 만큼 권력 지향적 인물이었지요. 집 안에서는 오직 독일어만 쓸 수 있었고, 똑똑했던 장남 프란츠가 가문의 부와 명예를 드높일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위에서처럼 거칠고 편협한 모습으로 자기 아버지를 그리기는 했지만, 그의 친구들은 이들 부자의 사이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고 회고했습니다. 또 따지고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장들은 모두 어느 정도 저런 모습을 갖고 있지 않을까요?     

 

위의 인용문에서 사실 핵심적인 것은 권위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체코인을 욕하다가 독일인도 욕하고, 그러다가 유대인도 욕하고. 결국 옳은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는 자. 왕은 그런 무원리성이 뿜어내는 신비한 아우라를 등에 업고 권력을 행사합니다. 그런 점에서 카프카가 그리는 헤르만 카프카는 「법 앞에서」의 문지기나, 『성』의 베스트베스트 백작을 닮았습니다. 원칙 없이 심판하면서, 심판하기 때문에 원칙이 되는 자들!

 

 

 

3. 죄와 은총을 넘어서 

 

카프카가 편지에서 계속 강조하는 것은 터무니없지만, 피할 길 없는 이 지배 앞에서의 ‘곤경’입니다. 카프카는 아버지를 비난하는 일에 힘을 쏟지는 않습니다. 대신 아버지 앞에서 느껴왔던 끝도 없는 수치심을 기술합니다. 아들로 사는 것이 왜 부끄러운 일일까요? 그건 아버지가 늘 이런 말씀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벌써 더 멋진 것도 보았단다”, “별것도 아닌 것까지 다 얘기하는구나”, “그렇게도 머리 쓸 일이 없니?”, “그게 너한테 무슨 소용이냐!”, “하기야 그것도 일이라면 일이겠다만!” 사실 이런 언표들은 교실에서, 감옥에서, 회사에서, 자라면서 허구한 날 우리가 듣고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카프카가 보기에 이런 말들은 앞에 있는 사람을 작게 만듭니다. 덜 멋진 것만 아는 자, 별것도 아닌 것만 보는 자, 머리 쓸 일은 못 찾는 자, 소용없는 일을 하는 자. 한 마디로 ‘아직 뭘 모르는 자’라는 것이죠. 이런 말들을 뱉으면서, 말하는 자는 ‘이미 뭘 아는 자’의 입장으로 올라갑니다. 그렇게 앎의 양적 불균형은 생의 질적 불평등으로 바뀝니다. 

 

카프카가 아버지의 말을 듣고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이유는 ‘자신이 틀려서’가 아닙니다. 카프카는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 치욕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아들은 자기 아버지를 선택할 수도, 자신 이름을 선택할 수도 없지요. 카프카도 프라하 유대인이라는 존재 값을 그저 받고 생을 시작했습니다. 세계는 주어졌고, 법은 이미 존재하고! 남은 일이란 주는 대로, 시키는 대로 사는 것뿐입니다. 카프카가 프라하의 광장을 불신했던 이유도, 어쩌면 거리를 가득 메우는 저 정치적 열기 역시 체코인이라는, 유대인이라는 태생적 조건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불과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카프카는 주어진 세계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무능력함을 부끄러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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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프카는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자신에게 수치심을 느낀다

 

 

 

율리 보리체크에 대해 아버지는 무슨 말이든 하실 수 있었죠. ‘그 아가씨는 가난하다, 너를 유혹해서 신분 상승을 하려고 하는 비천한 여자다, 여자가 필요하면 얼마든지 사서 해결하렴!’ 세상에 그 누가 한 남자의 인생을 이처럼 무자비하게 재단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오직 아버지밖에는 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너는 내가 낳았다, 너를 기른 것은 나다, 나는 너를 제일 잘 안다.’ 아버지는 한편으로는 순수한 결혼을 하라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창녀의 집을 소개해주는 위선을 거리낌 없이 표현했습니다. 아버지의 이런 어처구니없는 윽박을 들으며 카프카는 결심했을 것입니다. ‘아, 아버지가 되어서는 안 돼.’ 

 

 

“아마 그 여자는 블라우스 한 벌도 고르고 골라서 입었겠지. 프라하의 유대인 여자들은 그런 일에 능숙하거든. 너는 당연히 그런 이유로 인해 그 여자랑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거야. 더구나 최대한 빨리, 일주일 내로, 아니 내일, 아니 당장 오늘이라고 하겠답시고 서두르고 있는 것이지. 난 널 이해할 수가 없구나. 넌 다 자란 어른 아니냐. 도시 사람이고. 그러나 아무하고나 당장 결혼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그다지도 모르고 있구나. 다른 해결책들도 얼마든지 있지 않니? 혹시 그런 데가 무서워서 못 가겠다면, 나라도 직접 함께 가주마.”

[…] 

“한 처녀에 관한 저의 결정이 아버지께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제 판단력을 (무의식중에) 늘 낮게 평가해 오셨죠. 이번에도 제 판단의 가치를 파악하셨다고 (무의식중에) 생각하셨고요. 그러나 아버지는 제가 저 자신을 구원해보고자 여러모로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셨습니다. 그 대문에 제가 어떤 생각들을 거쳐 이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는지도 역시 전혀 모르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미루어 짐작해 보셔야만 했고, 제 결심이 말할 수 없이 역겹고 극히 천박하고 가장 어처구니없는 짓이라고 추정하셨던 것입니다. 또 그 말씀을 그런 식으로 하시면서 아버지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말씀들로 인한 저의 치욕쯤은, 그 결혼으로 인해 아버지의 이름이 먹칠 당하는 굴욕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두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카프카는 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깊은 감사함을 느끼기도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은혜는 특이한 방식으로 경험되고 있었습니다. 카프카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신의 잘못을 알고도 꾸짖지 않자, 큰 은혜를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 속에는 어떤 전도가 있었어요. 잘못 자체는 아버지의 자의적 기준을 따른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들이 그 판단에 굳이 죄책감까지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판결이 유예되자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하사한 너그러움에 감사를 느끼고, 아버지에 대해 오히려 미안함을 가지게 되었어요. 죄 사함을 통해서 확인되는 은총! 카프카는 선고가 유보되었다고 은혜를 느끼는, 죄 자체가 부당하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 어리석음이 치욕스러웠습니다. 

 

 

위협은 아버지의 욕설을 한층 위력적인 것이 되게 하였지요. 그런 경우는 누구보다도 제가 겪어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너, 이 녀석, 북어포처럼 찢어놓을 테다”라고 하신 말씀은 끔찍했어요. 그런 나쁜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어린아이였을 때는 물론 눈치채지 못했지요), 아버지께서 벼르시던 행동은 평소 제가 상상하던 아버지의 완력이라면 능히 그렇게 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하던 수준의 행동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고함을 지르면서 저를 붙잡으려고 탁자 주위를 돌아 쫓아다니던 일도 끔찍했습니다. 정말 저를 붙잡을 생각은 분명 전혀 없으셨을 거예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제가 실제로 붙잡히게 되었고, 결국 어머니께서 저를 구원해주시는 식으로 마무리되었지요. 그래서 아이의 마음으로 저는 생각했답니다. 다시 한번 아버지의 은총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요. 자격도 없는데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하사받아 계속 지니고 살게 되었다고요. 애초 그런 끔찍한 위협조차 제가 말을 듣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카프카는 세 번의 약혼을 모두 물리쳤습니다. 사랑스러운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나 율리의 간청을 뿌리치고 독신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폭군의 세계를 벗어나서 선정을 펼칠 자기만의 왕국을 건설하지는 않았던 셈이죠. 그렇다고 카프카가 아버지와 의절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부정하지 않았죠. 카프카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는 ‘냉소’일 것입니다. 카프카는 자신이 발 딛고 있는 대지를 사랑했거든요. 『성』의 K는 말하지요. ‘나는 살기 위해 여기에 왔다!’ 

 

카프카가 꿈 꾼 것은 지킬 법이라고는 한 가닥도 없는 허방의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그는 헤르만 카프카의 아들이기에, 프라하의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기에, 그랬기 때문에만 가능한 사유의 지점을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가장 카프카다운 세계가 바로 그 한계로부터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벽을 문으로 바꾸고, 한계를 출발점으로 전환시키면서 아들을 갑충으로 변신시키는 카프카식의 문학은 그 자신의 굴레로부터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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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프카는 자신의 굴레를, 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밤에 흠뻑 잠겨. 이따금 골똘히 생각하기 위해 고개를 떨구듯, 그렇게 밤에 흠뻑 빠져 있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 있다. 그들이 집안에서, 탄탄한 침대 속에서, 탄탄한 지붕 밑에서, 매트리스 위로 몸을 쭉 뻗치거나 오그린 채, 시트 속에서, 이불의 덮고 잠자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보잘것없는 위선, 하나의 순진한 자기기만이다. 사실 그들은 과거의 그 어느 때인가처럼 그리고 나중엔가처럼 황야에서 함께 읽은 적이 있다. 벌판의 야영지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 한 떼의 무리, 한 종족의 차가운 땅 위 차가운 하늘 아래서, 이전에 서 있던 곳에 내던져져 있다. 이마는 팔에 박고, 얼굴을 땅바닥을 향한 채 조용히 숨 쉬며. 그런데 너는 깨어 있다. 너는 파수꾼의 하나다. 너는 네 곁 섶나무 더미에서 꺼낸 타는 장작을 흔들어 바로 옆 사람을 찾는다. 너는 왜 깨어 있는가? 한 사람은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한 사람은 여기 있어야만 한다.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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