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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vs 이탁오] 자살과 그에 따른 감정에 대한 연구
 글쓴이 : 단주 | 작성일 : 16-07-19 13:35
조회 : 2,619  

                      



자살과 그에 따른 감정에 대한 연구


이한주(감이당 대중지성 3학년)




이탁오의 죽음


몇 주 전 『분서』에 대한 발제문을 준비했다. 주제는 ‘이탁오의 죽음’이었다. 76세의 나이에 감옥에서 자결한 그의 행위에 대한 인과성을 밝히고 싶었던 것이다. 결과를 먼저 말하자면 실패했다. 그의 자결의 이유를 밝히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증폭되는 의문만 안게 되었다. 그의 죽음은 나에게 있어 일종의 미제 사건이었다. 이 풀지 못한 사건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데, 설상가상 새로운 질문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이탁오가 죽기 전에 남긴 말, “칠십 늙은이가 무에 바라는 게 있겠느냐?”(『분서2』,이지, 한길사, 67쪽)를 허무하게 느꼈다는 점에 대하여 질문이 들어 온 것이다. 나의 허무감은 이탁오의 자결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이었다. 그런데 도반들은 그러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나에게 왜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되었냐고 도리어 물었다. 그래요? 그의 죽음에 대한 허무감을 못 느낀다고요? 그런데 나는 왜 허무하게 느꼈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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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가 끝나고 2주 동안,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에 골몰했다. 니체의 논리에 따르자면 허무감은 나약한 자, 즉, 몰락하는 자의 감정이다. 즉, 약자의 감정에 빠져있다는 증거이다. 어떤, 무엇이 나를 그런 감정으로 밀어 넣었을까? 지금부터 이탁오의 자결이라는 미제 사건, 이것과 연결된 나의 감정의 고리를 풀어 보려고 한다.



자살에의 충동


지난 수 십 년 동안 나는 자살을 꿈꾸었다. 그 꿈은 10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20대에는 염세적인 모습도 하나의 멋인 것처럼 조금 즐겼다. 주로 자살과 관련된 서적들을 읽으면서 말이다. 결혼을 하며 이 충동이 누그러지나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둘째 아이가 태어난 직후에는 아주 심각해져서 병원치료를 2년 간 받았다. 병원에서는 우울증이라고 했다. 상담과 약물 치료를 받았으나 별로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그렇게 자살을 원했으면서도 삶에 대한 강력한 희망도 갖고 있어서 그야말로 별의 별 짓을 다하며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온갖 심리치료실을 찾아다니고, 종교를 가져 보기도 하고, 도서관에 쳐 박혀 심리학책에 빠져 보기도 하고, 전국 팔도를 미친 듯이 떠돌며 여행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야말로 막장에 도달해 한 번 뚫어보자고, 감이당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래, 여기까지만 하자······ 더 이상 서술하면 간증이 될 터이고 감이당을 사이비 종교 집단으로 승격(?)시키는 노력은 가상하나 모든 공부는 도로 아미타불이 될 터이니. 어쨌든 자살을 욕망했던 적이 있었다····· 이야기인즉슨,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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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이라는 행위, 그 행위는 자신의 신체에 해를 가해 목숨을 끊는 것이다. 즉 자기보존능력을 상실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탁오의 죽음과 나의 자살 충동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극명하게 다른 점이 발견된다. 자신의 신체에 해를 가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행위이나 그 행위에 도달하기까지의 인과론적 과정을 살펴보자면 말이다. 이렇게 대조적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죽음에서 깊은 허무감을 느꼈다. 이 감정은 그의 삶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 죽음의 형식만 보려고 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자살에의 충동이 만든 습관적인 감정의 발로가 아닌가. 나는 아직도 그 감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행동자는 상상일 뿐, ‘행동이 전부’라고 한 모양이다. 벗어났다고 말하면서도 나의 손가락은 이미 이탁오의 죽음이 허무하다고 썼으니 말이다. 그런데 같은 죽음의 형식이라도 어떤 삶의 이야기가 그 배경에 있는가에 따라 그 죽음의 가치를 달라지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테면, 이탁오는 「다섯 가지 죽음五死篇」에서 다섯 종류의 죽음을 말하며 죽음에 대한 등급을 매겼다. 그는 죽음을 거래로 보며 죽음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죽음의 가치를 알아주는 지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죽음이라면 큰 거래에 성공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 "병들어 침상에 드러누운 채 처자식 꽁무니만 맴돌며 주둥이나 놀리"(『분서2』,103쪽)다가 편안하게 맞이하는 죽음은 개죽음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그가 「다섯 가지 죽음五死篇」에서 으뜸의 죽음으로 삼은 정영이나 섭정, 굴평도 모두 자살한 사람들이다. 그에게 있어 죽음의 형식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중요했던 것은 죽음의 이유와 그 죽음을 가치를 알아주는 지기를 만나는 것.



이러한 이탁오의 죽음관과 나의 자살 충동을 감히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현저하게 다른 죽음의 내용을 가지고서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만 두어야 하나? 계속 이 허무감에 빠져 있을 것인가? 아니다, 아니야. 계속 질문해 보자!



금욕적 이상을 제외하고 보면 인간은, 인간이라는 동물은 지금까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았다. 지상에서의 인간의 생존은 아무런 목표도 품지 못했다. “인간은 대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인간과 대지를 위한 의지가 결여되어 있었다. 모든 거대한 인간의 운명의 배후에는 더욱 커다랗게 ‘헛되도다!’라는 후렴이 울려 퍼졌다.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고, 인간 주위에 어마어마한 틈새가 벌여져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금욕적 이상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변명하고 설명하며 긍정할 줄 몰랐으며, 자신의 생존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시달렸다. 인간은 그 밖의 문제로도 시달렸는데, 그는 본질적으로 병적인 동물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문제는 고통 자체가 아니라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가?”라고 외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도덕의 계보학』,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송광 옮김, 연암서가, 229쪽



니체는 『도덕의 계보학』에서 말한다. 사건의 문턱에서 그 사건이 일어난 배경의 계보를 따라가 보자고. 나약한 인간은 언젠가부터 ‘금욕적 이상’이라는 하나의 환상을 설정해 놓고 모든 삶의 의미와 목표를 그 속으로 들이밀었다. 하지만 삶의 문제는 ‘이상’ 안에서는 늘 어긋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삶은 늘 자신의 예측과 다르게 펼쳐지며 인간에게 고통을 안기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상’ 안에서 인간은 생로병사를 고통으로만 여기게 되었다. 특히나 현대인들은 고통에 자신들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내면화 시켰다. 이러한 감정은 자기연민으로 새겨져 늘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환멸을 느끼는 형태로 드러나게 되었다. 자기연민과 자기부정이라는 이중의 고통으로 말이다. 그것은 우울증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와 나의 자살 욕망을 충동적으로 부추겼다.


                                양면성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여기에서 나에게 더 문제가 되었던 것은 현실을 왜곡하고, 상상하는 자세보다 자신의 문제를 솔직히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고, 드러내지도 못하는 태도였다. 이러한 태도를 나는 교양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교양을 지닌 우아한 여성으로 보이고 싶었으나 사실은 속이 썩어 문드러진 연민 유발자, 그로 인한 구토 유발자, 허무주의자였던 것이다. 삶을 부정하는 이러한 태도, 특히나 그것을 교양으로 위장한 이 허무주의자를 니체는 신랄하게 비꼬고 있다.


그런데 이탁오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좀 달랐다. 그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자신을 까는데 스스럼이 없다. ‘삶을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유별(『분서2』, 113쪽)나고, ‘나이가 들고 의지할 곳조차 없는 신세’(같은 책, 450쪽)에다 ‘질병 또한 허다하여 세상 살 날이 얼마 안 남’(같은 책, 450쪽)았다는 점을 자신의 글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의 이런 모습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삶을 고통스러워하는 한 노인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가 다른 점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생사의 문제를 끝까지 궁구하고 있었다는 데 있다. 교양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점. 그러면서도 생사의 문제에 끝까지 매달린 점. 이러한 이탁오의 사유를 나는 좀 더 밝혀 나가야 했다. 나를 덮치려는 허무감을 타도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인식을 다르게 하는 방법


원중도는 「이온릉전」에서 이탁오에 대하여 가감없이 묘사하고 있다. 그의 ‘성격은 매우 조급했고 남들의 잘못을 면전에서 들추길 좋아’하고 ‘고집스러운데다 뭐든 내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오묘한 도의 세계에 골몰하기 시작한 것은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54세의 늦은 나이에 생사의 문제를 공부하기 위하여 고향을 떠나 스스로 나그네가 되었다.



「초약후에게 회답하다」에서 그는 나그네가 된 이유를 자세히 밝히고 있다. 그는 이 편지에서 양다리를 걸친 채 태평하게 살아가며 세상을 적극적으로 일궈내지 못하는 괴짜들에 대하여 말한다. 그 중에서도 자신은 높은 벼슬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속으로도, 겉으로도 괴로워, 그 자리를 버려야지만 자유로워지는 괴짜라고 명한다. 부귀공명이나 도덕이나 명예가 사람을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를 속박 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자신을 ‘유우객자流寓客子’ 라고 칭하며 ‘나그네 노릇만 하겠다는 뜻과 간섭받지 않겠다는 마음을 천명(같은 책, 153쪽)한다. 그리고 자신을 도연명에 비유하며 끝까지 ‘세상의 간섭과 속박을 받지 않겠다는 진실한 마음(같은 책, 159쪽)을 견지하고 있음을 밝힌다. 그렇다면 이탁오는 왜 그토록 나그네가 되고자 했던 것일까?

                            


‘자유로운’ 인간, 즉 오랫동안 지속되어 잘 망가지지 않는 의지를 소유한 자는 이처럼 소유하는 것에 또한 자신의 가치척도를 지니고 있다. 그는 자신을 기준으로 남을 바라보며, 존경하기도 경멸하기도 한다.-『도덕의 계보학』,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송광 옮김, 연암서가, 77쪽



이탁오의 글에서 살펴보자면 나그네가 곧, 니체가 말하는 ‘자유로운’ 인간임을 알 수 있다. 니체의 ‘자유로운’ 인간은 자신을 지배하는 모든 것이 사실은 모두 자신의 손에 맡겨져 있음을 알고 있는 자이다. 따라서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신뢰할 만한 약속을 할 수 있는 자이다. 또한 자신의 운명(또는, 불행)을 의연한 자세로 맞을 수 있는 자이다. 이탁오는 자신을 지배하는 운명에 대하여 주권적인 인간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하여 당시의 지배적인 학문의 영향 속에서도 자신을 굽히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는 「담연 대사에게 보내는 답장 答澹然師」에서 도를 공부하는 사람의 기본은 진실함이라며 처음부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공부의 기반으로 삼으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 당시 도학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음에 대하여 비꼰다. 그는 말한다. 부처님은 생사를 고해로 여기고 그것을 공포로 느꼈다고.



왜 생사가 고해인가? 도를 추구함에 있어 ‘위로도 얻지 못하고 아래로도 얻지 못하며 배워도 얻지 못하고 배우지 않아도 얻지 못하면 삶에 있어 고통이 생겨나는 것을 볼 수 있다’(같은 책, 114쪽)고 한다. 무엇인가 자꾸만 얻으려고 하니 당연히 삶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이것이 곧 삶에의 집착이 아닌가. 그는 묻는다. 집착하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정으로 몸부림쳐 본적이 있느냐고. 그런데 오히려 죽음의 두려움을 모르는 자들은 삶 속에서 공명을 따르거나 허명에 매달려 그것을 얻었다고 즐거워 한다. 삶 자체는 여덟 가지 고해 중 하나인데 자신이 공명이나 허명으로 꾸며진 삶의 구덩이에 함몰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결국 자신이 무엇인가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인식하지 못하므로 해서 부귀공명에 매달리는 고통을 안게 된 것이다.



                             인식의 전환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무엇엔가 매달리지 않고 살아보려고 노력했는가? 진정으로 이 고통을 벗어나려고 노력했는가? 이탁오는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또한, 그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공명이나 허명을 버리는 실천을 행했다. 그의 이 행위가 바로 당시 주류 학풍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힘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이탁오가 보기에 그 당시의 가짜 도학자들은 하나의 이상주의의 틀에 갇힌 이상 세계의 숭배자들이었다. 그들은 이 세계에 대한 인식을 논하고 있었지만 한 번도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삶의 고통이 오는지도 모른 채 ‘이상’을 통해서 자신을 보존하려고 하고 자신의 생명을 구원 받으려고 했다. ‘이상’은 그들에게 있어 생존 수단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된 것은 수단이 본질로 전도되어 ‘이상’에 길들여진 자신은 보지 못하고 현실과는 다른 삶, 즉 ‘이상’적인 삶을 지향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착각하게 된 것이다. ‘이상 ’안에서 고통을 해석하여 새로운 고통을 만들어 내는 자들, 현실을 왜곡하거나 외면하는 삶이 도의 세계라고 외치는 자들, 그리고 그것을 유지 하려고 하는 자들, 모두가 바로 그 당시의 가짜 도학자들이었다. 이것은 가장 깊이 병든 자들이 건강한 삶이 뭔지도 모른 채 구원해 주겠다며 외치는 꼴이었다.


하지만 이탁오는 부처님이나 공자 같은 성인들에게서 다른 점을 발견했다. 그들은 죽음이 두려워서 생사를 궁구했고 삶이 없음을 깨달은 뒤에야 그 일을 그만두었다. 공자가 도를 공부한 것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는 것. 그리하여 그는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는 죽어도 좋다고 할 정도였다. 좋다는 말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는 뜻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두 번 죽을 일은 없기 때문이란다. 참 재미있다. 이렇게 쉽다니! 성인들은 이렇게 단순하게 말했는데 도학자들은 끊임없이 해석을 덧붙이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것이 본질인 것처럼 떠벌리고 다녔다.

                                 

그런데 정말 삶이 없다는 뜻은 무슨 뜻인가? 삶이 있어야지만 죽음도 있을 것 아닌가? 죽음이 있으므로 두려움이 생겨난 것이고. 그런데 삶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성인들은 어떠한 피안의 세계를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일까? 이탁오는 우리에게 이런 생각을 유도한다. ‘원래 삶과 죽음은 없다.(原無生死)’(같은 책, 117쪽) ‘원래 없다’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생사는 원래는 없는 것인데 사람이 만들어 냈다는 뜻이 아닌가. 결국 생사의 문제에 매달리는 것도 ‘나’이고 삶과 죽음이 있다고 믿는 것도, 없다고 믿는 것도 ‘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계속 ‘이 오묘한 뜻에 간절히 매달’려 있으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탁오가 중요시 했던 것은 상정된 어떠한 세계가 있어서 그것을 파헤치라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과정, 인식을 다르게 하는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니, 지금까지 내게 일어났던 모든 왜곡은 나의 인식의 방법이 문제였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렇다. 나는 다르게 인식하는 방법을 깨쳐야 했던 것이다.


자, 그러면 다시 이탁오의 자결 순간으로 되돌아가 보자. 76세의 이탁오. ‘이단 서적 제거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그는 죽음을 준비하며 유언을 써 놓았다. 병세는 심해졌고 죽음이 점점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죽음으로써 나그네 생활이 끝날 것이었고, 그에게 죽음은 오히려 경사스러운 일이었다. 저작활동도 「구정역인」을 마지막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 당시 당국자에게 ‘이단 서적 제거 사건’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으며 대충 사건을 마무리 지어서 고향으로 돌려보낼 심산이었다.(『분서1』, 66쪽) 이탁오는 ‘옥중에서도 유유자적 시를 짓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같은 책, 66쪽) 그러다가 머리를 깎는 칼로 목을 그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 남긴 말은 “칠십 늙은이가 무에 바라는 게 있겠느냐?”였다.


                                   

                                      이탁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20여 년 생사의 문제를 궁구했던 그는 ‘생사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 그에게서 자신에 대한 연민이라든가 타인에 대한 원한의 감정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그는 마지막까지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았고 오롯이 자신의 힘을 자신만을 위해서 썼다. 그 힘은 담담히 죽음의 행위로 이어졌다. 그의 이러한 행위는 의문을 가질 만한 미제 사건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이탁오의 죽음에서 허무감을 느꼈던 것도 사건을 보는 내 인식 방법이 문제였다.  이탁오가 비판했던 도학자들의 인식 방법과 별반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이 세계에 대한 모든 인식이 나로부터 왜곡된다는 사실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허무감을 떨쳐 내며


이번에 이상하게도 이탁오의 죽음에 꽂혔다. 그런데 발제부터 시작된 그의 죽음의 탐구 과정은 상당히 힘들었다. 괴로운 과정이었다. 어느 순간 자살 충동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이탁오의 죽음관을 따라가며 과거의 감정이 다시 떠올랐던 것이다. 나 자신, 자살 충동을 느꼈던 이유는 내 삶을 부정했기 때문이었고, 그러면서 누군가를 원망하고 원망하며, 끊임없는 피해 의식과 자책감과 자기연민 속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감정은 과거에 가졌던 감정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문득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삶의 고통을 구원 받고자 하는 행위는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괴로운 과정 속에서도 얻어지는 것은 있는 법. 이번 공부에서는 포기하지 않는 인식의 과정과 제대로 인식을 하기 위한 다른 방법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계속 가는 것이 나를 솔직하게 볼 수 있고 정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길임도 알게 되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이 공부가 두 걸음 앞으로 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두 걸음 가까이 퇴보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탁오에게서 느꼈던 허무감이 어떻게 나를 퇴보하게 했는지도 파악했다. 이렇게 답을 찾아가고 있다. 이것이 내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과정이다.


가장 용감하고 고통에 가장 익숙한 동물인 인간은 그 자체로 고통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 고통의 의미나 목적이 제시된다면 인간은 고통을 바라고 고통 자체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지금까지 인류에게 광범위하게 내려진 저주는 고통이 아니라 고통의 무의미함이었다.-『도덕의 계보학』,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송광 옮김, 연암서가, 229쪽

            


                                 삶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니체가 말하듯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것, 어쩌면 이것이 고통을 찾아다니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 인간들은 그렇게 살아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나는 다르게 질문해 보았다. 허무감을 발견하는 순간, 이 감정을 고통이라고 규정하기보다는 “이 감정은 뭐지?”라고 질문했다. 자기연민의 감정으로 빠지기 보다는 이 감정을 해부하기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삶을 무조건적으로 환멸하기를 거부하고 차라리 메스 들기를 자처했다. 이 과정 속에서 허무감이 떨쳐졌다. 지금 에세이를 쓰는 이 순간에 말이다. 이것은 나에게 하나의 장애물이었고, 다행히 그것을 넘었다. 그러니 계속 걸어갈 것이다.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 즐거웠다. 작은 깨달음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간은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었다. 어떠한 대가도 필요 없는 선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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