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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냐! 마음부터 치료하라! 이제마의 <격치고>
 글쓴이 : 장금 | 작성일 : 13-05-21 20:13
조회 : 8,244  
‘아프냐? 마음부터 치료하라!’
이제마의 『격치고』
박장금(감이당 대중지성 3학년)
 
 
격물치지.jpg
천사와 악마의 양면을 가진 인간.
이제마는 그런 인간을 격물치지했다.
 
『격치고(格致藁)는 제목 그대로 ‘격치’하는 책이다. 격치란 천지만물을 잘 관찰해서 세상의 이치를 꿰뚫는 성리학적 공부방법인 ‘격물치지(格物致知)’에서 비롯된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제마는 인간을 격물치지 했다. 즉,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한 것이다. 그의 관찰기에는 극과 극을 오가는 인간이 등장한다. 어떤 때는 부처와 같은 자비심이 샘솟고 어떤 때는 송곳 하나 꽂을 자리 없는 이기심이 솟구친다. 그 때마다 우리는 좋을 쪽을 자신으로 설정하고 나쁜 마음을 억압하기에 바쁘다. 이제마는 자책은 도움이 되지 않으니 일단 둘 다 너의 마음임을 인정하라고 한다. 천국과 지옥, 그리고 성인과 악인의 마음을 오갈 수 있음이 인간의 마음이고 너와 나의 마음이라는 것.
 
스스로 경계(警戒)한다는 것은 자신의 성실함을 돌아보는 것인데, 스스로 속이는 바를 면치 못하여 여러 번 회복하고 여러 번 잃어버려서 스스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무가 이제 57세나 되었지만 아직은 속이는 짓을 잊지 못했다. 그런고로 더욱더 속임을 스스로 경계하고자 하나 그것을 잊기가 어렵다.
 
─ 격치고, 반성잠
 
이제마의 커밍아웃(?)이다. 57세가 돼서도 여전히 욕망으로 들끓는 불구덩이가 자신 안에 있다는 것. 이제마가 노년에 자신의 욕망을 까발린 이유가 무엇일까. 보통 사람 같으면 학문도 높고 벼슬도 얻었기에 군자를 자처하며 대충 살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는 나이나 지식이나 능력과 관계없이 자신을 속이는 욕망은 끝이 없다고 말한다. 나이가 든다고 욕망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으니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것. 그는 주변 사람들을 거울삼아 출렁거리는 자신의 마음을 다진다. 어떤 번뇌에도 자유로운 상태로 곧바로 모드 전환하기. 그는 번뇌라는 병을 고쳐서 자유롭기 위해 『격치고』를 썼고, 쓰는 행위가 곧 삶의 실천이었다. 
 
내 안에 선악 있다
 
이제마.jpg
이제마(李濟馬, 1837~1900), 조선말기의 무사로 호는 동무(東武)다. 동무란 동방을 지키는 무사라는 뜻이다. 리는 이제마하면 사상의학(四象醫學)을 떠올리며 명의로 기억한다. 그의 저술도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이 알려져 있고『격치고』는 한의사들에게 조명받지 못했다. 격치고에는 직접적으로 의학적 내용이 담겨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격치고가 13년 만에 완성되고, 그 후에 바로 이어 동의수세보원이 1년 만에 쓰인 것은 동무의 무게 중심이 격치고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상의학으로 유명한 동무이기에 유학적 저술인 격치고는 부각될 기회가 별로 없었고, 한의사들도 임상이 빠진 격치고에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임상이 없다고 의학과 무관하지 않으며 임상이 있다고 의학만을 다루는 것도 아니다. 무사인 그가 왜 의학에 정통했는지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격치고를 읽다 보면 그가 인간 자체에 관심이 지대했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그가 사상의학을 창안한 것도 인간 탐구를 밀어붙인 것으로 의학은 출발점이 아니라 고심의 결과였다.
 
동무의 인간 탐구는 성리학에서 출발한다. 인간 또한 자연으로 천리(天理)를 따르는 존재로 보았다. 천리란 만물에 내재한 법칙으로, 인간 또한 천리인 본성을 가진다는 전제가 성리학적 세계관이다. 하지만 이 본성은 그 자체로 보존되지 않고 사욕여부에 따라 변질되므로 그 성(誠)을 확충하고 보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이런 세계관은 조선의 선비라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다. 하지만 성리학이 추구한 성은 본연의 뜻을 잃고 명분만 남았다. 당시는 조선 말기로 조선왕조 500년의 해가 지고 있을 뿐 아니라 서구 열강이 가세하여 극도의 혼란 상태였다. 백성은 굶주리고 역병은 돌았으며 탐관오리들의 기승은 말할 나위가 없었고 도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동무는 이런 시대를 한탄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정면 대결의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기존 성리학자들은 성(誠)을 보존하기 위해 독서를 하거나 신체 단련을 위한 수행을 했지만 이제마는 도가 떨어진 상태에서 성의 보존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구체적인 실천의 길이 절실했던 것이다. 당시 유학자에게 유불도 삼교 회통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유불도 모두 자연의 이치를 궁구함으로써 각자의 길을 완성한 까닭이다. 한의학의 원천인 도가는 양생술로 정기신을 닦고 나를 넘어 천지교감을 목표로 한다. 이것은 유학의 천리와 상통하는 바가 있다. 의학에 관심있는 유학자들은 병을 고칠 수 있었고 유학자 겸 의사인 유의가 되었다. 하지만 동무는 유의로 그치지 않고 의학으로 성리학을 새롭게 사유한다. 의학이야말로 몸을 변화시켜 병을 고치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지혜가 아니던가. 치료를 통해 병을 고치듯이 삶을 치료하는 학문이 필요했던 것이다. 동무는 의학과 접속하지만 성리학적 지반을 떠나지는 않았다. 인간을 네 가지로 구분한 것도 맹자의 사단(四端)에서 출발한다.
 
옛 성인들이 말씀하실 때마다 인의예지를 말씀하신 것은 그것이야말로 진실로 일신의 귀중한 보배로써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후세사람들은 사심으로 이를 헤하려 인의예지는 다른 사람에게는 유리할지 몰라도 나에게는 이롭지 않다고 여겨 이를 배반하니 오호라 성인이 어찌 너희를 속이겠는가...맹자는 사람이 지닌 사단은 인체가 사지를 지니고 있음과 같은 것이며 사단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를 행하지 않는 자를 일컬어 스스로 해치는 자라고 했다. 정령 그렇지 않겠는가.
 
 ─ 격치고, 유략편

자해는 누가 하는가. 사지를 가지고서도 인의예지를 행하지 않는 자들이다. 왜 멀쩡한 사지가 있는데 사지를 쓰지 않는가. 사단이라는 보배를 가지고서도 왜 그 보배를 배반하는가. 사지가 바로 사단이다. 그러니 두 팔과 두 다리가 있는 자는 사심을 제거하고 사지의 본성인 인의예지를 발현하라! 이것이 이제마가 맹자에게 배운 삶의 원칙이었다.
 
눈이 없으면 보지 못하고 귀가 없으면 듣지 못한다. 눈과 귀가 황폐해져 소경이 되고 귀머거리가 된다면 어찌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이루겠는가. 지혜가 없다면 누구도 나를 돕지 않으니 우환에 시달리고, 어질지 못하면 저 하나 설 곳이 없으니 공포와 두려움에 시달리고, 예가 없으면 매사에 법도를 어기게 되니 공연히 성질을 내고, 의가 없으면 투기나 게으름에 빠져 쾌락에 젖는다. 이것이 사람으로 할 짓이겠는가. 가히 슬플 따름이다.
 
─ 격치고, 유략편
 
사람은 사지를 가진 한 성인이 될 수 있지만 눈앞의 유리함에 경도되어 성인되기를 쉽게 포기한다. 눈이 있지만 볼 수 없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지혜, 예, 의가 있지만 눈앞의 이익에 가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경지를 너무 쉽게 포기한다. 동무는 안타깝고 슬플 뿐이다. 이런 마음가짐이 지속되면 실제로 눈과 귀의 기능이 현격히 저하된다. 이 또한 대상을 오랫동안 투시해서 얻은 결과로 후에 동의수세보원으로 정리되는 바탕이 된다. 사실 눈을 눈으로, 귀를 귀로 온전히 들을 수 있는 자는 그 자체가 복이며, 눈과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는 자는 무지함 그 자체가 벌이니 별도의 벌이 필요치는 않다.
 
옆길로세다.jpg
사람은 사지를 가진 한 성인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눈 앞의 이익에 포기하거나 옆 길을 두리번 거린다.
 
하지만 이제마는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비록 나쁜 사람이라도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변함없는 마음이 있고 비록 좋은 사람이라도 탐나비박(貪鄙懶薄)의 비루한 욕심이 있다.” 선악은 고정된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얼마든지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 설령 악의 축이라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해치는 존재로 드러날 뿐이다. 선인도 마찬가지로 언제 비루한 욕심이 생길지 모르니 안심할 수도 없다. 인간이란 관계 속에서 늘 선악의 줄타기를 하는 존재다. 결국 고정된 것이 없다면 인간은 자신의 능력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제마는 관계 변화를 위한 지혜가 필요했고 그것을 위해 격치고 집필이 시작된다. 
 
마음의 의사가 되는 길
 
이제마는 우선 삶의 원칙을 세우는 것이 급선무였다. 좋은 관계에 대한 기준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유학 경전을 정리하여 ‘유략편(儒略篇)을 완성한다. 이제 좋은 삶을 위한 원칙이 세워졌다. 하지만 원칙을 안다고 악인이 성인이 바로 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일단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파악해야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
 
속일 마음이 있어 속이면 속이는 짓이 되고 말지만 속이려는 마음이 문득 발할 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반성한다면 학문이 된다. 학문의 도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방심을 구제하는 것뿐이다. 범인들의 마음 중에, 혹은 주색에 혹은 재물과 권력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에 속이게 된다. 그러나 그중 가장 집착하고 있는 욕심을 극복한즉 그 외의 잡다한 욕심은 극복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이 극복된다.
 
─ 격치고, 반성잠
 
 속이려는 마음이 올라올 때 그 마음에 끌려가지 않고 통찰할 수 있다면 마음 조절이 가능하다. 또한 마음 조절이 안 되는 주요인은 주색과 재물과 권력으로 그것들이 내 마음의 주인이 되지 않도록 눈을 부릅떠야 한다. ‘반성잠(反誠箴)’에서 사욕으로 가려진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는 작업이 수행된다. 한마디로 주제파악을 위한 장인 것이다. 이제 주제 파악이 되었으니 그 간극을 줄여야 한다. 독행편(獨行篇)은 관계를 바로 잡기 위한 실천편이다. 정리하자면 삶의 원칙을 밝히기 위한 유략편, 삶의 기준점을 회복하기 위한 반성잠, 수양을 위한 지침인 독행편이 격치고의 구성 목차이자 관계 변화를 위한 과정이다.
 
니 주제를 알아래이.jpg

격치고는“객관적인 사물(세계)은 나의 몸에 깃들고, 몸은 나의 마음에 깃들고, 마음은  세상일에 깃든다.”로 시작된다. 물신심사(物身心事)가 키워드인데 내용은 심오하니 덮어두고 형식을 살펴보자. 이렇듯 격치고의 글 대부분이 네 가지로 나누어져 치열하게 전개된다. 왜 그렇게 4란 숫자에 주목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사유가 맹자의‘사단’에서 출발하지만, 그 원천은 주역에 있었다. 
 
...경사와 자집을 모두 통달하였는데 그중에 주역을 더욱 좋아하셔서 그 오의를 연구하시기에 몰두하셨다. 때로는 식사를 폐하고 연구에 심혈을 다하기 때문에 집안사람들이 술을 들어 밥을 입에 떠넣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누년을 연구하는 동안에 마침내 주역의 이치를 통달하여 그 묘체를 발명하게 되었다. 대개 사람이나 물체는 물론 하고 사상의 덕을 구비지 않음이 없었다. 이로써 헤아려 본다면 사람 알기를 신과 같이할 수 있다. 곧 사람의 수명 장단과 부귀빈천과 심술의 선악과 또는 길흄회린을 불로 비춰 보듯이 호리도 틀림없이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조선명인전, 이능화
 
식음을 전폐하고 공부할 정도로 주역은 이제마에게 많은 영감을 제공했다. 잠시 주역의 세계를 엿보고 가자. 역(易)의 글자를 보면 일(日)과 월(月)의 합성자로 일은 변하지 않는 둥근 해의 모습과 월은 변화하는 달로서 초승달 모양을 담고 있다. 지구는 스스로 자전하면서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 이런 천체의 순환은 지상의 변화로 드러난다. 춘분엔 태양이 적도를 기준으로 다가온다. 여름엔 북극을 기준으로 태양이 접근해 온다. 가을이 되면 다시 적도로 돌아가서 지구에 접근하고 겨울엔 남극 쪽으로 접근해 온다. 이런 태양의 위치변화로 말미암아 지구 온도가 달라지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가 생긴다. 이런 변화를 크게 음양 운동으로 보고 지구뿐 아니라 삼라만상은 물론 인간의 신체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주역의 세계관이다.
 
사상체질.jpg
 
이제 이제마의 사상의학을 살펴보자. 인간도 우주 기운을 다르게 부여받음로써 음양에서 한 번 더 분화한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인으로 구분된다. 이런 사상적 구분은 우주변화의 원리에서 연원한 것으로 인간을 좀 더 정확하고 치밀하게 이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좀 더 들어가 보자. 인간은 우주적 존재로 하늘의 기운을 부여받는데 그 기운은 이목구비를 통해 내 몸으로 들어와서 폐비간신을 통해 발현된다. 불교 경전 법성게에서 말하듯 하늘의 보배비가 똑같이 내리지만 그릇에 따라 다르게 받는 것처럼 몸이 다른 만큼 기질도 다를 수밖에 없다. 예컨대 비대신소(脾大腎小)한 소양인은 일을 잘 벌이고 행동과 대처가 빠르지만 일의 마무리를 제대로 못 하는 단점이 있다. 반면 간대폐소(肝大肺小)한 태음인은 일을 쉽게 벌이지는 않지만 맡은 일을 책임있게 완수해낸다. 이처럼 모든 체질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격치고에는 체질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인자, 의자, 예자, 지자를 등장시켜 그들의 마음과 행동을 네 가지로 분석하여 면밀히 살피고 있다. 결국 이런 관찰은 사상의학의 토대가 된다. 인의예지는 각각 태양, 태음, 소양, 소음과 연결되고, 타고난 본성은 인의예지인데 사심이 개입되면 탐라비박이 되어 욕심과 안일과 방종과 사사로움을 추구한다. 이 네 가지는 모든 인간의 마음이지만 사람은 누구나 기질적으로 치우쳤으므로 치우친 점을 잘 통찰하면 자연스럽게 체질을 알 수 있게 된다. 격치고에는 각자 타고난 네 가지 기질의 장단점의 마음씀과 행태가 치밀하게 기록되어 있다.
 
비자가 사리가 분명하고 강직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으나 진심으로 좋아함이 아니다. 조금 지나면 곧 오만한 마음을 드러낸다.
 
박자는 사랑을 베풀고 믿음직한 사람을 공경하는 것 같으나 진심으로 공경함이 아니다. 조금 지나면 업신여기는 마음을 드러낸다.
 
탐자는 충의지사를 동정하는 것 같으나 진심으로 동정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 지나면 적개심을 드러낸다.
 
나자는 현명하고 유능한 자를 사랑하는 것 같으나 이는 진심이 아니다. 조금 지나면 질투심을 드러낸다.
 
─ 격치고, 독행편, p275
 
탐라비박 인간들의 비루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지만 모두가 뜨끔하리라 생각된다. 이제마의 관찰은 날카롭기만 하다. 이런 관찰은 ‘쯧쯧~인간은 어쩔 수 없어’라는 절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인간을 존중함에서 비롯된다. 그는 인간 내부에 들끓는 온갖 마음들과 정직하게 대면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다. 비박탐라를 인의예지의 자질 결여로 보자는 것. 즉 비박탐라는 아픈 환자다. 실제로 이런 마음을 계속 쓸 때 육체의 병이 생기므로 의학서 동의수세보원의 탄생은 예고되어 있었다. 정리하자면 의사가 병을 치료할 수 있듯이 비박탐라는 얼마든지 인의예지가 될 수 있다. 고로 누구나 자신의 의사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 이것이 격치고를 쓴 동무의 마음이었다.
 
타고난 재능은 치우침일 뿐!
 
너의 지혜에 교만하지 말라. 너의 지혜가 얕은지 모른다.
너의 능력에 자긍하지 말라. 너의 능력이 혹 척박한지 모른다.
너의 재목을 앞세우지 말라. 너의 재목이 치졸한지 모른다.
너의 노력을 과장하지 말라. 너의 노력이 궁색한지 모른다...
 
─ 격치고, 천시, p77
 
누구나 지혜, 능력, 재목, 노력 중에 적어도 한 가지는 타고난다. 이것이 우주의 원리다. 인간은 누구나 뛰어난 구석이 하나씩은 있으니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자뻑할 일은 아니다. 예컨대 겨울이 겨울답기 위해서는 여름의 기운을 완벽히 포기해야 한다. 하여 어떤 능력을 타고났음은 다른 능력을 부여받지 못한 것과 같다. 태양인의 경우 노력하지 않아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매우 밝다. 이런 이치 파악을 통해 교우관계는 쉽게 맺지만 세심하게 사람을 챙기는 것은 태음인보다 둔하다. 태음인이 데이터 중심으로 사유하는데 반해 태양인은 중요한 기본 원리 중심으로 문제 핵심을 짚어 나간다. 한마디로 태양인은 직관이 발달했다. 반면에 태음인은 직관을 신뢰하지 않는다. 충분한 경험을 토대로 자신이 납득할 수 있어야 사회적 관계도 맺고 의사결정도 가능하다. 이런 차이는 한쪽이 뛰어나면 다른 방면은 부족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다.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치우친 존재다. 우리가 부여받은 어떤 능력도 치우침의 결과다. 그렇다면 진정한 능력은 무엇인가. 이것이 이제마의 최초의 질문이자 마지막 질문이었다. 지금까지 논의로 보자면 비박탐라에서 인의예지로의 변환능력이 그것인데 그렇다면 인의예지는 무엇인가.
 
대중과 더불어 이롭다면 그 이로움 또한 인이며
대중과 더불어 용기를 낸다면 그 용기 또한 의이며
대중과 더불어 조화를 도모한다면 그 도모 또한 예이며
대중과 더불어 하는 앎이라면 그 앎 또한 지다.
 
─ 격치고, 유략, 천하편
 
사계절이 가능한 것은 기운의 치우침에서 비롯되나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기운은 없다. 독립된 기운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관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밤은 낮을 통해, 시작은 끝이 있으므로 의미가 있다. 각자 독립된 기운은 더불어 존재할 때 빛을 발하며 지구에 생명이 존재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이것이 대중과 더불어 도모할 때 인의예지가 발현되는 이치이다. 하지만 눈앞의 이익은 본성을 가리고 나를 속이는 이기심은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온다. 그때마다 ‘함께’를 사유할 수 있다면 우리의 능력은 그만큼 커질 것이다. 그가 외친 인의예지는 체질의 탁월함이 아니라 함께 할 때 빛나는, 나를 지울 때만이 발현되는 새로운 세계였다.  
 
펭귄.jpg
나를 지우고'함께'를 사유할 때, 우리의 능력은 그만큼 커진다. 
 
마음과 몸은 하나
 
이제 격치고가 동의수세보원으로 정리되는 경로를 살펴볼 차례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의학의 기본인 기(氣)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쉽게 말하면 에너지가 물질을 만들고 또 물질이 다시 에너지가 되는 원리다. 예컨대 수증기가 물방울을 만들고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것을 보면서 선현들은 보이지 않는 기운을 감지했다. 삼라만상은 이런 원리에 입각하여 표현되고 사람 또한 그러하다. 한의학에서 진단할 때도 혈색과 피부, 목소리, 기침, 호흡, 피부, 걸음걸이, 행동 등등을 보는 것은 기의 상황을 체크하여 오장육부의 기능을 판단하기 위함이다. 단서는 모두 드러나 있다. 의사가 할 일은 셜록 홈스(Sherlock Holmes)처럼 탐정이 되는 일.
 
셜록.jpg
우리 몸은 기의 단서다. 이런 한의학적 지반 위에서 이제마는 인간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그 유형별로 기를 다스릴 방도를 찾았던 것이다. 사실 이런 결론이 처음부터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일생을 탐정이 되어 추리한 덕분에(이 방식이 격물치지인 것은 모두 알 것이다.) 보이지 않는 네 개의 기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솔직히 몸이 타자들의 공동체임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뛰어난 세포도 사지도 오장육부도 이웃과 함께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이제마는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기란 네트워크의 다른 이름이고 이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작동될 때만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경지인 인의예지를 경험할 수 있다고. 기의 흐름이 마음이고 그것이 쌓여 몸이 된다. 격치고가 마음을 치료하는 책이라면 동의수세보원은 몸을 고치는 책으로 결국 두 책은 하나였던 것이다. 

격치고는 인간이 고귀해지기 위한 절실함의 기록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13년에 걸친 인간 탐구 보고서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관찰 대상은 타자인 동시에 자신이었다. ‘네 마음대로 살라’는 것은 헛된 망상이다. 우리는 그럴 수가 없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사욕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순간 경계하는 것’일 뿐. 내 안에 올라오는 온갖 찌질한 마음을 인정하고, 그것에 전적으로 끌려가지 않는 것. 또한 ‘함께’를 잊지 않는 것. 이것만이 가장 고귀하고 자유로운 삶으로 가는 길이다. 이런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몸은 이미 수많은 세포의 공생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 하여 공생을 거부하는 이기적인 마음은 결국 몸을 병들게 한다. 그렇다고 병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병이란 내가 비박탐라의 상태를 알려주는 것으로 네비게이션 역할을 담당한다. 인간탐구서 『격치고』가 의학서 『동의수세보원』으로 정리되는 건 마음과 몸은 하나라는 명제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하여 마음을 경계하고자 했던 이제마가 몸을 치료하는 의사로 귀결되는 건 자연스럽다. 몸의 치료란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고, 자유로운 삶이란 끊임없이 올라오는 마음을 전환하는 능력에서 시작됨을 이제마는 격치고를 통해 전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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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이솜   2013-08-12 19:39:44
 
자신의 욕망을 덤덤하니 인정한 이제마 대단하옵니다. 지금 스스로를 경계하지 못하여(욕망이 주체가 잘 안된다며!) 제 자신에 대해 성질내고 있었는데... 찬찬히 공부해봐야겠어요. 한번에 휙 욕망이 바뀔꺼라고 생각한 절 경계해야겠어요ㅎㅎ
세경   2013-05-30 18:53:10
 
당대의 세계관이였던 유학을 토대로 자연과 마음, 의학을 연결해서 다시 나의 삶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네요. 구절구절  다시 읽게되는 부분도 많고.. 어쩌면 평생 접하지 못했을 내용인데 잘 읽고 갑니다^^
오우   2013-05-24 10:09:00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매 순간 경계하는 것'일 뿐. 그러네요^^'한의학 공부를 한 뒤로 환자들에게 설명해 줄 수있는 어휘가 풍부해졌습니다. 소통하는 마음도 더 커진 것 같습니다. 處處에 스승이 있고 배울 것이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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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왜곡된 거울, 천황(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1) 이현진 06-09 7005
189 어디에도 없는, 어디에도 존재하는 ‘삶’을 만나다 -『문화의 패턴』 (3) 만수 05-24 6723
188 내가 사는 피부(The Skin I Live In) (1) 감이당 01-01 6604
187 여민동락의 정치철학자, 맹자 달집 08-20 6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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