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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너 누구니 - 1학년 밴드글쓰기 4조(오미정, 이은옥, 안혜숙)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3-10-22 17:11
조회 : 5,913  
 
이반, 너 누구니
 
* 이반 :  동성애자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하기 위한 명칭.
이반에는 양성애자도 포함되곤 하며, 이반들은 이성애자를 일반이라 부른다.(위키백과)
 
 오미정,이은옥,안혜숙(감이당 1학년, 밴드글쓰기)
 
너 참 낯설다!
 
 
하쿠.jpg
 
: 내 왕자님은 야간 장거리 고속버스를 타고 왔다. 에메랄드가 박힌 멋진 장검은 아니지만 번뜩이는 기지와 재치의 칼로 고속버스 전문털이 강도들로부터 내 여권과 비행기표, 24천원 정도를 지켜주었다. 그는 190정도의 장신에 약간 졸린 푸른 눈과 금발머리, 잘생긴 버전의 오스카 와일드의 나른한 매력을 지녔다. 더하여 남성다운 중저음과 넘치는 유머감각, 4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섹시한 뇌도 갖추었다. 그가 ‘Summer Time'을 부를 때면 내 생식세포가 미친 듯이 날뛰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자기가 맥주배라고 부르는 약간의 똥배가 있었지만 내가 28년 동안 만나본 가장 완벽한 남성이었다. 단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그렇다. 여러분이 짐작했다시피 그는 게이였다. 아무리 눈썹을 팔락거리고 잇몸이 다 보이도록 미소를 지어도 쇠똥구리에게 소똥을 선물 받은 나비처럼 전혀 반응이 없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가 이 아름다운 유전자를 남기지 못할 확률이 높다는 것에 대해 인류의 한사람으로 더 할 수 없는 아쉬움을 느꼈다..  , 이왕이면 나를 통해 그의 유전자를 남겼으면 싶었지만 그것은 더욱 더 불가능 하다는 안타까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옥 : 대학 생활 내내 그리고 입사 후까지 사주에 만발한 나의 도화살은 도통 이성과의 연애사에 얽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철벽 그 자체의 모태솔로의 삶이 10,000일(대략 27년 정도?)에 가깝게 수렴되고 있던 즈음, 한 친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옥아, 같이 바(Bar)에 가볼래?” 나의 연애사업을 위해 다양한 방향을 모색해주고자 하는 친구의 진심어린 조언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을 ‘이반’이라 부르는 레즈비언이었다. 자신의 촉으로는 나의 스타일이 레즈비언들에게 꽤 통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녀가 레즈비언이라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이 친구 외에도 동성애자인 지인이 몇 있었기에 천지가 요동칠만한 제안은 아니었다. 하지만 친구의 질문에 잠시 머리가 멍해지며 쉽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한번 같이 가보고 싶단 호기심은 잠시였다. ‘만약 내가 진짜로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면 어떡하지?’, ‘나중에 친구들과 부모님이 내 애인이 여자라는 것을 알면 얼마나 충격 받을까?’ 불안한 상상의 나래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러한 상황이 ‘친구의 케이스’ 아니고 ‘내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을 하니 불안감이 엄습했다. 대답대신 헛웃음으로 왠지 모를 불안감을 애써 감추며, 정육점 고기가 되는 기분이라며 피해왔던 소개팅을 앞으론 열심히 해야겠다 다짐했다.
    
 
: 직장 후배는 그녀가 알고 있는 외국인 게이커플의 집에 다녀온 이야기를 내게 해주곤 했다. 후배는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여러 명의 외국인들과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주말이면 그들의 파티에 초대되어 가곤했다. 그녀가 가끔 들려주는 이야기 속 동성커플들은 요리도 잘할 뿐만 아니라 재미있고 품성도 좋아서, 괜찮은 남자다 싶으면 어째 다 동성애자냐며 여자들끼리 한탄한 적도 있다 했다. 그녀의 말과 상관없이 나는 그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동성애자가 등장하는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게 쉽지는 않겠구나 하는 정도랄까. 그러던 차 동성애자 김조광수 감독의 결혼식 발표 기사가 딱 때 맞춰서 찾아왔다. 그가 손을 내밀며 나를 잡아줘하는 것 같았다. 사진 속 나란히 서있는 두 남자를 보았을 때 수컷과 수컷의 짝짓기로 확 눈에 들어온 것은 감이당 3학기 공부 탓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예전 같으면 그가 공개한 각계각층의 유명한 하객명단을 유심히 훑고, 그의 용기에 찬탄하고, 한편으론 그런 그의 용기도 그의 지명도 덕분이겠지 따위를 생각하며 반 호기심으로 결혼식 날 가볼까 말까하며 지나가버렸을 텐데 말이다.
 
 
김조광수, 김승환 결혼식.jpg

 
이처럼 우리 모두 동성애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얘기를 듣기도 하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기도 한다. 이미 우리는 동성애에 대해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성애자(라고 생각하는)인 우리에게 동성애()는 적어도 성에 관한한 나와 다른 성정체성을 가진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일 뿐이었다. 3학기 텍스트를 읽으며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명의 지상명령이 우리들의 머리 속에 각인 되어갈 즈음, 시절인연처럼 번식할 수 없는 두 동물의 짝짓기로 우리 앞에 나타난 동성애, 그와의 우연한 마주침이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져주었다.
 
 
너의 생존법은?
 
살아있는 모든 것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두 가지 사명에 매진하려 한다.
(아파야 산다, p.157, 샤론 모알렘, 김영사)
 
연어나 거미를 비롯해서 거의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물들이 교미과정에서 죽음을 각오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번식을 통해서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려는 욕구는 자연에서 가장 강력한 충동이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p.432, 빌 브라이슨, 까치)
 
여기, 지금, 우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그 충동의 결과물들이다. 그리고 이 충동은 생명체를 넘어 유형, 무형의 것들에게도 해당된다. 결혼정보 회사, 소개팅, 궁합, 성형수술 등 더 나은 짝을 찾아 번식하고자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유성생식을 하는 인간은 번식을 위해서는 이성애자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그런데 위 에피소드 속 주인공들은 이성과의 짝짓기를 통한 번식보다는 번식이 불가능한 동성과의 사랑을 택했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은 우리의 유전물질을 후손에게 전해주도록 부추기기 위한 보상 메커니즘일 뿐이다.” 적어도 이 말은 그들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수많은 생물들이 번식을 위해 목숨을 건다는 생명의 원리에 따르면 동성애는 참으로 이상한 사랑의 방식임에는 틀림없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번식을 포기한 동성애를 생명의 진화는 왜 살려두었을까? 아니면 동성애는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자연의 실수일 뿐일까? 그 의미를 사회문화적, 생물학적, 원자적 관점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1) 사회문화적 생존법
 
우리의 마음 속에는 끊임없이 인간이 곰이 되고 곰이 인간이 되는 과정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런 점이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인간이 되게끔 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곰에서 왕으로, p.92, 나카자와 신이치, 동아시아)
 
 
<곰에서 왕으로>에는 인간이 야생염소나 곰과 섹스를 하고 아이를 낳고 교류하며 인간과 동물의 세계를 넘나드는 여러 신화가 있다. 신화 속 세계 만이 아니라 인류의 어느 시기엔 실제로 인간과 동물이 같이 뒤엉켜 살았으리라. 인간이 곧 자연이고 동물이었던 시기엔 번식을 위한 수컷과 암컷의 사랑뿐 아니라, 수컷과 수컷 혹은 암컷과 암컷의 사랑도 자연 그대로의 성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동성애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조차 없는. 신화가 살아있었던 때, 자연의 세계와 단절되지 않았던 사회에선 동성애의 모습이 지금과는 전혀 달랐던 것 같다. 실제 시베리아의 남자 샤먼이나 북미인디언 동성애자, 여러 문화에서 정령의식을 주관하는 지도자 등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 3의 성으로 초자연적 재능과 영적 힘을 가진 존재로 경외의 대상이기도 했다고 한다. 
 
 
신성대.jpg

 
특히 고대 그리스는 동성애에 참으로 관대했던 시기로 보인다. 그리스신화에서 뿐 아니라,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이 동성애를 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플라톤은 "여자와 동침하면 육신을 낳지만 남자와 동침하면 마음의 생명을 낳는다."라는 말을 했다. 동성애는 그리스에서 교사와 학생은 사랑하는 사람 (Erastes,에라스테스)과 사랑받는 사람(Eromenos,에로메노스)의 관계로서 스승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는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 테베라는 도시 국가에 있었던 신성대라는 이름의 전투부대는 나이 많고 전투 경험이 많은 베테랑 병사와 전투를 해본 적이 없는 어린 병사가 동성애적 관계로 이어졌다고 한다.(우리나라의 신라 화랑을 연상시킨다.) 이렇듯 고대 그리스의 남성 동성애는 대부분 전쟁이나 철학을 위해 연장자와 연소자 사이에 맺어진 도제 관계라는 관행들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인류학자들은 이런 비슷한 형태의 군대 동성애를 파푸아 뉴기니나 남부 수단의 아잔데족 등 다른 여러 사회에서 발견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상시적인 전쟁에 대비한 전사 집단으로서 남성적 용맹성과 전사의 기백, 생식능력의 전수 등을 통해 군사집단의 능력을 강화하고, 한편으론 인구를 통제하기 위한 조절장치였다는 것이다. 고대 전사 사회의 동성애는 집단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자연스런 결과물이자 선택의 하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역사 속 동성애의 모습이 이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었다. 여타 고대 제국의 경우에는 지배계급이 노예와 평민 남녀를 착취하는 한 형태이기도 했고, 각 시대적 사회적 특성에 따라 동성애 또한 그 모습을 달리하며 나타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분명한 것은 동성애는 시대와 집단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취하면서 끊임없이 생존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럼 지금 현재 동성애의 모습은 어떤가. 과거 중세유럽이나 산업혁명 이후의 마녀사냥을 거쳐 오늘까지 오는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곧 자연이기도 했던 시대, 신화가 살아있었던 때, 동물을 비롯한 타자를 또 다른 나의 모습으로 사고할 수 있었던 사회, 바로 대칭성사회의 지층이다.
 
대칭성 사회의 사람들은 인간과 곰(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이 서로의 존재를 유동적으로 왕래할 수 있는 유동적인 생명의 레벨까지 내려가서 거기서 전체성을 사고하고자 합니다.
(곰에서 왕으로, p.113)
 
인간과 자연의 단절, 기독교의 막강한 영향, 근대의 등장과 더불어 동성애의 운명은 달라졌다. 근대 이후 이성애자가 주류인 사회에서 동성애는 비정상적이고 이질적인 존재로 취급되어 가능한 가시권에서 사라져 숨어야 했다. 다른 이질적인 존재들(광인이나 장애인 등)과 함께 말이다. 자연의 일부였거나, 최소한 사회에서 용인되었던 시대와는 천지차이다. 이질적인 타자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 동일성을 향한 매진. 이것이 현대 우리사회의 모습이다. 이것은 한 사회집단의 생존과 번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암2.jpg

 
생명체에서 동일성을 고집하는 것이 암이고 결국 생명을 죽음으로 몰고 가듯이 사회도 마찬가지다. 인종적, 사회문화적으로 동일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지금은 생존과 번식의 측면에서 보면 멸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역사적으로도 나찌의 파시즘, 제국주의처럼 동질성에 천착한 사회가 어떠한 결말을 맞이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획일성과 균질화를 추구할 때의 본보기가 아닐까. 바로 이 지점에서 동성애의 역할이 등장한다.
 
다양성은 뇌 속의 신경망 이외에도 여러 가지 복잡한 체계에서 환영받는다. 면역체계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면역체계에는 그 다양성 측면에서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종업원이 일하고 있다. 이 종업원이 없었다면 인류라는 종은 오랫동안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아파야 산다, p.183)
 
그렇다. 생명체는 면역체계가 다양할수록, 변이와 적응에 능할수록 오래 살아남는다. 최고의 면역시스템이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다양성에 있듯이 인간사회와 조직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다양한 타자들과의 공존, 다채로운 변이 능력에 있다. 조직 내에 끊임없이 이종성(heterogeneity)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 다양한 이종성 중 하나로서 역사 이래 동성애는 늘 존재해 왔다. 생존과 번식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동성애는 우리 사회의 면역체계의 일부이자 우리 자신이다. 우리 안의 이종성을 부정하거나 공격하는 지금의 상태는 류마티즘이나 건선처럼 우리자신의 면역체계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처럼 보여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건 동성애를 우리 안의 하나의 지층으로 볼 수 있는 유동적 지성의 촉발이 아닐까.
 
유동적 지성이 활동을 시작하자, 곧바로 인간의 마음속에는 타자에 대한 공감으로 가득 찬 이해라는 것이 생겨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귀중한 인간적인 마음입니다.
(곰에서 왕으로, p.92)
 
 
2) 생물학적 생존법
 
옛날 시간여행 영화를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원시 지구로 돌아간 탐험가들이 경이롭고 신비한 자연 경관에 넋을 잃는 장면이 꼭 나온다. 하지만 실제의 원시 지구는 지옥의 모습에 가까워서 타임머신에서 내리자마자 독가스로 가득 찬 대기 속에서 옷이 녹고 타임머신은 고장나 영영 현재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이 독성의 대지 위에서 처음 나타나 생명의 태동을 만들어 주었던 생명체가 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남조균이다. 이 남조균은 독가스로 가득 찬 대기에서 다른 생물이 살 수 있는 길을 터주고 그 생물들에 의해 잡아 먹혔다.
 
 
남조균.jpg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세상에서 최초로 협동에 의한 삶을 보여주었 던 예라는 것이다. 세상에 처음으로 생태계가 나타난 것이다.’ 지구상 첫 생명체의 생존 전략이 협동이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이런 협동의 증거는 원시 인류에게서도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호모 에렉투스는 처음으로 사냥을 했고, 처음으로 불을 사용했고, 처음으로 복잡한 도구를 만들었고, 처음으로 집단 생활의 흔적을 남겼고, 처음으로 늙고 병든 동료를 돌보아주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p.470)
 
 
늙고 병든 동료를 돌보아주는 호모 에렉투스! 남조균의 후예다운 감동스러운 장면이다. 남조균부터 호모 에렉투스까지 협력과 협동은 생존의 중요한 요소로 보여진다.
 
인간이 생존과 번식이라는 기본적인 생물학적 명령에 따라 자식과 가까운 친척의 건강과 안전을 뼛속깊이 염려하게 되었다는 발상이다. 즉 어떤 경우에는 자식들의 생존, 심지어 가까운 친척들의 생존을 위해 자기 자신의 희생을 통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친척들이 많을수록 행동에 나설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그럴 듯하다. 가까운 친척과 방계 가족의 더 큰 유전자 풀이 살아남도록 자신의 유전자를 유일하게 보유한 자(즉 당신을) 죽게 한다는 것이다.
(아파야 산다, p.148)
 
그런데, 동성애가 위의 예처럼 개인의 번식보다는 집단의 생존율에 관심이 많은 유전자의 전략이라는 가설들이 존재한다. 그 중, 동성애와 진화의 상관관계를 연구한진화의 무지개에 따르면 동성애가 집단의 생존율을 높이는데 기여함으로서 동성애로 인한 낮은 번식이라는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한다. 동성애자들이 가족 내에서 형제자매의 양육을 담당하였으며 사회적 관계에서는 동성애를 통한 평생의 우정과 동맹을 통해 집단을 보호할 수 있었다는 이론이다. 우리의 유전자 안에는 개체의 희생을 통해 집단을 번식시키고 생존시키려는, 생각보다 고귀한 이타성의 본능이 들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게이 삼촌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동성애가 집단의 생존율을 높이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게이 삼촌이론은 동성애자 형질이 실제 번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동성애자 본인이 아닌 여성 쪽 친족의 번식에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통계에 따르면 남성 동성애자의 여자 형제들은 이성애자인 오빠나 남동생을 둔 여성보다 더 많은 자식을 낳을 수 있다. 그러니까 남성 동성애자는 자신의 번식을 희생하는 대신 유전자를 반씩 나눈 누이의 번식을 도움으로서 그 유전자를 계속 퍼트릴 수 있다는 얘기다.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 p.189, 강신익, 페이퍼로드)
 
집단적이건 개별적이건 위 두 가설은 유전자의 전략이 얼마나 치밀하고 다양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말그대로 가설일 뿐이지만, 이것은 유명한 한 바구니에 모든 계란을 담지 말라는 고전 경제학적 충고를 유전자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전략은 아마 그동안 대규모적으로 여러 차례 일어난 환경변화로 인해 임의의 점진적인 변화로 인간이 생존할 만한 적응 형태가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번식의 다양한 경우의 수를 준비해두려는 생명의 선택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게이삼촌 이론이 어떤 특정한 동성애 유전자 형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현미경으로 무지개 깃발을 든 X-207T 게이유전자를 찾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유전자들은 서로 협력하는 것이 분명하다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의 운명이나 건강, 심지어는 눈의 색깔까지도 각각의 유전자가 아니라 여러 유전자들의 연합 작용에 의해서 결정된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p.434)
 
유전자는 단백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지침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전자는 피아노 건반과 비슷하다. 여러 개의 피아노 건반을 함께 두드려서 연주하듯이, 유전자들을 합쳐놓으면 무한히 다양한 화음과 멜로디를 창조할 수가 있다. 모든 유전자들을 합쳐 놓으면, 인간 유전체라고 알려진 위대한 교향악이 되는 셈이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p.428)
   
 
동성애를 포함한 모든 생물의 특질은 기호화된 하나의 유전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필요에 의해 유전자들의 협동 전략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이 전략은 때로는 느닷없고 뜬금없는변이로, 혹은 빈자리를 수습하기 위한 땜장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모든 생명은 생존을 위해 스스로 분투하는 능력이 있고 자신의 생명력을 최대화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동성애()도 여러 유전자의 협연으로 탄생한 하나의 완벽한 협주곡이자 진화의 최종산물인 것이다. 45억년동안 지구상의 생명체가 그 개체수 만큼 다양하고 아름다운 오케스트라를 연주해왔고 끊임없이 변주해 왔다.
 
 
3) 원자적 생존법
 
당신의 몸 속에 있는 원자들은 모두 몸 속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몇 개의 별을 거쳐서 왔을 것이고, 수백만에 이르는 생물들의 일부였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부처와 칭기즈칸, 그리고 베토벤은 물론이고 여러분이 기억하는 거의 모든 역사적 인물로부터 물려받은 것들도 각각 수십억개 씩은 될 것이다그러니까 수명이 상대적으로 짧은 우리들은 모두 윤회하고 있는 셈이다원자들은 실질적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p.148)
 
내 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머나 먼 과거로부터 온 모든 것들이 들어있다. 멀고 먼 신화 속 세계, 한 때는 야생염소였고 곰이었던 세계로부터, 부처와 칭기즈칸의 몸을 이루고 있던 원자만이 아니라 무수한 이름 없는 사람들, 이성애자, 양성애, 동성애자까지 온갖 종류의 사람의 원자가 내 몸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순수한 이성애자라 확신할 수 있는가. 킨제이의 연구에 따르면 절대적인 이성애자와 절대적인 동성애자 사이에, 양성애자를 포함하여 정도의 차이에 따라 이성애적 기질과 동성애적 기질이 혼재함을 보여주었다. 동성애와 이성애가 구분된다고 보기보다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고 개개인의 차이가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성적지향성이 복잡할 뿐 아니라 그 변화는 예측불가능하기도 하고, 인간의 성을 한마디로 딱 잘라 규정하고 범주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몸 안에 얼마나 다양한 지층과 힘의 충돌이 있는가”(곰샘)를 생각하게 한다. 내 안에 어떤 내가 들어있는지 나도 나를 모르는 것이다. 이것은 내 몸을 이루고 있는 원자라는 놈이 근본적으로 알 수없는 놈이기 때문이다. 원자의 불확정성은 세상이 확률로만 존재한다는 것을, 이 세상 모든 것의 생주이멸이 우연의 소산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원자적으로 보면 동성애도 확률로 존재해 왔고 우연의 소산일 뿐이다. 확실한 건 그들이 존재하는 모든 것과 똑같이 “92개의 원소라는 칵테일재료로 완벽하게 조합을 이루고 살아있다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으면 소멸한다. 먼지조차 완벽하다”(문탁)
 
 
원자.jpg

  우리는 원자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재밌는 상상을 했다. 이 작은 아원자의 세계에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힘들이 존재한다. 약력과 강력이다. 일반 상식으로는 다른 극 끼리는 끌어당기고, 같은 극끼리는 밀쳐내는데 신기하게도 이 일반적인 규칙을 벗어나는 것이 강력이다. ‘강력은 양성자들이 서로 뭉쳐서 원자핵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약력은 중력보다 10억배의 10억배의 10억배 만큼 더 강하고, 강력은 그 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정말 우리로서는 상상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물질과 생명의 시작인 원자 안에 같은 극끼리를 묶어 주는 상상도 못할 엄청난 힘이 존재한다는데, 같은 성끼리 끌리는 동성애가 존재한다는 것이 무에 그렇게 이상한 일이겠는가. 잠시 옆길로 가 성적(性的) 관점에서 벗어나보자. 시야를 넓혀 우리의 삶을 살펴보더라도 동성 간의 강력한 끌림의 증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대부분의 경우 일생에 걸쳐 동성들과 다양한 형태의 관계망을 만들고 그 안에서 살아간다. 번식이 가장 중요한 특정한 시기를 제외하면 동성들과의 관계를 통해 사회성이나 우정, 소통의 기술 등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능들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자신을 알아주는 지기를 위해 생을 송두리째 바치는 숱한 이야기들을 떠올려 보라. 그것은 충이나 효같은 도덕적 규범과는 전혀 다른 윤리적 가치였다. 가장 드높은 파토스를 수반하는 공명과 촉발의 기제, 그것이 우정이었다. 그러니 한번 정분나면 가족보다, 연인보다 더 강렬하게 삶을 지배하게 된다.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p.132)
 
 
이 공명과 촉발의 힘을 우리도 경험하곤 한다. ‘주는 것 없이 미운사람’, ‘받는 것 없어도 좋은 사람같은 것이다. 이 불가해한 무조건적인 끌림과 화학작용의 근원이 원자들의 공명과 진동은 아닐까. 미세한 원자 안에서도 너무나 다양한 힘들이 작용하고 있다. 양성자, 중성자, 전자뿐만 아니라 밝힐 수도, 알 수도 없는 힘들이 서로 끌고 밀어내며 존재하고 있다. 이 힘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공명하고 영향을 미친다. 사랑으로, 우정으로, 동성애로, 이성애로 혹은 또 다른 무수한 사건의 힘으로. 동시에 원자의 세계는 이 세상이 힘과 힘의 전쟁터라고 말한다. 사랑도 우정도, 동성애도 이성애도 힘과 힘의 길항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할 수 없는 힘들의 작용. 그래서 늘 변하고 불확실하다. 고정된 건 없다. 원자의 세계에선 동성애! 너 누구냐고 물을 필요가 없다. 고정된 본질은 없기 때문이다. 그저 지금 여기에서 각자 자기 생긴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갈 일뿐이다.
 
 
, 내 안에 있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명의 지상명제에서 벗어난 아웃사이더, 즉 번식을 선택하지 않은 동성애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가 우리의 질문이자 주제였다. 우리는 확실한 답을 찾고자 했다. ‘과학적으로확실하게 언급된 무엇인가가 있겠지 하는게 시작할 때의 마음이었다. 막상 글쓰기에 들어서자 가설들뿐인 자료들 사이에서 당황하고 혼돈에 빠졌다. 아니, 이 최첨단 과학의 시대에 동성애에 대해 이렇게 명확한 게 없다니. 확실한 거라곤 우리가 동성애자의 존재근거’(~)를 찾고 있는 순간에도 그들은 눈앞에서 말을 걸고, 결혼식을 올리며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더 이상 확실할 수 없는 근거를 앞에 두고도 그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뭔가 확실한 언급이 있어야 그들 존재의 증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서양사상에 세뇌가 되어있어 습관적으로 뭔가 확실한 걸 찾으려한다”(곰샘)는걸 그대로 보여준 글쓰기의 여정이었다. 이러한 태도의 근저에는 주류인 이성애자의 시선을 견지한 채,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인 소수자를 옹호한다는 오만함도 깔려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와는 다른 타자였던 동성애()’를 이해하기 위해 자연과학과 인류학의 시선으로 다가가려 했던 과정에서 오히려 우리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들도 우리도 하나의 생명으로서 오직 살기 위해 분투할 뿐이었다. 생명의 지상명령인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사회문화적으로는 타자를 내 안의 다른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유동적 지성과 대칭성사회의 지층을 되찾아야 함을, 생물학적으로는 임기응변의 땜빵을 위한 눈물겨운 협동과 동맹의 전략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원자적으로 본 동성애는 나의 일부였고 그 자체로 완벽한 존재였다. 또한 고정된 것 없는 불확실한 원자의 세계는 지금 이 자리 이 순간을 다시 보게 했다. 확실한건 그들도 우리도 살아라하는 존재의 명령에 따라 생명 그 자체로 지금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연인이 될 뻔 했던 왕자님으로, 다정한 내 곁의 친구로, 당당한 게이 부부로서 말이다. 동성애건 이성애건 있지도 않은 본질에 대한 질문을 붙들고 망상의 세계를 떠돌지 말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불완전한 존재로서 좌충우돌하며 살아가라는 소리였다. 우리가 들여다 본 어느 세계에서도 홀로 존재한다는 건 애초 없었으니까. “모든 생명은, 살아라, 이거 말곤 없다.”(곰샘)
 
 
 
민들레꽃.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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