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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아브라함의 종교들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8-08-22 21:32
조회 : 238  

카스(5)-『신의 역사』 


아브라함의 종교들


김지숙

 

 

기독교, 새롭고 사악한 미신


   『마음의 진보』를 읽기 전까지 나는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가 같은 뿌리라는 것을 몰랐다. 이슬람은 그렇다 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교’라 불리는 것이 유대교에서 파생한 종교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야훼 유일신만을 섬길 것을 맹세하고 강조하던 유대교에서 어떻게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야훼를 대신해서 인간 예수가 새로운 신으로 등극하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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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가복음」에서 묘사한 것을 보면 예수는 형제, 자매가 있는 지극히 평범한 가족의 일원이었다. 그런데 그의 행동에서 사람들은 신의 재림을 느꼈다. 신유치료자였던 예수는 유대교의 황금률을 강조하며 사랑과 자비를 실천했다. “예수는 그 시대 많은 사람의 가장 깊은 열망을 포착했고, 유대인들이 수세기 동안 꿈꾸었던 것을 실체화했던 것”(Ⅰ권 150쪽)이다. 예수를 메시아라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이었고, 예수가 죽은 후에는 더더욱 그가 신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예수는 자기가 ‘신의 아들’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바울도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예수는 단지 지상에선 신의 활동을 드러내는 신의 ‘능력’과 ‘영’을 지녔을 뿐이라고 생각되었기에 파악 불가능한 신의 본성과 동일시되지 않았다”(Ⅰ권 156쪽) 바울은 예수에게서 새로운 인간상을 발견했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며 신으로 숭배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것은 유대교에서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대체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카렌은 인도의 종교에서 그 답을 찾는다. 즉 신에 대한 헌신(바크티)이 인격신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말이다. 부처는 인간이었지만 불상을 만들어 신격화한 것이 바로 그런 예다. 부처는 죽었지만 그를 따르겠다는 확고한 믿음의 발현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불상은 불교적 영성을 키우는데 아주 중요했다. 아무래도 자기가 믿는 신이 사람의 형상일 때 훨씬 가깝게 다가올 수 있다. 따라서 종교 발전 단계에서 인격신의 모습은 “신의 내재성을 추구하려는”(Ⅰ권, 161쪽)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예수를 성육신화한 것도 유대인들의 그런 갈망에 대한 반응이었다. 예수를 따르기만 하면 자신도 신처럼 될 수 있다는 기독교인들의 주장은 까다로운 율법을 지켜야 하는 유대교보다 훨씬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토라를 지키라고 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유 때문에 기독교로 개종했다. 유대교와의 완전한 단절이었다.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광신자의 종교라고 맹비난했다. 과거의 전통을 깨버린 데다 제대로 된 제의가 없는 기독교를 도무지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로마의 전기 작가 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는 기독교를 비합리적이고 괴팍한 운동 즉 ‘새롭고 사악한 미신’으로 보았다.”(Ⅰ권, 170쪽)  

 

   사실 삶의 의미와 깨달음을 철학에서 찾으려 했던 사람들은 기독교의 성육신 주장이 그렇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과연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신앙을 그들에게 납득시켰을까. 그것을 해명하기 위한 다양한 이론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스토아 철학에 영향 받은 유스티노스는 예수를 신적인 이성, 로고스의 화신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별 설득을 얻지 못했다. 로고스가 신의 말씀, 지혜와는 어떻게 다른지, 로고스를 성육신화 하는 것이 가능한 지에 대해 아무런 해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자들이 이것을 유출 신화로서 설명했는데 많은 반향과 더불어 동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신 본체’-바실리데우스는 이것을 무(無)라고 말함-가 있고 거기서 처음 유출된 아이온이 신이며, 나중에 나오는 아이온일수록 신과는 멀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세상은 영적인 존재가 있는 천상의 세계와 마귀가 들끓고 있는 물질의 세계로 나뉘게 된다고 말이다. 어떤 영지주의자들은 물질의 세계는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무지와 타락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이온’들 가운데 하나인 ‘로고스’가 이것을 구하려고 지상으로 내려와 신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인간에게 가르치고자 예수라는 육체적 형상을 취했다는 것이다.”(Ⅰ권 176쪽) 결국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신적 요소를 발견하라는 것 그래서 내면의 성찰을 중요시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유대교의 ‘잔인하고 무서운 신’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유대교의 광포한 신이 악한 세상을 만들었다는 확신이 들게 했으니 말이다. 그들은 ‘선한 신’을 원했다. 예수야말로 그런 신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런 생각은 클레멘스에 의해 더욱 구체화 되었다. 클레멘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무감정의 신’에 동의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신의 고요함을 모방하라고, 즉 큰 소리로 웃거나 떠들거나 말해서도 안 되며, 교만해서도 안 된다고 말이다. 클레멘스는 제자의 발을 씻겨주고 고통 속에서 죽은 예수야말로 “자만심 없는 신이며 우주의 주인”(Ⅰ권 180쪽)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무감정의 신이 어떻게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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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게네스 역시 플라톤의 이론을 받아들였다. 그는 신과 인간의 영혼은 연결되어 있으며, 존재의 사슬을 밟고 나아가다보면 신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과 인간의 영혼은 친할 수밖에 없고, 본능적으로 신을 명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을 명상하는 것이 지겨워져서 육체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도 예수처럼 신의 말씀을 명상하다보면 신적세계에 머물 수 있다고 말한다. 예수나 인간이나 모두 영적 존재라는 점에서 평등하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에 의해 인간이 구원받았다는 기독교의 교리와는 일치하지 않아 이단으로 정죄 받았다.

 

  플로티노스는 영지주의자들처럼 유출 개념을 이용해 신을 설명했다.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신적 본체를 플로티노스는 ‘일자(一者)’라는 용어로 대체한다. 그것에서 유출된 첫 번째 것과 두 번째 것을 신적인 것으로 간주했는데 바로 지성과 영혼이다. 기독교의 삼위일체의 교리와 비슷한데 플로티노스는 일자, 지성, 영혼을 저 멀리 있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의 자아”(Ⅰ권 189쪽)라고, 그러니 내면으로 눈을 돌려 영혼을 탐색할 것을 권했다. 

 

  이처럼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신을 플라톤의 이론을 빌려 나름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예수가 신적 존재라는 것을 밝히는 것은 쉽지 않았다. 비록 유대교를 누르고 세계적인 종교로 비상하게 되었지만 그것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 되지 않아 논란은 계속되었다. 특히 성부와 성자의 차이가 있다는 생각, 다시 말해 성부가 더 우위에 있다는 주장을 굽힐 수가 없었다. 아리우스가 이 논쟁의 불을 지폈다.

 

 

삼위일체, 신에 대한 논란을 지피다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는 신과 인간이 존재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는 오리게네우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신이 무(無)에서 각 존재를 창조했다는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냈다. 인간과 신은 어떤 공통된 속성도 없으며 인간의 노력으로는 신에게 접근할 수 없다고 말이다. 오직 신만이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자 예수의 구원을 설명하기가 난감해졌다. 아리우스는 성경에 근거해 예수를 말씀, 즉 로고스로서 설명했다. 물론 로고스도 신이 만물을 창조하기 위한 도구였다. 예수는 신이 만들어낸 다른 피조물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아리우스는 그가 본질적으로 신은 아니면 다만 신에 의해 신적 지위로 격상된 존재라고 주장했다.”(Ⅰ권 198쪽) 그래서 예수의 삶을 명상하고 모방함으로써 기독교인은 신적 존재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신의 완벽한 피조물이 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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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와 달리 구원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이었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보았다.”(Ⅰ권 199쪽) 죄악을 범하면 언제든지 다시 무의 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로고스적으로 흠을 가진 피조물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기에 신의 로고스를 통해서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결국 예수를 신적 존재로 올려놓았다. 아타나시우스의 이런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니케아 공의회는 그의 의견을 선택했다. 이제 기독교는 무로부터의 창조와 성부와 성자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신앙을 천명했다. 하지만 신은 유일한데 어떻게 말씀이 신적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여전히 영지주의자들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카피도키안 신학자들이 이것에 대한 해결안을 제시했다. 그들은 “종교적 진리가 명료하고 논리적으로 표현되거나 정의될 수 없다”(Ⅰ권 206쪽)고 확신했다. 말하자면 종교적 체험 없이 신에 대한 의미나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적 진리를 성서에 근거한 교회의 구체적 가르침인 ‘케뤼그마’보다는 종교적 체험과 상징적 형태를 통해 표현될 수 있는 비실체적 의미인 ‘도그마’를 중요시 했다. ‘성령’에 관한 교리를 전개하게 되는 이유다. 성령이란 다름 아닌 신적 존재로서 인간 안에 존재하며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세 가지 표현 형태를 통해서만 인간이 신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성부는 초월적 존재인 신을, 말씀Logos으로서의 성자는 창조주 신을, 그리고 성령은 범세계적으로 거하는 보편적인 존재인 신을 나타낸다고”(Ⅰ권 210쪽). 성자의 계시 없이 성부를 알 수 없고 성령 없이는 성자를 알 수 없다고 말이다. ‘삼위일체’의 등장이다. 삼위일체는 이성이나 논리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신비적인 측면에서만이 이해될 수 있다.

 

  동방 기독교인들은 카비도키안 신학자들의 이런 주장에 절대 수긍했다. 그들은 관조, 즉 직관적 체험을 통해 성서의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스계 기독교인이었던 디오뉘시우스가 예배를 중시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예배야말로 신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성서를 읽는 것도 신의 비의적 진리를 파악하기 수련의 과정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기도와 명상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무아와 상태에서만이 신과의 합일을 체험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의 신은 인간 세계에 늘 내재해 있으되 영원한 신비의 심연에 둘러싸인 존재였다.”(Ⅰ권 231쪽) 이것은 신의 본질을 언어로써 분석하려고 했던 서방 기독교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신성’에 대한 생각도 차이날 수밖에 없었다. 비잔틴 신학의 창시자인 막시무스는 본래 그대로의 자기 본성을 자각할 때 신과 합일 할 수 있다고, 다시 말해 자기 안에 있는 신을 자각하라는 것이었다. 신이 인간이 된 이유는 인류를 신적 존재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는 인간이 구현해야 할 최고의 모범이었다. 

 

  서방 교회의 대표 주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도 언뜻 보면 동방 교회의 기독교인들의 생각과 비슷해 보인다. 그는 종교적 회심을 통해, 그리고 어머니 모니카와 함께 황홀경을 체험함으로써 인간의 마음속에서 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따라서 신을 언어적으로 표현하고 분석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신은 너무나 인격화되어서 동방 교회와는 달랐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로마제국의 몰락을 통해 그는 서방 교회의 원죄교리를 탄생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즉 미개한 민족에 의한 서구의 몰락을 육체적 쾌락에 대한 이성의 패배로 인식했다. 이것은 남자나 여자 모두에게 소외를 불러왔다. 안셀무스도 여기에 가세했다. 그는 막시무스와 달리 인간의 타락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이 신의 계획을 망쳐놓았기에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신이 점점 인간에게서 멀어져가고 있었다.

 

 

신정 일치, 이슬람의 신


  앞서도 말했지만,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뿌리가 같다는 것을 잘 모른다. 그런데다 이슬람도 그것들과 같은 뿌리라고 말하면 놀라는 사람들은 더더욱 많다. 그러나 아랍인들은 그들의 신 ‘알라’가 유대교나 기독교의 유일신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아랍인들에게는 일단 신의 존재여부에 대해 따질 일은 없었다. 다만 그들이 아쉽게 생각했던 것은 유대교처럼 예언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종교적으로 뒤떨어졌다는 것이 아랍인들을 주눅 들게 했다. 하지만 드디어 아랍인들에게도 예언자가 나타났다. 그가 바로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였다. 그렇다면 그동안 그렇게 바랐던 예언자가 왜 이제야 나타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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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의 시대』를 통해서도 살펴봤지만 폭압과 폭력이 분출할 때 영성이 폭발한다. 무함마드가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을 때가 바로 그런 때였다. 당시 아라비아 반도는 교역으로 부가 넘쳐나고 있었다. 그것에 도취된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인 과부나 빈자, 고아들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과거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과 가축을 위해 신은 곡식과 과실, 목초들을 만들어 주었으니 그것들을 균등히 분배해야 한다는 의식이 알게 모르게 흐르고 있었다. 이런 공동체 의식의 상실을 무함마드는 누구보다도 가슴아파했다. 결국 신의 계시로 이어지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신의 계시는 23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특별한 상황마다 신이 나타나서 길을 제시해 주었다. 그래서 이슬람의 신은 유대교나 기독교의 신과는 좀 다르다. 알라는 사회경제 및 정치적 상황과 떨어져 있지 않았다. 정의를 구현하는 공동체 건설에 이슬람의 신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한마디로 신정일치의 체계가 이슬람 사회의 특징이다. 신은 사회적 약자를 돌보지 않는 것, 개인의 탐욕을 죄악시 한다고 무슬림들은 생각했다. 따라서 움마라는 이슬람 공동체를 구현하는 것이 늘 관건이었다. 움마가 번영하면 신의 말씀을 잘 따르고 있다는 증표였기에 그렇다. 

 

  이슬람 왕국이 제국이 되면서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사치와 부패를 일삼는 왕조가 등장한 것이었다. “『꾸란』에 나타난 도덕률의 근간은 알라의 유일성에 대한 확신이었”(Ⅰ권 266쪽)는데 그것이 흔들리고 있었다. 하여 전통주의자들은 무함마드의 삶을 모방하는 신앙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사실 무슬림들은 무함마드가 한 그대로 말하고 먹고 기도하는 것을 따라하면서 신과 교통하는 것을 느꼈고 꾸란을 낭독하면서 신의 임재를 체험하곤 했다. 따라서 꾸란과 무함마드의 실천적 행위인 순나를 강조하며 움마의 복구를 촉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전통주의자들은 개인의 노력에 의한 구원은 없다고 생각하며 신 예정설을 믿었다. 이런 점은 시아파와의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시아파는 이슬람 왕조들의 부패와 방탕을 비판한 점에서는 전통주의자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시아파는 꾸란이 신의 본질이라는 전통주의자들과 달리 기독교의 성육신 교리를 발전시켜 나갔다. 즉 그들이 내세운 움마의 지도자인 ‘이맘’들이야말로 “신 현존의 증거”(Ⅰ권, 287쪽)였다. 사실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혈연적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이맘으로 내세웠다. 대를 잇지 못하고 마지막 이맘이 죽었을 때 시아파는 언젠가 이맘이 다시 돌아와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는 메시아적 신앙을 퍼뜨렸는데 전통주의자들의 비판을 피할 길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아파는 나름 꾸란에 대한 합리적인 논증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며 무타질라파와 비슷한 견해를 표방했다. 시아파나 무타질라파는 모두 정의를 신의 본질로 보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었다. 따라서 옳고 그름에 대한 인간의 판단을 거부하는 신은 폭군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지나치게 신을 인격화한 것으로 인간의 판단에 얽매이지 않으며 그것을 초월한다는 전통주의자들의 의견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와 달리, 아쉬아라파는 무타질라파와 전통주의자의 주장 사이에서 중도적 입장을 취했다. 이성으로 신의 본질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구원을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전통주의자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 물론 무타질라파의 자유의지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신만이 모든 인간의 행위를 창조하고 규정하기 때문이다.”(Ⅰ권 294쪽) 하지만 무타질라파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논증을 통해 신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했는데 그것은 바로 형이상학적 시도를 통해서였다. 즉 실제로 신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수련의 과정에서 신 존재를 깨닫는 것으로서 증명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신의 불가해성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어쩌면 전통주의자들의 주장에 더 기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기독교나 이슬람의 역사에서 나타난 공통점은 ‘신’에 대한 이해가 달랐기에 대립과 논란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실, 그들의 논점은 간단하다. 이성적 신이냐 신비적 신이냐를 놓고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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