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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이러한 튜터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8-06-13 16:07
조회 : 376  



이러한 튜터

 

 

 

김희진-튜터후기

  

이번 ‘루쉰-되기’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5조의 튜터가 되었다. 지난 글쓰기 수업 때 인턴 튜터를 한 번 하고 나서 전격 본 튜터로 승격된 것이다. 항시 긴장을 하는 것이 병인 나의 몸뚱이는 한껏 고무되었다. 게다가 루쉰이라니! 높디 높은 산 밑에서 앞으로 올라갈 봉우리를 올려다보며 설레임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것처럼, 나는 몸에 힘이 빡 들어갔다. 시즌을 마치고서 쓰는 이 튜터 후기에서 나는 루쉰-되기에서 배운 자기해부를 시도해보고자 한다.   

 

우리 조는 다섯명, 누드 글쓰기 과정을 막 마친 세 명의 열성적인 여자샘들, 한 분의 중년 여성, 그리고 20대 젊은이 한명이다. 재밌는 강의를 듣고 루쉰을 읽고 조모임을 하며 생각을 나누는 무난한 몇 주간이 지나갔다. 숙제를 내주고 다 파한 다음이라도, 튜터회의 중 얻어 들은 좋은 숙제거리를 우리조 카톡방에 추가로 내주기도 하면서 다른 튜터선생님들과 보조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씨앗문장 베껴오기가 아니라 자신의 스토리가 담긴 글을 써오는 때가 되자 보조 맞추기로는 역부족인 근본적인 문제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바로 내가 사람을 대해오던 오랜 방식, 어느 지점에서 불편하고 어느 지점에서 입을 닫아버리는지의 오랜 습관이 그것이다. 

  

루쉰의 잡문은 투창과 비수이다. 그는 잡문을 통해 자신을 해부하고, 그것으로 적들을 해부했다. 조 모임 때, 우리 모두는 얼마나 칼날처럼 번뜩이는 그의 문장에 감탄하고 전율했던가! 그러나 루쉰처럼 쓰기는 모두에게 난감한 일이었을 것이다. 벼린 날은 간데없고 자기비하와 위선, 어지럽게 늘어놓은 욕망들, 또는 잔잔한 추억의 회상들이 등장했다.    

  

좀 더 깊고 날카롭기를 주문하는 내게 한 조원은 루쉰과 우리의 처지가 너무나 달라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나는 그 분에게 그렇지 않다고 몇 마디 코멘트를 했으나 그 이후에도 그 조원은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나는 그 분에게 코멘트하기가 껄끄러워졌다. 또 어떤 조원의 글은 사회의 물신주의 풍조를 비판하면서 여자를 혐오하는 듯한 느낌을 풍기기도 했다. 하지만 글에 전면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느낀 것을 얘기하지 않고 루쉰을 적절히 이해했는가를 지적하고 그 분의 구체적인 고민거리를 들어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여혐이라는 것이 만연하다더니 이렇게 교묘하게 배어있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혹시나 나의 불쾌감이 드러나서 여자대 남자식으로 몰아가게 될까봐 말하기가 꺼려졌다. 성실히 따라오는 분들과 더 많은 얘기를 주고 받게 되면서 우리 조모임은 균형을 잃어가는 듯했다. 감정적이고 소심한 나의 습속이 첫 튜터랍시고 긴장했던 내 발목을 잡았다.

  

이 불편함을 오래 끌고 갈 수는 없었다. 나는 이번에 튜터를 처음 맡았지만 이런 부딪힘이 나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공부의 장이라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내 속의 야멸찬 말들이 여과없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여긴 허세가 너무 심합니다. 이 문단 다 빼세요.”, “여긴 너무 솔직하지 못하군요. 정말 이렇게 생각하세요?”, “표현이 저속합니다. ‘여성혐오’분위기인데요?”

  

빨간 줄이 좍좍. 참 신기하게도 이렇게 하자 다른 조원들까지도 여태껏 느꼈던 것들을 서로 얘기하면서 훨씬 솔직한 코멘트들을 해주기 시작했다. 이 때 즈음부터 조원들 모두 더 적극적인 태도로 참여를 하지 않았나 싶다. 좀 더 긴장하고 진지해지는 우리 다섯 분의 조원들을 보면서 나는 머쓱해져 버렸다. 돈과 시간을 들여 이 강좌에 온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으며, 그들이 당연히 가져가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내가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좋든 싫든 솔직한 피드백을 받아가기 위해 이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 아닌가? 원하지 않아도 들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이건 내가 튜터역할로 돈을 받고 있으며 이것도 나의 공부라는 사실과 완벽히 겹치는 동전의 양면인 듯하다. 하지만 내게 주는 깨달음은 전혀 다르다. 매사를 ‘나’로 환원하여 반성하고 성장할 때 비로소 동기부여가 되던 것이,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면서 ‘내’가 아닌 바깥을 향한 경험이었다. 나의 공부가 아닌 그들의 공부가 내 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잠깐이나마 감정이 드러날까봐 소심해졌던 이번 일을 통해 불현듯 내가 경험한 유일한 튜터샘이 떠올랐다. 그 튜터샘은 첫 번째 에세이부터 내 글에 온통 빨간 줄을 긋고 코멘트를 덧붙여서 돌려주었다. 짜증과 귀찮음이 섞여 있다고 느낄 정도로 띄어쓰기에 커서 두 칸 띈 것 까지도 다 체크해서 나의 글은 초토화되어 돌아왔다. 내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 문구를 귀신같이 골라내서 다 빼라고 했다. 내 소울이 담긴 주옥같은 표현들을 알아주지 않았다. 부끄럽고 참담했다. 존경과 감사한 마음이 컸으면서도 서운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를 싫어하나?’라고도 생각했다. 

  

나는 나중에 글 봐주시느라 고생 많았다며 슬그머니 물었다. 글이 너무 엉망이라 코멘트할 때 정말 화 많이 나셨겠다고. 그랬더니 튜터샘이 웃으며 대답했다. “헉, 티가 났나요?” 

  

나는 우리 5조 샘들의 글을 받아 읽으면서 내 글을 보는 듯했다. 나의 튜터가 못견뎌한 나의 허세와 위선이 우리 조원들의 글에서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조원들과 잘 지내고 재밌게 공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혹시라도 내 감정섞인 코멘트로 조원들과 관계가 불편해질까를 걱정했다. 나는 내가 여태 공부해온 과정에서 얻은 것을 튜터를 잘 해야 한다는 긴장 속에서 홀랑 까먹고 만 것이다. 솔직함 만큼 날카로운 투창과 비수는 없으며 거기서 발생하는 숱한 감정들이야말로 공부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감정은 상처가 난 곳을 알려주는 표식이지 않은가.

  

벼린 날은 우리의 폐부 깊숙한 곳의 습속을 찌른다. 상처는 아픈 법이다. 그것을 직면하고 싶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상처의 입구에 머물러버린다. 그래서 감정적인 것에 골몰하다가 정작 자신의 가장 병폐가 되는 습속에 대해서는 바꾸지 못하고 만다.  

  

튜터도, 튜터링을 받는 사람도 감정 속에 있다. 그것이 드러나서 관계가 불편해질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서 계속 공부하는 것, 나의 고질적 습속을  직면하고 떨쳐내는 것, 그것만이 남는다.   

 

루쉰되기 글쓰기의 발표가 있던 날, 조 모임 후 인사를 잘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나서 카톡등의 연락이 더 이어졌을 때, 몇 분이 불편했고 힘들었다는 말을 슬쩍 한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음, 내가 잘 했군.’ 그리고 말했다. “네, 꼭 계속 공부하세요.”

  

그 분들이 여기에 와서 꼭 가져가야 하는 것들, 들어야 하는 말들. 그것을 통찰할 수 있고 가감없이 줄 수 있는 그러한 튜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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