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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에서 길을 찾은 루스 베네딕트 - 김정안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3-09-06 17:33
조회 : 4,812  
인류학에서 길을 찾은 루스 베네딕트
 
김정안(감이당 대중지성)
 
들어가는 말
 
모두들 바쁘게 살아간다. 아니, 내가 바쁘다. 이것이 진짜 바쁜 것인지 아니면 경쟁하는 삶에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인지. 아무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해답을 찾으려고 이곳 저곳을 기웃거린다. 돈 좀 벌어볼까 하고 주식을 배워보겠다고 모임에 나갔다. 돌아온 것은 마이너스 통장. 경매가 좋을까 싶어 부동산 경매 강의도 들었다. 대안적인 삶을 찾아 귀농 강좌도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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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막상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농촌에 가서 산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스케줄을 빡빡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나는 열심히 살고 있다고 위안을 삼는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하고 허전하다. 무슨 일을 하든 이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또 다른 곳을 찾아 기웃거리고. 이런 방황의 와중에 지금 나는 인문의역학 공부를 하고 있다. 인문학 공부를 하는 중에 루스 베네딕트를 만났다. 그녀 또한 삶에서 어떤 해답을 찾으려고 방황을 했고, 인류학에서 길을 찾았다. 그녀는 왜 삶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는지, 인류학이 어떻게 해서 그녀에게 길을 열어 주었는지 나는 그것을 탐구해 보려고 한다.
 
 
성장 과정
 
외과 의사이던 아버지가 두 살 무렵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베네딕트는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의 농장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교사와 도서관 사서 등으로 근무하면서 힘겹게 두 딸을 키웠다.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는 두 딸에게 “내가 너희들 때문에 이 고생을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어린 마음에 베네딕트는 상처를 받았다. 자신의 존재가 어머니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이 마음을 어둡고 무겁게 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서 어린 베네딕트가 아버지의 관 옆에 서 있는데 어머니가 신경질적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라고 채근했다고 베네딕트는 우울한 회상을 하기도 했다.
 
자녀에 대한 우리의 위압적 태도는 똑같이 이런 문화적 목적의 증거이다. 우리의 자녀들은 어떤 원시 사회에서처럼 아무 의식 없이 어렸을 때부터 권리와 취향이 존경받는 개인이 아니라, 부모의 개인재산처럼 경우에 따라 부모가 복종시키고, 또 자랑스럽게 여기는 특별한 채무 사항이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부모 자아의 확장이고, 권위를 과시하는 특별한 기회이다.
 
─ 루스 베네딕트 『문화의 패턴』,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2008, p353
 
홀어머니 밑에서 우울하게 자랐던 베네딕트는 주변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가족과 이웃들 사이에서 베네딕트는 항상 소외감을 느껴왔다. 주체하기 어려운 우울증을 억제하기 위해 애를 썼으며, 속으로는 대혼란을 겪으면서도 겉으로는 침착하고 눈물 없는 외양을 꾸몄고, 단풍나무 봉오리를 보면서 잠시나마 기쁨은 순간을 가지려고 애썼다. 그녀의 친척들은 독실한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러나 베네딕트에게는 기독교가 구원이 되지 못했다. 강요된 믿음, 엄숙한 도덕이 베네딕트를 숨막히게 했다.

이렇게 가족이나 친척들과 소통하지 못해 답답한 가운데 베네딕트는 자기 자신과 대화하기 위해 글을 썼다. 소녀 시절부터 시를 썼다. 베네딕트는 다른 사람과 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자신도 분명히 알 수 없었고, 성장 환경에서 그녀의 욕망은 무언가 어색하고 불편하고 불경한 것으로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많은 책을 읽었다. 붓다, 키이츠, 소로, 칸트, 스피노자 등의 책들을 읽으면서 베네딕트의 마음은 성장했다. 세상에는 모두가 가야 하는 하나의 길만 있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만의 고유한 삶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나의 삶은 어디에? 베네딕트는 글을 쓰면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기쁨, 자신이 이해받는다는 기쁨을 느꼈다.
 
 
결혼 생활
 
베네딕트는 코넬 의과대학에서 생화학자로 근무하는 스탠리 베네딕트를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틀에 박힌 결혼 생활은 베네딕트에게 즐거움이 되지 못했다. 베네딕트는 집안 살림, 남편의 사랑으로는 충족되지 못하는 공허함을 느꼈다. 베네딕트는 당시 미국 사회의 주류적 삶의 표상에 자신을 맞추려 했다. 번듯한 직장, 번듯한 남편, 화목한 가정……. 그러나 이런 환상이 하나씩 깨졌다. 대학 졸업 후 2년 동안 근무했던 여학교 교사 생활은 지루했고, 결혼 생활은 공허했다. 아이가 있으면 그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의사는 베네딕트에게 위험한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했다. 남편은 그 수술에 반대했다. 베네딕트는 리듬 댄싱을 하면서 즐거움을 얻기도 하고, 뉴욕 주 자선협회에서 사회봉사를 하면서 보람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결혼 생활의 공허함을 피할 수 없었다. 남편과의 사이가 점점 멀어졌다. 베네딕트에게는 “노력과 창조의 개성적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했다.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온전히 쏟아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삶을 찾아야 했다.
 
사회가 그 개인의 행동을 이상하다고 단정할 때, 그의 딜레마는 정신이상의 문제로 탈바꿈한다. 서구 문명은 가벼운 동성애 증상조차 비정상이라고 본다. 임상적 관점에서 볼 때, 동성애는 그런 증상(신경증 및 정신병)의 간접 원인일 뿐인데도 신경증 및 정신병과 동일시된다.
 
─ 루스 베네딕트 『문화의 패턴』,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2008, p375
 
남편과의 사이가 소원해질 무렵 베네딕트는 마거릿 미드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베네딕트가 대학원 조교로 있을 때 미드는 학부 4학년이었다. 룸메이트가 자살을 하여 상심에 빠져 있는 미드를 위로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은 친해지게 되었다. 이전에 베네딕트는 누군가에게 자신이 깊이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미드는 베네딕트 자신보다 베네딕트를 더 잘 이해했다. 결혼 생활에서도 불가능했던 충만한 교감과 소통의 기쁨으로 베네딕트의 삶은 생기를 찾는다. 두 사람은 같은 공부를 하는 친구로서 교감과 친분을 나누다가 연인 관계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이때 베네딕트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동성애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네딕트는 점차 자신의 새로운 성 정체성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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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네딕트의 동성연인이자 지적 동반자, 마거릿 미드

베네딕트의 성적 취향이 이성애에서 동성애로 바뀌었다. 이것은 베네딕트가 남자보다 여자를 좋아했다는, 단순히 성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것이 좋은 삶일 것이다’라고 여기는 것-주류적 삶의 표상을 따르는 삶에서 ‘난 이렇게 사는 것이 좋다’라고 하는 소수적 삶으로의 선택. 베네딕트의 성 정체성 변화는 그렇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인류학과의 만남
 
베네딕트는 32세가 되던 1919년, 일반인을 위한 인류학 강의를 들으면서 큰 흥미를 느낀다. 이 새 학문에서 자신의 모든 재능을 쏟아부을 수 있는 어떤 매력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34세가 되던 1921년, 컬럼비아 대학원에 입학하여 프랑스 보아스 밑에서 공부한다. 「북아메리카의 수호신 개념」이라는 논문으로 세 학기 만에 학위를 취득한다. 원래 베네딕트는 문학적 감수성을 타고나 시를 쓰고 대학 영문과에서 공부했는데 어떻게 인류학에 몰두하게 되었을까? 인류학의 어떤 점이 베네딕트에게 새로운 삶을 향한 열정을 촉발한 것일까?

베네딕트에게 앎은 늘 삶을 소외시켜왔다. 객관적인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종종 지배적 관점에서 대상을 왜곡하고 배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을 알고 싶다고 할 때 지식이 취하는 일반적인 태도는 나의 관점에서 일본을 판단하고 재단하는 일이다. 이때 구성된 일본에 대한 지식은 일본 자체의 고유성이라기보다 일본에 대한 나의 편견이기 쉽다. 그런데 베네딕트가 인류학에 매력을 느낀 것은 다른 지식과 달리 인류학은 그런 맹목에서 벗어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살아 있도록 하는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편견으로 대상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통해 나의 편견에서 벗어나는 길을 베네딕트는 인류학이라는 학문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개인적인 적응의 적부는 어떤 동기를 추구하거나 혹은 그 동기를 기피하는 데 달려 있지 않다. 그 둘의 상관관계는 다른 방향에서 찾아야 한다. 그 사회의 특징적 행동과 어울리는 체질을 가진 사람들이 선호되는 것처럼, 그 문화가 거부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무시되어 버린다. 다시 말해 문명의 제도가 뒷받침하지 않는 사람들은 비정상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문화의 전통적 형태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예외적인 사람들이다.
 
─ 루스 베네딕트『문화의 패턴』,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2008, p. 375
 
정상/비정상의 틀 속에서 어떻게든 정상의 규범 속에 속하려고 노력했으나 그것이 공허한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베네딕트는 스스로 비정상인이 된다. 결혼 생활을 깨고, 레즈비언이 된다. 정상인보다 비정상인이 더 좋아서가 아니다. 정상/비정상의 틀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삶의 유일한 척도가 되는 정상의 삶은 없다. 모든 삶은 그 나름의 맥락과 조건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베네딕트는 인류학 공부를 하면서 그것을 배웠다. 도부족과 콰키우틀족의 문화는 서로 다른 것이지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다. 어떤 게 옳고 다른 것은 그른 것이 아니다. 인류학 공부를 하면서 베네딕트는 하나의 지배적 관점으로 어떤 문화의 특성을 규정짓는 것이 얼마나 큰 무지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 문화가 그런 특성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배경과 맥락을 이해하는 것, 다양한 삶의 지평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편견을 극복하고 삶을 더 풍부하게 하는 것. 베네딕트는 인류학에서 그런 새로운 삶의 방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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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이 무미건조한 과학-대상화된 지식이 되지 않으려면 인간의 마음을 탐구해야 한다. 흔히 과학은 엄밀하고 체계적인 연구 방법으로 객관성을 추구한다고 한다. 그러나 객관성이란 무엇인가? 나와 대상을 분리시킨 상태에서 나의 관점에 특권적이고 초월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객관성은 어떻게 보면 자기 기만이다. 나를 숨기면서 대상을 왜곡하는. 지금 내가 보는 일본은 있는 그대로의 일본이 아니다. 나의 의식에 의해 조작된 일본이다. 그러므로 과학이 진리를 추구한다면 그것은 어떤 조건에서도 변함이 없는 절대 불변의 가치가 아니다. 특정한 조건에서 우연히 구성된 상황의 산물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대상의 탐구를 통해 주체의 한계를 분명히 보고 그 한계를 극복하는 것. 이것이 과학을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외부의 대상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외부의 대상으로 나타나는 나의 의식을 통해 나의 것도 아니고 너의 것도 아닌 지성의 흐름에 접속하는 방법이 베네딕트에게는 인류학이었다. 이 지성의 흐름-유동적 지성을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을 탐구할 때 인류학은 나와 상관없는 다른 문화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실존적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나와 상관없는 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자기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이 베네딕트에게는 인류학이라는 공부였다.
 
인류학자들이 인간의 마음을 주제로 삼기 시작한다면, 과학의 방법과 인문학의 방법은 상호 보완하게 될 것이다. 두 방법 중 어느 하나를 배제하는 방식은 자기 패배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인문학은 사회과학이 뻔한 것에 힘을 들이고, 또 무미건조하다고 비판한다. 사회과학은 인문학이 너무 주관적이라고 비판한다. 인류학자는 뻔한 것에 힘을 들인다는 비난이나 주관적이라는 비난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인류학자는 두 가지 방법을 모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문학은 물론 과학으로부터 배울 때, 우리의 문화나 지구 반대편에 있는 문화에 대한 적절한 연구가 커다란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마거릿 미드『루스 베네딕트』,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2008, p327
 
베네딕트가 왜 도부족이나 콰키우틀족 같은 지구 반대편의 문화 연구에 열정을 쏟았을까? 그것은 단순히 나하고는 다른 문화에 대한 이국 취향의 호기심이 아니다. 나에게 익숙한 문화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낯선 문화를 다른 삶의 지평 속에서 이해함으로써 내 안에 제도화된 문화 규범의 틀을 반성하고 또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타자를 이해하고 수용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베네딕트 또한 자기에게 익숙한 사회 문화의 규범 속에서 소외와 억압을 겪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도부족이나 콰키우틀족의 문화 패턴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도 있다. 지금 이런 조건에서 나는 이런 사고와 행동의 패턴을 가진다. 그런데 다른 조건이라면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을까? 다른 문화에 대한 연구는 결국 내 안에 구조화되어 있는 다양한 삶의 지평들을 펼쳐보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인류 보편의 마음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류학 연구가 과학이자 동시에 인문학이 되어야 한다. 과학의 엄밀하게 체계적인 연구 방법을 취하되 그것이 공허한 진리의 규범이 되어서는 안 되고 인간에 대한 이해, 나아가 모든 생명의 이치에 대한 지혜, 새로운 삶의 윤리가 되어야 한다. 지성의 탐구가 없는 삶은 무지다. 삶이 없는 지성은 권력이다. 무엇을 위한 과학인가? 베네딕트는 인류학이 무엇보다 삶을 위한 과학이라고 한다.
 
 
나오는 말
 
모든 문화가 지배적 특성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의 행동을 추동하는 문화적 드라이브에 대해 우리가 더 많이 알수록, 우리 문화의 입장에서 볼 때 비정상적 태도를 보이는 정서의 통제, 행동의 이상 등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적과 반사회적, 정상과 비정상의 관계도 새로운 관점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마거릿 미드 『루스 베네딕트』,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2008, p98
 
어릴 적에는 홀어머니 밑에서 우울하게 자랐고, 교사로 일하면서 새로움이 없는 생활에서 지루함을 느꼈으며,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결혼 생활에서 절망을 느꼈다. 베네딕트에게는 자신의 온 열정을 쏟아서 몰두할 일이 필요했고, 그 일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랬다. 베네딕트는 기존의 사회 규범에서 정상성의 범주에 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거기에 자신은 늘 안 맞았고, 억지로 맞춘다고 해도 그 생활에서 행복을 느낄 수 없었다. 베네딕트는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았다. 그러다가 인류학이라는 공부를 만났다.

인류학 공부를 하면서 베네딕트는 이전에 자신이 왜 불행했는지를 깨달았다. 정상/비정상의 틀이 있는 한 비정상인뿐만 아니라 정상인도 불행하다. 정상/비정상의 틀을 깨는 새로운 사유와 삶의 모험이 필요했다. 베네딕트는 그 새로운 삶의 길을 인류학에서 찾았다. 근대 서구 사회에서 낯선 타자라고 할 수 있는 소수민족의 문화를 연구하면서 지배 문화에서 배제되고 억압된 많은 타자들을 만났다. 그 타자들은 지구 반대편의 다른 민족들이 아니라 베네딕트 안에 억압되어 있던 많은 다른 삶의 가능성들이었다. 베네딕트는 인류학 공부를 통해 그 타자들을 이해하면서 성장기에 상처받았던 마음을 치유하고 자기 안의 많은 이질성을 수용하고 긍정하게 된다. 인류학을 통해 새로운 삶의 길을 찾고, 그 길에서 병들었던 마음을 회복하고, 많은 타자들과 함께 사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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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이야”라고 하는 정상성의 규범에 따라 살아간다. 오랜 제도 교육 과정을 거쳐 경쟁 사회에 진입하고 입사 결혼 출산 양육 노후대책 등에 대한 일반적인 룰을 따른다. 그것이 정상적인 삶이다. 나도 그런 정상적인 삶을 따라 지금까지 달려왔다. 대학을 무사히 마쳤고, 결혼도 했고, 애도 낳고, 직장 생활도 무난히 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는 이 생활이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항상 불안하다. 그리고 엄청난 경쟁과 대가를 치르고 유지하고 있는 이 생활에서 큰 충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늘 허전하다. 그래서 자기계발서를 읽고, 강좌도 듣고, 모임에도 참석하고 하면서 새로운 생활을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우연히 인문의역학을 공부하게 됐다. 베네딕트에게 인류학이 그랬던 것처럼 이 공부가 나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가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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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명도   2013-09-06 19:02:04
 
* 동성애는 비판할 것은 못되지만, 이상 징후군은 맞다고 봅니다. 저번에 자유게시판에 올린 영화 <9월이 오면>의 주연 세기의 미남배우 록.허드슨도 동성애로 사망했지요. 그리고 루스.베네딕트가 결국 다행히 선종사상에서 평온을 찾았는데,  그것은 바른 길로 갔다고 보아지며, 서양의 학인들이 공부하다가 벽에 부딪혀 고민하다가 대개 불교의 禪에서 길을 찾는데, 그 길도 여려운 길 입니다.

그 길은 무엇인가 하면 안되고 그냥 부족한 있는 그대로가 길이므로 어찌보면 오해의 요소가 많지요. 그 길은 해서도 안되고 안해도 안되고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마음을 비워도 안되고 채워도 안됩니다. 그럼 무어냐? 그냥 이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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