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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모순의 진실(나선미)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3-06-16 21:34
조회 : 9,118  
모순의 진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나선미(감이당 대중지성)

일본여인.jpg

2013년 4월 28일 일본의 아베 정부가 ‘주권회복 및 국제사회 복귀의 날’ 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2차 대전 패전 이후 7년 간의 연합국 점령체제로부터 벗어난 지 61년 만에 처음으로 기념식을 한 것이다. 행사가 끝나고 일본 왕 부부가 퇴장하려 하자 ‘천황폐하 만세’까지 외쳤다고 한다. 
 
일본의 침략을 받아 강점기를 거친 우리로서는 이들의 행태가 참 뻔뻔스러워 보인다. 중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본이 전쟁에 패하고 평화헌법을 제정해 자위대만을 보유해 온 것은 침략한 나라들에 대한 반성의 뜻으로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약속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이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고, 이제는 정부까지 나서서 ‘국제사회에 복귀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밖에서는 이렇게 욕을 먹지만 아베의 자민당은 선거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국민들은 아베 정부를 지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은 2차 대전 중 죽자고 싸웠다. 항복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적의 포로가 되느니 적을 안고 자폭하는게 낫다고 믿었다. 가미카제 특공대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 그들이 전쟁에 졌다. 천황이 항복을 고하는 조서를 낭독하자 그들은 패전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전과 태도가 180도로 변했다. 일본에 진주한 전승국을 호의적으로 대하고 그들을 따뜻한 인사와 웃음으로 맞아들였다. 그리고 곧바로 평화헌법을 제정하고 평화국가로 재출발하는데 온 힘을 다했다.
 
그 이후 군사적 노력 대신 경제 건설에 주력한 결과 일본은 이제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또 다른 국면이 온 것. 패전 이후 평화국가로 조용히 힘을 키워온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된 ‘일본의 위치’를 다시 찾을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언론은 아베 정부의 역사인식이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논평하지만 그들의 역사 인식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원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사하지만 미안하다
 
거리를 걷다가 바람에 모자가 날아갔다. 얼른 가서 모자를 주워주면, 일본인은 ‘스미마센(すみません)’ 하면서 고개를 숙인다. ‘스미마센’은 ‘미안할 때, 사과할 때, 감사의 뜻을 나타낼 때, 부탁할 때’ 쓰는 말이다. 사과할 때 쓰는 말과 감사할 때 쓰는 말이 같은 말이라니. 이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끝나다, 완료되다, 해결되다, 결말이 나다’라는 뜻인 스무(すむ/済む)의 부정형, 스미마센(すみません). 무엇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일까. 모자를 받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 사람은 지금 나에게 은혜(온, おん/恩)를 베풀었지만 나는 이 사람을 모른다. 나는 이 사람에게 온(恩)을 제공할 기회를 갖지 못했는데 이런 은혜를 받아 꺼림칙하지만 사죄하면 약간은 마음이 편해진다.’ ‘스미마센’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는 그 사람에게 온(恩)을 입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은 모자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그것이 감사 인사이다. 감사하지만 온(恩)을 받아 마음이 편치 않음을 표현하는 화법이다.

마찬가지로 선물을 받았을 때 ‘아리가토(ありがとう/有難う)’라고 인사하는데, 이 인사말은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내게 선물을 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은혜라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더 정중하게 감사를 나타낼 때 쓰는 ‘가타지케나이(かたじけない/忝い · 辱い)도 있다. 이 말은 ‘모욕’, ‘면목없음’을 의미하며 ‘나는 모욕을 당했다’와 ‘나는 감사한다’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신에게 받은 각별한 은혜에 의해 욕을 당하고 모욕을 받았다.”는 의미로, 온(恩)을 받음으로써 느끼는 부끄러움을 말로 솔직히 고백한다. 이 부끄러움 즉, 하지(はじ/恥, 辱, 수치)는 일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사는 것, 즉 명예를 지키는 것이 인생의 중요한 목표이다.
 
루스 베네딕트.jpg

루스 베네딕트(1887~1948)는『국화와 칼』(1946년)에서 이런 일본인의 특성을 깊이 있게 읽어낸다. 2차 대전 말기, 적국인 일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는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일본인에 대한 인류학적 분석. 일본인들이 이중적이라거나 ‘수치의 문화’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 책에 근거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의 인류학자가 전쟁 중에 적국에 대해 분석한 것’이라는 삐딱한 시선은 버리시라. 그녀는 오히려 새로운 문화에 접하게 된 놀라움을 인간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인류학자로서의 열정과 책임감으로, 그리고 쉽고 아름다운 문체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은혜를 갚기 위한 여정
 
일본인은 ‘온(恩)을 입고 세상에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비슷하다. 조상님 ‘덕분에’ 우리가 태어나고 공동체 안의 모든 것들 ‘덕택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에 와서는 그런 인식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동양에서는 이런 생각이 보편적이었다. 그런데, 베네딕트에 따르면 일본은 좀 다르다. 일본인은 온(恩)에 대한 부담이 매우 크다.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인의 습성 속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인생은 온(恩)을 갚기 위한 여정이다. 그래야 부끄러움이 없는 삶이 된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는 천황이 있다.
 
욱일승천.jpg

근대 일본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 정서를 천황에게 집중시켜 왔다. 2차 대전 당시 그 유명한 가미카제(자살 폭격기)는 황은(皇恩)에 대한 보답이었다. 가미카제 조종사는 결코 이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근대 일본의 통치성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베네딕트는 일본인의 오랜 문화적 특성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본다. 그 문화적 특성은 계층적 위계질서에 대한 신뢰,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인식과 그에 합당한 의무 수행, 그리고 이를 위한 자기 수양이며, 이런 모든 것들은 자녀양육 과정을 통해 습득되고 전수된다.
 
(恩)은 윗사람이 베푸는 것이다. 천황이(고온, 皇恩), 부모가(오야노온, 親の恩), 교사가(시노온, 師の恩). 그뿐만 아니다. 살면서 온갖 사람들과의 접촉에서 온(恩)을 받는다. 온(恩)을 베푸는 그들은 받는 사람에게는 모두 온진(은인, 恩人)이 된다. 온(恩)은 내가 싫다고 안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이 원죄를 갖고 태어난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달까.  그리고 이 온(恩)은 갚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의무이다. 천황에게는 주(충, 忠)를, 부모에게는 고(효, 孝)를,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닌무(임무, 任務)를.

일본인이 자식을 키우는 것은 자식에 대한 의무가 아니다. 부모의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고(孝)에 포함된 것이다. 자신이 받은 사랑과 보호를 자식에게 베풂으로써 조상의 은혜를 갚는다고 믿는다. 1945년 8월 14일 일본이 항복했을 때, 세계는 주(忠)가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천황이 입을 열자 전쟁은 끝났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후의 한 사람까지 항전할 것 같았던 일본군이 천황의 선언에 승복했다. 직전까지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 해드리기 위해 죽도록 싸우던 일본군이 이제 다시 천황을 편안케 해드리기 위해 평화의 길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온의 힘은 개인적인 기호를 짓밟을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자기희생으로 보이겠지만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다. 일본에서 의(義, 義務, 義理)란 조상과 동시대인을 포함하는 거대한 은혜의 망상조직(계층적 위계질서)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혜을 갚아야 하는 그들의 일상적 의사결정과 행동은 이로부터 발생한다.
 
 
혁명이 필요하지 않은 일본인
 
계층적 위계질서(hierarchy)에 대한 일본인의 신뢰는 뿌리가 깊다. 일본에서는 계층제도의 관습이 역사시대를 일관하는 생활원리였다. 7~8세기 중국의 문명을 받아들인 이후 일본 나름의 카스트가 자리 잡았고, 16세기부터 메이지유신까지 250년 간 이어진 도쿠가와 바쿠후 시대에는 쇼군-다이묘-사무라이로 이어지는 지배계급과 농민, 공인, 상인의 서민, 그리고 천민으로 이루어진 계층제도가 확고해졌다. 신성한 존재로서의 천황은 항상 있었지만 실제적 통치자는 쇼군이었다.
 
그들은 카스트별 일상행동을 세밀하게 규제했다. 각자 자신들의 계층에 맞는 임무와 함께 특권이 있었고, 그것이 침해당했을 때는 항의할 수도 있었다. 봉건적인 일본의 계층제도는 근대 일본 속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법적으로는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종말을 맞았으나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고, 정치가들도 계층제도의 많은 부분을 보존하려고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계층구조가 단순화되긴 했으나 정치, 종교, 군대, 산업 모든 분야에서 귀족계급은 존재했다. 그리고 이제 천황이 전면에 드러났다. 쇼군을 몰아낸 그 자리에 여전히 신성한 존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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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위계질서를 일본인들은 왜 받아들인 걸까. 일본인은 각각 정해진 사회적 지위 속에서 생활하도록 제약되었지만, 그것을 지키기만 하면 안전을 보장받았다. 천민이라도 특수한 직업을 독점할 권리를 보장받았다. 각 영역 안에서 ‘알맞은 위치’가 보장되어 있는 한 그들은 ‘안전’했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에서는 카스트적 신분을 변경할 수 있는 ‘교묘한’ 방법이 있었다. 돈을 많이 번 상인이 돈을 빌려주고 갚지 못하는 지주의 땅을 차지해 지주가 될 수도 있었고, 결혼이나 양자를 삼는 관습을 통해 사무라이의 신분을 사들일 수도 있었다. 그들은 프랑스나 영국에서와 같은, 제도를 뒤집어엎기 위한 혁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계층적 위계질서에 대해 일본인이 품고 있는 이러한 관념은 인간 상호관계 뿐 아니라 인간과 국가의 관계에도 적용되었다. 그들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각국이 ‘알맞은 위치’를 갖기 위한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대일본제국 정부, 독일 정부, 이탈리아 정부는 세계만방이 각자 알맞은 위치를 갖는 것이 항구적 평화의 선결 요건임을 인정하므로...” 3국이 동맹을 체결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세계라는 한 집안에서 일본은 ‘형’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수치를 아는 사람
 
질서와 계층제도를 신뢰하는 일본인은 그 구조 내의 알맞은 위치에서 그들의 기무(義務)를 ‘성실히’ 수행함으로써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명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성실’이라는 말이 일본에서 쓰일 때 근본적인 의미는 일본의 도덕률이나 ‘일본정신’에 의해 지도상에 그려진 길을 따르는 열정을 말한다. 사리(私利)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사람, 그래서 지도자의 위치에서 심리적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을 성실한 사람이라고 한다. 곧 자기 수양이 잘 된 사람, ‘수치를 아는 사람’이다.

베네딕트는 일본인의 ‘수치’를 서양의 ‘죄책감’과 대비시켜 설명한다. 죄책감은 자신의 양심 즉, 내면적 자각에 의거해 느끼는 감정인 반면, 수치심은 타인들의 비평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 물론 그녀는 ‘일본인은 죄의 중요성보다는 수치의 중요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정도로 말한 것이다. 수치를 아는 사람은 ‘명예를 중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일본인들의 행동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수치가 중요한 강제력이 되는 것.

일본인의 수치심은 은혜와 모욕에 대해 똑같이 작용한다. 훌륭한 일본인은 모욕도 그가 받은 은혜만큼이나 강하게 느낀다. 은혜는 물론 모욕도 갚아야 한다. 모욕을 받고 갚지 않는 것은 세상이 뒤집어져 있는 것이므로 균형 상태로 되돌려야 하며, 따라서 모욕에 대한 보복은 덕행이지 악덕이 아니다. 우리 눈에는 은혜에 보답하는 것과 모욕에 대해 보복하는 것은 정반대의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런 일본인을 ‘이중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베네딕트는 여기에서 일본인의 이중성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호의에 반응하는 경우와 타인의 경멸과 악의에 반발하는 경우의 행동을 왜 하나의 덕으로 포괄할 수 없다는 것일까?’라며 이것은 일관적 행동임을 보여준다. 수치를 아는 사람,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은혜도 갚아야 하지만 모욕도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복이 덕행이 되려면 물질적 이득을 초월해야 한다. 오히려 명예를 위해서는 재산과 가족과 생명을 버려야 한다. 이것이 일본의 ‘정신적’ 가치의 밑바탕이 되었다. 이를 위해서 일본인들은 자기 자신을 단련한다.
 
 
칼과 거울
 
일본인의 모든 행동의 근거가 되는 알맞은 자기 자리 찾기와 은혜 갚기, 명예 지키기의 기반이 되는 것은 자기 수양이다. 어렵고 힘들지만 은혜를 잊지 않고 모욕도 잊지 않는 것은 가정교육에서 출발한 훈련의 결과이다.

가정은 계층구조의 기본이다. 세대별, 성별, 연령에 따라 확실한 위계가 있다. 아이는 순수한 영혼으로서 별다른 제한 없이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며 생활한다. 부모들은 자녀를 기르는 것이 부모와 조상의 은혜에 대한 보답의 일부인 까닭에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아이의 몸을 붙잡고 직접 신체적으로 필요한 동작들(예를 들어 인사법, 앉는 법, 자는 법, 젓가락 쓰는 법, 아기를 업는 법 등)을 가르친다. 아이들은 아직 부끄러움(수치)을 모른다. 그래서 자유롭다. 그러나 일정한 나이가 되면 아이는 자기를 억제해야 한다. 자신이 온(恩)을 입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그것을 갚기 위해 주의 깊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어른으로 서서히 옮겨간다. 이제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이런 과정은 매우 철저하게 행해진다. 가정 밖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가족 안에서도 배척당한다. 외부세계에서 인정받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자중을 배우고 모욕당했을 때 분노하는 것이 덕이라는 것을 함께 배운다. 이 과정은 대단히 권위적이지만 강압적이지는 않다. 할머니나 부모님의 ‘솜털같이 부드러우면서도 아주 강인한 기대’ 때문에 아이들은 올바른 습관을 배우고 수용한다. 규칙이 아닌 습관으로서의 가정교육. 그러나 직접 교육하지 않는 것도 있다. 성행위나 술 문화 같은 것은 생활 속에서 가르치지 않는 영역이다. 이것은 나이 들어 스스로 배우는 취미로 정원가꾸기와 비슷한 것으로 취급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방식은 ‘성은 어른이 통제하는 영역이 아니’라는 인식을 싹트게 하고, 힘들게 훈련해야 하는 ‘인생의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신조를 깊이 심어준다.

베네딕트는 어렸을 때의 자유로운 경험과 이후의 엄격한 훈육이라는 불연속성이 일본인 특히 일본 남성의 모순적인 행동을 가져왔다고 본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이원성이 심어져 있기 때문에 복종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철저하게 순종하는 태도를 나타내면서도 위로부터의 통제에 쉽게 따르지 않고, 열렬한 보수주의자이면서도 다른 나라의 새로운 생활양식을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 요구를 포기한다. 이런 사람이 부끄러움(하지/수치)을 아는 사람이며, 자기 가정과 마을, 자기 나라에 명예를 가져오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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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과 관련하여 일본인에게 매우 의미 있는 물건이 칼이다. 칼은 사무라이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본인에게 칼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칼은 닦아야 할 자신의 몸이다. 칼을 찬 사람은 칼을 녹슬지 않게 잘 닦아야 할 책임이 있는 것처럼 ‘몸에서 나온 녹’은 그들 자신이 처리해야 한다. 이들에게 칼이란 공격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이상적이고도 훌륭하게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의 비유이다. 칼을 닦는다는 것, 즉 자신의 몸에 녹이 슬지 않도록 닦는다는 것은 곧 자기 훈련으로서의 수양이다. 훈련은 능력을 배양하는 것과 ‘그 이상의 것’을 배양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 자기희생이 아닌 당연으로서의 생활윤리를 터득하게 된다.
 
자기 훈련이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은 자신의 의지와 행동에 간극이 없어지는 것을 목표로 훈련을 한다. 그 핵심은 집중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이다. 훈련은 육체적인 경우도 있고 정신적인 경우도 있으나, 어느 경우든 마지막은 훈련받는 사람의 내면적 의식에서 그 효력이 확인되어야 한다. 그들이 훈련을 통해 깨부수고자 하는 것은 ‘하지(수치)’의 벽이다. 칼을 닦는 것은 바로 이것을 위한 것이다.

칼과 함께 일본인이 사용하는 또 하나의 상징적인 물건은 거울이다. 어릴 때의 ‘부끄러움 없는 순수한 자아’를 들여다보는 것이 거울이다. 거울 속에서 영혼의 문인 자신의 눈을 보고 이것이 ‘부끄러움 없는 자아’로서 살아가는데 도움을 준다. 거울 또한 칼과 마찬가지로 자기훈련에 관한 사고방식의 기초가 되는 상징물로서, 외부의 시선이 아닌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거울을 들여다보고 칼을 닦음으로써 자신을 희생시킨다는 생각 없이 은혜를 갚을 수도 있고 모욕을 갚을 수도 있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칼로 복수를 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셋푸쿠(할복자살)를 하기도 하고 가미카제 특공대로 생명을 던지기도 한다. 이런 그들의 행동은 대단한 희생정신이나 인정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내면적 가치에 따라 스스로 자진해서 하는 행동, 즉 영혼의 거울에 비쳐 부끄러움 없는 행동인 것이다.
 
 
국화와 칼
 
국화와 칼은 일본인의 이중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상징이다.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배우와 예술가를 존경하며 국화를 가꾸는데 신비로운 기술을 가진 국민에 관한 책을 쓰면서 동시에 이 국민이 칼을 숭배하며 무사에게 최고의 영예를 돌린다는 사실을 기술한 또 다른 책으로 그 국민의 성격을 보충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없다. … 그들은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놀랄 만큼 민감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모를 때는 범죄의 유혹에 빠진다.’(12-13쪽). 그러나 베네딕트의 통찰을 따라가다 보면 이중적이며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들의 행동은 사실은 하나로 관통하는 자기들만의 생활양식이었음을 알게 된다. 베네딕트는 일본인의 행동에서 무언가 당혹감을 느낄 때 그것을 옳다 그르다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과 맥락을 살펴보았다. 일본인의 생활 속에 그런 당혹감을 만드는 당연한 조건이 존재한다는 인류학자로서의 확신을 갖고 일본을 일본인의 나라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루고자 했던 것이다.

목숨 걸고 전쟁에 몰입하다가 패전하자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이더니, 이제 와서는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일본. 기회주의적인 그들의 태도에 화가 나지만 그들 입장에서 보면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늘 일관되게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명예를 중시하는, 수치(모욕)에 민감한, ‘알맞은 위치’를 지켜야 하는 그들만의 행동의 근거에 따라.

수치를 알고 명예를 획득하는 방법은 상황에 따라 복수나 공격일 수도 있고, 전향일 수도 있다. 강대국이 존경받는 상황에서 스스로 형님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했던 일본은  패전 이후 실패를 받아들이고 평화헌법을 제정, 상호존중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제 경제대국이 된 일본으로서는 국제사회에서 그들의 위치를 되찾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이다. ‘장래에 만일 강대국 간의 평화가 실현된다면 일본은 자존심 회복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베네딕트의 예견은 적중했다. 일본인의 영원불변의 목표는 수치를 아는 것, 즉 명예이고 그들의 태도 변화는 이 명예회복 노력이 새로운 방향으로 바뀐 것에 불과한 것이다. 베네딕트 말대로 그것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진실’이었던 것.

국호와 칼.jpg

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나라를 이해할 때 표면적으로 드러난 행동을 보고 쉽게 편견에 빠진다. 베네딕트는 그런 행동이 어떤 배경과 맥락 속에서 만들어졌는지, 특정 문화 패턴의 조건을 살펴봄으로써 표면적으로는 이중적이고 모순되게 느껴지는 요소들의 심층에서 일관된 특징을 포착해낸다. 일본문화의 이중성을 일관성으로 꿴 『국화와 칼』을 통해 우리는 어떤 현상을 현상만으로 가치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 현상이 나타나게 된 조건을 들여다보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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