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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신체, 국가를 그리다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8-06-06 16:10
조회 : 110  

 

 

 

 


신체, 국가를 그리다 - (1)

 

 

 

 

 

김태진

 

 

 

 

상하의 혈맥이 일철(一徹)함이 이 일신동체도와 같다.
─가이에다 노부요시, <인체배당도>(1889)

 

 

 

 

 

의문의 그림

 

로렌츠 폰 슈타인(Lorenz von Stein, 1815~1890)은 지금은 그다지 주목받고 있지 못하지만 그는 일본 헌정사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인물이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1882년부터 다음해까지 유럽으로 헌법조사를 갔을 때 빈 대학에서 강의를 들었던 것이 슈타인이었다. 이토는 당시 유명했던 그나이스트(Rudolf von Gneist), 모세(Albert Mosse)등의 강의 역시 들었지만, 단연코 그를 감동시킨 것은 슈타인의 강의였다. 이는 이후 이토의 소개로 많은 정치가들과 학자들이 슈타인의 강의를 듣게 된 점에서도 확인된다. 1887년부터 1888년에 유럽에 건너가 슈타인의 강의를 듣고, 그 강의를 『슈타인씨 강의 필기(須多因氏講義筆記)(궁내성, 1889년)로서 간행한 원로원 의관 가이에다 노부요시(海江田信義) 역시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슈타인의 강의를 들으며 촉발된 것으로 보이는 의문의 그림 하나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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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배당도 


그림에서 보이듯이 그는 인체의 각 부위에 국가의 기관들을 대비시키고 있다. 신기관(神祇官)·친제(親祭)를 머리에, 인민을 좌우 양발에, 그리고 그 사이 몸통에 정부의 각 부서를 두고 있다. 위에서 아래로부터 탄정(弾正)·궁내(宮内)·문부(文部)·사법(司法)·대장(大蔵)의 부서가, 양 다리에 농무(農務)와 상무(商務), 오른쪽 팔에는 상원(上院)·내무(內務)·육군, 왼쪽 팔에는 하원(下院)·외무(外務)·해군을 위치시킨다. 그리고 옆에 ‘상하의 혈맥이 일철(一徹)함이 이 일신동체도와 같다(上下血脈一徹 一身同体図ノ如シ)’라고 가이에다는 해설을 덧붙이고 있다.

 

그렇다면 우선 이 그림이 나오게 된 배경부터 살펴보자. 가이에다가 쓴 『슈타인씨강의필기』를 보면 이 그림이 나오게 된 상황이 묘사되고 있다.

 


여기 국가조직[官省]들을 인체의 위치에 배치[配布]하는 그림을 내보입니다. 즉 신기관(神祇官)을 머리로, 내각을 가슴으로, 각성(各省)을 신체 수족에 배치[分置]합니다. 신기관이 정부기관[官]들의 위에 있음은 신국(神國)의 풍습[風儀]으로 상고[上世] 이래의 관제(官制)입니다. 고로 유신의 때 복고와 함께 다시 설치되었는데, 개제(改制)에 의해 폐지되어 수차례 항의를 받는 데 이르렀습니다. 신기(神祇)를 정신으로 삼아 무형(無形)을 밝히고, 정부기관을 작용으로 삼아 유형(有形)을 바르게 한다면, 국가는 일신동체(一身同體)의 이치[理]를 이루리라 믿습니다. 이에 높은 가르침을 청합니다.

─海江田信義, 「須多因氏講義筆記」, 516쪽

이에 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이 인체배당도는 높이 볼 바가 있으니, 저에게 주십시오. 그런데 그 설에는 대체로 동의해도, 도면의 배치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습니다. 학자사회에서는 ‘아나토미 폴리틱(anatomy politic)’, 즉 해부정치학이라 이름하여, 국가의 여러 기관을 해부의 부위에 배치하는 그림을 제작해 일목요연하게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습니다. 즉 기혈(氣血)을 정신(종교[宗旨] 교육)으로 하고, 피육(皮肉)을 작용(관성 부현(官省府縣))으로 하고, 근골(筋骨)을 조직(토지 인민)으로 하는 설입니다. 조직의 대요(大要)는 앞뒤의 설에 따라 분명히 이해해야만 합니다. 정신과 작용과 직분이 나누어지는 바는 이 그림을 통해 발명됨을 알 수 있습니다.

─海江田信義, 「須多因氏講義筆記」, 516쪽

이 대화에 따르면 이 그림은 가이에다가 슈타인에게 그려서 보여준 것을 슈타인의 요구로 그가 받아 소장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가이에다는 왜 이 그림을 그렸을까. 이 그림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이를 보기 위해 대담의 전후 맥락을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이 그림이 나오게 된 맥락은 두 사람이 ‘신도(神道)’에 대해 대화하는 부분에서 등장한다. 슈타인이 종교를 설명하며 러시아 황제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자 가이에다는 이것이 일본에서의 신도와 유사한 점이 있다며 이에 대해 설명한다.

 

가이에다의 설명을 들은 슈타인은 “신도는 당신 나라에서 국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며, 이로서 종교를 대신해 스스로 종교의 밖에 서서 국가정신이 돌아가야 할 바”로 삼을 것을 추천한다. 즉 슈타인은 ‘애국의 정신’을 ‘양성’하는 것이야말로 ‘일대 요무(要務)’이고, ‘신도’로 ‘국가정신’이 귀결케 해야 할 것을 충고한 것이었다. 그러자 가이에다는 이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생각을 슈타인에게 확인시키고자 했다. 즉 그리스도교와 같은 종교가 없는 일본에서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종교 혹은 윤리의 필요성으로 슈타인이 신도를 제시했던 것이고, 이 설명을 들은 가이에다는 이를 위와 같은 국가-신체로서 그려내 그에게 확인받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런데 슈타인과 가이에다의 대화 속에서 둘은 미묘한 생각의 차이를 보인다. 가이에다는 신기관을 머리에, 내각을 가슴에, 정부부서와 인민을 수족에 위치시키는데 신기관이 다른 정부기관 위에 위치하는 것이 일본의 원래 관제임을 주장한다. 이를 ‘정신’으로서의 신기관과 ‘작용’으로서의 정부가 갖는 구조로 파악해, 이는 국가와 신체에서 같은 논리에 기반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슈타인은 가이에다에게 한 대답에서 보이듯이 그가 생각하는 아나토미 폴리틱이란 인체를 기혈, 피육, 근골로 나눠 이를 각각 ‘정신’(종교와 교육), ‘작용’(관성과 부현), ‘조직’(토지와 인민)으로 설명한다. 즉, 가이에다가 신기관과 내각, 즉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적 관계 속에서 설명하고 있다면 슈타인은 정신-작용-조직이라는 삼분법적 논리로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가이에다에게 핵심이 신기관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정부기관의 통합하는 역할을 강조한 것이었다면, 슈타인은 가이에다가 말한 정신적 작용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약간의 이견이 있다고 단서를 단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근대 유럽과 메이지의 차이

 

그렇다면 이 둘의 차이는 얼마나 유사하고 얼마나 다른가? 이 차이를 보기 위해 우선 슈타인의 국가관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슈타인에게 국가란 ‘독립된 인격으로 고양된 게마인샤트프’로 규정된다. 독립한 하나의 ‘인격(person)’으로 파악된 국가는 개체의 인격과 마찬가지로 독자의 의사를 형성하고, 그 의사에 기초해 행위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국가에서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의사형성’과 ‘행위’가 핵심이 되며 국가의 독자적 다이내믹이 강조된다. 이때 국가의 의사는 군주, 대통령, 귀족계급 어디에서 나와도 상관없다.

 

이는 슈타인이 군주의 지위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에게 군주는 혼자 힘으로는 대신에게 무엇인가 명령을 내릴 권리를 갖고 있지 않으며, 어떤 간섭도 내릴 수 없는 존재다. 이럴 경우 책임내각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군주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즉 군주란 어떠한 국가사항에도 스스로 개입하지 않으며, 입법권과 집행권은 군주로부터 완벽히 독립해, 군주는 다만 입법부와 정부라는 두 개의 국가권력 간의 조화를 유지시키는 존재로 그 필요성이 제한된다.

 

이처럼 슈타인의 이론체계 속에서 군주는 국가의 하나의 기관으로 국가통일을 표상하는 상징적 기능을 담당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슈타인의 국가관에 새겨진 능동적 성격이다. 인격적 존재로서 국가는 독자의 의사를 형성해, 그 의사를 실천할 것을 요청받는다. 이때 의사형성을 위한 원리가 헌정(憲政)이고, 의사의 집행의 원리가 행정으로, 헌정과 행정 양자가 두 개의 바퀴가 되어 국가가 굴러간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슈타인에게 행정이란 헌정으로부터, 그리고 군주로부터도 자율적이라는 점이다. 변화하는 내외환경 속에서 국가공동체가 존립하기 위해서는 행정이 독자의 의사형성을 갖추어야하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을 구비할 때만이 단순한 법령의 기계적 집행기관으로서의 정부를 탈피할 수 있고, 국가의 통치시스템은 정부의 통합과 운동의 중추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서 살펴본 가이에다의 그림은 이 논리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슈타인의 논의 속에서 세 기관, 즉 의사, 의지, 행동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점이 중요하다. 이 셋 중에서도 굳이 강조점을 뽑자면 행동, 즉 행정부의 기능이었다. 하지만 가이에다의 그림에서는 앞서 보았듯이 머리에 놓여진 신기관의 역할만에 주목한 것처럼 보인다. 즉 가이에다의 국가-신체 비유도는 슈타인이 주장하는 인격으로서의 국가론이나 삼분법적 사고로서 행정에 대한 강조 없이 정신으로서의 신기관의 역할에 방점이 찍혀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해의 차이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에 대해 가도 가즈마사(嘉戸一将)는 가이에다의 신체유비가 헤겔의 영향 하에 있는 슈타인식의 유기체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서양 중세의 신체유비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슈타인의 유기체설은 국민정신의 단일성을 요청해 19세기 독일의 ‘분립주의’적 동향을 부정하고 중앙집권화를 꾀하는 동시에, 절대주의를 부정하고 국민의 정신을 의회에 반영시키는 의회주의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반면 가이에다의 신체유비는 의회를 통해 민심을 ‘반영’시키는 것이 관심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민심을 ‘복속’시킬 것인가를 관심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19세기 독일의 유기체설보다 서양 중세의 신분제적 유기체설에 가깝다고 그는 평가한다. 가이에다의 논의는 ‘인체’로서 유기체설이 정신의 단일성, 이른바 귀일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머리(원수)로서 천황은 국민을 정신적으로 복속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도의 이러한 논의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이러한 이해는 결국 복사본의 원본은 무엇인가를 찾는 과정에서 원본에 대한 복사본의 결여 혹은 원본에 대한 이해부족으로서 근대 동아시아에서 사상의 수용 과정을 평가하는 관점이 깔려있다. 하지만 이는 서로 다른 신체관 혹은 세계관을 가진 장소에서 사상이 접합되면서 생기는 ‘굴절’이라는 측면을 간과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가도의 논의를 검토하기 위해서 서양 중세의 신분제적 유기체설과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신체 은유 논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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