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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겨울, 손님이 오는 시간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8-01-31 14:21
조회 : 169  

겨울, 손님이 오는 시간

 김 해 완

 

오랫동안 MVQ 자리를 비웠습니다. 원고 마감타임에 몰려서 바쁜 까닭도 있었고, 손님들이 많이 온 까닭도 있었습니다. 제 손님 뿐만 아니라 친구의 손님이 오면 구색을 맞춰주기 위해 또 밤마다 함께 나가야 했지요. 연말 연초가 원래 쿠바에서는 가장 바쁜 시즌입니다. 관광객 맞이하랴 마이애미에 사는 친척들 맞이하랴...... 저도 그 흐름을 피해갈 수가 없었네요. 그래도 지난 4개월 동안 아바나의 방 구석에만 있다가 간만에 사람들 틈에서 복닥거리니까, 피곤해도 사람 사는 맛이 납니다. 이 순간이 지나면 또 고요해질 테니까 힘들어도 열심히 놀아야죠. ㅎㅎ.

 

 

 

뉴욕에서 온 선물보따리

첫 번째 손님은 룬핀이었다. 겨울 학기를 듣네 마네, 쿠바 대신 상해에 가네 마네, 이렇게 오기 전부터 말이 많았다. 그렇지만 결국 룬핀은 12월 중반부터 1월 중순까지 거진 한 달을 머물게 되었다. 쿠바에 들어오는 날에 룬핀을 공항에서 기다리는데, 평소답지 않게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4개월 동안 떨어져 있다가 처음으로 만나는 거였다. 어떻게 반겨줘야 할까? 혹시 얼굴을 봤는데 반갑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우리 둘 다 감정을 표현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어색하지는 않을까?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다. 우리의 첫 대면은 코미디의 한 장면과 같았다. 룬핀은 공항에서 누구의 짐보다도 거대한 박스를 안고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뒤뚱뒤뚱 걸어나왔다. 그리고 나와 얼굴이 마주치자마자 크게 소리쳤다. “와서 이것 좀 같이 들어!” 주변 사람들은 포옹 대신 함께 박스를 껴안은 우리를 보며 웃었다. 

나는 이 박스에 뭐가 있는지 알았다. 바로 매트리스 탑퍼(Mattress Topper)였다. (매트리스 탑퍼는 침대가 낡을 때 그 위에 새로 놓는 3인치 짜리 얇은 매트리스다) 우리 집 침대  매트리스는 쿠바의 모든 가정집이 그렇듯이 평평하지 않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척추 마디마디가 흐물거렸다. 지난 4개월간 나는 차가운 바닥과 늪 같은 매트리스에서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 가듯이 잠을 잤다. 그리고 룬핀에게 다른 건 다 안 가져와도 되니까 제발 매트리스 탑퍼만은 챙겨달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박스를 봤을 때 들었던 첫 번째 생각은 이것이었다. 어, 박스가 생각보다 작네? 이 말을 들은 룬핀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박스가 유별나게 커서 멕시코 세관을 통과하는 데에도 애먹었다고 했다. 혹시 마약 들어있는 것 아니냐고 묻고 박스를 직접 열어보기까지 했단다. 

박스에는 매트리스 탑퍼 말고도 여러 가지가 들어 있었다. 겨울용 이불, 쉽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일본 카레와 스프, 잼과 차, 뉴욕의 친구들이 챙겨준 샴푸와 린스와 여성용품, 간식거리. 물건 보따리를 하나하나 푸는데,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이렇게 많은 선물을 한꺼번에 받아본 게 언제 적 일이던가? 물건을 보내줘서가 아니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쿠바에 사는 나의 불편함을 미리 헤아려주는 룬핀과 친구들의 마음이 고마웠다. 뉴욕 시절에는 이런 감동을 느껴보지 못했다. 물건이 흔하디 흔했을 뿐만 아니라, 책부터 김치까지 다 받아 쓸 수 있을 만큼 한국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뉴욕까지는 비행기로 14시간이 걸리는 반면, 한국에서 아바나 사이에는 그냥 건널 수 없는 안드로메다가 있는 것 같다.) 

뉴욕에서 가장 필요했던 건 언제나 시간이었다. 한 숨 돌리고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시간 말이다. 시간은 돈 주고도 살 수가 없었고, 한국에서 배달받을 수도 없었으며, 누군가가 챙겨줄 수도 없었다. 그것은 언제나 나 자신과 내 세계 사이의 싸움이었다. 그런데 쿠바에서는 모든 게 정반대다. 시간은 여유롭게 흐르지만, 그 외에는 도저히 매끄럽게 진행되는 일이 없다. 청소할 시간은 넘쳐나지만 철수세미가 없고, 씻을 시간은 많지만 화장실에 끊어진 전기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친구들이 올 때마다 이렇게 감동적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결핍이라면 차라리 이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샴푸 한 병에 담긴 커다란 사랑을 음미하면서 살아갈 시간이 있는 쪽이 낫다. 바로 옆에 있어도 서로 대화할 시간이 없는 것보다는, 홀로 떨어져서 생활하고 있는 상대방의 시간도 헤아려볼 줄 아는 외로운 여유가 더 낫다.

 

 

쿠바의 중남부 여행하기

내가 룬핀을 기다렸던 이유 중 하나는 함께 여행을 가기 위해서였다. 룬핀과 나는 많은 점에서 다르지만 여행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12월 말에 친구들 세 명을 더 꼬셔서 아바나에서 3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쁠라야 라르가(Playa Larga)’로 여행을 떠났다. 옛 룸메이트였던 19세 일본 소녀 나나코, 현 룸메이트인 40세의 캐나다 언니 마라, 파티를 좋아하는 19세 노르웨이 소녀 헬레나가 우리와 동행했다. 같은 국적의 사람은 단 하나도 없고, 사용하는 언어가 7개나 되는 국제적 여행팀이었다! 

‘긴 해변’이라는 뜻인 쁠라야 라르가는 쿠바의 중남부 지방에 위치해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바나 주 옆에 있는 마딴사(Matanza) 주의 남부에 있다. 원래 나는 쿠바의 동쪽 끝에 있는 도시인 싼띠아고 데 꾸바에 가고 싶었다. 이곳에서 혁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동쪽의 도시는 피델 카스트로나 호세 마르띠처럼 쿠바의 샛별을 탄생시킨 요람이었다. 그러나 15시간이나 버스를 타야한다는 사실을 안 룬핀이 극구반대하는 바람에 이 계획은 취소되었고, 엉겁결에 쁠라야 라르가가 선택되었다. 그렇지만 소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택시운전사는 우리를 이곳에 데려다주면서 이것저것 설명해주었다. 혁명이 일어난 후에 미국이 군대를 보내서 쿠바 본토를 침범했었는데, 그때 전투가 바로 여기 쁠라야 라르가에서 벌어졌다고 했다. 그때는 차도도 제대로 나 있지 않아서 쿠바 군인들은 수풀을 헤치며 전투에 임해야 했고, 이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길 군데군데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나는 새로운 사실을 배우면서 그래도 내가 쿠바의 역사적 자취를 따라가고 있다며 마음을 달랬다. 

쁠라야 라르가는 싼띠아고 데 꾸바에 대한 내 미련을 한방에 날려줄 만큼 아름다웠다. 이곳은 관광객의 손을 거의 타지 않은 시골 마을이었다. 염소와 돼지와 닭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고, 밤에는 찌르레기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이 마을의 식당은 새벽마다 직접 해산물을 잡아서 운영되었고, 그 앞에 펼쳐진 바다는 눈이 시리게 파랬으며, 모래는 회색 빛깔을 띠고 곱게 부서졌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본 적이 없는 풍경이었다. 관광업이 부상하기 전인 20세기, 아마도 쿠바의 해변은 대부분 이런 풍경이었을 것이다. 

마을에서 15분 정도 차를 타고 나가면 ‘라 꾸에바 데 로스 뻬쎄스(La Cueva de Los Pezes)’라는 동굴이 나온다. 말 그대로 풀면 ‘물고기의 동굴’이라는 뜻이다. 이 동굴 앞에는 바닷물이 고여 있는데, 여기서 스노쿨링 고글을 끼고 잠수를 하면 수많은 물고기 떼를 볼 수가 있다. 우리는 잔뜩 흥분해서 동굴에 도착했다. 그러나 나는 이 연못이 얼마나 깊은지를 간과했다. 수영 잘 하는 사람도 바닥까지 못 내려갈 정도로 수심이 깊었으나, 정작 나는 수영을 못했던 것이다! 나는 동굴 밖에 서서 나나코와 헬레나가 자유롭게 수영하는 모습을 부러운 마음으로 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리고 결국 1CUC(약 1,200원)을 내고 어린이용 구명조끼를 빌려서 오리처럼 파닥거리며 물에 들어갔다. 참으로 굴욕적인 모습이었지만, 물고기를 보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컸다. (쿠바에 있는 동안 반드시 수영을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던 순간이었다.) 

그 다음날 우리는 씨엔푸에고스(Cienfuegos)라는 항구 도시로 향했다. 씨엔푸에고스는 쿠바에서 유일하게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은 도시다. 고전주의 양식을 따라서 설계되었다더니, 정말로 모든 길거리가 완벽하게 바둑판 격자 모양을 하고 있었다. 도시 자체는 몹시 작았지만 풍경이 아름다워서 산책하기 좋았다. 친구들은 하룻밤만 자고 아바나로 돌아갔고, 나와 룬핀은 씨엔푸에고스에서 하룻밤 더 머물면서 이 작은 항구 도시의 미(美)를 만끽했다. 

그 다음, 우리는 체 게바라의 도시인 싼따 끌라라(Santa Clara)로 향했다. 싼따 끌라라는 씨엔푸에고스보다 더 작고 풍광도 그냥 그런 내륙지방의 도시다. 만약 이곳에 체 게바라의 유골이 묻혀있지 않았다면, 관광객들은 일부러 여기 올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와 룬핀은 곧 이 도시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다. 밤 12시가 되었는데 도저히 사람들이 잠 잘 생각을 하지 않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특히 중앙광장은 젊은이들로 꽉 차 있었다. 십대부터 이십대까지 되어보이는 쿠바인들이 함께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게임을 하며 광장을 뛰어다녔다. 와이파이를 쓸 생각으로 공원에 왔던 나와 룬핀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연말이라서 무슨 행사가 잡혀있는 걸까? 

싼따 끌라라 출신인 빠삐와 까리는 몇 십 년 전부터 이 도시는 이랬다고 증언했다. 또, 내 과외선생님인 마르시아도 싼따 끌라라의 대학교가 아바나 대학교보다 더 뛰어나다고 주장했다. 아바나 대학교에 오는 가장 뛰어난 학생들 역시 싼따 끌라라 출신이고 말이다. 체의 지성이 그 땅에 스며들기라도 한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참으로 매혹적인 도시임은 틀림이 없다.

 

 

이루어지지 않은 만남

이렇게 한바탕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우리는 또 다른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다. 바로 연구실 선생님들이었다. 나는 숙소를 다시 한 번 점검했고, 요일별로 어떻게 투어를 할지 계획을 짰다. 창희쌤은 참으로 감사하게도 나와 계속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내가 부탁드린 물건을 준비해주셨다. 룬핀은 한국에서 선생님들을 뵌 지 6개월 만에 다시 쿠바에서 뵙게 되었다면서 이 인연에 신기해했다. 

그러나 선생님들이 도착하기 딱 하루 전, 나는 청천벽력 같은 연락을 받았다. 다들 너무 편찮으셔서 도저히 쿠바로 여행을 올 수 있는 사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명도 아니고 다섯 명이 동시에 앓아 누우셨다는 것이다! 담담하게 연락을 받았지만, 이 사실을 내 뇌가 ‘프로세스’ 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몇 개월 전부터 잡혀 있던 계획이었는데 이렇게 하루 전에 취소될 수도 있다니...... 역시 여행은 예측불허인 사건의 연속이구나...... 얼마나 아프신 건지 걱정되었고, 쿠바라서 연락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게 속이 상했다. 

잃은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갑자기 시간이 비어버린 나와 룬핀은 계속 다른 친구들의 환영파티에 불려다녀야 했다. 덕분에 나는 같이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있는 한국 동생과 훨씬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또, 채운쌤과 문탁쌤을 위해 준비했던 비냘레스 여행을 취소할 수가 없어서 나와 룬핀은 비바람을 뚫고 그곳까지 갔다왔다. 덕분에 나는 다음 번에는 스스로 비냘레스를 가이드할 수 있을만큼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 쿠바에 도착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내 중학교 동창 두 명은 내가 필요한 물건을 모두 배달해야 하는 중대한 임무를 짊어지게 되었다. 덕분에 이 둘은 아바나에서 내게 부담 없이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선생님들은 내가 올해 여름에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뵙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보지 못하더라도 서로를 생각하고 있다면 그 시간 동안에는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쿠바에서는 그럴 시간이 많다. 이것이 내가 올 겨울에 손님맞이를 하면서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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