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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도 너무 다르다 (『서유기』의 삼장과 『원효대사』의 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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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4-07-12 15:38 조회7,83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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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도 너무 다르다
『서유기』의 삼장과 『원효대사』의 원효
 
 
장이아(감이당 대중지성 2학년)
 

『서유기』 (오승은, 서울대학교 서유기 번역 연구회 옮김, 《서유기》, 솔)는 당나라 승려 현장(600-664)이 인도 불경 원전을 얻기 위해 17년에 걸쳐 50여개의 나라를 여행하며 겼었던 일을 기록한 『대당서역기』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서유기』의 삼장법사는  곧 현장을 모델로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광수의 『원효대사』 (이광수, 《원효대사》, 화남출판사)의 원효(617~686) 역시 우리나라 불교 역사에서 매우 유명한 실제 원효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여기에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당시 현장이 신라에 꽤나 유명한 사람이었는지 원효는 현장에게 유식학을 배우고자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갈려고 했다는 것이다. 요동에서 고구려 순라군에게 잡혀 둘의 만남이 성사 되지는 않았으나, 현장은 당에서, 원효는 신라에서 불교, 그것도 대승불교를 중심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현장이 원효라는 존재를 알았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원효는 현장을 알고 있었고 그의 제자가 되려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들이 현장은 1500년경 소설 『서유기』 의 삼장으로, 원효는 근대가 한창 진행되던 1940년, 우리나라 근대 문화의 유행을 주도하고 있던 이광수 『원효대사』의 원효로 다시 태어났다. 이에 두 작품 속 삼장과 원효를 통해 근대 이전과 근대 인식론에 어떤 차이들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삼장법사와 원효대사.jpg
 
삼장법사와 원효대사

 
 
찌질남 삼장과 능력남 원효
 
삼장은 “어려서 승려가 되었고,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계를 받았지요. 그 분의 외조부는 당시 왕조의 일로총관 은개산이요. 부친 진악은 장원 급제해 문연진대학사에 임명되셨지요. 하지만 그 분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귀영화를 좋아하지 않고 그저 열반에 들기 위한 수련만을 좋아하셨어요. 조사해 본 결과 그 분은 출신도 좋고 덕행 또한 높은 경지에 이르렀으며 수많은 경전을 통달하여 불호건 선음이건 못하는 것이 없”(서유기 2권, 31쪽)는, 바로 그런 분이다. 출신도 좋고 덕행도 높은 이 분, 황제의 명을 받아 서역으로 불경을 가지러 간다. 그런데, 첫날부터 심상치 않다. 조급한 마음에 지나치게 이른 새벽부터 길을 나서더니 결국 길을 잃고 요괴에게 잡혀간다. 서역으로 가는 길 내내 심심치 않게 등장해 주시는 관음보살의 도움으로 일단 요괴에게 벗어났다. 그 후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제자 셋에 백마까지 얻어 타고 길을 계속 간다. 하지만 요괴가 등장하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잡혀간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마치 그것이 그의 할 일인 냥. 잡혀가서 그가 하는 일이란 묶어서 우는 일밖에 없다. ‘뛰어난 계책으로 그 곳을 탈출하는’ 우리가 보아온 대개의 주인공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저편에 바람막이로 박아둔 말뚝 위에 삼장법사가 밧줄에 묶여 손오공과 저팔계가 어디 있는지 몰라 애를 태우며 울고”(서유기 2권, 42쪽), “수놓은 비단 옷을 입은 몇 명의 계집종이 뒷방으로 가서 삼장법사를 부축해” 나왔는데, “얼굴은 누렇고 입술이 하얗게 질렸으며 붉어진 눈에서는 눈물을 흘”(서유기 6권, 129쪽)리며 또 운다, “요괴는 명을 내려 삼장법사를 뒤뜰로 데리고 가 밧줄로 나무에 묶어 놓도록 했어요. …… 삼장법사는 밧줄에 꽁꽁 묶인 채, 뺨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서유기 9권, 159쪽) 또 운다. 매번 잡히고 또 잡혀 가면서 줄줄줄 눈물을 흘리며 울 뿐이다. 여기에 “삼장법사는 목숨을 구하자 손오공이야 어떻게 되건 말건, 말 위에 뛰어올라 채찍을 꽉 쥐고 왔던 길로 곧장 달려 내빼”(서유기 6권, 164쪽) 버리는 그런 인물이다. 어디 그 뿐인가. 배가 고플 때는 공양을 구해오라고 제자들을 닦달하고 버럭질 또한 수시로 한다. 요괴를 착한 사람이라며 굳이 우겨 도와주고 잡혀가는 화를 자초한다. 
 
그런데, 원효는 “이러한 대장부다. 전장에 나가면 용장이요. 무예를 겨루면 장원이요. 말 잘하고 글 잘 하고 설법을 하면 ‘칭양탄지 성비우공(그를 찬양하는 박수 소리가 법당을 가득 메웠다)’하는 사람이다.”(원효대사 1권, 216쪽) 이때 나이 서른셋. 하긴 이미 열여덟에 창검과 시석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단신으로 적장에 들어가 친구의 시체를 안고 돌아올 정도로 대담하다. 요석궁의 군사뿐만 아니라 전문 도적떼들과의 싸움에서도 자신의 장삼 소매조차 잡히는 일 없는 이다. 당연히 그는 “철 난 이후로는 울어본 일이 없다. 그는 소리 내어 걸걸하게 웃기를 잘하였으나 운 일은 없”(원효대사 2권, 63쪽)는 그런 인물이다. 또 엄청난 물난리 속에서 사람을 구하고 병구완은 물론 죽은 이의 송장 치르는 일까지 한다. 파계 후 그가 머문 무애암은 손수 지은 것인데, “방이 세 칸, 가운데 마루는 크고 좌우 방은 작았으며, 부엌 한 칸이 붙어 있었다. 마당도 반듯이 다듬고 우물.”(원효대사 2권 101쪽)까지 있는 제법 번듯한 집이다. 도둑을 만나면 도둑을 굴복시키고, 거지를 만나면 거지를 감화시키고. 도대체 그가 못하는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엇이든 잘 한다. 걸핏하면 잡혀가고 질질 울기나 하는 삼장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런데, 이상하다. 만일 원효와 삼장 중 누구와 함께 여행을 갈 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삼장 줄에 서고 싶다. 뭐든 잘하고 힘 있고 능력 있는 원효에게는 왠지 자꾸만 거리감이 느껴진다. ‘우와 대단하다. 대단해’라며 탄성은 질러지지만 가까이하고 싶지는 않다. 그의 곁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몸이 오그라든다. 그에 반해 삼장은 편안하다. 때로는 답답하고 어이 없는 일도 많지만 그의 길은 즐겁고 가볍다. 이유가 뭘까?
 
 
 
열린자와 갇힌자
 
요괴라는 말만 들어도 벌벌 떨며 말에서 굴러 떨어지기 일쑤이고 요괴가 나타나면 어김없이 잡혀가고, 그리고 잡혀가서는 하염없이 눈물밖에 흘리지 않는 삼장, 제자들에게 수시로 “사부님, 그런 머저리 같은 모습 좀 보이지 마세요! 좀 앉으세요! 앉아!”, “정말 구제불능이군요! 구제 불능!”, “사부님처럼 약해빠진 중도 없을 거예요. …… 사부님 정말 한심하세요.”라는 말을 수시로 듣는다. 이쯤 되면 ‘나는 왜 이렇게 못 났을까?’라며 자책 한번 할만도 한데 삼장, 단 한 번도 자책 비슷한 것조차 하질 않는다. 무서우니 그냥 떨 뿐이고, 속상하니 울뿐이고, 짜증이 나니 소리를 지를 뿐, 그리고 서쪽으로 길을 갈 뿐이다.
 
이에 반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누구든 굴복 시킬 수 있는 능력자인 『원효대사』의 원효는 끊임없이 자책과 죄의식에 시달린다. “‘뜻이 변한 것이 아니나, 힘이 없다.’ 원효는 이러한 한탄을 수없이 하였다. ‘승만왕을 건지지 못하였다.’ 하는 자책이 가슴에 못이 된 것이었다.”(원효대사 1권, 148쪽), “아직 나는 자유자재한 자는 아니다. 억지로 억지로 저를 이기어 나가며 조금씩 조금씩 때를 벗으려는 행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다. …… ‘젖지 아니하고 물들지 아니하는 원효’ 이것이 되려면 많은 수련이 필요한 것을 느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원효는 엄청난 자존심이 푹 줄어들어서 제가 몇 푼어치 아니 됨을 느꼈다.”(원효대사 2권, 61쪽)
 
“내면은 곧 자의식이다. 자기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자기에 대한 인식.…… 이건 전적으로 근대의 산물이다.”(고미숙, 나비와 전사, 휴머니스트 234쪽) 근대 이전, 약 1500년경에 쓰인 『서유기』 속의 삼장과 근대 인식론들이 자리 잡아가던 1940년대에 쓰인 『원효대사』의 원효는 이러한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원효대사』는 『서유기』에 비해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현격히 많다. 어떤 곳에서는 2페이지 이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아유다는 제 것이 될 리 없다고 생각했다. …… 더욱 가망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 선묘 이야기를 생각하였다. …… 자기도 선묘와 같다고 생각하였다. …… 그러나 자기는 선묘보다는 행복하다고 생각하였다. …… 만나려면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하면 아유다가 선묘보다도 불행하였다. …… 처음에는 다만 원효의 법력에 대한 사모인 줄 알았으나 칠년이나 그 생각을 계속하는 동안에 아유다는 원효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다.” (원효대사 1권,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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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스스로를 가두는 근대인
 

 
『서유기』의 경우 책 어느 곳을 펴더라도 뚫어져라 자기의 내면을 응시하는 장면이 없다. 간혹 나오는 내면 묘사는 대개 싸움에서 상대를 이기기 위한 계책을 꾸밀 때 정도이다. 더군다나 삼장의 심리 묘사는 『서유기』 전체 10권 속에서 겨우 서너 장면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극히 적다. 그것도 여자요괴에게 잡혀 요괴가 “스님”하고 부르는 소리에 대답을 해야 할지 말아야하지 고민 할 때 정도. 근대 이전에는 “인간과 외부 사이에 격자가 존재하지 않았으니 별도로 ‘자아’를 설정해 두고 뚫어지게 응시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나비와 전사, 239쪽) 자연히 시선은 내 안이 아니라 내 밖 자연, 우주로 향하며 외부와의 소통을 위해 자신을 열어두던 시대였다. 삼장역시 우주 합일의 극점, 무아의 경지로 나아가고자 꿈꾸는 자였다. 즉, 삼장의 신체는 우주를 향해 열려있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면서 인간과 자연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생기고 이것은 넓게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좁게는 민족과 국가, 나와 너, 영혼과 육체, 안과 밖의 선명한 경계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 경계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 둔다. 원효 역시 이런 경계 속에 갇혀 있다.
 
다양한 존재들이 다양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와글거리는 『서유기』와 달리 『원효대사』는 원효를 중심으로 한 몇몇 인물과 사건들만 나열되어 있다. 공간도 시간도, 존재도 아주 협소해져 버렸다. 경계가 분명해지면 해 질수록 경계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비장해질 수밖에 없다. 『원효대사』를 읽다보면 내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메는 것도 다 이런 이유일 것이다.
 
 
 
풍성한 식탁과 빈곤한 식탁

“손오공이 그간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히 들려주자, 삼장법사는 고마워 어쩔 줄 몰랐어요. 스승과 제자 일행은 궁전에서 쌀을 찾아내 식사를 준비하여 한끼 배불리 먹고 행장을 수습해 성을 나섰어요.”(서유기 8권, 211쪽) 이야기하고 배불리 먹고 길을 떠나는 것, 이것이 이들의 일상이다. 『서유기』에서는 끊임없이 맛있게 먹는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나조차도 수시로 입에 침이 괴고 배가 고파진다. 특히 삼장은 배가 고프면 공양을 구해 않는다며 제자들을 게으르다고 타박한다. “저도 무척 애쓰고 있어요. 언제 게으름을 피웠다는 겁니까?” “네 놈이 애쓰고 있다며 어째서 내 공양을 구해오지 않는 게냐? 배가 고파서 더 이상 못가겠다.”(서유기 3권, 197쪽) 이런 삼장을 제자들은 또 얼마나 열심히 잘 먹였는지 14여년의 풍찬 노숙의 길을 걸었지만 삼장은 피골이 상접한 적이 없다. 오히려 달덩이처럼 희고 뚱뚱하기까지 하다. 하긴 “내 금방 다녀 올 테니. 우리 사부님을 잘 모셔주기 바라오. 세 번의 차와 여섯 번의 식사를 대접하되, 빠뜨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오.”(서유기 3권, 167쪽) 허걱! 하루 세 번의 차와 여섯 번의 식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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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는 자, 밥을 잘 챙겨먹어라!
 
 
그런데 『원효대사』에서는 함께 먹는 일도 드물지만, 먹는 일이 유쾌하지도 않다. “일동은 불공 퇴물을 나누어 먹었다. 모두 약간 피곤함을 느꼈다. 많은 손님을 치르고 난 집과 같아서 누구나 쓸쓸함을 느꼈다.”(원효대사 2권, 170쪽) 백중 기도를 드리고 난 후 장면이다. 즐겁게 함께 먹으며 와글와글 거리는 『서유기』와 달리 무겁다 못해 침울하기까지 하다. 물만 먹는 강아당 수련 후 원효는 “이레 수련에 살이 쭉 빠진 것과 같이 모든 잡념이 소멸된” (원효대사 2권 18쪽) 것처럼 느끼며, 단샘이 마을에서는 사람들의 병구완을 해 주고 “피골이 상접하도록 비쩍 말랐다. 그러나 그의 얼굴과 눈에는 청수한 기운이 있었다. 그것은 모든 욕심을 떠난 보살의 빛이었다. 그러나 원효는 몸이 피곤함을 느꼈다.”(원효대사 2권, 72쪽) 원효는 먹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굶주림이나 피곤함에서 희열을 느끼는 듯 보인다. 파계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 “씻은 몸을 또 씻고 또 씻었다. 세모래를 집어서는 껍질이 벗겨져라하고 전신을 문질렀다. 이를 닦고 양치질도 하였다. 손톱눈에 끼인 때도 파내었다. 발가락 사이도 우볐다. 머리를 씻고 또 씻었다. 이러해서나 몸의 더러움을 조금이라도 면하려 하였다.”(원효대사 2권, 183쪽)  아프다, 아파. 내 살갗이 벗겨질 듯 하다. 이러한 몸에 대한 표상은 근대에 기독교가 유입되면서 형성된 것이다. “영혼은 순결하나 육체는 불순하며”, “육체는 죄악의 덩어리이며, 영혼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육체를 가능한 한 배제”(나비와 전사, 198쪽)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원효대사』를 읽다보면 곳곳에서 이런 기독교적 사유와 만난다. “그 신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신은 복을 주되, 신을 모독하는 자에게는 신은 무서운 복수자가 되는 것과 같다.” 믿지 않는 자에 대한 철저한 응징과 복수, 이는 구약에 종종 등장하는 야훼의 모습과 유사하다. 이에 반해 『서유기』의 관음보살은 “너희는 이 근방을 깨끗이 정리해서 삼백리 안에 살아 있는 생명이 하나라도 남아 있어선 안 된다. 둥지 속의 작은 짐승이나 굴 안의 어린 짐승까지 모두 안전하게 산꼭대기 가장 높은 곳으로 옮”긴 후 요괴를 잡는다. 어떠한 존재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결국 그 요괴마저 제자로 품는다. 이처럼 불교를 비롯한 “동양의 사유구조에는 기본적으로 수난과 복수의 관념이 없”다. 기독교적 사유의 영향 때문인지 『원효대사』의 원효가 승려 원효가 아니라 원효라는 외피를 둘러 쓴 ‘고난의 예수’인 것 같다.
 
길을 가는 자에게 계속 가겠다는 의지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잘 먹는 것이다. 먹어야 걸어갈 기운도 난다. 먹지 못하고 소화시키지 못하면 길을 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 호로몬의 80%가 소화기관에 있다고 한다. 그러니 잘 먹고 잘 소화 시킨 만큼 길도 행복해 지는 것이다. 삼장과 그의 제자들이 수시로 생사가 오고가는 순간과 직면하면서도 전혀 비극으로 침윤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혹시 잘 먹고 잘 소화시킨 덕분이 아닐까?^^
 
 

 스승과 제자
 
『서유기』는 삼장 한 개인의 구도 이야기가 아니다. 만일 삼장이 혼자 길을 떠났다면 어땠을까?
  
 
“불이 없는 곳이 어디냐?”  “동쪽과 남쪽, 북쪽에는 모두 불이 없어요.”
“경전은 어디 있는데?”  “그야 서쪽이지요.”
“난 그저 경전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을 뿐이다!”
 
서유기 6권, 258-259쪽
 
  
 염불과 좌선밖에 할 줄 모르니 요괴를 물리치는 일도 큰일이지만, 무엇보다 가야 한다는 강박으로 똘똘 뭉쳐 적과 나를 구분 짓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지나치게 비장해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삼장은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결코 비장해지거나 무거워지지 않았다. “안심하세요. 안심해요. 이곳은 극락정토와 멀지 않으니 틀림없이 태평하고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라며 두려움에 떠는 그를 토닥거려주고 지켜주며 길을 열어 준,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걷는 제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스승과 제자라는 구분도 명확하지 않다.
 
 
 
“사부님이나 저희나 모두 감사할 필요 없습니다. 서로가 모두 돕고 의지한 것이니까요. 저희들은 사부님 덕분에 해탈하고 불문을 통해 공을 닦아 다행히 정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도 저희들의 보호를 받아 불법의 가르침을 지켜 다행히 세속의 태를 벗게 되셨습니다.”
 
서유기 7권, 197쪽
 
 
누구도 ‘내가 너 위해 희생 했어’라는 구도가 없다. 그저 각자 자신의 도를 위해 자신의 양지를 다하며 길을 갔을 뿐이다. 그리고 그 길에서 스승과 제자는 달라진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가야한다는 삼장의 의지는 한순간도 머무르지 못하는 손오공을 일념으로 길을 갈 수 있게 붙들어 준다. 그리고 그의 자비심은 사람·요괴 가리지 않고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을 고기반죽으로 만들던 손오공의 거칠고 잔인한 마음을 내려놓게 만든다. 손오공은 시간이 지날수록 눈물 많은 삼장을 닮아 간다. 호시탐탐 길을 돌려 과거의 습으로 돌아가려는 저팔계, 삼장의 지극한 편애가 아니었다면 끝까지 길을 가는 것이 가능했을까? 그의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사오정은 도를 이룬다. 그리고 이들의 결합은 그들의 길에서 만난 수많은 인연들을 살려낸다.
 
『원효 대사』에서는 이러한 관계가 보이지 않는다. 원효에게도 제자는 있으나 스승과 제자의 경계가 너무 뚜렷하다. 황룡사에서 함께 한 심상은 ‘걱정 들을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 모양으로 원효의 눈을 우러러’(원효대사 1권, 82쪽) 보았고, 파계 후 만난 의명은 스스로를 “원효에 비겨서 성명 없는 한낱 중”(원효대사 2권, 157쪽)으로 여긴다. 스승은 제자가 근접할 수 없는 거리에 있다. 원효 역시 그들을 ‘보호해야 할 어린양’ 쯤으로 여긴다. “원효는 눈앞에 바람과 여러 도적들과 요석공주와 아사가와 나무들과 이런 것을 보았다. 그것들이 모두 갓난 아기와 같이 불완전하면서도 귀여움을 느꼈다.”(원효대사 2권, 302쪽) 어느 순간부터는 이 제자들마저 사라지고 부하만 남는다. “장안 거지가 모두 원효의 부하라는 것이 무섭기도 하였다.”(원효대사 2권, 220쪽) 스승과 제자 사이에 아득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사사마가 칼을 차고 바람 이하 오십명 도적의 두목을 숙마바로 손과 허리를 묶어서 그 끈을 사사마가 잡고 끌었다. 수백 명의 거지떼가 의명의 인솔을 받아서 원효를 맞아 모두 절하고 뒤를 따랐다. …… 바람은 왕자의 대우를 받아 서당장군이 되고 다른 두목들도 각각 군직을 받게 되었다. 이로부터 몇 해 뒤에 신라가 백제를 칠 때 황산싸움에 용감히 싸운 장수들이 이들이요. 또 죽기를 무릅쓰고 백제와 고구려의 국정을 염탐한 것이 거지 떼들이었다. 원효는 산간에 숨어서 도를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요석공주와 아사가는 평생 원효를 따르는 비구니가 되었다.
 
원효대사 2권, 303-304쪽
 
   
원효가 가진 강한 남성성은 결국 권력, 전쟁, 지배로 연결된다. 원효는 파계 후 고향으로 향하고 종국에는 닫힌 공간인 산간으로 들어갔다. 이 걸음은 어느 누구도 자유롭게 만들지 않았다. 원효 자신조차도. 이에 반해 삼장은 여자 요괴들이 그의 원양을 그토록 탐하는 걸 보니 남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원효와는 분명 다른 남성성, 아니 남성적이라 지칭할 수 없는 성적정체성을 지녔다. 한없이 약하고 부드럽지만, 자신의 뜻의 지킴에 있어서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강건함을 지닌 이다. 그는 또 어떤 상황에서도 결여와 훼손을 알지 못한다. 삼장과 제자들은 고향을 떠난다. 그리고 그들은 시공간 어디에도 묶이지 않는 자유로운 몸, 부처가 된다. 그는 결국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모두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원효를 따라가다 보면 더 세고, 더 빠르고, 더 강한 것에 대한 지금의 우리의 열망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강한 것은 그만큼 강한 적을 만들고 그들은 파괴와 폭력을 부르니 말이다. 삼장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자신이 제자들과 함께 자유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더 많이, 더 강한 것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강한듯 하지만 약하고, 남성적인듯 하지만 여성적인, 어떤 특정 정체성에 묶이지 않고 서로 다른 “차이들의 역동적 공존“을 가능케 한 자신의 유연한 신체라고.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그것이라고. 
 
 
 *  *  * 
 
 
 
“어쩜 이렇게 ….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다지 큰 뜻 없이 삼장과 원효라는 두 키워드를 잡았다. 그런데 『서유기』는 『원효대사』가 가진 나와 너, 몸과 영혼, 스승과 제자 등 근대가 가진 이분법들을 아주 선명하게 비춰주었다. 놀라 울 정도로. 더불어 내가 가진 경계들도 좀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둘을 만난 것은 고마운 일이다.
 
 
 “이 일은 내가 부주의해서 사람 단속을 못하기도 했고, 또 너희 스승과 제자들의 재난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났단다. 그래서 온갖 정령들이 하계로 내려온 것이니, 너희가 그 재난을 받아야하는 거야. 내가 그놈을 잡아가주마.”
 
서유기 7권,197쪽
 
 
 
미륵불이 자신의 하인 황미 대왕을 잡으러 와서 하는 말이다. 요괴든, 사람이든 나의 내외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은 나의 깨달음을 위해 지금 여기에 있다는 말일게다. 물론 나또한 너를 위해 있는 것이니 이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다. 나도, 그들도 각자 나름의 길을 가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깨달음을 위한 입구가 되어주는 것. 지난 학기 에세이를 마무리 지을 때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세월호가 가라앉았다. 다시 에세이를 마무리 짓고 있으니 우리에게는 한 계절이 지나가고 있는 셈이다. 삼장은 부처를 만나고 삼장경전을 구해 재앙과 고통을 받는 떠도는 혼들을 저승으로 편히 보내고자 길을 떠났다. 내가 그들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쥐고 있는 욕심과 무지를 내려놓고 공부하며 이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깨어 지켜보는 것이다.
 
삼장이 가는 길은 언제나 가볍고 유쾌하다. 하긴 외롭고 힘들다면 오래 오래 그 길을 갈 수 없을 것이다. 함께 갈 수 있으려면 길은 유쾌하고 명랑해야 한다. 아니 함께 가기에 유쾌하고 명랑할 수 있다. 공부가 매순간 나를 구하고 함께 하는 이들도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지만 꾸준한 걸음으로 함께 공부하는 힘이 필요하다. 삼장과 그 제자들처럼.
 
 
 
스승과 제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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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도님의 댓글

명도 작성일

'화엄경'에서 선재동자가 53 선지식을 찾아서 구도역정을 다했으나 ~
결국 처음 1인이나 끝의 53인이나 똑같이 그저 적멸 해탈의 '아공법공'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과 같이
삼장이나 원효나 길은 다를 뿐 가리키는 법은 같다고 봅니다. ~^^
법은 우리가 알든 모르든....늘 여여하게 그대로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