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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타마 싯다르타, 인간에게서 神을 해방시킨 최초의 인간
 글쓴이 : 경금 | 작성일 : 13-10-23 10:43
조회 : 7,377  
신화에서 역사로
 
 
경금(감성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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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바남프리야 다르시 왕은 즉위 8년에 칼링가를 정복했다. 그때 십오만 명이 추방되고, 십만명이 살육되었다. 그러나 칼링가 정복 후, 데바남프리야 다르시는 법(다르마)를 배우고 법을 사랑하는 일에 전념했으며, 법의 가르침에 헌신하게 되었다. 이제 데바남프리야 다르시는 칼링가의 정복에 대하여 깊이 후회한다. …… 이제 데바남프리야 다르시는 무조건적인 학대를 가져오는 무력에 의한 정복이 아니라, 법에 의해 합법적인 절차를 따른 정복이야말로 최선의 정복이라고 생각한다.
1837년 인도를 식민지배 하고 있던 영국의 한 관리는 북부의 두 지역에서 붉은 돌기둥에 새겨진 석문을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대체 데바남프리야 다르시는 누굴까? 이 수수께끼가 풀리는 데는 80년이 걸렸다. 1915년 학자들은 또 다른 석문을 발견했는데 거기에 해답이 새겨져 있었다. 데바남프리야는 “신들이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자”, 즉 아소카 왕(BC269~232)이다. 이 석문이 새겨진 유물이 ‘아소카 석주’로 유명한 돌기둥이다. 아소카 왕은 본디 힌두교도였지만 칼링가 정복 이후 불교로 개종하고 불교를 국가적으로 장려했을 뿐 아니라, 아시아 곳곳에 사신을 파견해 불교 전파에 힘썼다. 부처의 진신사리와 그 제자들의 사리가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아소카 왕대에 건설한 수만 기의 스투파(탑) 덕분이다. 아소카 석주의 발굴로 이 석문과 5세기 동진시대 승려 법현과 7세기 당나라 승려 현장, 신라 승려 혜초의 견문록을 대조하여 유적지에 대한 발굴 작업이 본격화했다. 이로써 고타마 싯다르타는 단지 인도 고대철학에서 강조하는 이상적 인간형의 상징 정도로 해석되던 존재에서 역사적 실존인물로 부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캬국 태자, 고타마 싯다르타
 
사캬국(음역하면 석가국)의 마야 왕비는 당시 관습에 따라 친정에 해산하러 가는 길이었다. 초파일로 기념되는 음력 4월 보름즈음이었으니, 봄이 한창 무르익은 때였다. 왕비의 가마를 모시고 가던 일행은 도중에 도착한 룸비니 동산의 아름다운 정경을 지나치지 못하고 잠시 쉬어가고자 했다. 마침 왕비가 가까이 있던 보리수나무의 꽃을 만지려는 순간 산기가 느껴져 급히 산실을 마련했고 곧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마야 왕비의 오른쪽 옆구리를 뚫고 나왔다. 울음을 터뜨리는 대신, 동서남북상하 여섯 방위를 향해 각각 일곱 걸음을 걸은 다음, 한 손으로는 하늘을, 다른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면서 말을 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사캬족의 작은 왕국에 태자가 태어난 것이다. 태자의 탄생은, 이가 여섯 개인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왔다는 태몽만큼이나 상서로웠다. ‘심장 높이’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대자대비한 인품을 상징한다. 그리고 아이는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예언하듯, “천상천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 삼계가 다 고통이니 내가 마땅히 그들을 편안하게 하리라.”고 말한다. 사캬국의 왕과 왕비는 오랜 기다림만큼 특별한 아기를 얻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룸비니 동산 저 멀리에서는 머리에 만년설을 인, 신들의 산, 수미산으로도 불리는 히말라야가 장엄하게 솟아 있었다.
 
싯다르타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부왕 숫도다나는 백 명의 사제들을 불러 잔치를 열고, 아이의 미래를 물어보았다. 그중 여덟 명은 아이에게 영광스러운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고 예언했는데, 이들의 의견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일단은 최고의 영적 깨달음을 얻는 붓다가 될 것이라 했고, 나머지 일단은 ‘세상의 군주’가 되어 천하를 통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당시 인도 북부에는 종족 중심의 소국들이 난립했는데 사캬국도 그중 하나였다. 약소국에 지나지 않는 나라가 태자로 인해 코살라나 마가다 같은 제국을 능가하여 온 천하를 다스리게 될지도 모른다는데, 무얼 더 바라겠는가. 숫도다나 왕은 태자가 깨달음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보다는 세상의 군주, 천하를 호령할 인물로 장성하도록 온 힘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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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깨달음을 위한 큰 버림
 
부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싯다르타는 29세에 출가한다. 출가를 결행하기 전까지 싯다르타의 생애는 ‘쾌락의 궁전’과 ‘사문유관四門遊觀’이라는, 두 개의 고사로 이야기되곤 한다.
 
쾌락의 궁전은 숫도다나 왕이 싯다르타 태자가 열여섯 살이 된 해에 지어 준 세 개의 계절궁전을 말한다. 일국의 태자이니 최상의 삶을 누리는 건 당연지사인데, 그 속사정은 그리 간단치가 않았다. 부왕은 물론 사캬국 전체는 태자가 출가 구도자가 되는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싶었다. 붓다가 되는 것도 거룩한 일이지만, 제국의 사업을 성취할 ‘전륜성왕轉輪聖王’의 길에 비하면 하잘것없어 보였다. 평민의 자제도 아니고, 왕의 태자가 그처럼 대단한 운명이 예정되어 있다는데 누군들 그 예언에 초탈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태자의 출가를 막자면 세속의 것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구속력을 갖는 것들로 태자의 감각과 사유를 마비시켜야 했다. 숫도다나 왕은 혼례도 서둘렀다. 만일을 대비해야 한다면 세손을 일찍 얻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비책이 될 것이었다. 싯다르타 태자가 머무는 계절궁전에서는 지상의 안락과 향락과 쾌락이 끊일 날이 없었다. 하지만 출생부터 남달랐던 태자는 생각이 잠기는 나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십 년이 흘렀다.
 
인도에 진정한 붓다가 나타나기를 기다린 것은 인도 민중들만이 아니었다. 인도의 온갖 신들도 진정한 담마(法, 진리)를 가르쳐줄 큰 스승이 나타나길 염원하고 있었다. 드디어 싯다르타 태자를 주시하던 신들이 나서기로 한다. 태자의 궁전 주변은 감시가 삼엄하였다. 허나, 신들에게 그런 것이 장애물이 되겠는가. 태자가 수레를 타고 궁전의 동문에 다다랐을 때 신이 처참한 몰골의 노인(老)으로 변하여 나타났다. 태자가 남문에 이르렀을 때 신은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병자(病)로 변신했고, 서문으로 갔을 때는 끔찍하게 썩어 가는 시체(死)와 맞닥뜨리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태자가 탄 수레가 북문에 이르렀다. 신은 사문으로 변하여 걸식을 하고 있었다. 동서남문에서 마주친 광경과 달리, 북문의 수행자에게서는 어떤 고통(苦)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비록 그가 남루한 넝마를 걸치고 바리때에 음식을 구걸하고 있었지만, 위의가 당당했으며, 눈빛은 맑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싯다르타는 시자에게 저 사람은 무얼 하는 사람인지 물어보았다. 시자가 답하길, 그는 출가사문이며 욕망과 집착의 뿌리를 끊고 모든 두려움을 없앴으며, 오직 선한 법을 행하고 모든 중생에게 큰 자비의 마음을 베푸는 이라고 했다.
 
사문유관을 겪고 난 후, 싯다르타는 부왕에게 출가의 결심을 밝혔다. 부왕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이 되었지만 눈물로 아들을 만류해보기도 했다. 부왕은 출가를 포기한다면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겠노라고 마지막으로 애원했다. 싯다르타는 이렇게 답했다. “제 소원은 죽음을 뛰어넘는 일입니다. 늙고 죽어가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다면 저는 이 자리에서 출가의 뜻을 버리겠습니다.” 태자의 대답에 숫도다나 왕은 말문이 막혔지만 그 뜻을 꺾을 수 없음을 마침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싯다르타 태자는 야음을 틈타 몰래 성을 빠져나왔다. 막 태어난 아들 라훌라가 있었기에, 양친과 부인 야소다라에 대한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샤카국의 태자 고타마 싯다르타, 그는 29세의 나이에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사문의 길로 나아갔다. 많은 이들이 가족과 부귀와 세속의 영화를 버리고 간 길이었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이루지 못한 그 길에 손수 나선 참이었다. 싯다르타 자신은 물론, 모든 생물과 뭇 중생이 생로병사라는 고통의 바다에서 해탈하는 길, 거기에 이르는 담마를 찾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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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 시대’ 인도가 낳은 지적 혁명가
 
고타마 싯다르타는 출가 후 6년의 수행 끝에 ‘중도의 수행법’을 깨우쳐 마침내 일체의 괴로움(苦, 둑카)에서 벗어나는 담마를 얻었다. 깨달은 뒤의 싯다르타를 흔히들 고타마 붓다라고 부른다.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스승은 3만 2천 년마다 한 번씩만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니 고타마 붓다는 ‘지금 우리 시대의 붓다’이기도 한 것이다.
 
앞서 사문유관 고사에서 보았다시피, 당시 인도에는 많은 성인남자들이 출가사문이 되었다. 때는 바야흐로 기원전 6~5세기 무렵, ‘축의 시대’로 일컬어지던 시기였다. 축의 시대에 인도는 중국, 메소포타미아, 지중해 지역과 마찬가지로 큰 변동의 시기였다. 기원전 2000년 이후 인도 북서부로부터 인도 아대륙을 점차 남하하면서 이곳을 정복하기 시작한 아리아인은 그들의 경전인 『베다』의 말씀으로 피정복민을 다스리고 통치를 합리화해 왔다. 그것을 브라만교(바라문교)라고 부른다. 이른바 ‘카스트’(인도인은 ‘자띠’라고 함)로 알려진 신분차별도 『베다』의 율법에 근거한 것이다. 지배계급의 종교이자 통치철학이기도 한 브라만교는 축의 시대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이르러 그 권위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브라만 계급은 경전 해석의 배타적 권위를 바탕으로 세속의 부귀와 영화를 독점해 왔다. 민중은 베다의 신이 베푸는 은총에서 늘 제외된 대상이었다. 재산을 헐어 아무리 큰 희생을 올려도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또한 결코 그 은총을 기대해볼 수 없는 처참한 계층도 존재했다. 민중은 세속의 이 같은 부조리함에 서서히 각성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인도에만 한정되지 않는 거대한 인류사적 대흐름이 존재했다. 이것을 일컬어 축의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축의 시대(Axial Age)’란 본래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제시한 문명사적 개념이다. 그에 따르면 축의 시대는 고대종교의 기틀이 마련된 때다. 이전의 원시종교들이 신화와 혼융된 토테미즘에 가까웠다면, 축의 시대 이후 형성되는 종교들, 즉 지금의 세계 4대종교가 하나의 완정한 체계와 교리를 갖추게 되는 때가 축의 시대라는 것이다. 또한 영국의 비교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이 『축의 시대』에서 정의하는 ‘축의 시대’는, 대략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200년 사이 비교적 폭넓은 시기를 포괄하며,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세계의 네 지역에서 이후 계속해서 인류의 정신에 자양분이 될 위대한 전통이 탄생”한 때. 세계의 네 지역과 위대한 전통은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중국의 유교와 도교, 근동의 유일신교, 그리스의 철학적 합리주의를 가리킨다. 시공간적으로 대단히 방대한 그의 연구가 발견한 것은 하나의 탁월한 문장으로 압축될 수 있다. “인류는 한번도 ‘축의 시대’의 통찰을 넘어서지 못했다!”
 
암스트롱의 책에 의하면, “축의 시대는 기록된 역사 가운데 지적 ․ 심리적 ․ 철학적 ․ 종교적 변화가 가장 생산적으로 이루어졌던 때”이다. 누가 있었던가? 붓다, 공자, 소크라테스, 예레미야 등 이들은 시대를 한참 앞서가는 비전을 제시하였기에, 과연 지금 우리는 축의 시대가 우리 시대로 보낸 큰 스승들의 가르침을 여전히 참조하고 있다. 서로 다른 네 지역에서 인류사 차원의 지적 혁명이 공통적으로 발생한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친숙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상황으로 이해해보자. 공자가 이상적인 나라로 꼽는 주가 무너지고 제후국들이 난립하게 된다. 약 550년의 춘추전국시대, 대혼란의 시기였으나, 혼란은 새로운 질서를 찾아가는 과도기적 현상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는 대격변기였지만, 경제적으로는 철제 농경기구의 사용이 확대됨에 따라 작물 소출이 꾸준히 증대되어 왔다. 잉여작물을 내다팔기 위한 교역로가 개척되고 교역을 주로 담당하는 상인들이 생겨났으며, 국가간 교역도 점차 활발해지고 있었다. 상인들이 거래를 위한 시장을 만들게 되면서 고대도시들이 형성되어 갔다.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변동은 전통적 사회가치와 질서체제를 흔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인도의 경우, 『베다』 경전으로부터 발전한 브라만교의 권위가, 상업활동으로 부를 축적한 상인(장자)에게로 이동하고 있었다. 고타마 붓다가 태어난 사캬국의 수도 카필라밧투는 당시 형성되었던 중요한 무역기지 중 하나였다. 후일 붓다의 상수제자가 되는 사촌동생 아난다는 출가하기 전 무역상인이었다. 요컨대, 축의 시대는 지축이 각도를 트는 것에 비견될 만한 인류사의 대격변기였다. 인간은 이전까지 순응해 오던 관습과 도덕, 신앙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고, 지적 혁명가라고 할 만한 소수의 선각자들은 인류의 공동체와 정신세계에 던져진 대혼돈 속에 새로운 횃불을 밝히려고 했던 것이다.
 
 
神에서 唯我獨尊으로
 
불교가 종교로서 독특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은, 축의 시대 이후 근동에서 형성된 유일신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와 비교해보면 뚜렷해진다. 불교에는 신의 개념이 없다. 신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나 사후의 유토피아를 그리는 내세 관념도 없다. 불교는 중국의 유교나 도교(도 현대적 의미의 종교는 아니다)가 갖는 정치철학적 기능이 탈각되었다는 점도 독특하다. 불교의 교리는 ‘연기緣起(혹은 空)와 ‘무아無我’의 가르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에게 의탁하지 않는 유별난 종교. 오직 인간, 너의 힘으로 ‘연기’를 깨달아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둑카(苦)에서 완전히 벗어나 닙바나(涅槃)에 이르라고 가르치는 종교. 그래서 마음을 유난히 강조하는 종교. 그래서였을까. 니체가 붓다를 심리학자라고 했던 이유가. 불교의 이러한 특성은 고타마 붓다가 담마를 깨달은 방법에서 기인하는 것이기에 오로지 그의 업적이라고 할 만하다. 다만, 축의 시대 인도의 상황 한 가지만 더 알아둔다면 불교의 현세적 측면을 보다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원래 인도에서 출가의 전통은 브라만교의 관습에 따른 것이었다. 지배계급의 남자들은 일정한 연령에 이르면 출가하여 영적인 수행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그러던 것이, 브라만교의 권위가 실추되면서 출가의 전통도 해이해졌다. 축의 시대에도 출가자들은 끊이지 않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요가 같은 전통적인 수행방법을 따르되 더 이상 브라만교도가 아니었다. 이 새로운 지적 탐색의 흐름이 사회체제와 지배적 가치에 강력한 도전이 될 수 있었던 힘은 출가사문들이 부와 사회적 지위를 갖춘 남성이었다는 사실에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신을 필요치 않았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브라만교의 특색도 한몫을 한다. 브라흐마(梵天)라고 하는 우주의 근본원리와 개인의 존재적 본질인 아트만(我)은 동일하다는 범아일여梵我一如가 종지를 이룬다. 범천은 붓다의 성도와 전도에도 등장하여 신의 뜻을 전하지만, 유대교나 기독교의 유일신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후자의 유일신은 지상과 천상이 엄격하게 구분된 세계에서 인간을 초월한 시공간의 지배자이며 그 초월적 능력으로 정한 규칙을 복음의 이름으로 인간에게 강제한다. 그러나 붓다의 생애 이야기를 담은 경전들을 읽다 보면 범천의 목소리는 존재의 내부에서 발신된 것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마치 동양의 사상이 대자연과 소우주의 유비적 관계하에서 사유되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이처럼 불교는 근본적으로 유일신과는 거리가 먼 인도 특유의 종교적 전통의 영향 아래 있었던 것이다.
 
출가사문들이 형성한 교파 가운데 고타마 붓다의 성도成道 이전까지 ‘육사외도六師外道’라 불리는 여섯 개의 유파가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주로 마가다국과 코살라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육사외도 중 한 유파는 불을 숭상하기도 했지만, 유일신을 전제하는 종교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당시 북인도에서 일어난 신진 사상들은 이러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이해했을 것이다. 이제 고타마 붓다가 탄생 직후 했던 말을 재음미해볼 시점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붓다는 그토록 ‘무아’를 강조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구절의 핵심어는 ‘我’다. 여기서 ‘아’는 깨달음의 주체일 뿐, 사물이나 자연과 확고히 분리된 근대적 주체 혹은 인간중심적 주체가 아니다. 붓다가 말했다고 하여 그 자신을 가리키는 건 더더욱 아니다. ‘범아일여’의 ‘아’와 근본적으로 같으므로, 인간만을 지칭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지렁이, 사마귀, 참새, 가축, 수드라, 바이샤, 브라만 등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난 존재는 모두 홀로 고귀하다. 모두 천지간의 진리, 즉 담마를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귀한 존재들이 삼계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은 캄마(業)에 가리어, 어둡고 어리석은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체의 세속적 욕망을 끊고 수행에 전념하여 내 안의 부처를 발견해야 한다. 그것이 ‘삼계개고 아당안지’의 의미이며, 그때 우리는 생로병사의 고해苦海로부터 벗어나, 욕망의 불꽃을 완전히 불어서 끈 상태, 즉 닙바나를 증득하게 된다.
 
고타마 붓다 이전까지 인도인들은 현세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기 위해 오로지 브라만 사제가 주관하는 제의에 희생을 바치거나, 베다 경전들이 전하는 수행법을 따르거나, 고행림으로 들어가서 고행을 하다가 죽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붓다는 오로지 한결같은 마음에 의지해 내 힘으로 깨달음을 성취하라고, 누구나 그것을 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당신 스스로 해보았기 때문이다. 세상 최고의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살던 자신도 한 일을 너희들이 못할 리가 있겠냐. 붓다는 애써 신을 부정할 생각도 없었다. 그는 애초부터 거기에 무관심했다는 점에서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결과적으로는 신 혹은 어떤 초월적 힘을 인간에게서 해방시킨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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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르쳐 준 스승
 
붓다는 태자 시절 쾌락의 극단을 맛보았고, 출가 이후에는 고행의 극단을 경험했다. 세간世間의 극과 출세간出世間의 극을 오간 셈이다. 여러 스승과 사문들에게서 다양한 수행법을 배웠지만 어느 방법을 통해서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마침내 양극단에서 벗어난 ‘중도中道’의 길을 찾아냈고, 중도가 이끄는 고요한 선정 속에서 ‘연기緣起’라는 삼라만상의 진리를 구했다. 출가 후 6년 만이었다. 그만큼 붓다의 담마를 깨우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담마를 가르친다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한동안 전도에 나서기를 주저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래如來(완벽한 자)여, 당신이 설교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영영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곤 떠올렸다. 몰래 성을 떠나 출가하면서 다짐했던 비장한 맹세를. 성도한 뒤에는 반드시 돌아갈 것이라고 했던 그 맹세를.(도법, 『내가 본 부처』, 호미)
 
붓다는 개인적 차원의 해탈에 만족하려고 출가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열두 살이 되던 해 봄, 왕실의 농경제에서 보았던 생명들의 숙명적 고통을 잊지 않았다. 사문유관에서 마주친 천민의 비참한 실상은 왕족의 안락한 삶과 얼마나 커다란 모순이던가. 왕국의 현실과 세상의 이치가 이러한데도 부왕은 아들이 전륜성왕이 되기를 여전히 바라고 있을까. 깊은 생각 끝에 붓다는 전도의 길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는 80세로 빠리닙바나(般涅槃: 최후의 닙바나. 깨달은 이가 죽으면서 성취하는 최후의 안식)에 들기까지 45년 동안 갠지스 강 일대의 여러 도시들을 주유하면서 가르침을 펴는 일생을 살았다.
 
붓다가 이끄는 상가 공동체로 많은 이들이 찾아와 귀의했다. 붓다는 가르침을 펴는 내내 곧잘 이렇게 묻곤 했다. “그것이 너에게 어떤 이익이 있었느냐?” “그렇게 하여 너는 실제로 이익을 얻었느냐?” 깨달음과 이익을 결부하는 이 체계에서 우리는 불교의 독창성과 붓다의 담마가 지닌 실천적 면모를 엿보게 된다. 내세의 행복이나 사후의 천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당장 너의 번뇌가 소멸되었느냐고 묻는 저 현세적이고 실용적인 철학. 물론 “축의 시대 인도에서 지식은 사람을 바꾸는 힘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통상 붓다의 가르침을 성문화된 경전을 통해 접하게 되는 우리로선 다른 지식들과 마찬가지로 현학적으로 해석하기 쉽다. 당시의 생생한 현장성을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붓다는 자신의 담마에 대해 독특하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그것은 “아주 먼 시대에 인간들이 다니던 길, 아주 오래된 길, 고대의 길”이며, 세월이 흐르면서 희미해지고 결국 완전히 잊혀진 것을 내가 발견했을 따름이다. 내가 현시대에 이것들을 ‘깨닫고’ 내 삶에서 현실로 만든 첫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 붓다의 주장이라는 것이다. 다시 되새겨 보자. 흔히 진리라고 하면 활자로 박힌 명확한 물성만큼이나 그것의 실체성을 신봉하기 쉽다. 그러나 붓다의 진리는 몇 문장의 명제로 정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보여준 것은 진리 자체가 아니라 진리에 이르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연기緣起, 사성제, 팔정도, 삼법인, 계정혜 등. 이들은 모두 붓다가 제시하는 방편들이다. 붓다는 분명히 강조했다. 닙바나를 경험했다고 하여 번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 번뇌를 苦로 인식하는 몸과 마음의 작용이 멈추는 것이라고. 인간은 깊은 수행의 단계에 이르면 초월적인 상태를 경험한다. 그럼에도 인간이 몸이라는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마저도 소멸하는 닙바나 혹은 빠리닙바나에 들 때야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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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축의 시대가 우리 시대로 보낸 큰 스승이다. 닙바나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경지다. 체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노라고, 붓다 생전 깨닫지 못한 여시아문如是我聞의 주인공, 아난존자도 그렇게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붓다가 많은 대중과 나누고자 한 그 길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은 아직 없는 듯하다. 그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붓다는 비전秘傳을 원치 않았다. 오히려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괴롭다면 내가 걸어본 길을 너희도 걸어 보라. 그리고 당장 이익을 얻으라. 붓다가 빠리닙바나에 드시기 전 남긴 유언, 나에게 의지하지 말고 담마에 의지하여 쉼없이 정진하라고 한 말씀, 다만 이것이 변치 않을 진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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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명도   2013-11-04 18:42:02
 
안녕하세요~ 석가는 우리에게 자기를 따르는 부하가 되지 말고 자기와 같이 되라고 가르쳤지요. 왜냐면 모든 이에게 전부 불성, 자성이 있으니 그걸 확인하라고 설했습니다. 그냥 진실, 진리를 바로 됩니다. 그래서 결국 꽃 하나를 들었고요. 법등명 자등명 이라고 했지요. 법을 등불 삼아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보물을 보라.....했지요.
우공이산   2013-10-30 11:43:28
 
제목글이 워낙 획기적이고 대담해서 집착하나 봅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우공이산   2013-10-24 10:52:05
 
* 비밀글 입니다.
     
경금   2013-10-29 14:53:39
 
우공이산님, 댓글 읽기가 늦었네요...
그러니까 그것이 아직 자주독립할 단계가 아니 되어서요... 에궁...
아직은 이리저리 엮어 보는 단계. 제 사유도 깊지 않구요. 딱 저만큼 입니다, 현재 스코아가. ^^
우공이산   2013-10-23 15:46:28
 
그리고 제목글에서  '인간에게서 신을 해방시킨 것'이 아니고 '신에게서 인간을 해방시킨 최초의 인간'이라고 해야 더 적절하지 않을는지요?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건가요?
     
경금   2013-10-23 17:46:07
 
흠, 네 의도적인 거였습니다만, 좀더 설명이 되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붓다가 성도했을 때, 내가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라고 하지 않고, 그것이 해방되었다, 라고 했다지요. 이 연기적 화법에 주목한 건데, 충분히 못 살렸어요. 곰샘께 지적받은 것도 그 부분인데, 제목을 한 번 더 언급하는 정도밖에는 수정을 못했답니다. (역량부족) ㅠㅠ
우공이산   2013-10-23 15:41:33
 
좋은 글입니다.
'번뇌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번뇌를 고로 인식하는 몸과 마음의 작용이 멈추는 것'
육신을 입은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경계.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부처님 주위에는 온갖 신들이 들끓고
급기야 부처님 자신도 신으로 모셔지는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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