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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함성에세이> '결단'이 필요하다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8-05-23 19:48
조회 : 320  



  '결단'이 필요하다

고영주​

정말 굴욕일까

  나는 평소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을 좋아하고, 그들과 노는 것이 내 삶의 즐거움이었다. 매일 매일을 이 즐거움으로 살았고, 이것에 시간을 쏟는 것이 아깝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공부의 양이 늘어나면서 노는 시간을 줄여야만 했다. 읽어야 할 책도 많았고, 주어진 숙제와 시험 준비를 하느라 놀 시간이 없었다. 그렇지만 사람들과 노는 즐거움 못지않게 공부가 재미있었다. 이것은 몇 년 동안 해 왔던 공부가 내 마음과 신체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면서 변한 나의 신체는 더 이상 ‘놀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책을 읽고 쓰는 이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작업이 어느새 내 삶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공부는 원하는 것을 넘어서서 지금 당장 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과 놀기만 하는 내 모습과는 점점 멀어져야 했다. 

누구든지 ‘무고를 해명’할 위치에 서게 되면, 결백이 밝혀지든 그렇지 않든, 그것만으로 이미 굴욕이다. 하물며 실제로 커다란 피해를 입은 후인데도 무고를 해명해야만 함에랴.(루쉰,『화개집』, 2014, 그린비,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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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하이 조계지에서 중국인 노동자 한 명이 영국 순경에게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에 대해서 중국시민들은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자신들의 ‘무고誣告’를 해명하거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즉 자신들은 무기를 든 폭도도 아니며 적화(赤化)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왜 영국순경이 중국인 노동자를 사형에 처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지 루쉰은 이해할 수 없었다. 루쉰은 중국시민들이 자국민의 죽음을 피로써 갚았어야 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루쉰은 중국시민들이 “무고를 해명한 뒤 약간의 가벼운 보상을 얻으려 할 뿐이”(128쪽)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128쪽)라는 가벼운 보상 말이다. 과연 이런 중국시민들이 굴욕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루쉰은 변명하기에 급급한 중국시민들이 실망스러웠다. 그렇다면 나는 어땠을까.


  회사 업무가 끝난 후 노는 약속이 생길 때 마다 숙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절을 해야 했다. 그러나 나의 회사 동료들과 친구들은 내가 하는 공부를 믿어주지도, 인정해 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네가 언제부터 공부했다고 그래?” “야! 공부는 돈이 많고, 시간 남을 때 하는 거야!”라며 이상한 논리를 내세웠다. 그들에게 나의 공부는 ‘사실이 아닌 것’ 즉, ‘거짓으로 꾸민 것’으로 보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늘 그들 앞에서 나의 ‘무고’를 해명해야 했다. 한 번만 말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함께 놀지 않을 때마다 계속 물어오는 그들에게 굴욕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억울함을 해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중국 시민들처럼 보상을 바라고 있었다.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는 것 말이다. 이것은 중국시민들의 비겁함과 같은 것이었다. 어쩌면 굴욕을 느끼는 쪽은 나의 친구들과 회사 동료들이지 않을까. 그들은 내가 공부라는 것을 내세워 마치 나와는 다른 사람 취급을 당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사회를 떠난 삶이란 없다

   나는 개인생활과 사회생활을 분리하면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오만이자 착각이었다. 주변 사람들한테는 노는 것이 내가 공부하는 것만큼이나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일 수도 있다. 나는 그들의 입장에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고백컨대 나는 그들을 떠나기도 싫었고, 외면 받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비록 공부 때문에 그들 곁에 있지 않더라도,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그들이 내 옆에 있어 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놀자는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막상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돌아왔을 때 그들은 날 외면했다. 그들의 외면이 싫고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뒤로 한 채 그들과 예전처럼 놀기도 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우유부단한 것일까. 정말 공부를 하고 싶기는 한 것일까. 


 해야 하는 일은 그냥 한다. 내년을 기다려 술을 마시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 당장 물을 마시는 것이 낫 고 21세기를 다려 시체를 해체하는 것보다 지금 바로 그에게 따귀를 올려붙이는 것이 낫다.(루쉰,『화개집』, 2014, 그린비, 267쪽) 


  루쉰에게는 나중이란 없다. 루쉰은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 나간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며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것 따위는 없다. 루쉰과 반대로 나는 나중을 걱정한다. 나의 공부가 그동안 쌓아온 관계를 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 말이다. 하지만 내가 진정 공부를 하고 싶다면, 루쉰처럼 확실한 자기 주관과 담대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관계 속에서 부딪치고, 싸우고, 깨지더라도 눈치 보지 말고 해야 할 일을 그냥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결단이 필요하다!


  루쉰에게는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이 따로 있지 않았다. 루쉰에게 사회를 혁명한다는 것은 곧 자기를 혁명하는 것과 같았기에 사회와 분리될 수 없었다. 루쉰의 주변은 적들로 가득했지만, 그 적들이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사실 루쉰이 ‘정인군자’들에게 하는 말은 곧 자기에게 하는 말이었다. 『화개집』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적들이 있었기에 다시 말해 루쉰이 사회와 전혀 거리를 두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차라리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편하게 살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글쓰기와 숙제를 해야 하는 압박감도 없었을 것이며, 주변 사람들에게 일일이 해명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주변 관계들을 다 끊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에만 집중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그런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지금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공부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를 자극시키고 깨어있게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이번 에세이를 쓰게 된 것도 루쉰을 만나 나의 고민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였다. 그러니 이 글은 나와 일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 사회를 떠난 삶이란 없다. 일상에서 맺은 관계들과의 충돌(?)을 벗어나서 할 수 있는 공부 또한 없다. 그러니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놓치지 않고 그것을 나의 공부로 삼아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처한 상황들과 마주하며 나의 습관을 조율하면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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