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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이 서쪽으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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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만수 작성일13-08-31 11:16 조회6,92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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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이 서쪽으로 간 까닭은?

이민정(감이당 대중지성 3학년)

intro

『서유기』는 손오공, 삼장법사, 저팔계, 사오정이 천축국으로 가 불경을 받아오는 이야기를 담은 장편 소설이다. 등장인물 중 삼장법사만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다. 제자인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은 각기 사연을 가지고 삼장법사를 만나 길을 떠난다. 손오공은 천상을 떠들썩하게 만들며 저지른 많은 죄 때문에 오행산 밑에 500년 동안 깔려있었다가 삼장법사의 첫번째 제자가 되었다. 저팔계는 천계의 은하수를 다스리던 천봉원수였지만, 술에 취해 월궁의 항아를 희롱해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인간세계로 쫓겨났다. 사오정은 옥황상제를 모시던 시절, 실수로 옥잔을 깨뜨리는 바람에 역시 옥황상제가 그를 쫓아냈다. 오공, 팔계, 오정은 관음보살의 권유로 삼장법사의 제자로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서유기』를 읽다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분명 불경을 가지러 가는 주인공은 삼장인데, 손오공에게 더 눈길이 가게 되는 것이다. 요괴에게 미혹당하거나 납치당하는 삼장을 구하는 것이 늘 손오공의 역할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요괴를 거뜬히 물리치고, 먼곳도 근두운을 타고 훌쩍 다녀올 수 있고, 심지어 배를 가르거나 팔팔 끓는 기름 속에서 목욕을 해도 죽지 않고, 한번 본 대상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변신하는 술법들을 보고 있자면 그 뛰어난 재주에 탄복하게 된다. 이런 능력자가 왜 굳이 삼장법사를 모시고 천축국을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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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이름, 세 번의 변신

먼저 손오공의 탄생 내력을 살펴보자. 손오공은 화과산의 돌알에서 잉태되었다. 태어나면서 눈에서 뿜어져 나온 금빛 섬광이 옥황상제가 있는 천계까지 닿았다고 한다. 이때 이미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것. 그리고 원숭이 무리에 섞여 살면서 수렴동을 발견해 우두머리가 되었다. 이 때 처음으로 미후왕(美猴王)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는 이제 그냥 무리들과 같은 평범한 원숭이가 아니다. ‘아름다운 원숭이 왕’으로 첫번째 변신!
 
무리들에게 추앙받으며 잘 지내던 어느날, 문득 떠날 결심을 한다. 지금은 편안하고 즐겁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자신에게도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신선과 같은 도를 닦으면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스승을 찾아 인간 세계로 발을 딛게 된다. 문득 싯다르타가 떠올랐다. 싯다르타도 도를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나지 않았던가. 물론 손오공은 삼장법사와 싸우게 되면 다시 수렴동으로 돌아오곤 했기에 싯다르타가 길을 떠난 결심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쩌면 오공은 싯다르타와 정반대의 마음일 수 있다. 지금도 좋지만 ‘더’ 오래 살고 싶다, 또는 ‘더’ 훌륭해지고 싶다는 욕망으로도 보이기 때문이다.
 
미후왕은 스승을 만나 ‘손(孫)’이라는 성과 ‘오공(悟空)’이라는 이름을 받게 된다. 이제 그는 짐승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발을 딛게 되었다. 원숭이 후(猴)에서 원숭이 손(孫)으로의 변신! 이것이 그가 겪은 두번째 변신이다. 이 변신을 통해 손오공은 72가지의 변신술과 구름을 일으켜 이동하는 등의 술법을 깨우치게 되었다. 하지만 동료들에게 자신의 재주를 자랑하다 스승에게 들켜 파문을 당하고 쫓겨나게 된다. 스승이 그에게 준 이름은 ‘오공(悟空)‘이었지만, 그것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파문은 손오공이 겪게 될 고생길의 시작과도 같다.
 
하지만 이를 알지 못한 손오공은 의기양양하게 수렴동으로 돌아갔다. 이후 염라대왕의 명부에 먹칠을 해서 자신과 일족의 수명을 늘리기도 하고, 수여받은 관직 ‘필마온’이 미관말직이라는 것에 자존심이 상해 말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자신에게는 ‘제천대성’이 어울린다며 옥황상제에게 떼를 써서 받아내기도 하고, 반도원을 지키라고 했더니 천도를 훔쳐먹는 등 무수한 사건을 일으킨 것도 이때였다. 자신의 능력에 취해, 이렇게 제멋대로, 때로는 난폭하게 행동했으리라. 결국 여래부처로 인해 500년 동안 오행산(五行山)에 깔리게 된다.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불경을 찾으러 가는 당나라 스님을 잘 보좌해서 천축국을 다녀오면 그동안의 죗값이 모두 소멸된다며 솔깃한 제안을 해온다. 그리고 때가 왔다.
 
삼장법사는 오공에게 어린 탁발승 같다며, 손행자(孫行者)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손오공은 이미 구름을 타고 다니는 술법을 몸에 익혔기 때문에, 굳이 걸어다닐 필요가 없다. 마음만 먹으면 옥황상제도, 관세음보살도, 여래부처도 언제든 만나러 갈 수 있다. 그래서 손오공에게 느린 걸음의 삼장법사와 보조를 맞추는 것은 영 답답한 일이었다. 게다가 누구에게 명령을 받아본 적 없는 원숭이왕, 옥황상제마저 두 손을 든 제천대왕. 손오공은 스스로에게 이런 자부심이 있었다. 누가 자신을 모욕하거나, 얕보는 일에 쉽게 발끈했다. 자신을 가리키는 말을 쓸 때에는 “이 손선생은 말이야~”하며 스스로 높이기를 좋아했으니 삼장법사와 의견이 부딪칠 수밖에.
 
손오공의 세번째 변신은 삼장을 만나 길을 떠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모든 여정을 마치고 투전승불(鬪戰勝佛)이 된다. 즉, 미후왕, 손오공, 투전승불! 이것은 손오공의 삶의 지도를 그리는 세 개의 변곡점인 셈이다.
 

두 번의 파문

손오공은 천축국행을 두 번이나 포기할 뻔했다. 한 번은 삼장법사와 싸웠을 때이고, 또 한 번은 저팔계의 이간질로 인한 삼장의 분노 때문이었다. 그런데 ‘파문’이라는 사건은 동일하지만 이 사건을 대하는 손오공의 마음가짐은 다르다. 먼저 첫번째 파문부터 살펴보자. 도적들을 다 때려죽이는 잔인한 성품을 본 삼장이 불제자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꾸짖자 손오공은 이렇게 대꾸한다.

“정녕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는 서천에 갈 필요도 없고 중노릇도 못 하겠습니다그려. 기왕지사 이것저것 다 안 될 바에야, 저한테 그런 악담을 퍼부을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돌아가면 그뿐입죠.” (2권, 150~151쪽)

사부를 길에 버리고 찝찝한 마음으로 돌아가던 손오공은 가는 길에 용왕에게 들른다. 그러다 문득 보게 된 그림 한 폭에는 ‘이교 위에서 신발을 세 번 바치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림 속 신선 황석공이 신발을 세 차례나 떨어뜨렸는데, 이교에 있던 장량이라는 젋은이는 거듭되는 이 행동에도 전혀 거만을 떨거나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성심성의껏 신발을 주워 신겨드렸다는 것. 황석공은 이러한 장량의 부지런함과 진실된 마음을 사랑해 그에게 천서를 가르쳐주었고, 훗날 장량은 명장으로 이름을 떨치고, 천하가 태평해지자 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용왕의 설명을 듣고 한참 동안 묵묵히 생각에 잠겼던 손오공. 내심 이러저러한 갈등을 했을 것이다. 돌아가면 이제 자신의 성미대로 살아왔던 그간의 태도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 뻔하다. 늘 ‘욱’하는 자신이 그것을 잘 견딜 수 있을까?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굳이 서역에 따라가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서역에 가는 것말고 달리 할 일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아마 손오공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그림 속 이야기를 들으며 고작 한 번의 꾸짖음을 참지 못하고 떠난 자신의 모습을 장량과 비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다시 사부의 곁으로 돌아간 손오공, 이 사건을 계기로 관세음보살은 손오공의 머리에 긴고아(緊箍兒)를 씌워준다. 이름을 풀어보자면 ‘아이를 다루는 데 필요한 테’라고나 할까. 손오공이 자제하지 못할 때 ‘자제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머리에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으로 인해 긴고아주를 외우는 사부를 두려워하게 된 손오공은 이제 제법 사부의 말을 잘 따르게 된다.
 
두번째 파문은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서유기』에서 요괴의 본성을 알아보지 못하는 저팔계나 삼장법사에게 “범태육안”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손오공은 일행 중 유일하게 요괴와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가졌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접근하는 상대가 요괴인지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아보는 것은 오공 뿐이다. 그런데 한번은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한 요괴가 접근해왔다. 저팔계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동했는데, 오공은 요괴라며 때려죽일 기세가 아닌가.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요괴는 자신의 정체가 들키자 도망쳤는데, 그때마다 변신용으로 썼던 해골을 버리고 갔다. 팔계는 “거봐, 내 말 맞지?”라는 손오공의 태도에 분노를 느꼈던 걸까? 사부에게 손오공이 사람을 죽인 것이라며 태클을 건다. 귀가 얇은 사부 는 팔계의 말을 믿게 되고, 아직도 잔인한 성품을 버리지 못했다며 엄청나게 화를 내고 파문을 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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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에서는 저팔계가 왜 그런 짓을 했을까와 손오공은 왜 그렇게 당했을까하는 점이 상통한다. 즉, 저팔계는 손오공이 능력이 뛰어나다고 너무 우쭐댄다고 시기심이 났을 것이며, 손오공 역시 다른 제자들을 얕잡아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억울하다고 삼장에게 눈물로 호소해보아도 삼장의 마음이 변치않자 결국 떠나는 손오공. 자신이 없으면 탁발도, 길을 나아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임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더욱 마음이 아팠으리라.  삼장-손오공-저팔계-사오정-용마는 모두 각기 다른 몫을 수행하면서 길을 가는 밴드였다. 저팔계나 사오정이 어찌 손오공이 하던 역할을 할 수 있으랴. 결국 저팔계는 다시 손오공을 불러오는 전령사의 역할을 하게 되고, 손오공과 삼장은 다시 화해하게 된다. 두 번째 파문으로 인해 ‘천축국 밴드’는 각자의 역할과 필요성을 서로 뼈저리게 느끼게 된 셈이다. 각자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손오공은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너무 자신이 혼자 나서서 모든 것을 해결하지 말아야겠다, 특히 저팔계에게도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느꼈을 것 같다. 이것이 저팔계를 배려하는 방식이자, 밴드가 계속 길을 나아갈 수 있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로는 세 제자가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힘을 모으게 되었으니 말이다.
 
자신이 잘 못하는 것은 팔계나 오정에게 맡기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 이제까지는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손오공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게 된 중요한 사건이었다. 삼장 역시 요괴의 마수에 빠져 “찜 쪄 먹힐 위기”를 넘기면서, 손오공에 대한 의심을 차츰 거둬들이게 된다. 게다가 천계에서 내려온 존재들이 일부러 어려움을 만드는 것을 겪으며 손오공은 이러한 81개의 고난이 삼장법사와 일행이 겪어야 할 사건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어떤 존재를 극단으로 몰아가는 것이 ‘공포심’이라고 보면, ‘천축국 밴드’에게 두려움이 사라진 계기 역시 자신의 역할과 길을 ‘보게 된 것’ 때문 아닐까.


하나의 마음

차지국 원회현의 진가장에서의 일이다. 하룻밤 묵어가게 된 노인의 집에서 노인의 아들이 산 제물로 바쳐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손행자는 자신이 해결하겠노라 먼저 제안했다. 예전에는 길에서 만나 삼장을 위협하는 요괴들 위주로 상대했다면,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요괴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된 것. 물론 자신의 능력을 뽐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마음이 더 보태진 셈이다. 게다가 혼자만 나서지 않고 저팔계에게도 명분을 만들어주어, 함께 공덕을 쌓는 모습을 보노라면 천계에서 사고를 치던 그 손오공이 맞나 싶을 정도다. 그래서일까, 삼장법사도 이러한 오공의 모습을 흐뭇해하며 칭찬하고, 오공의 말을 무조건 신뢰하게 된다.

“오능아, 네 사형의 얘기가 참으로 지당한 말이다. 옛말에도 ‘사람의 목숨 하나 구해주는 것이 일곱 층 불탑을 쌓는 것보다 낫다’고 하지 않았더냐? 네가 그 일을 하는 것은 남에게서 받은 인정에 고마움을 표하는 길이요, 또 남모르게 공덕을 쌓는 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손오공은 스승에게 닥쳐오는 고난이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픔이 찾아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그래서 삼장이 고난을 겪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며, 그 시기가 지난 후 나서게 된다.  마침내 1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천축국에 도착한 삼장법사. 아난다 존자는 경전을 받고자 하는 삼장에게 선물을 달라고 요구했고, 선물이 없다고 말하는 삼장에게 무자(無子) 경전을 준다. 무자 경전임을 알고 놀란 삼장이 경전을 바꿔달라고 간청하자 다시 선물을 요구하는 아난다 존자. 결국 삼장이 당태종에게 받은 바리때를 주자 그제서야 글자가 있는 경전을 준다. 아난다의 태도에서 ‘부처를 모시면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일행이 겪어온 길을 떠올리면 당연하고 일관성 있는 태도라 생각한다. 아난다는 행동으로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자신의 힘으로 걸어온 만큼이 자신의 공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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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은 근두운을 타고 순식간에 부처를 만나러 올 수 있지만, 일부러 삼장과 함께 걸었다. 근두운을 타는 것은 먼 곳으로 탁발하러 가거나 지원군을 요청하러 갈 때뿐이었다. 적을 만나면 매번 싸웠다. 매번의 전투에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 혼자 버텨보겠다고 고집을 피우지도 않았다. 싸움의 ‘견적’이 나오면 그 다음 방법을 궁리했다. 때로는 혼자서 물리칠 정도의 요괴를 만나도, 저팔계가 함께할 수 있도록 계획을 짜기도 했다. 14년 동안의 여행이 끝난 후, 손오공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천재(天災)의 기한을 다 채우고 돌아왔으며 시종일관 악한 성품을 감추고, 선한 마음을 드러내어 뜻을 온전히 지켰다는 정과를 이루었기에 투전승불(鬪戰勝佛)이 되었다. 그를 괴롭히던 긴고아주와 금테 역시 사라졌다.
 
투전승불이라는 이름이 재미있다. 손오공은 계속 길 위에서 싸우던 자였고, 계속 싸우는 자로 남았기 때문이다. 단지 요괴들과 싸운 것이 아니다. 그동안 자신이 편안하게 누리던 본성(잔인함)과 싸웠고, 자신이 다스리지 못했던 본성(인내심)과 싸웠고, 자신이 접해보지 않은 본성(자비심)과 싸웠다. 그의 이름인 ‘오공(悟空)’은 곧 ‘투전(鬪戰)’인 것이다. 물론 ‘천축국 밴드’의 깨달음의 방식은 다 다르다. 삼장은 경을 찾아 돌아가는 것이었으며, 팔계는 계율을 잘 지키며 식욕, 여성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 즉,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과 자신이 넘어서야 할 것이 중첩되면서 하나의 길을 가지만, 각기 다른 방식의 깨달음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일행의 ‘하나의 마음’이 모두 동일한 ‘마음’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항상 같은 마음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의 마음’은 길을 찾아가고자 하는 끊임없는 그 자세를 의미한다.

outro

손오공이 수렴동을 떠날때, 싯다르타가 자신의 궁전을 떠날 때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부양해야 할 백성(무리)들과 자신의 안락한 삶을 버리고, 아무것도 없이 길을 떠날 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이 누리고 있던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고 믿었던 게 아닐까.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면에서 그들은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 온전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난 셈이니까. 싯다르타는 고행을 해보기도 하고, 명상을 해보기도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갔다. 그리고 손오공 또한 인간이 되고, 신선이 되고, 자신을 인내하게 만드는 시련들을 통과하면서 투전승불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손오공과 싯다르타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길 위에 선 자들이다.
 
사건이 의미가 되는 것은 그것이 벌어진 시공간에서 ‘중심’을 찾아가는 과정에서이다. 손오공이 수렴동을 떠날 때에는 신선이 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파문을 당했을 때에도 자신이 사부를 천축국까지 모셔드려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역할은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나조차도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 눈 앞의 일이 닥치면 그것을 해결하기에 급급하다. 그러한 점에서 손오공은 자신이 잘 하는 것, 요괴를 물리치는 그 전투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길을 만들어갔다. 물론 손오공은 재주도 많고 변신술도 잘 하기 때문에 너무 쉬운 선택이었을지 모른다는 의심도 든다. 하지만 원숭이들의 무리에서 용기를 내 가장 먼저 폭포로 뛰어들었던 것이 바로 손오공이다. 그가 수렴동을 발견한 것은 그렇게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인 셈이다. 어쩌면 손오공의 술법과 능력에 더 시선이 쏠려, 손오공의 이러한 마음은 보이지 않았던 게 아닐까? 제천대성 손오공이 투전승불이 되기까지, 그 안에는 두려움없이 물 속으로 뛰어들었던 한 원숭이의 용기가 있었다. 그 마음, 그 태도야 말로 손오공이 ‘천축국 밴드’와 함께 서쪽으로 가게 된 힘일 것이다.

댓글목록

명도님의 댓글

명도 작성일

* 귀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안그래도 요즘 중국 오승은(1500~1582)의 서유기를 보고 있는데, 재미있네요,,,,

 * 한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그러면 <달마가 서쪽에서 온 이유>: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