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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다른 출구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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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4-07-17 10:47 조회8,248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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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다른 출구 찾기
 
 
 안정미(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변치 않는 여자의 일생
 
여자로 태어나
애지중지하는 딸로 자라
언제나 가족이 먼저인 엄마가 되고
외롭고 아픈 중년이 되었다가
작고 연약한 할머니가 됩니다.
건강이 행복입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면 원치 않아도 매일같이 보게 되는 모여자대학병원의 전광판 광고다. 여자의 몸과 마음을 가장 잘 안다는 이 병원,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끊임없이 누군가의 케어가 필요한 것이 여자의 일생이란다. 만약 감이당에서 폐경은 축복이고, 스위트홈은 망상이라고 배우지 않았더라면, 나도 이 광고를 보면서 왠지 모르게 서글퍼지고 보험 하나 더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대개 여편네의 직무는 세상에 나서 사나이를 가르치는 것이라 여편네가 학문이 있으면 자식을 처음에 뱃속에서 포태하였을 때부터 아홉 달을 잘 보호하여 해산한 후로 차차 기르면서 더웁고 춥고 주리고 배부르고 가렵고 아픈 것을 잘 살피며 조리 있게 길러 내어 밤낮없이 인도하는 말이 남과 싸우지 말라 학교에 가서 공부를 독실히 하라 효제충신으로 행세를 잘하여 세계를 명예를 크게 나타내라 하며 남의 고모나 누이가 그 조카와 아우를 대하여 가르치며 애호하는 범절은 너나없이 다 아는 바이오."

- <독립신문> 1898년 1월 4일 논설 <서재필의 연설>
 
 
   그러고 보니, 근대 계몽기 국민 생산의 주체로서 부여된 '모성'이라는 임무는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이 개명천지한 21세기에도 여성들에게는 '모성'이라는 이름의 희생과 헌신이 암암리에 강요되고 있다. 사랑받는 여자와 헌신하는 어머니, 이게 여전히 우리 시대 여성성의 두 축이다. 달라진 것이라곤, '효'라는 윤리는 깨어진지 오래이니 늙고 병든 몸을 의탁할 곳은 병원이라는 것.
   이 여성의 인생 서사에서 여성은 삶의 주체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자기 욕망의 주인으로, 자기 삶의 주체로 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원효대사>의 여주인공인 요석공주를 통해서 이 질문의 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요석공주, 공주요괴가 된 까닭은
 
"때는 일천이백여 년 전. 신라 서울 서라벌. 꽃구경 하는 삼월 보름도 지났다."
   소설 <원효대사>의 첫 문장이다. 신라의 중심 서라벌과 계절의 중심인 봄. 최고와 중심, 빛을 향한 이광수의 욕망이 보여진다. 당연히 소설의 주인공 원효도 그저 그런 보통 남자일 리가 없다.
 
   원효는 이러한 대장부다. 전장에 나가면 용장이요, 무예를 겨루면 장원이요, 말 잘하고 글 잘하고 설법을 하면 '칭양탄지 성비우공 稱揚彈指 聲沸于空(그를 찬양하는 박수소리가 법당을 가득 메웠다)'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때 나이 서른세 살, 신라 여자들의 마음을 끄는 것도 당연하다. 하물며 열정에 자유분방한 그들이랴
 
- 이광수, <원효대사 1권> 화남, 216쪽
 
 
   이리도 잘난 사내 원효사마는 요즘 멜로드라마의 주인공들 못지않게 완벽남이다. 신라 최고 엘리트 학승에 몸짱 얼짱에다 카리스마 작렬, 도무지 못하는 게 없다. 완전히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캐릭터다. 그래서 소설에 등장하는 뭇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여성도 보통 여성이 아니라 신라 상위 1%들이다. 진덕여왕에 요석공주, 아사가까지... 모두들 원효의 씨를 받고 싶어 몸이 달아 있다.
 
 
 
원효&요석.jpg
 
원효대사에게만은 적극적이고 집요했던 요석공주
 
 
   소설 초반부에 등장하는 진덕여왕의 스토리는 원효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여왕은 만화방창한 봄날 원효를 궁으로 모시고 설법을 듣는다. 그 고결한 가르침에 마음이 한없이 정결하여졌으나, 설법은 설법일 뿐, 술 한잔 하시더니 원효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다음 생에라도 같이 살자 하나 끝내 대답을 아니하는 원효. 원효에게 차이고 시름시름 앓다 그 건강하시던 양반이 보름만에 승하하신다.(참나!)
   여왕도 어찌하지 못하는 이 잘난 사내를 차지한 것은 바로 요석공주다. '한송이 금방 핀 아침 연꽃' 같은 요석공주. 그러나 그녀는 아름답기만 한송이 꽃이 아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차지하기 위해 아주 적극적이고 당당하고 집요하다. 열다섯에 결혼한 남편이 삼 일만에 전쟁에 나가 죽은 뒤 마음속으로 십년동안 원효만을 바라보며 살았단다. 진덕여왕이 원효를 사랑하는 것을 알면서 속만 끓이고 있다가, 여왕이 죽고 자신이 공주가 되자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간다. 요석은 최고급 원단으로 손수 원효를 위해 옷을 지어 보낸다.
 
   이제 공주의 몸이라 손에 침선針線(바늘과 실)을 잡을 일도 없었으나 요석공주는 손수 마르고 손수 지었다. 거룩한 이의 옷이라 하여 공주는 요석궁에도 후원에 있는 별당을 바느질방으로 정하고 목욕재계하고 방에는 향불을 피우고 가위나 바늘이나 실이나 일체의 새것으로 장만하여 한 땀 한 땀에 지극한 정성을 넣어서 한 솔기 한 솔기 호고 박고 감쳤다.
 
- 같은 책, 83쪽
 
  
   이 정도 되면 이건 정성이 아니라 스토커적인 집착으로 보인다. 그 옷을 전해 받은 원효는 실밥마다 요석공주의 몸이 보였다. 옷을 집어던지며 ‘이것은 분명히 마경(魔境)이다. ...나는 이것을 이겨야 한다. 그런데 내게는 이것을 이길 힘이 없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원효에게 요석공주가 공주요괴가 되는 순간이다. 이 일이 있은 후 원효는 요석 요괴를 피해 십년 살던 절을 버리고 문수사로 도망간다. 그러나 이쯤에서 물러날 그녀가 아니다. 요석공주는 자신의 호위무사들을 동원해 원효를 납치하고 드디어 십년 소원을 성취한다.
 
   "승만마마께오서 살아 계실 때 이 몸을 보시고 원효사마 못 잊어 사모하시는 말씀을 하실 때는 이 몸은 질투로 몸이 떨렸소. 만일 원효사마가 승만마마의 뜻을 들으시기만 하면 이 몸은 칼이나 독약으로 두 분의 목숨을 끊으리라 하였소. 그러다가 승만마마 승하하심을 보고 이 몸은 겉으로는 울고 속으로는 기뻐하였소."
 
- 같은 책, 181쪽  
 
   너무 솔직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하다. '극도에 다다른 에로스의 충동은 죽음의 충동과 다르지 않다'(사드)는 말이 떠오른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만약 원효가 그냥 아무 능력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리고 진덕여왕이 원효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래도 요석이 원효에게 그토록 집착했을까?  오히려 경쟁자가 여왕인데다 법사라는 조건이 요석의 탐욕을 부추긴 것이 아니었을까?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더 갖고 싶고 독점하고 싶은! 이 끝없는 탐욕과 독점욕망이 바로 연꽃같은 요석공주를 공주 요괴로 만든 것이다. 요석으로 인해 원효는 파계하고 그 상처는 끝까지 원효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마는데 말이다.
 
 
 
요석, 그녀의 망상
 
"이 가슴의 젖이 반드시 우리나라에 큰일 할 사람을 먹일 것 같소"
   요석공주가 원효대사를 납치해서 한 말이다. 자신이 절대 사사로운 정욕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라고, 오직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아들을 낳기 위한 구국의 결단이라는 거다. 모성과 민족주의의 굳건한 결현!
   둘은 삼일동안 부부의 연을 맺는다. 그런데 요석은 잠자리는 같이 하더라도 원효를 대하는 것은 법사에 대한 예로 대하였다. 아침마다 관음경을 외우고, 몸과 마음을 닦고... 원효를 남편으로 모실 때 책잡힘이 없고 법도에 어그러짐이 없고자 십년 수행을 해왔단다. 그래서 두 사람의 섹스는 거룩한 의식이고, 원효는 이 성스러운 의식을 구현하는 사제와 같다.(아니, 이런 예를 갖추고 어떻게 잠자리를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 그녀는 모성 민족주의가 유포한 '구국의 어머니' 망상이 있는 것 같다.
  
   뱃속에 있는 아기를 배고 있는 동안 낳아서 기르는 동안, 원효를 닮은 아들 하나만 있으면 원효를 떠나서도 살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아들을 썩 잘 길러서 큰 사람이 되거든 원효의 기쁨을 받을 것도 같았다.
 
 - 같은 책, 187쪽
   
   그렇게 새벽마다 일어나 찬물 목욕하고 지성으로 공양하는 이유는, 깨달음을 얻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원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뿐. 이 여자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에로스는 오직 하나의 출구, 원효라는 '홈파인 공간'으로만 향해 있다.
   그런데 이 요석에게서 나는 지금 우리 시대 여성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배울 만큼 배우고 열정도 넘치는 많은 여성들이 오직 자기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서만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다. 엄마들은 자식들의 성공을 위해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정보전쟁을 펼친다. 아이들이 일류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그것으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성적표가 곧 자신의 성적표인 것이다. 이 글을 쓰느라 도서관에 앉아 있는 지금, 내 앞에는 기말고사 공부하는 중딩 아들 앞에서 <SKY 보내기 대작전> 책을 읽으며 아이를 감시하는 또 한명의  21세기 요석공주가 앉아있다.
 
 
 
대치동 엄마.jpg
 
아이와 남편의 성공을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하는 요즘 여성들
 
 
 
요석, 자신의 위선을 발견하다
 
   요석은 삼년 뒤 원효를 찾아 정처 없는 길을 떠난다. 아들 설총을 단 한번만이라도 원효에게 보이고 싶은 게 소원이기 때문이란다. 진짜 요석공주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물불 안가리는 열정의 소유자다. 원효 있는 곳을 수소문해서 어찌어찌 하다 빙혈이라는 동굴에 들어가게 된 요석. 그곳에서 만난 월명스님은 요석의 허를 찌른다.
 
"누구신지 몰라 뵈었사오나 원효대사를 잘 아시는 듯하시니 원효대사 계신 곳을 일러주시오. 젖먹이 어린 아들에게 아비의 얼굴을 보이려고 지향 없이 떠난 몸이니 어여삐 여기시오"

공주는 이렇게 애원하는 말을 하였다.

"허허 안 될 말. 왜 애매한 어린 아기를 팔까."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또 눈을 흘겼다. 그 눈흘김이 사람이 기절할 만큼 무서웠다.

 
"어찌한 말씀이온지?"

공주는 영문을 몰라서 물었다.

"사내 생각이 나서 원효를 찾아간단 말을 아니 하고 왜 어린애를 팔아?
젖먹이가 아비를 보고 싶다 할까"

공주는 큰 방망이로 정수리를 꽝하고 얻어맞은 것 같았다. 저도 제 마음이 그렇다고 생각한 일은 없건마는 말을 듣고 보면 그 말이 옳은 것 같았다. 그렇지만 자기가 임금의 딸인 줄 알고 하는 말버릇일까 하고 공주는 노여웠다.

"아내가 남편이 그립기로 허물이 되오리까"

공주의 음성이 떨렸다.

"암캐가 수캐를 따르기는 허물될 것은 없지. 거짓이 허물이란 말요."
                                 
 -이광수, <원효대사 2권>, 화남, 131쪽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욕망을 교묘하게 타인들 뒤에 숨기는 여성의 심리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한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요석의 말처럼, 우리도 얼마나 자기 자신에게 속으며 살고 있는가? 욕망 자체는 문제가 없다. 잘못은 그 욕망을 교묘히 숨기며 위선을 떠는 비겁함에 있다는 것이다. 
 
 
 
가면.jpg
 
우리도 얼마나 자신에게 속으며 살고 있는가?
 
 

   요석이 방망이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이 기분을 나는 감이당에서 공부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내 아이들이 성공하길 원했던 욕망, 사실은 그것을 통해서 '내가 이렇게 키웠다'라는 인정욕망을 충족받고 싶었던 것이다. 공부는 나조차도 속았던 내 탐욕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해주고, 그것으로부터 떠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또한 요석공주는 무애암에서 아사가를 만나 자신 안에 있는 폭력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젊고 아름답고 게다가 비범한 지혜를 가진 아사가에게 살기에 가까운 질투를 보인다. 아사가 때문에 원효가 자기 모자에게 정이 떠났다고 생각하는 요석의 망상은 도를 지나쳐 막장으로 치닫는다.

   '두 연놈을 칼로 푹 찔러 죽여 버릴까. 두고두고 원망하여서 두 연놈을 말라 죽게 하고 사후엘랑 머리카락을 오리오리로 두 연놈을 동여서 지옥으로 끌어내리고야 말까. 두고 보자.'
   공주의 마음에는 이런 생각이 번개같이 지나가서 다음 순간에 그는 제 생각이 무서워 몸을 떨었다. 요석공주는 평생에 이런 무서운 생각을 염두에 두어본 일이 없었다. 그의 마음에는 부드러운 것, 인자한 것, 슬픈 것, 이런 것밖에는 깃들일 곳이 없었다. 더구나 공주가 관음을 신앙하니 자기의 마음은 관음과 같다고 여기고 있었다.
- 같은 책, 153-154쪽
 
   이런 생각 끝에 요석은 갑자기 자기 몸에서 빛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느낀다. 얼마나 다행인가. 그 망상의 빛이 꺼지니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여지껏  관음보살인 줄 착각하고 살았는데, 알고 보니 요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요석은  자신의 안전한 거처인 요석궁을 벗어나 원효를 찾아 떠나는 길 위에서 자신의 위선과 망상을 있는 그대로 만난 것이다. 요석궁 안에서 관음경만 주구장창 외우면서는 절대 발견할 수 없었을 진실을!
 
 
 
욕망의 다른 출구 찾기
 
   공주는 어렴풋하게 그 까닭을 알았다. 남편을 그리워하고 아들을 생각하고 아사가를 샘하고 이러하기 때문이다. 탐심이 있으니 잃을까 겁이 나고, 진심이 있으니 해 받을까 무섭고, 이리하여서 어리석은 겁이 나는 것이었다. 
                                                      
- 같은 책, 147쪽
 
   요석은 비로소 자신의 탐진치를 깨닫는다. 오로지 원효라는 단 하나의 출구를 향해 있는 자신의 탐진치를. 그렇지만 아쉽게도 '어럼풋한' 깨달음이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의 마지막은 요석공주와 아사가가 평생 원효를 따르는 비구니가 되는 것으로 끝난다. 이 답답한 결말 앞에서 의심스러워진다. 과연 요석과 아사가의 질투 전쟁은 끝이 났을까?  만약 요석이 '어렴풋이'가 아니라 '온몸으로' 자신의 탐진치를 깨달았다면, 그는 원효가 아닌 다른 출구를 찾아 떠나지 않았을까? 앎과 삶은 하나라 했으니 말이다. 
   당차고 열정적인 요석공주, 원효에 대한 그녀의 탐욕과 집착은 그녀를 공주에서 요괴로 만들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에로스의 열정이 오직 원효라는 단하나의 출구만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 우리 시대 여성들에게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말 능력 있고 열정 많은 수많은 여성들이 오직 자기 가족에게로만 시선을 향하고 있으니 모두가 힘이 든다. 엄마들은 신경과민이고 아이들은 무기력하다. 이제 이 열정의 다른 출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희생과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탐욕을 포장하는 위선을 걷어내고, 자신의 욕망에 정직해지기가 우선일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욕망의 다른 출구를 찾는 것, 그것이 100여 년 전 근대가 이식해 놓은 모성과 여성성의 서사를 넘어서, 여성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사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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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욕망의 다른 출구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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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연님의 댓글

시연 작성일

요석공주가 우리시대의 선구자여괴였다니~ 완전 잼나게 읽었습니다^^

초록머리님의 댓글

초록머리 댓글의 댓글 작성일

아고 부끄러버라ㅠ  잼나게 읽으셨음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