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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목소리를 들어라!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4-07-15 13:43
조회 : 5,177  
 
생명의 목소리를 들어라!
 
 
박준오(감이당 대중지성 1학년)
 
 
의사 루쉰
 
루쉰은 한 번도 스스로 의사이기를 포기한 적이 없다. 그에게는 생의 순간마다 어떤 의사가 될 것인지만 문제되었을 뿐이었다. 소년에서 청년이 되고, 중년 무렵 첫 소설 「광인일기」를 발표하고, 죽기 전까지 글을 써내려가면서 그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치료해 주겠다는 일념만은 항상 품고 있었다. 『외침』의 서문에서 밝힌 대로 어렸을 때 그는 아버지의 병을 고치지 못한 기존 중국의 치료술에 대해 깊이 회의(懷疑)했다. 결국 그는 한의(韓醫)“의도하든 않든 간에 일종의 속임수”(『외침』, p.10)에 불과하다는 판정을 내렸고, 서양귀신에게 영혼을 판다는 불리한 입장에서도 사람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일본 유학을 택한다. 겉핥기식으로 서양의학을 배우던 그에게 일본에서 만났던 신학문은 경이 그 자체였다. 그의 꿈은 아름다웠다. “졸업하고 돌아가면 내 아버지처럼 그릇된 치료를 받는 병자들의 고통을 구제해 주리라.”(p.11) 
 
 
2.jpg
 
메스 대신 펜을 든 루쉰
 
 
하지만 러일전쟁 당시 일본 대학 교실 환등기에 펼쳐진 중국 조리돌림의 군상은 그를 서양 의사이길 포기하도록 했다. 동족을 죽이는 것을 재미거리로 여기는 중국인의 증상은 서양 의료분과에 속하는 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었다. 그것은 정신을 다스려야 하는 일이었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저들의 정신을 뜯어고치는 일이었다.”(p.12)
 
중국인의 병증에는 한의법도 양의법도 아닌 다른 치법을 구해야 했다. 그는 메스 대신 펜을 의료 기구로 삼는다. “정신을 제대로 뜯어고치는 데는, 당시 생각으로, 당연히 문예를 들어야 했다.”(p.12) 정신을 뜯어고치고자 하는 열망이 이루어질지 이루어지지 않을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을 수도 없었다. 고통을 치료하겠다는 의지로 끝없이 글을 써내려갈 뿐. 이것이 『외침(吶喊)』을 쓰게 된 연유다. 소설을 쓰게 된 이유를 밝힌 다른 글에서도 그의 치료에 대한 열의를 느낄 수 있다.
 
병태사회(病態社會)의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제재를 찾으려 했다. 병고를 폭로함으로써 치료에 대한 주의를 촉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루쉰문집5』,「어찌하여 나는 소설을 쓰게 되었는가」, p.77
 
 
 
 
진단: 바뀌었는가?
 
그는 정신을 치료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진단은 철저히 몸에 근거한다. 그는 몸을 떠난 근대 ‘이성주의의 빛’을 믿지 않는다. 먼저 「아큐정전」을 살펴보자. 아큐의 ‘정신 승리법’은 우리의 이성, 특히 자의식에 대한 풍자다. 아큐가 가진 조금의 이성은 몸과 일상의 비루함을 표백시켜버리는 세제로, 자기합리화의 도구로 이용된다. 그는 언제나 구타당하지만 ‘노려보기 주의’나, ‘제일인자가 되는 법’ 등의 나름의 법칙을 만들어서 현실을 포장한다. 이것은 논리의 측면에서도 일정한 권리를 얻어낼 수 없지만, 자신의 상태를 외면했다는 측면에서 병적인 상황이다.
 
머릿속의 이성과 논리가 어떻게 구성 되었든 간에 몸은 달라지지 않았다. 몸과 일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욕망의 작동방식도 다르게 구성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아큐는 그의 생이 다할 때까지 결코 다른 방식으로 욕망을 낸 적이 없다. 그는 날품팔이를 하다가 기존 권력자 밑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혁명당원으로 이념적 전환을 하기도 하지만 그의 행동방식은 언제나 똑같이 소유의 열정에 사로잡혀있다. “자.……갖고 싶은 건 모두가 내 거라네, 맘에 드는 년은 모두 내거라네”(p.141) 상황은 변했을지 모르나 그는 바뀐 것이 없다. 그는 세상을 바꾼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 같은 소유욕을 여러 다른 방식으로 표출했을 뿐이다. 아큐의 정신은 아직 치료되지 않았다. 그가 어떤 이념에 줄을 섰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루쉰에게는 그가 다른 신체적 분포를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야단법석」이나 「두발 이야기」에서 시대상이 급변함에 따라 시류의 이익에 일희일비하는 군상들을 풍자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쿵이지(孔乙己)」 또한 무기력한 근대의 신체성을 지적하는 소설이다. 「아큐정전」이 ‘주의나 문제’가 얼마나 민중의 일상과 동떨어져 있는지, 얼마나 그들의 몸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였는지를 지적하는 소설이었다면, 「쿵이지」는 ‘주의나 문제’에 깊이 관여하면서도 절대 바뀌지 않는 신체를 가진 지식인들을 진단하는 작품이다. 쿵이지는 글깨나 읽었던 서생이다. 그러나 술 망태에 게으름뱅이고 도둑질을 일삼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지식을 뽐내는 것만은 멈출 수 없다. 다리가 부러졌음에도 기어이 손으로 걸어와 술을 먹을지언정 말이다. 루쉰은 그런 몸에서 나오는 지식을 지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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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분리된 몸
 
 
루쉰은 그동안 내세운 주의나 이념이 공허한 말뿐으로 흩어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몸의 패턴이다. 그에게 ‘행동이 단 한 치도 바뀌지 않았다’ 는 것은 ‘정신이 단 한 치도 바뀌지 않았다’는 말이다. 중국은 새로운 주의나 이념의 옷을 바꿔 입었다고 해도 행동방식은 똑같았다. 그것은 민중이나 지식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근대의 특징이다. 계몽의 앎은 몸을 바꾸는 지식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근대적 지식은 단지 “언어의 논리 안에 사건이나 대상을 체계적으로 배열하고자 노력한다. 이른바 이성적 사고를 추구하는 것이다. ”(『계몽의 시대』, p.210) 이런 지식은 “언어로 표현된 논리의 영역만 잘 갈고 닦으면 된다. 분석하고 비판하기 위해, 따라서 이성이 부각되면 될수록 앎의 영역에서 신체성은 증발된다. 결국 지식과 몸은 따로 놀게 된다.”(『계몽의 시대』, p.211-212) 몸과 지식의 간극을 키우는 것이 바로 근대의 앎이다.
 
근대적 계몽에는 현장성이 부재한다. 우리가 『무정』을 읽고 헛웃음을 금치 못하게 되는 이유다. 표백된 비전이 있지만 변칙상황들이 얽히고설킨 실전에서 그것은 좀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지식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장(場)인 몸에 있어서 특히 그렇다. 계몽의 사조는 몸이 펼쳐내는 욕망 속에서 그렇게 순연하게 발휘되지 않는다. 그런 까닭으로 선명한 계몽의 빛은 지저분하고 불명확한 몸에 쉽게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근대 이후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앎과 몸이 분리되는 것을 해결하지 못한 채 내버려 둔다. ‘틀림’이 없는 이성과 논리의 철방 속에 자신을 행복하게 가둔 채 자족하거나, 실천가로 자신을 꾸민 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배욕을 채워간다. ‘아큐들’은 자기 논리의 세계 속에서 언제나 승리한다. 이에 루쉰은 질문한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지식이 몸을 바꿨느냐고. 신체라는 현장, 삶이라는 실전에서 단 한 발도 못나가는 지식으로 공허하게 헛발질 하고 있을 뿐은 아니냐고. 정말 정신을 뜯어고친 것이 맞냐고.
 
 
 
생명을 구해야 한다
 
너희들이 가진 계몽의 빛은 너희들의 몸을 어디까지 바꿔놓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중국 근대의 실상은 어두웠다. 루쉰의 주변에는 온통 쿵이지와 아큐들, 한 없이 그늘진 몸들뿐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 증상이 단지 근대만의 문제가 아닐 거라 생각해본다. 루쉰의 놀라운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까닭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님을, 지층의 깊이가 상당할 것임을 의심해본다. 루쉰은 몸을 포기한 이성 중심주의에 대한 회의에서 더 깊게 나아간다. 그 결과 만나게 되는 것은 바로 '생명에 대한 자각'이다.
 
이제 「광인일기」를 살펴볼 차례다. 「광인일기」의 주인공은 논리에 따른 ‘이성주의’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쿵이지와 아큐와는 다른 종류로 기존의 전제로 파악할 수 없는 지식과 신체와의 결합을 일으킨 사람이다. 앎이 촉발한 신체의 변화로 다른 욕망, 다른 감각이 생겨난 사람, 누가 뭐라 해도 그렇게 밖에 사고하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몸이 바뀐 사람이다.
 
그의 몸을 바꾼 앎, 그가 ‘읽어버리고 만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식인(食人)이다.
  
나는 역사책을 뒤져 꼼꼼히 살펴보았다. 이 역사책에는 연대도 없고, 페이지마다 인의(仁義)니 도덕(道德)이니 하는 글자들이 비뚤비뚤 적혀있었다. 어차피 잠을 자긴 글렀던 터라 한밤중까지 요리조리 뜯어보았다. 그러자 글자들 틈새로 웬 글자들이 드러났다. 책에 빼곡히 적혀 있는 두 글자는 식인이 아닌가!
외침, p.21
 
 
주인공은 그의 주변 사람들이 신체를 버려두고 바꾸지 않았을뿐더러 되려 다른 신체를 훼손하고 소멸시키려고 한다는 것을 ‘읽고 말았’다. “사천 년간 내내 사람을 먹어온 곳. 오늘에서야 알았다.”(p.31) 서로 몸을 해친다는 것은 무엇인가. 서로의 생명 에너지를 증식시키는데 실패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중국은 생명 차원에서 절대적 부정을 행하고 있다.
 
몸과 정신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서 둘의 분리가 불가능하다는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식인은 신체를 먹어치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모든 새로운 정신·가치들을 잡아먹는 자살적 사상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대체 중국의 4000년 동안 생명을 기른 지식이 있었던가? ‘사천 년간 내내 사람을 먹어온 곳’이 바로 중국이다. 근대의 앎과 삶의 간극 이전에도 인의도덕, ‘몸을 잡아 먹는 지식과 사상들’이 민중의 잠재력을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이 문제의 더 깊은 지층에 접근한 결과, 그에게 새로운 테제가 등장한다. “생명을 구해야 한다!” 루쉰은 이성중심주의의 근대를 넘어서 보다 근원적 차원에서의 민중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다. 바로 생명에 대한 사유이다. 그는 계몽을 넘어서 생명에로 우리의 한계성을 확장시킨 것이다.
 
생명을 소중히 하려는 그의 의지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 이미지가 바로 ‘아이’다. 「광인일기」의 “아이를 구해야 할 텐데.”(p.32)라는 말에서 ‘생명을 기르는 신체’, ‘개인 내부의 새롭게 가치를 창조해낼 수 있는 잠재성’을 보호하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내일」에서 치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죽고 마는 아이를 통해 혁명에 희생된 생명을 안타깝게 그리고 있다. 「두발이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고생고생 십 몇 년을 분주히 뛰어다니다가 어둠 속 탄환 한 발에 목숨을 빼앗긴 아이들, 총알 대신 감옥에서 한 달 여를 모진 고문에 시달린 아이들, 원대한 뜻을 품었지만 홀연 종적이 묘연해 시신조차 찾지도 못하는 아이들.......”(p.69) 한편「지신제 연극」이나 「고향」에서 과거의 아이 시절을 추억하는 내용을 그리면서 시원(始原)의 야생성, 그 생명의 힘에 대한 긍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적막(寂寞)
 
하지만 정황상 루쉰의 생명에 대한 자각은 미쳤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시절 중국은 아직 그의 말을 들을 귀가 없었던 시대였다. 정치는 격변했고 보황(保皇)이니 혁명이니 하는 하나의 노선을 택해 생명을 해치는 싸움에 나서야했다. 그 시절은 생명을 어떻게 기르고 보전할지가 문제가 아니라 생명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희생시켜야할지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그의 꿈은 정말 꿈에 불과했다. ‘생명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 는 말을 들었던 사람은 루쉰 자신뿐이었다. 혼자만 듣는 것, 그것이 과연 듣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기 내부의 생명의 외침이 홀로 메아리치는 것을 루쉰은 적막(寂寞)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깨달음을 아무리 전달해도 변하지 않은 민중의 신체들, 그 몸들을 보고 그는 절망에 빠진다. 대체 아큐를 깨울 수 있을까. 그는 말로 민중들을 승복시킬 수는 있지만 결코 민중 각각의 생명이 울리는 분포를 바꿔낼 수 없음을, 일종의 주입불가능성의 한계, 더 나아가 절대적인 소통 불가능성의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그 한계가 가져온 슬픔이 바로 루쉰이 뼈아프게 깨달은 적막(寂寞)인 것이다. 『약』에서 혁명전사가 처형되어 흘린 피를 찐빵에 적셔 병든 아이에게 먹이지만 그 아이를 살릴 수는 없었다. 신체를 바꾸는 앎은 타자와 같이 구성할 수 있을 뿐이다. 일방적인 주입도, 무조건적인 피 흘리기도 신체를 바꾸는 앎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적막은 또 한 번 계몽의 그물을 피해가는 힘이 되었다. 몸을 바꾸는 지혜는 전적으로 각자가 내부에서 울리는 생명의 목소리를 듣는 것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적막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귀를 기울이는 것 말고는 달리 혁명은 없다고 그는 깨달았다.
 
 
 
두께 없는 칼날
 
적막을 맛본 그가 할 수 있는 일도 하나뿐이었다. 오직 글을 써내려가는 일이었다. 그런데 『외침』은 생명을 구하고 기르는 응원가라고 하기에는 내용이 비관적이며 애매하다. 나중의 그의 잡문들도 공격적인 논박 일색이라 생명을 구한다고 말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의 글쓰기에는 겉보기와 다른 양생의 비법이 숨겨져 있다.
 
그의 글쓰기는 일종의 포정해우(庖丁解牛)에 대한 오마주이다. 포정해우는 『장자』에 등장하는 일화이다. 요리사 포정이 왕을 위해 죽은 소를 해체한다. 잡는 모습이 얼마나 리드미컬한지 요임금의 음악이 떠오를 정도였다. 문혜군이 그 기술이 뛰어나다고 말하자, 포정은 자신이 소를 해체하는 것이 단지 기술(技)이 아니라 도(道)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설명하기를 눈으로 소를 대하지 않고 ‘신(神)’으로 소를 대한다고 말하면서(以神而遇不以目視), 뼈마디의 틈을 노리기 때문에 19년 동안 소를 해체했어도 칼날이 새것처럼 닳지 않았다고 자신의 해우도(解牛道)를 설명한다. 문혜군은 그 말을 듣고 대답한다. “나는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의 도를 터득했다.”
   

 
포정해우.jpg

소를 해체하는 행위에서 생을 기르는 도를 터득한 '포정'
 
 
 
이 일화의 핵심은 소를 해체하는 행위에서 생을 기르는(養生) (道)를 터득했다는 아이러니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장자의 생각으로는 생(生)·(死), 유(有)·(無)가 거대한 자연의 순환원리에 있어 크게 다른 일이 아니다. 생이 좋을 것도 사가 나쁠 것도 없다. 생은 사로, 사는 생으로, 유는 무로, 무는 유로 자연의 원리와 결을 따라서 잘 순환시키는 것이 바로 생을 기르는 일이다. 포정은 죽은 소를 남김없이 무로 해체, 순환시키는 데 탁월했다. 근육은 근육의 흐름대로, 뼈는 뼈의 흐름대로 ‘하늘이 낸 결’을 따라 남는 살점 없이 경쾌하게 가른다. 다른 이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눈(目)에 현혹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계가 명확한 감각과 이익을 추구하는 분별지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린다. 포정은 눈을 가리고 생명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자신의 시비판단을 내려놓고 생명과 생명의 마주침으로 대상을 대하는 것이다. 이 ‘신(神)으로 대하는’ 도리가 바로 문혜군이 깨달은 양생의 도이다.
 
이 일화의 핵심은 소를 해체하는 행위에서 생을 기르는(養生) (道)를 터득했다는 아이러니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장자의 생각으로는 생(生)·(死), 유(有)·(無)가 거대한 자연의 순환원리에 있어 크게 다른 일이 아니다. 생이 좋을 것도 사가 나쁠 것도 없다. 생은 사로, 사는 생으로, 유는 무로, 무는 유로 자연의 원리와 결을 따라서 잘 순환시키는 것이 바로 생을 기르는 일이다. 포정은 죽은 소를 남김없이 무로 해체, 순환시키는 데 탁월했다. 근육은 근육의 흐름대로, 뼈는 뼈의 흐름대로 ‘하늘이 낸 결’을 따라 남는 살점 없이 경쾌하게 가른다. 다른 이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눈(目)에 현혹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계가 명확한 감각과 이익을 추구하는 분별지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린다. 포정은 눈을 가리고 생명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자신의 시비판단을 내려놓고 생명과 생명의 마주침으로 대상을 대하는 것이다. 이 ‘신(神)으로 대하는’ 도리가 바로 문혜군이 깨달은 양생의 도이다.
 
루쉰은 그의 글에서 '포정의 도'를 지닌다. 그는 생명과 결합되지 않은 주의나 문제, 신체를 버려두고 이성의 측면에만 머무르는 것들을 그 결에 맞게 분할한다. ‘언어 너머의 앎을 말하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앎을 언어화하려는 말놀이’ 속에서 펼쳐지는 생명과 언어의 간극들, 그 빈틈에 날을 세운다. ‘몸’ ‘체화되지 않은 말’ 사이의 빈 공간을 비집고 들어간다. 그의 생명에 귀 기울이는 칼날은 ‘두께 없는 날’(刀刃者無厚)처럼 헤집지 못하는 것이 없다. 지식을 자랑하기 위한, 혹은 권력욕에 근거한 헛된 주의나 문제가 그의 펜촉에 분해되어 흙덩이처럼 떨어진다. 그는 민중의 살이 되지 못한 죽은 지식들을 가르고 앎과 삶을 일치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연다. ‘사천년 동안 생을 기른 인위가 있었느냐’고 물었던 루쉰은 생을 잡아먹는 인위(人爲)를 해체하는 무위의 도(無爲之道)를 행한 것이다. 비관적인 그의 글, 주의나 문제가 없는 애매한 그의 글에 혁명청년들이 열광하며 그를 찾아 구름처럼 몰려온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의 비판 속에는 소통의 통로가 있었다. 청년들은 루쉰에게서 생명의 목소리를 여는 해체로서의 도를 들었던 것이다.
 
이 도(道)는 실제 그의 생존에도 꼭 필요한 것이었다. 뼈와 근육과 힘줄이 엉켜있는 것 같은 권력의 미묘한 힘 싸움 중에서도 그 사이를 유유히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신체와 앎의 연관관계를 치밀하게 관찰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내부에서 소유욕을 일으키는 거짓 명분들을 쳐내고 몸을 위험한 상황에 두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자신만의 양생을 실현했다. “육체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요소들 사이에 상황적 전략을 규정하는 배려. 그리고 결국 개인 자신을 합리적 행동으로 무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배려”(『계몽의 시대』, p.176)를 말이다. 루쉰이 혁명파와 보수파 어떤 이념에도 동조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비난을 받고 암살위험에 시달리며 그에 맞서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함께 외치다
 
근대 계몽은 ‘허공에의 질주’다. 지식은 공중에 붕붕 떠있고 신체는 몸져누워 있다. 루쉰에겐 이 간극을 줄이는 것만이 생(生)을 기르는 최우선의 치료였다. 그는 간극을 조장하는 모든 당파와 사상을 다시 무로 돌려보내 앎과 삶의 일치를 유도한다. 그리고 그 앎과 삶의 일치가 아무리 미약하고 비루할지언정 루쉰은 그 일을 값지게 여겼다.
 
그가 못내 바란 순간은 「작은 사건」의 순간이었다. 어느 날 루쉰이 탄 인력거 채에 한 사람이 걸려 쓰러진다. 그것은 인력거꾼의 잘못이 아니었고, 다친 사람도 지극히 경미한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인력거꾼은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다친 사람을 이끌고 제 발로 경찰서로 들어간다. 그는 남의 고통을 차마 버려두지 못하는 인함(仁)을, 시비를 가려 옳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하는 의로움(義)을 행동으로 표현했다. 인력거꾼은 말로만 인의도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의도덕의 체화, 지행(知行)의 일치를 실현했다. 이른바 윤리의 주체가 된 것이다.  이런 삶이 바로 자기 생을 기르는 일이다. “존재와 외부 사이에 공감의 지대를 확장해 가는 것........생리를 소통시키는 일이자 좋은 관계를 위한 윤리적 실천”(『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p.177)을 행하는 것. 인력거꾼의 행동은 아무것도 못하게 만드는 식인의 가치에 짓눌려 있는 것이 아니라, 앎을 생명을 먹이는 생성의 가치로 사용하여 세상과 더욱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신체적 변용을 만들어낸 사건이었다. 이것이 바로 청년시절부터 염원한 의사 루쉰의 아름다운 꿈이었다. 
 
 
 
 
루쉰.jpg

지행의 일치(知行)를 보여준 인력거꾼

 
 
루쉰이 인력거꾼을 치료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인력거꾼이 계몽의 지식에 감화되었던 것인지 그가 원래부터 그랬던 것인지는 증명해내기 힘들다. 하지만 루쉰은 인력거꾼의 앎과 삶이 분리되지 않았을 때 터져 나오는 생명의 외침을 같이 호흡할 수 있었다. 근대 이전의 앎의 목적은 “우주 혹은 천리를 내 안에 품는 것, 아니 신체의 분포도를 바꿈으로써 우주의 역동적 흐름과 접속하는 것”(『계몽의 시대』, p.211)이었다. 루쉰이 느낀 ‘작은 사건’은 바로 이런 순간이 아니었을까. 인력거꾼의 앎과 삶이 일치하는 생명의 외침을 들었을 때 자기분별을 잊고 인력거꾼과 함께 우주의 역동적 흐름에 놓여있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것이 루쉰이 포기할 수 없었던 1푼의 희망, 날 것 그대로의 생명과 생명이 통하는 것, 그 ‘같이 떨림’(共鳴)이었다.
 
 유독 이 자그마한 사건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리면서 더욱 또렷해지곤 한다. 나를 시끄럽게 하고, 나의 쇄신을 촉구하고, 내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면서.
외침, p.66-67
 
 
이 값진 공명의 순간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다. 루쉰이 뼈아프게 깨달았듯 그것은 누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력거꾼과 함께 전율하려면 저마다 자신의 적막 속을 질주해야 한다. ‘생명의 우주적 흐름’을 같이 타기 위해서 저마다 자기 생명의 목소리를 듣는 것, 자기 속도를 갖는 사건을 만드는 한걸음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 아무리 더딜지라도 몸과 욕망의 간극을 줄여 나가면서 각자 갇힌 자의식이라는 독방을 벗어날 수 있는 열쇠를 찾아내야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그 자폐의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그때, 새로운 삶 속에서 우리는 만난다. 자기 해방이 부르는 만인의 해방, 철방을 깨는 기적의 함성(喊聲)을. 루쉰은 아직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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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감성에세이]카메라를 든 백수 (4) 감이당 01-31 4493
144 롄수의 비겁하지 않은 삶 (3) 감이당 10-08 4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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