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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꾸밈없는 말, 꾸밈없는 마음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8-10-17 14:14
조회 : 275  



임꺽정 리뷰 ⑧



 

꾸밈없는 말, 꾸밈없는 마음




성승현

 

 

‘말도 실력이다’라는 말이 있다. 요즘의 추세로 보면, 말하기가 스펙이 된 시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화술, 화법에 대한 책과 강의가 쏟아지는 것도 같은 양상일 것이고. 그런데, 말이란 것이 단지 기능적인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온전히 비추는 거울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가 있으니! 바로 ‘오주’라는 인물이다. 화려한 수사도, 장식도 없지만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이란 무엇인지, 오주가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힘이 장사에 몸집은 산 같은 오주가 던지는 소박한 말들은 사람을 확~ 끌어들인다. 유복이가 오주에게 반한 것도 ‘애걔걔’라는 한 마디였다. 그 포인트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유복이가 반한 오주의 ‘말’

유복이는 오가의 사위가 되어 청석골에 살게 되었다. 하지만, 도적질에는 끼어들고 싶지 않아 함께 동행하는 법이 없었다. 오가는 그날도 홀로 탑고개에 나가 있었다. 오가의 명성이 자자하여 다들 청석골 지나는 것을 조심하는데, 오주는 “제기, 다 우스꽝스럽소.” 한 마디를 남기고 청석골로 홀로 들어간다. 그리고 오가를 만나게 되는데 뭐, 단숨에 제압을 해버린다. 오가가 “쌀두 뺏지 않을 테니 어서 놔라. 잘못하면 낭에서 떨어진다”며 빌다시피 하지만, 오주는 낭떠러지에 밀어버리고 유유히 떠난다. 이 일로 오주의 별명은 ‘쇠새끼’가 된다. (^^) 

 

유복이는 오가의 복수를 해주기 위해 함께 탑고개에 나간다. 드디어 만남이 성사되어 ‘떼밀기’로 힘을 겨루기로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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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이 한동안 뻑쓰더니 그 이마에 진땀이 솟았다. 총각의 몸이 뒤로 젖히어지는 듯하며 발이 뜨기 시작하여 뒤로 몇 걸음 밀려나갔을 때 총각의 입에서 ‘애걔걔’ 소리가 나왔다. 그 소리가 우스워서 유복이가 머리를 들고 볼 즈음에 총각이 펄썩 주저앉아서 유복이는 앞으로 고꾸라질 뻔하였다. (221)

힘이 장사인 오주가 유복이에게 하릴없이 밀리자, 내뱉은 소리 ‘애걔걔’다. 유복이는 이 말 하나로 오주 혼내줄 생각이 없어졌다. 하지만 오주는 상황이 불리해지자 유복이 앞에서 ‘똥’을 누기도 하고, 자기 장기인 씨름을 하자 떼를 쓰기도 한다. 유복이는 그걸 다 받아주고, 결국 그대로 보내준다. “그 총각이 밉지가 않구먼요”라며. 

 

『임꺽정』에서 말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 사람은 단연 오주다. 물론, 청산유수로 말재주를 뽐내는 오가도 있고 꾀돌이 서림이란 자도 있지만, 오주의 말은 다른 의미에서 말의 ‘재주’를 선보인다. ‘애걔걔’를 생각해보자. 누구보다 힘이 세다고 자신하던 오주였다. 다들 무서워하는 청석골에 코웃음치며 나홀로 입성할 배짱을 가진 이다. 그랬던 이가 힘에 밀렸다?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다고 분노하거나, 살려달라 빌며 비굴함을 보일 것 같은데, ‘애걔걔’ 한 마디로 자신의 기분을 표현한다. 이는 자신의 힘에 대한 소회다. ‘내 힘이 이것밖에 안 되었나’, ‘몰랐네’하는. 그 진솔함이 상대를 무장해제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유복이와 인연을 맺게 되자, ‘쇠새끼’라 욕하던 오가도 오주를 받아들이게 된다. 

  

 

간극 없는 ‘마음’과 ‘말’ 사이 

오주의 말은 특이할 것이 없다. 하지만, 솔직함 때문인지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고,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간다. 화려한 화술을 가진 청석골의 ‘오가’와 꾸밈없는 말을 툭툭 내뱉는 ‘오주’를 비교해서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총각, 장가들고 싶은가? 장가는 마구 들 것 아닐세. 하루 화근은 식전 취한 술이요, 일년 화근은 발에 끼는 갖신이요, 일생 화근은 성품 고약한 아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장군당에 갈 공론 고만두구 술이나 먹세.” (250쪽) 

유복이가 장군당에서 아내를 얻었다는 말에, 오주가 “여보 형님, 이번 최장군 마누라는 내가 가서 뺏어올까?”라고 하자 오가가 나선 것이다. 오가는 결혼이 일생의 화근이라는 웃픈 말로 상황을 마무리한다. 세월을 살아본 사람이 할 수 있는 뼈 있는 말이다. 

 

오주는 정첨지네 머슴살이를 하고 있었다. 오주가 겉으로 보기에 자칫 괴팍해 보이지만, 성실하고 꾀를 부리지 않는 탓에 두세 사람 몫을 톡톡히 해내므로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다. 정첨지에게는 외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신수는 멀끔하나 계집, 술, 노름에 모아놓은 천량을 보람없이 없애는 위인이었다. 그가 신뱃골 젊은 과부 얼굴 이쁘다는 소문을 듣고 욕심이 일어 오주 등을 데리고 과부를 가 동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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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부가 죽기로 작정하고 우물에 빠졌을 때 오주가 건지고 업어다 주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정첨지와 며느리까지 모두 알게 되었다. 정첨지 아들은 ‘과부를 가까이 두고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 생각과 과부가 밉살스러워서 욕보이고 싶은 생각과 귓속에 남아 있는 늙은이의 실없는 말이 한데 얼기설기한 중에’ 과부를 오주에게 줄 생각이 든다. “여보게 오주, 과부를 자네 줄 테니 어떤가?” “좋지, 싫을 것 무어 있어. 그렇지만 주인영감이 아들에게서 뺏어온 것을 나를 줄까?” 하지만 걱정과 달리, 이 말을 들은 정첨지는 과부를 돌려보내면 집에 재앙이 있단 말이 꺼림칙하던 차여서, 그대로 허락한다. 

 

“우리 주인이 나더러 임자하구 같이 살라는데 내 맘엔 좋지만 임자 맘엔 어떤지, 임자가 나하구 같이 살기 싫다면 나두 굳이 같이 살자지 않을 테니 싫거든 싫다구 말해.”(309쪽)

 첫날 밤, 오주는 솔직하게 심경을 밝힌다. 자신은 총각이니 과부가 같이 살기 싫을 이유가 없지 않냐고. 그래도 살다가 싫으면 언제든지 보내주겠단다. 정첨지 아들에 대해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저항하던 젊은 과부였는데, 오주와는 그렇게 부부가 되었다. 

 

“자네는 지금 여편네 맛이 단 줄루 알 테지만 그것이 본맛이 아닐세. 여편네는 오미 구존한 것일세. 내 말할게 들어보려나. 혼인 갓 해서 여편네는 달기가 꿀이지. 그렇지만 차차 살림 재미가 나기 시작하면 여편네가 장아찌 무쪽같이 짭짤해지네. 그 대신 단맛은 가시지. 이 짭짤한 맛이 조금만 쇠면 여편네는 시금털털 개살구루 변하느니. 맛이 시어질 고비부터 가끔 매운맛이 나는데 고추 당초 맵다 하나 여편네 매운맛을 당하겠나. 그러나 이 매운맛이 없어지게 되면 쓰기만 하니.” (315쪽)

신혼의 달달함에 빠져 있는 오주를 보며, 오가가 말한다. 여편네가 가지고 있는 여러 맛 중에 단맛 하나 보고 있는 거라고! 물론, 이 말들은 오주에게 아무 소용 없는 말들이다. 겪지 않고 어찌 알겠는가. 하지만, 부부가 되어 오래 살아본 사람이라면 무릎을 칠 만큼 통찰력 있는 말이다. 경험과 재치, 비유가 뒤섞인 오가의 말은, 순박한 오주의 말과 대비되며 웃음을 준다. 

 

하지만, 오주의 달콤한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다. 몸 약한 과부는 아기를 낳고 죽어버렸다. 젓 동냥으로 아기를 돌보던 오주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던져버렸는데… 아기가 맥없이 죽게 되었다. 이에 오주는 반 미친 사람이 되어 버렸는데, 어린애 우는 소리가 들리면 상열이 되어가지고 눈이 뒤집혔다. 이런 오주를 구제하게 된 이는 유복이다. 유복이가 오주를 데리고 청석골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쇠도리깨 도적으로 유명해졌다. 어른은 대개 다 목숨을 보전하여 보내지만 어린애는 보기만 하면 곧 박살하여 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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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에게 ‘말’은 ‘마음’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거짓을 말하는 것에 누구보다 크게 분노한다. 후에 서림이란 자가 청석골 멤버가 되는데, 그 방법이라는 것이 ‘거짓말’이었다. 서림은 비겁한 자였으나, 그의 말이 천문지리, 의약복서에 막히는 것이 없는 것을 보고 '오가'는 좋아하고, '유복이'는 공경했지만, '오주'만은 좋아도 않고 공경도 하지 않았다. 오주는 솔직하지 않은 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호와 불호가 너무도 강하고, 처세에는 관심도 없어 자칫 모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평생을 거짓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자가 존재를 긍정하는 방법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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