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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길과 삶의 길은 하나다 - <격치여론>
 글쓴이 : 류시성 | 작성일 : 13-05-07 23:51
조회 : 6,006  
유의동도(儒醫同道)의 길, 『격치여론』
 
 
류시성(감이당 대중지성 3학년)
 
 
자신의 사상을 단 한권의 책으로 압축할 수 있는 힘이란 어디에서 오는가. 몰려드는 환자들 틈에서도 책을 쓰는 열정이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모르긴 몰라도 『격치여론(格致餘論)』은 그 힘과 열정으로 탄생한 책이다. 책의 저자는 원(元)나라 때 의사 주단계(朱丹溪). 그는 본디 유학자의 길을 걷는 선비였으나 나이 마흔에 유학을 버리고 의학에 투신했다. 이유는 단 하나. 유학의 도(道)와 의학의 도(道)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에 있었다. “선비가 만약 어떤 기예에 정통하여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확대하여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이런 인애심성(仁愛心性)이 있다면 비록 살아 있을 때 벼슬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벼슬한 것과 다름없다.”(「단계옹전」) 그의 말마따나 그에게 의학이란 생명을 사랑하는 인애(仁愛)의 심성(心性)이자 그 실천이었다. 인생의 말년, 그는 그 마음과 실천을 27년간의 임상경험으로부터 얻은 의학지식과 함께 『격치여론(格致餘論)』에 담고자 했다. 그것은 한편으론 인애의 의사가 되라는 당부였고 한편으론 스스로 유학과 의학의 길(道)을 찾는 실험이자 실천의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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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머거리와 소경이 된 의사들의 시대
 
주단계(1281-1358), 그의 시대는 혼란했다. 그가 살던 원나라는 전세계를 호령하는 대제국을 건설했지만 칭기즈칸이 죽자 제국의 황제들은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었다. 권력의 암투 또한 끊이질 않아 1308년부터 1333년까지, 30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8명의 황제가 즉위하고 암살당하는 피의 살육전이 펼쳐졌다. 정치적 혼란은 곧 부패와 그에 대항하는 폭동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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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0년, 원제국은 중국의 운남성과 미얀마에 군대를 파견한다. 그 지역의 폭동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자 폭동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취지였다. 제국의 군대는 단숨에 그 지역들을 평정한다. 문제는 이 지역으로 원정을 떠난 군대와 함께 들어온 뜻밖의 전염병이었다. 그것은 흑사병, 페스트였다. 미얀마 지역의 풍토병이었던 페스트는 군대를 따라 북경으로 옮겨왔고 3년 뒤인 1333년, 당시 북경인구의 2/3가 페스트로 목숨을 잃게 된다. 페스트는 곧 제국의 군대를 따라 유럽으로 전파됐다. 중세 유럽인구의 3/4를 죽게 만든 대재앙이 여기서 시작되고 있었다.

페스트의 확산은 제국의 경제를 뿌리째 흔들어놓았다. 원은 도자기와 차 등을 유럽에 수출하면서 부를 축적하는 경제구조였다. 그 주요소비원이었던 유럽이 초토화되자 제국의 경제사정 또한 급속도로 악화됐다. 거기다 늘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던 황제들은 티베트 불교에 의지해 내세의 구원을 도모했다. 대규모 종교행사와 커다란 불탑공사가 일어나고 막대한 자금이 소비됐다. 설상가상으로 이 시기, 엄청난 규모의 자연재해가 제국을 덮친다. 1344년 황하가 세 차례 범람하더니 황하 주변이 거의 5년 동안 물에 잠기는 상황이 연출됐다. 강남엔 지독한 가뭄이 들었다. 양자강 일대에 몰아닥친 가뭄은 사방 1000여리의 물길을 모두 말리면서 강남땅을 불의 지옥으로 만들었다.
 
병은 시대를 타고 오는 것. 이러한 상황은 수많은 환자들을 양산해냈다. 의사들은 밀려드는 환자들을 고치기 위해 고서(古書)의 방제(方劑)들을 외우고 곧바로 임상에 돌입해야 했다. 단계 또한 환자들 속에 파묻혀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방에서 병으로 맞이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었고, 선생은 즉시 가지 않는 경우가 없었으며 비록 비와 눈이 길에 가득 차도 멈추지 않았다.”(「고단계선생주공석표사」) 그런데 단계는 대부분의 의사들이 잘못된 진단과 처방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급기야 그는 의사들을 “귀머거리와 소경”이라고 불렀다. 대체 그는 왜 그들을 그렇게 비판한 것일까.
 
이는 당시 의사들의 의료실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당시 의사들이 신주단지 모시듯 했던 것은 『화제국방』이라는 책이었다. 그것은 송나라 때 만들어진 의서로 민간의 이름난 처방전들을 모아 만든 책이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쌍화탕, 십전대보탕과 같은 처방들이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책은 글자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증상에 따라 약을 지어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증상과 처방이 심플하게 연결된 이 책은 실전에서 의사들에게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그만큼 편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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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병 또한 변했다는 것에 있었다. 의사들은 그것을 모른 채 『화제국방』에 나와 있는 대로 약을 처방하고 있었다. 한 시대의 모습을 볼 수도, 한 시대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게 된 의사들의 시대. 병과 환자들이 소외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약의 오남용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의사들은 약이 잘 듣지 않는 환자들에겐 약을 더 많이 먹을 것(多服), 늘 먹을 것(常服), 오래 먹을 것(久服)을 주문했다. 병의 원인을 탐구하거나 『화제국방』 이외의 책을 보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지금 사람들은 병을 일으키는 원인을 알지 못하고 입방(立方)의 뜻을 찾지 않으며 급작스레 증상에 의거하여 처방을 검사하고 끊임없이 시험하여 응하지 않는 책은 모두 폐기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국방』의 가르침이 오랫동안 시행되었기 때문에 『소문』의 학문을 말하지 않는다. -「두창진씨방론」
 
그들은 사람을 죽이는 의사이지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아니다. 『격치여론』은 이 의사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단계는 책의 서문에서 자신이 왜 이 책의 제목을 『격치여론』으로 지었는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옛사람들은 의학을 우리 유학자들의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일이라고 인정하였기 때문에 이 편의 이름을 『격치여론』이라고 달았다.” 핵심은 의학이 격물치지의 일이라는 것. 격물치지란 주자학에서 강조하는 공부의 방법이었다. 사물에서 이치를 탐구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앎을 확장해나가는 것. 여기서 물(物)이란 단순히 사물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 책, 거의 모든 일상적인 일을 포괄하는 것이었다.
 
책을 읽을 때는 곧 문자에서 사물의 이치를 궁극적으로 연구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는 바로 말 가운데서 그 이치를 궁극적으로 연구해야 하고, 사물을 접할 때는 곧 사물을 접하는 데서 그 이치를 궁극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주자어류』
 
단계는 이러한 태도가 당시 의사들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전인(前人)의 책을 읽으면 그 입언의 뜻을 알아야 한다. 만약 책을 읽어도 그 뜻을 모른다면 응용에 적합한 것을 찾아도 얻을 수 없다.” “옛 처방으로 지금의 병을 다르시는 것은 바로 낡은 집을 무너뜨리고 새 집을 짓는 것과 같으며 그 재목이 같지 않으니 다시 목수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 어찌 쓸 수 있단 말인가?” 시대에 맞는 처방과 진단을 하려면 스스로 병의 이치를 탐구하고 그 병에 맞는 처방을 구하는 앎을 구성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귀머거리나 소경이 아닌 인애(仁愛)를 실천하는 의사가 되는 길이라는 것. 『격치여론』은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 책이자 귀머거리와 소경이 되지 않기 위해 단계 스스로에게 그 책무를 부과하는 책이었다. 앎으로 삶을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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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균형이 삶이다
 
『격치여론』은 서문과 2개의 잠언, 그리고 41편의 의론(醫論)들로 구성된 책이다. 의사들에게 격치의 공부를 당부하고 있는 서문에 이어 등장하는 2개의 잠언은 <음식잠>과 <색욕잠>이다. 식욕과 성욕의 절제를 강조하는 두 잠언에 단계의 집필의도가 담겨 있다.
 
저 우매한 사람을 보면 구미(口味)에 따라 오미(五味)를 지나치게 섭취하니 병이 벌떼처럼 일어난다. 병이 생기는 것은 그 기미가 지극히 미소하지만 군침이 돌아 이끄는 대로 먹다보면 문득 생각하지도 못한 사이에 병이 생기게 된다. -「음식잠」
저 우매한 자들을 보니 감정에 따라 욕정을 부려서 오직 만족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조독(燥毒)이 있는 최음제를 쓰고 있다. -「색욕잠」
 
음식과 성에 대한 과욕(過慾). 그것이 모든 병의 원인이다. 그렇다면 음식을 끊고 성을 멀리하는 것인가. 아니다. 식욕과 성욕은 생명을 보존하고 생명을 낳는 원초적 욕망에 해당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늘 넘치기 쉽다는 것에 있다. 경계의 대상은 욕망이 아니라 욕망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나 자신에게 있다. 단계는 『격치여론』에서 욕망의 문제와 그것의 주체인 우리 자신을 문제 삼고자 했다.
 
이어 등장하는 41편의 의론들은 「양유여음부족론」을 시작으로 금원시대의 유명한 의사 장종정의 토한하(吐汗下) 삼법을 비평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사이엔 짤막한 의론들이 파편적으로 등장한다. 그 내용들 또한 하나의 체계로 꿰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노인을 봉양하는 법, 아이를 기르는 법, 큰 병에 금기를 지키지 않을 때 초래되는 결과, 유산-난산-수태 등 생명탄생의 문제를 다루는 의론들. 여기에 당시 유행하던 약에 대한 논평부터 『황제내경』의 주석을 단 왕빙(王冰)의 잘못을 지적하는 의론까지 포함되어 있다. 마치 신문칼럼처럼 쓴 이 글들은 일종의 의학비평들이었다. 당대 의사들이 잘못 처방한 것들부터 선배의사들의 잘못을 꼼꼼히 지적하는 전략적 글쓰기. 이것은 동양의학사에서 최초로 이루어진 의학비평이었다. 단계는 이 책을 통해 의론들을 검증하고 경합하고 새로운 의론들을 창안되는 장이 열리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 장에 그가 내놓은 의론은 「양유여음부족론」이었다.
 
「양유여음부족론」은 양기는 늘 남아돌고 음기는 늘 모자란다는 주장을 담은 의론(醫論)이다. 동양의학에서는 생명이 양과 음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단계는 이 음양의 결합, 생명의 조건을 불균형으로 인식했다.
 
사람은 하늘과 땅의 기를 받아서 사는데 하늘의 양기는 기(氣)이고 땅의 음기는 혈(血)이므로 기는 항상 남고 혈은 항상 부족하다. 어째서 이렇게 말하는가? 하늘과 땅은 만물의 부모인데 하늘은 크며 양이고 땅 밖에서 운행한다. 땅은 하늘 가운데에 있으며 음이고 하늘의 대기가 이것을 들고 있다. -「양유여음부족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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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의 구조 자체가 음보다 양이 많은 구조라는 것이 그 핵심이다. 천지의 기운을 받아서 태어나는 사람 또한 이러한 구조라는 것이 단계의 기본구도. 이것은 전통적으로 음양의 불균형을 질병상태로 규정하는 태도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주장이었다. 그는 왜 전통적인 질병의 관점을 깨면서까지 음양의 불균형을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 그가 찾은 유학과 의학의 첫 번째 접점이 있다. 
 
주자학으로 대표되는 신유학은 모든 사람들이 기질적으로 치우쳐 있음을 전제한다. 성인(聖人)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의 성인은 태어날 때부터 치우침이 없는 상태로 태어나는 존재였지만 신유학에서 성인은 치우침 위에서 중(中)의 상태를 향해 가는 공부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존재였다. 성인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이전의 유학과는 달리 개인의 철저한 수양(修養)을 강조하게 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치우침으로부터 스스로의 중심을 세울 것. 요컨대 치우침은 존재의 조건이며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부단한 과정에서 성인의 공부가 완성된다는 것이 신유학의 구도였다.
 
「양유여음부족론」은 이 구도를 그대로 받아들인 의론이었다. 몸은 원래 불균형하고 그것이 생의 조건이라는 것. 문제는 양이 남고 음이 부족하기에 늘 동(動)하기는 쉽지만 정(靜)하기는 어렵다는 점에 있다. 양은 밝고 활동적이고 무형의 정신활동을 의미한다. 반면 음은 어둡고 정적이고 유형의 물질을 의미한다. 이 음양이 서로 불균형한 상태이기에 사람은 늘 양의 기운, 즉 동(動)을 중심으로 살아가게 된다. 단계는 이 동(動)의 문제를 욕망으로 파악했다. 양, 즉 동(動)이 기본이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욕망하는 존재, 그런 몸으로 태어난 존재라는 것이다. 또한 이 욕망이 생명의 활발한 활동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기도 하다는 것. 그렇기에 치우침은 생명력이자 곧 생명의 운동성을 담보하는 논리적 지반이었던 것. 이 구도에서 욕망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용법의 문제로 등장한다.
 
단계는 이 욕망의 움직임이 도를 넘어서면 그것은 도리어 생명의 활동을 방해하는 질병상태로 전환된다고 주장한다. 그 논의를 펴기 위해서 그가 만든 것은 「상화론」이었다.
 
태극(太極)이 동(動)하여 양을 낳고 정(靜)하여 음을 낳으며, 양이 동하여 변하고 음이 정하고 합하여 水·火·木·金·土를 낳으며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지니고 있는데, 오직 화는 둘이 있어 군화(君火)-인화(人火)와 상화(相火)-천화(天火)의 두 종류로 나뉜다.-「상화론」 
 
음양이 낳는 다섯 가지의 기운 오행(五行). 오행은 토(土)를 중심으로 목화(木火)의 양기와 금수(金水)의 음기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여기에 화(火)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이 단계의 생각이었다. 이 남는 화(火)가 바로 상화(相火)다. 상화는 생명의 끊임없는 활동을 주관한다. “하늘은 생물을 주관하므로 항상 동하고 사람도 생(生)이 있으므로 또한 항상 동하니, 항상 동한다는 것은 다 상화의 작용이다.” 그런데 상화는 반대적인 특징 또한 갖고 있다. “상화는 쉽게 일어나고 (중략) 망동한다. 화가 망동하면 변화가 막측하여 아무 때나 진음을 졸이고, 음이 허하면 병이 생기고 음이 끊어지면 죽는다.” 생명의 원동력이기도 하면서 병을 발생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상화에 있다는 것. 이것은 욕망을 생명 혹은 질병과 연결시키는 획기적인 기획이었다. 기존의 의학들은 질병이 외부의 사기(邪氣)나 내부의 칠정(七情)에 의해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계는 사기나 칠정보다 상화, 즉 욕망을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여기에 단계가 찾은 유학과 의학의 두 번째 접점이 있었다.
 
단계는 생명력의 근간이자 병을 만드는 주요원인인 상화를 주자학의 마음(心)의 문제와 연결시킨다. “주자(朱子)가 이르기를, 반드시 도심(道心)으로 하여금 늘 일신(一身)의 주(主)가 되게 하고 인심(人心)은 항상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하였다.” 주자 이후 유학자들에게 심(心)은 도심(道心)과 인심(人心)의 문제로 받아들여졌다. 도심이란 천리(天理), 즉 자연의 이치 혹은 도리(道理)에 해당하고 인심은 먹고 마시고 자는 등의 신체적 욕구와 관련되어 있다. 주자학에서 인심과 도심은 그 속성이 확연히 다르다. ‘도심은 은미(隱微)하고 인심은 위태(危殆)롭다.’ 자연의 이치 또는 도리는 잘 보이지 않는 반면 인심은 외물에 의해 쉽게 동요하고 그 한계를 벗어나기 쉽다는 것. 마음 안에는 이 도심과 인심이 혼재되어 있다. 주자학은 근본적으로 도심을 따르면서 인심이 정도(正道)를 벗어나 쾌락을 추구하는 인욕(人慾)을 제어하기 위한 훈련프로그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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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는 도심의 제어를 받으면서 인심이 인욕으로 전환되지 않게 하는 주자학의 수양(修養)을 병의 근본적인 치법으로 삼고자 했다.
 
(傳)에 이르기를, 길흉회린(吉凶悔吝)은 동(動)에서 생기고 사람의 질병도 동에서 생기며 그 동이 극에 달하면 병들어 죽는다. 사람이 태어나면 심(心)은 화(火)이고 위에 있으며 신(腎)은 수(水)이고 아래에 있는데, 수는 올라갈 수 있고 화는 내려갈 수 있으며 오르고 내려 끝이 없기에 생기가 존재한다. 수의 형체는 정(靜)이고 화의 형체는 동(動)으로서, 동하는 것은 쉬우나 정하기는 어려우므로 성인은 이에 대해 말하기를 잊은 적이 없다. 유학자의 가르침에 이르기를, 정심(正心)·수심(修心)·양심(養心)은 모두 이 화의 망동을 막는 것이라고 하였다. 의사의 가르침에 세상 물욕을 버리고 정신을 안으로 지키라는 것도 이 화의 망동을 막기 위한 것이다. -「방중보익론」
 
결국 「상화론」은 스스로의 마음을 훈련하는 것이 상화를 병적인 방식이 아니라 생명의 활동적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의론이었다. 마음이 감각만을 따라갈 때 상화가 망동하고 병을 유발한다. 그러나 상화망동의 해법 또한 스스로의 마음에 있다. 「상화론」을 통해 단계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 그것은 감각적이고 쾌락적인 세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에 있었다. 그것이 생명이 질병상태가 아닌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 스스로의 욕망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한 가운데에서 자유로워지는 기술을 터득하는 것이 치료의 근본이라는 것. 그렇기에 의사가 곧 욕망의 주체인 나라는 것. 병의 주체 또한 나이면서 치료의 주체 또한 나인 의학. 단계가 『격치여론』을 통해 열고자 했던 의학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 또한 스스로의 마음(心)에 있었다. “그러므로 성현은 오직 사람에게 수심(收心)·양심(養心)할 것만 가르쳤는데 그 뜻이 깊다.” 마음을 거두고 마음을 기르라. 인애(仁愛)의 의사는 나여야 한다. 스스로의 삶을 아끼고 사랑하라.
 
단계는 『격치여론』에서 욕망의 길을 보여주고자 했다. 욕망, 그 끊임없이 샘솟는 생명의 활동과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가. 이 물음에 단계는 수치(修治)라고 대답했다. 어느 약보다 강력한 것, 그것은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아는 기술에 있다.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아는 자가 의사이며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다. 단계는 자신을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약을 주면서 꼭 이렇게 덧붙였다. 담백한 음식을 먹을 것, 성욕에 노예가 되지 말 것, 스스로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할 것. 유학과 의학의 길, 그것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그 길(道)의 주인이 우리들 자신이라는 것 때문은 아니었을까. 인애도 실천도 모두 내 몫이다. 거기서 몸의 길과 삶의 길은 하나다. 『격치여론』, 그것은 단계 스스로가 자신에게 부과한 길찾기이자 그것에 대한 스스로의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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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시연   2013-05-12 21:06:30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확대하여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인애심성이라고 하는거구나. 주단계가 의사로서의 길을 간 것은 흘러넘치는 자기 사랑덕분이었던 듯. 환자들을 돌보면서 그 스스로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터득했겠지? 주단계-상화론 달달 외워서 시험보고는 훅 잊어버렸는데 주단계 멋진 인물이시군!!^^ 근데 눈가리고 귀막고 있는 저 하루방 사진, 어디서 저렇게 딱 맞는 사진을 구했어? 사진 덕분에 더 이해가 팍팍됩니다.^^
poong   2013-05-09 22:02:12
 
편집할 때 시간 많이 걸렸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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