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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하는 마음 충만한 신체> 가보옥의 '여성-되기'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3-07-31 14:21
조회 : 5,634  
 
유동하는 마음 충만한 신체
가보옥의 여성-되기
  
정성락(감이당 대중지성 1학년)
 
 
홍루몽은 이질적인 것들이 충돌하며 사건을 만들어 내는 이상하고 낯선 세계다. 그곳에는 대관원이 있고, 우주와 공명하는 신체가 있으며, 그 공명의 지대에서 발생하는 떠들썩한 사건이 있고,이합비환(離合悲歡)과 염량세태(炎凉世態)가 펼쳐지는 인생사가 있으며, 좋은 것은 끝이 있고, 끝나야 좋은 것이라는 통찰이 있다. 우주와 인생에 대한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홍루몽은 이 모든 것이 유동하면서 흘러가고 충돌하며 파장을 일으키는 여성성의 세계다.
 
 
 
홍루몽은 단단한 대지 위에 세워진 세계가 아니라 흘러가는 구름 위에 세워진 세계 같아서 이성과 감성을 날카롭게 분리하는 근대인의 시선으로 포착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가? 홍루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동선을 무심코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길을 잃고 만다.
 
홍루몽의 시선은 하나의 중심에 모이지 않는다. 시선은 사방으로 흔들리며 파장을 일으킨다. 그들의 시선은 근대적인 원근법의 소실점처럼 모이지 않고, 마주보는 순간에도 서로에게 사로잡히지 않는다. 하나의 점, 하나의 중심에 모이지 않고 사방으로 산포하는 시선, 홍루몽은 이 시선들이 마주치고 교차하며 일으키는 사건의 파장으로 요동치는 세계다. 홍루몽으로 진입하는 것은 안개처럼 흐느적거리며 유동하는 공간에서 인물들이 발산하는 시선의 흐름에 자신의 신체와 감성을 내맡기는 일이다.
 
홍루몽은 근대인과 다른 신체와 감성을 지닌 존재들이 우글거리는 세계다. 그래서 홍루몽을 읽는 것은 자신과 다른 신체와 감성의 리듬을 경험하는 것이고, 홍루몽이 발산하는 이질적이고 낯선 흐름에 당황하고 불편해하는 감성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경험을 통해 홍루몽이라는 낯설고 이질적인 세계와 접속하고 감응하며 변이해 나가는 자신의 신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대관원, 가보옥의 마음
 
홍루몽은 대관원이라는 아름다움과 화려함이 어우러진 여성적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대관원에서 가보옥과 그의 자매들은 유동하고 흘러간다. 대관원은 리좀(rhyzome)이다. 대관원에서 공간들은 어떤 하나의 공간으로 집중되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모든 공간이 중심이며, 그 공간들은 서로를 향해 열려 있고, 끊임없이 접속하며 새로운 무언가를 촉발하고 생성한다. 대관원은 무수한 주름이 접히고 펼쳐지며 각각의 색채와 리듬을 형성하는 공간이다.
 
가비(價妃)의 근친이 끝나자, 대관원은 꽃같이 아름답고 비단같이 고운 사람들이 버들가지가 향기로운 바람결에 흔들리듯 오고가는 모습에 적막한 모습이 일시에 바뀌고 가보옥은 매일같이 자매들이나 시녀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칠현금을 타거나 바둑을 두기도 하고, 혹은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읊기도 하였다. 심지어 자수의 본을 뜨거나 글자풀이와 수수께끼 맞히기 등 무엇이든 즐기며 보내게”(홍루몽2. 77-78. 이하 권수만 표시)되면서 이 이상하고 낯선 세계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대관원에서 가보옥의 걸음은 경쾌하다. 그는 무엇이든 즐길 거리를 찾아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 움직임은 나비처럼 가볍고, 걸음에는 어떤 목적이 없다. 다만 이리저리 선을 그으며 오고 갈뿐, 때로는 유동하고 마주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 목적 없는 마주침을 통해 가보옥과 그의 자매들은 서로 교감하고 공명한다.
 
가보옥의 걸음은 대관원이라는 우주에 파장을 일으키는 일종의 엇박자와 같다. 가보옥의 엇박자가 대관원에 생기를 불어넣고 물결과 리듬을 형성한다. 가보옥의 움직임으로 인해 대관원은 생기 넘치는 생명체가 되고, 존재하는 것들이 생명의 기운을 발산한다. 대관원에서는 꽃과 나무, 물과 바람, 땅과 하늘이 저마다 생명의 향기를 뿜어낸다.
 
가보옥의 움직임과 시선의 흐름을 따라 대관원은 새로운 리듬과 차이가 생성하는 공간이 된다. 가보옥은 대관원에서 변이와 탈주의 선을 그으며 우주와 교감하고 공명한다. 대관원은 그래서 열린 미로와 같다. 대관원은 열려 있으면서 닫혀 있고, 닫혀 있으면서 열려 있다. 가보옥이 임대옥의 애끊는 노래를 듣고 통곡할 때 대관원은 가보옥의 신체 안에서 닫힌다. 가보옥이 보름달 아래서 폭죽놀이를 하고 있을 때 대관원은 우주를 향해 활짝 열린다. 열리고 닫히는 공간에서 가보옥은 우주와 온전히 교감하고 소통하고 있다.
 
 
 
 
근대의 공간은 철저하게 균질화된 공간이다. 그곳에는 새가 노래하지 않고, 바람이 불어오지 않으며, 꽃이 피어나지 않는다. 어떤 주름도 없이 매끈하게 펼쳐진 근대적 공간에서는 차이로 인해 생성되는 생명의 기운이 없다. 근대인은 균질화된 공간에서 흐름을 잃고 폐쇄적인 삶을 산다. 근대인은 자기만의 방에 유폐된 삶을 살고 있는 존재다. 흐름과 소통이 차단된 공간에서 근대인의 마음은 자신의 내면에 유폐되어 있다. 자신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시선, 그것은 어쩌면 유령의 시선인지도 모른다.
 
가보옥의 마음은 대관원의 마음이다. 대관원이 아름다움을 화려하게 피워낼 때 가보옥의 마음과 신체는 나비처럼 가볍다. 가보옥의 마음과 신체과 병들고 시들어 갈 때 대관원은 생명의 기운을 잃고 시들어 간다. 대관원에서 가보옥의 걸음은 정처 없다. 보옥의 마음이 수만리 우주를 떠돌다 어느 순간 금릉십이차에게 머물 때 그 마음에는 어떤 경계나 장애도 없다. 다만 흐르고 흘러가는 마음이 있을 뿐이다. 가보옥과 대관원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생노병사를 함께 하며 공명한다. 그 공명의 지대에서 주체와 공간이 하나로 어우러지고 주체와 대상도 없이 우주와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우주”(고미숙. 나비와 전사56)가 된다.
 
 
‘-되기의 달인
 
그래서 그럴 것이다. 근대인인 우리는 가보옥의 마음 앞에서 아득해진다. ‘천성적으로 지극한 사랑에 빠진 자가보옥을 포착할 수 있는 감성과 신체를 우리는 잃어 버렸다. 자신의 내면에 유폐된 우리는 타자와 결합하고 공명하는 연결 고리를 잃어버린 존재다.
 
가보옥은 남성인가, 여성인가? 옥을 입에 물고 태어난 돌잔치에서 다른 건 마다하고 지분과 비녀와 가락지 같은 것만을 움켜 쥐어아버지 가정을 화나게 하고, 여자는 돌로 만든 골육이고 남자는 진흙으로 만든 골육이라 여자 아이를 보면 마음이 상쾌해지지만 남자를 보면 더러운 냄새가 진동한다.”(1. 60)는 가보옥. 얼굴엔 분 바른 듯 하고 입술엔 연지 찍은 듯 하며 눈동자를 굴리면 정이 넘치듯 하고 말할 때는 늘 웃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자연스런 풍류가 눈썹 끝에 달려 있는”(1. 88) 가보옥. 그는 원래 하늘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 때 산천과 일월의 정기는 오로지 여자 아이에게 모이도록 하였고 수염 난 남자는 그냥 찌꺼기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1. 144)한다.
 
이런 가보옥을 하나의 성적 정체성의 틀에 가두어 둘 수 있을까? 가보옥을 묶을 수 있는 성적 정체성은 없다. 가보옥의 내부에는 너무나 많은 이질적이고 낯선 존재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그를 포획하고 포착할 수 있는 단일한 척도, 하나의 정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근대는 개인을 하나의 정체성, 동일성의 척도로 포획하고자 한다. 남성/여성이라는 정체성의 확립은 근대의 인간화의 중요한 척도다. 성에 대한 근대의 인식과 태도는 정상/비정상의 이항 대립적 구도 안에서 작동한다. 성적 정체성이 모호한 인간은 비정상으로 분류되어 격리되고 차단된다.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에 대한 근대인의 시선은 정상/비정상의 이분법적 틀에 구속되어 있다. 이런 이항 대립적 구도에 구속된 시선과 신체를 가지고 타자와 활발하게 소통하기는 어렵다. 이 구도 안에서 타자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동일성의 척도와 기준에 의해 작동하고, 타자가 지니고 있는 차이는 동일성의 폭력에 의해 거세되고 지워진다. 자기 안에 존재하는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들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인간화의 과정이 곧 근대인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가보옥은 이런 어두운 자기만의 방이 없다. 그의 신체와 마음은 우주를 향해 열려 있다. 가보옥은 물에 빠진 암탉처럼 자신이 소낙비에 흠뻑 젖어서는 남한테 비 쏟아지는데 어서 피하라고 하는 자이고, 꽃잎 같고 달님 같은 대옥의 얼굴과 용모가 장차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때면 그 어찌 가슴이 찢어지고 애가 끊어질 듯 괴롭지 않겠는가(2. 81)라며 목 놓아 통곡하는 자이며, 줏대는 하나도 없이 어린 시녀에게 핀잔 받고도 화내지않고, 물건을 아낄 때는 실오라기 하나도 중히 여기다가 막갈 때는 천만금이 가는 것이라도 상관하지 않는”(2. 352)자이다. 가보옥은 자신의 내면에 갇혀 고독하게 결단하고 행동하는 근대인과는 다른 신체와 감성을 지닌 존재다.
 
가보옥은 타자와 활발하게 교감하고 공명하며 변이하는 ‘-되기의 달인이다. 그는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고, 나무가 되고, 꽃이 되고, 물이 되고 마침내 우주가 된다. 애초부터 가보옥은 여와씨에게 버림받은 청경봉의 돌이 환생하여 사람이 된 존재였다. 돌의 사람-되기!
 
그러나 가보옥의 ‘-되기는 여성화 즉 남성성에 대한 이항 대립항으로서의 여성성의 획득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남성/여성의 이항 대립적 구도를 넘어서는 것이고 기존의 남성적 가치 체계와 척도를 넘어서 아주 낯설고 새로운 의미망을 형성”(고미숙. 나비와 전사264)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보옥의 여성성을 여성적 젠더라는 성역할의 틀에 갇혀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가보옥의 여성성은 오히려 신체에 새겨지는 남성/여성의 주류적 가치와 척도에서 벗어나 소수자-되기라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가보옥은 예쁘고 깔끔하게 생긴 아가씨들이 공연히 이름과 명예를 사려는 기풍이나 배우고 나라 도적이나 국록만 타 먹는 소인배들의 부류에 빠져들었단 말인가. 이야말로 옛사람들이 쓸데없는 일을 만들어 언론을 세우고 수사를 펼쳐 훗날 수염 달린 인물, 즉 우리 남자들을 오도하는 것이란 말이지. 내가 남자로 태어난 것도 불행한 일이거니와 또한 규중의 처녀들도 이런 기풍에 오염되고 말았으니 그야말로 천지간에 신령스럽고 뛰어난 자로 만들어진 여자 아이가 참으로 하늘의 덕을 저버리는 일”(2. 360)이라고 한탄한다.
 
가보옥은 남성적 척도와 가치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가보옥은 남성/여성이라는 이항 대립적 구도에서 벗어나 성적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고미숙. 나비와 전사253) 횡단하는 존재다.
 
 
혼세마왕(混世魔王)
 
그리하여 가보옥은 다수어를 넘어 자신의 언어로 떠듬거리는 자다. 다수어란 많은 사람이 쓰는 언어가 아니라 보편적이라고 가정되는 권력의 언어다.”(채운. 언어의 달인2부 서문) 가보옥은 하나의 방언, 하나의 외국어, 하나의 소음을 발산하는 자다. 가보옥의 언어는 주류적 가치와 척도에 포섭되지 않고 주변에 파장과 떨림을 일으킨다.
 
규중에서는 진실로 좋은 벗이 되지만 세상과는 어긋나고 엇갈리어 백방으로 비난받고 수없는 눈총을 받”(1. 144-142)으며, 감언이설을 밥 먹듯이 하고, 천방지축으로 떠들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엉뚱한 짓거리를 일삼고”(1. 85) “곁에 사람이 없으면 혼자 울었다 웃었다하다가도 제비를 만나면 제비하고 말하고 물고기를 만나면 물고기하고 말하며 별이나 달을 보면 하릴없이 그저 한숨을 쉬거나 알 수 없는 말을 주절대는”(2. 352)가보옥의 말은 다수어에 포섭된 자에게는 미치광이의 언어이고, 그래서 혼세마왕(混世魔王)의 언어다.
 
그의 언어는 홈 패인 공간에 파장을 일으킨다. 당황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고, 화나게 하고, 성나게 하고, 울게 하고, 웃게 하는 언어, 가보옥이 자신만의 언어로 떠듬거릴 때 그 언어는 기존 사회의 질서와 가치 체계에 파열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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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옥은 사대부나 남자들을 접대하고 대담하는 것을 싫어하고 높은 관을 쓰고 관복을 입고 축하 인사를 드리거나 문상하러 오가는 것을 혐오”(2. 360)하고, 과거 공부하여 출세하려는 사람들한테는 녹을 파먹는 벌레 같은 도둑놈이라고 욕”(1. 360)을 한다가보옥은 주류적 척도와 가치를 벗어나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존재다. 다음 순간 어느 방향으로 날아갈지 예측할 수 없는 나비의 날개짓처럼 그의 언어는 예측할 수 없다
 
가보옥은 인간과 자연육체와 정신, 이성과 감성을 날카롭게 분리하고 구획하는 근대적인 시선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감성과 신체를 지닌 존재다. 그의 시선은 사방으로 산포하고, 그의 마음은 끊임없이 유동하며, 신체는 충만하다. 가보옥은 대지에 자신의 흔적,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그의 마음과 언어는 대지에 내리꽂혀 깊숙이 박히는 돌직구가 아니라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돌이 일으키는 물수제비 같다. 그는 가볍고 경쾌한 걸음으로 자신이 접속하는 모든 곳에 파문을 일으킨다그의 움직임은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중력으로부터 벗어나 가볍게 미끄러진다.
 
시나 대구(對句)같은 것은 짓지 말고 팔고문(八股文)을 익혀 과거 급제 힘쓰라는 아버지 가정의 말에 공부는 무슨 얼어 죽을 공부람. 나는 그런 고리타분한 말들은 딱 질색이야. 더욱 웃기는 것은 팔고문인가 뭔가 하는 거야. 그걸 지어서 거짓 공명을 세우고 더러운 밥술이나 얻어먹는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성현의 뒤를 이어 제 말을 세운다고 깝죽거리는 것들은 정말 눈뜨고 못 봐주겠어. 조금 낫다고 하는 것들은 경서에서 이것저것 긁어모아 떠들어대는 것일 뿐이고. 더욱 우스운 놈들은 뱃속에 든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남의 글들을 이리저리 주워 모아 도깨비 같은 문장을 지으면서도 스스로 학문이 심오하다고 뻐기는 자들이야. 그게 어디 성현의 도리를 밝히는 것이겠”(5. 45)는가 항변한다. 권력의 그물망에서 탈주하기.
 
탈주는 주류적 척도와 가치로부터 벗어나 타자와 감응하며 변이하는 것이다. 가보옥의 탈주는 부정(否定)으로서의 탈주가 아니다. 그의 탈주에는 죽음의 냄새가 없다. 삶을 무한히 긍정하는 자의 탈주가 바로 가보옥의 탈주다. 가보옥은 움직이고 머무는 모든 곳에서 타자와 접속하고 감응하며 변이한다. 삶을 긍정하고 웃음과 즐거움이 넘치는 접속, 기보옥의 탈주는 생기가 넘치고 떠들썩하며 유쾌하다. 사람, , 나무, , , 바람, 하늘, 우주의 삼라만상과 무한 접속하는 신체가 바로 가보옥의 신체다. 그러니 과거에 급제하고도 안주하지 않고 눈 내리는 대지를 향해 발을 내딛는 가보옥의 출가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내가 있는 곳은 청경봉이요, 내가 노니는 것은 태초의 드넓은 하늘, 누가 있어 나와 함게 노닐 것이며 난 누구를 따를 것인가?”(6. 463 
  
자신 발목을 붙잡고 있던 것들로부터 탈주하여 표표히 길을 나서는 가보옥의 걸음이 담담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호료가(好了歌), 끝나야 좋은 것이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던 대관원에서의 화려했던 날들도 붉은 누각 위에서 꾸는 꿈처럼 사라지고 이제 모든 것들은 제각각의 문을 찾아 떠나간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소멸의 운명을 밟는다. 생노병사의 흐름에서 자유로운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한때 아름답고 화려했던 대관원도 가보옥과 금릉십이차의 운명처럼 세월의 흐름을 따라 소멸의 길을 밟는다. 가보옥이 그의 자매들과 웃고 떠들고 정을 나눈던 대관원도 귀신이 나오는 괴괴한 공간이 된다.
 
우주가 사계절의 차서(次序)를 밟아 흐르듯 인생도 그렇게 흘러간다. 하루아침 봄은 지고 홍안청춘 늙어 가면 꽃잎 지고 사람 가니 둘 다 서로 알길 없네.”라고 노래하던 임대옥의 운명처럼 한때 아름답고 화려하던 청춘도 우주는 어김없이 거두어 간다. 아름다운 것에는 부족함이 있고, 좋은 일에는 마()가 끼며,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기는 법이다. 이것이 세상과 우주의 이치다.
 
세상의 모든 일이란 좋은 일이면 끝나는 것이고, 끝나면 좋은 것이란 말이요, 만일 끝나지 않으면 좋지 않는 것이며, 좋고자 한다면 반드시 끝나야 하는 거지요.”(1. 47)
 
가보옥은 정이 지극하여 온갖 것에 마음을 다하지만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것은 흩날리는 연기가 되어 바람이 불면 흔적 없이 사라지게 되는 그날까지, 그래서 더 이상은 돌볼 수 없는 바로 그날까지, 서로 어쩔 수 없는 바로 그 순간까지, 그때가 되면 나는 나대로 가고, 너는 너대로 가”(1. 421)는 것이 세상과 우주의 이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온갖 삶의 모습은 다만 연기 관계에서 생성과 소멸일 뿐입니다. 연기 관계에서 조건의 결합에 따라 생성과 소멸의 모습만 있는 것이 지금 여기의 우리이며 이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따라서 삶과 죽음에 대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등으로 집착할 까닭이 전혀 없습니다.”(정화스님. 고미숙.나비와 전사431쪽에서 재인용)
  
그러나 우주에는 끝이 없고 끝은 곧 다른 시작이다. 다만 삶과 죽음, 꿈과 현실, 가짜와 진짜, 무와 유가 하나로 이어져 순환할 뿐이다. 가짜가 진짜되면 진짜 또한 가짜요, 무가 유가 되면 유 또한 무가 된다.”(1. 36) 이 순환의 지대에는 오로지 생생불식하는 생명의 흐름만이 있을 뿐이다.
 
 가보옥이 세상과의 인연을 다하고 청경봉의 돌이 되어 돌아갔듯이 모든 것은 인연의 장에서 다른 존재로 변이하면서 흘러간다. 우리는 한때 불이었고, 바람이었고, 구름이었고, 나비였다가 이제 시절인연을 만나 제각각의 문을 찾아 다른 존재가 되어 흘러 갈 것이다.
  
벚꽃.jpg
 
봄날이 지나가면 모든 꽃잎 흩어지고, 모든 이 제각각의 문을 찾아 돌아가리.”(1.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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