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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며 자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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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4-12-11 13:08 조회7,050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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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며 자립하기


최계숙(수요 감이당 대중지성)


무엇을 할 것인가?

올 한해 감이당과 인연을 맺어 고전과 글쓰기에 대한 고민들로 계절을 보내게 되면서, 오래전에 접었다고 생각했던 욕망이 다시 일어났다. 3학기 밴드 글쓰기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불현 듯 대학원 논문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나는 거의 10년 넘게 졸업논문을 쓰지 못해 학위를 따지 못한 것이다. 대학원에 입학할 때만 해도 푸르른 20대의 기운이 있었던 나는, 나름 건전한(!) 포부가 있었다. 그 당시 의료보험연합회라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업무와 관련된 전문적인 식견을 키우고자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막대하지만 한정된 보험재정의 합리적 지출을 통한 국민건강의 향상, 그리고 이를 위한 방법론으로서 비용-효과 분석론을 습득하여 첨예한 의료 현장에 적용하고 싶었다. 지금은 국민건강, 비용-효과 이런 단어들이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그 당시에는 직장에서도 전공 책에서도 흔하게 접하는 일상적 용어들이었다.

그렇지만, 시작할 때의 포부와 달리 나는 직장과 학교의 이중생활을 감당하지 못하였고, 무게중심은 점점 직장에 실렸다. 그러면서 대학원 생활은 수업 출석하고 간신히 리포트 제출하는 수준에 머물게 되었다. 결국 그럭저럭 학점은 이수하여 수료는 하게 되었지만, 논문이라는 관문은 넘지 못하였다. 첫해에는 논문계획이 통과되지 못했고, 다음번에는 논문계획은 간신히 통과되었지만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난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포기하였다. 내 능력에 맞지도 않는 비현실적인 논문계획으로, 발표장에서 질문에 답변하지 못하고 쩔쩔매던 기억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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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의 두려움... 난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 청심환 먹고 했었다..

지인들이나 선, 후배들은 박사논문도 아닌 석사논문이 뭐 대단한 거라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냐고 한다. 어떻게든 통과만 하면 되니까,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써보라고 말이다. 하지만 논문에 대해 생각하게 될 때마다 지나간 과정이 다시 떠올라, 어디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함을 느꼈다. 내 공부의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 순간을 다시 대면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일종의 ‘정신승리법’이라 할 수 있는 묘한 정신상태를 발전시켜 나갔다. 내가 논문쓰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이제 더 이상 대학원 과정에 아무런 미련이 없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말이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했을 뿐 아니라, 그 말이 내 진심을 표현한 것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하였다.

패배의 시점에서는 패배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후퇴 속에 있는 자는, 다시 말하면 패배 속에 있는 자는 자신의 패배를 철저하게 깨달아야 한다. (중략) 이 사실을 공포 때문에 회피해서는 안 된다. 공포를 견뎌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패배의 열등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우등생의 우월감을 뒤섞는, 아주 기묘한 정신 상태를 갖게 된다. 열등감과 우월감이 묘하게 뒤섞인 애매한 정신. 아마도 그런 정신상태가 정신승리일 것이다.

- 『자기배려의 인문학』, 강민혁, 북드라망, p.161

나는 나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실패를 깨닫는 동시에 마주하게 될 나 자신의 초라함을 직면하는 대신, 내가 미련이 없기 때문에 안하는 것 뿐 이라고 스스로에게 믿게 하였다. 열등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나는 열등한 게 아니라고 하는 기묘한 정신상태라고나 할까. 하지만,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나는 이 곳 감이당에서 고전을 통해서 인류의 지혜에 접속하고 자신의 언어로 글쓰기 한다는 대중지성 과정의 훈련을 겪으면서, 글쓰기에 대해서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자신이 배우고 익힌 것이 있으면, 그것을 토해내야지만 다음 과정에 진입할 수 있다. 공부한 것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 보는 것, 그 과정을 통해서 내가 오롯이 드러난다.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현재의 나의 인식의 한계, 무지함, 욕망을 알게 된다. 그것은 내 사유의 기반이 됨과 동시에 또한 떠나버려야 되는 낡은 것이 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글쓰기는 공부하는 과정에서 특별할 것도 없는 당연한 훈련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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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평범함과 당연함을 알아가는 것이 공부다!

그러면서 나는 왜 석사나 박사를 간편한 시험이 아니라 논문이라는 글쓰기의 형식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지 깨닫게 되었다. 논문 쓰기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일기 시작했다. 과거에 갈무리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넘어서, 몸과 건강한 삶이라는 관점으로 보건학적 글쓰기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상의학을 기반으로 삼은 과거의 공부와 현재의 의역학 공부가 만나고, 현장에서 경험한 의료제도의 모습들을 놓치지 않고, 그리고 내 몸으로 겪어낸 갖가지 질병을 성찰하며, 이것들을 글로 꿰어내 보고 싶다는 욕망 말이다.

 
하지만 이제 의역학 공부를 시작한 시점에서 이런 욕망이 발동하는 것은, 당장의 결실만을 바라고 아직 여물지도 않은 것을 유형의 실체로 바꿔내려고 하는 욕심은 아닐지 의심스럽다. 오랜 세월 부정했던 실패를 깨닫자, 빨리 덮어버리고 싶다는 마음에 곧바로 허황한 계획으로 나아가 버리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이런 허황함이야말로 내가 공부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과거의 실패 속에 머무르지 않고 전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부, 바로 공부 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내가 처음으로 접한 고미숙 선생님의 책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시공간」에서 낯설고도 부럽게 느낀 대목은, 연암의 문장력도 여행하며 전해 듣는 기이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선생님의 대학원 시절 논문작성 장면이었다. 매번 논문의 글을 써 갈 때마다, 스승과 선배들에 의해 너덜너덜 할 정도로 교정이 되었고, 그 때마다 다시 써가야 했다는 이야기이다. 힘들게 써간 글이 온통 새빨갛게 될 정도로 들여다 봐주는 스승과 선배들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 그 창피하고 힘든 순간에도 어쨌든 매번 새로이 써갔다는 선생님도 신기했다. 선생님의 표현에 의하면 이 시절은 공부의 기본기를 익힌 시기라고 한다. 부단한 노력을 통해 존재의 변이가 이루어진 선생님 생애의 빛나는 장면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혼자서 공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특히 초보자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한 것 같다. 물론 결국에는 스스로 감내하며 자신의 힘으로 돌파해야할 몫이 있겠지만, 질문할 수 있는 스승이 없고, 배움의 즐거움을 나누며 서로 격려할 수 있는 동료가 없다면, 그 공부의 길은 생각만으로도 힘겹게 느껴진다. 선생님의 대학원 과정을 상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선생님의 공부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스승과 선배들을 불러들여,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게 하고 다시 일어서면서 결국 그 힘으로 문턱을 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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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은 보다 많은 것들과 접속해 있을 때 그 인식의 능력을 확대한다. 곧 관계가 지성의 모태다.

내가 대학원 과정의 최종 관문을 통과하지 못 한데는 이런 저런 변명거리가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나의 공부를 함께 봐줄 수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한데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선배와 후배도 있었고, 수업과 실습을 하며 새로 알게 된 동기들도 있었지만 숙제나 시험에서 도움을 주고받는 실리적 관계에서 그쳤지, 함께 공부하는 벗이 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당시 내 마음의 행로가 공부에 닿지 않은 것에 대한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핵심은 역시 네트워크다.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들과 접속하여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 길 위에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이게 관건이다. 우정과 의리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정과 의리는 기본적으로 수평적 윤리다. 이 윤리를 능동적으로 체득할 수 있다면 언제 어디서건 새로운 관계와 활동을 조직할 수 있다.

-『청년백수를 위한 길위의 인문학』, 고미숙, 북드라망, p.21 

내가 간과한 것을 볼 수 있게 해주고, 내가 부족한 것을 도와주고 때로는 날카로운 비판도 서슴지 않을 수 있는 관계의 구축, 즉 우정의 네트워크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에 나의 실패의 원인이 있지 않을까. 이것은 논문쓰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모든 공부가 그러할 것이다. 혼자만의 고립된 공부는 웬만한 노력 없이는 기존의 자신이 가진 편협한 시각만을 강화시킬 뿐이다. 타자에 의해 나의 시선과 사고가 공격받고 무너지지 않는 한, 나는 타성에 의해 이전의 운동성만을 고수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 공부란 관성을 쓰는 것이다. 나를 극하는 기운이자, 조직이나 사회적 관계를 나타내는 관성을 쓴다는 것은, 나라는 견고한 성에 갇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봐줄 수 있는 눈이 되고, 나의 어떤 물음에도 귀 기울여주는 귀가 되고, 작은 고난에도 좌절하는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힘이 되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관계를 맺지 못한 채 공부를 한다는 것은 교양을 쌓는다는 허위의식의 껍데기를 쓰고 진실을 외면하는 것 뿐 이다. 그래서인가, 대운에 관성이 들어오는 올해부터 나는 감이당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게 있어 공부를 하는 것은 관성을 쓰는 것이고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는 이면에, 관계에 대해 실리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우정과 의리를 목숨보다’ 소중히 해야만 관계와 활동을 조직할 수 있다는 태도에 비해 나는 너무나 타산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그러나 그 우정은 유용성을 계속 지녀야만 미래의 희망으로 존속될 터인지라, 현실적 층위에서는 불가피하게 유용성 가치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우정은 퇴행적인 자기를 만들어 낼 위험에 항상 처한다. 그래서 다시 우정은 퇴행적으로 변할지 모르는 ‘자기’ 자체를 매번 깨는 방식으로 다시 ‘자기’에게 되돌아와 작동한다. 그것은 아주 공격적이고 해체적인 귀환이 될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너는 노예인가? 그렇다면 벗이 될 수 없다. 너는 폭군인가? 그렇다면 벗을 사귈 수 없다”라는 말로 이것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 주었다. 

-『자기배려의 인문학』, 강민혁, 북드라망, p.55


현실적 층위에서 우정은 유용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정을 형성하는데 유용함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유용함에 갇혀 있을 때, 우정은 더 이상 우정이라고 이름 붙이기 어려운 관계가 된다. 명예욕, 금전욕 등 퇴행적인 자기(이기적인 자기)에 사로잡힌 자들로 둘러싸여 나쁜 우정으로 빠져들 수도 있게(위의 책, p.54)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유용함에 갇히지 않는 우정을 성취할 수 있단 말인가? 나 역시 공부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우정의 유용함을 떠올렸던 것이라면, 이런 이기적인 내가 어떻게 친구를 만나고 우정을 나눌 수 있을 것이란 말인가?
 
이런 적나라한 질문에 마주하자니, 지난여름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강렬하게 만났던 밴드글쓰기 멤버들이 생각난다. 우리는 함께 글을 쓴다는 이유로 만났지만, 하나의 글을 함께 완성한다는 이유만으로 이전과는 사뭇 다른 관계의 강밀도를 이루어내야 했다. 우린 매주 만나며 서로의 생각과 일상의 경험들, 책에서 느낀 바를 공유하며 한편의 글 속에서 자신의 부분을 작성해야 했다. 글 전체적인 모습과 다른 사람이 써내려간 부분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부분을 완성한다는 것은 생소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훈련을 통해서 서로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었고, 다른 사람의 고민을 함께 고민해 보면서 서로에게 다가서게 되었다. 어찌 보면 모두가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진지한 관계가 되어 나갔다.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또 서로를 격려하면서 그렇게 한편의 글을 완성해 나갔다. 물론 이것만으로 우리의 우정이 성취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관계 속에는 여전히 퇴행적인 요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 우리는 상대의 진심을 의심하기도 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못하기도 했다. 무언가를 위해 억지로 꾸며내기도 하고, 거짓으로 동의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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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아직 우리에게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공부가 삶과 진리에 대한 것이라면, 우리는 관계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알아채며 우리의 관계가 퇴행적으로 변하는 것을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결국 우정을 맺는 관계에서 나는 나를 들여다보며, 계속 질문 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무엇이 나를 두렵게 하는가, 나는 노예인가 하고 말이다. 이 질문은 우정을 맺는 관계에서 친구들에 의해 또한 질문되어져야 할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질문에 계속 나를 던지고 그 질문에 대면하면서, 우리는 유용함에 갇히게 되는 질서를 깨뜨리고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말이다.
 

공부하며 자립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지만 인생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나 자신에 몰두해 있을 때 변화가 찾아왔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말로만 듣던 일방적 해고였다. 우리 둘 다 백수가 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미래의 가정에 포함되어 본 적이 없었다.  나의 우물 안 개구리 식의 미래에 대한 계획은 참으로 어설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내가 좀 더 버텼어야 했나 라는 부질없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는 “지시받고 싶지도 않고 누구를 지시하고 싶지도 않다”가 중년백수가 된 남편의 소회였다. 남편의 얘기를 들었을 때, 나 역시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저런 마음이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20년 가까이 버텼으면 우리 둘 다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우린 운이 좋았다. 스펙도 토익점수도 별 볼일 없었으나 청년백수가 되지 않고 이만큼 살아왔으니 말이다.

지금 당신이 백수라면,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싼 다음, 걸어서 그곳으로 가라! 도서관에는 사람과 책과 강의가 있다(거의 다 공짜다). 걷고 읽고 배우고 만나고……. 담백한 식사, 도보의 권리, 진리의 탐구-이보다 더 좋은 양생술은 없다!

-『청년백수를 위한 길위의 인문학』, 고미숙, 북드라망, p.55


위 문장은 백수가 된 내게 정언명령 같이 느껴졌다. 이제 인생의 반 정도를 살아왔을 뿐이고, 앞으로는 더 긴 세월이 있을 테고, 아이도 교육시켜야 하는데 라는 고민이 들 때 선생님은 단호하게 말한다. 도서관에 가라, 그리고 그곳에서 읽고 배우고 만나라고. 돌이켜 보면 직장생활은 전쟁 같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 전쟁터에서 죽지 않고 살아왔으니 다행인 것이고, 더 늦기 전에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 또한 다행인 것이다. 하지만 공부를 통해서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며 자립할 것인가는 여전히 고민이 필요하다.
 
공부를 통해 자립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선 공부의 내용과 생계의 수단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실용적인 기술이나 지식을 연마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다. 또, 이것과는 비슷한 듯 다른 방법인데 감이당의 많은 선배들처럼 도서관(감이당?)에서 고전을 읽고 진리를 탐구하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강의를 하고 글쓰기를 해서 살아가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내게 있어 공부하며 자립하기란,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려는 의지를 중단하지 않고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살아가는 한 공부를 계속 해보고 싶다. 어떨 때는 공부에 대한 보상은 따로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나 스스로 즉각적인 보상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몸 전체로 느껴지는 뿌듯함과 충만함이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누렸던 갖가지 여흥은 그 끝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돈도 아깝고 공허하다고나 할까.
 
의역학을 배우면서 나는 이 우주에서는 그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으며, 내가 타고난 우주의 기운과 시절인연이 만나 내 삶의 궤적을 그리게 됨을 깨닫게 되었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나는 나를 만나 한 시절 살아보게 되었으니, 인생의 여러 맛을 본 듯 애달플 것도 없을 것이다. 백수로 태어나서 백수로 가는 인생(길위의 인문학, p.7)에서 나의 존재에 맞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익히고 또 그렇게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말이다. 담백한 식사, 도보의 권리, 진리의 탐구라는 최고의 양생술을 실현해 볼일이다. 정말 소박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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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야 조금씩 걷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공부만 할 수 있는 조건은 안 되므로, 내년부터는 주2~4일 정도의 일을 찾아서 시작을 할 생각이다. 무슨 일을 할지는 어느 그리스인의 말처럼 ‘닥치는 대로’,  ‘발로도 하고 손으로도 하고 머리로도’ 해 볼 생각이다. 그렇다. 해본 일만 해가지고서야 어디 성이 차겠냔(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p.18) 말이다. 


마치며

글을 쓴다는 것은 여전히 낯선 경험이다. 훈련이 덜 되어서 그런지, 글을 쓰는 내가 바로 나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어떻게 글을 써갈지 글을 쓰면서도 궁금할 때가 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수많은 나와 마주치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만난 나의 아포리아들, 공부, 관계, 우정, 자립. 이것들을 논리적이고 아름답게 진술할 수 있다면 그도 좋겠지만, 중요한 건 내가 이 아포리아들과 몸으로 부딪혀 내 삶으로 실현해 내는 것이다. 실패 속에서 마주한 나의 공부, 공부하는 과정에서 만난 글쓰기라는 수련, 글 쓰는 과정에서 만난 우정의 네트워크라는 화두, 그리고 그를 통해 주체로 서는 것에 대한 고민들에 대해서 말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더 이상 잃을게 없었던 대중들을 “지금이라면 승리할 수 있다. 아니 내일이면 모든 것을 잃고 말 것이다”라고 선동했던 레닌(자기배려의 인문학, 북드라망, p.288)처럼, 나는 나를 선동한다. 지금이라면 공부할 수 있다. 아니 내일이면 깨닫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오직 지금이라면 승리할 수 있다고 말이다.


댓글목록

단지님의 댓글

단지 작성일

줄리아 로버츠님 ~ 역시 얼굴값하시네요~~

구름을벗어난달님의 댓글

구름을벗어난달 작성일

우아! 에세이 발표시간에도 귀를 쫑긋하고 들었는데 이렇게 멋지게 옷을 입으니 이번엔 눈이 크게 떠지는군요. 계숙쌤 내년에도 을미대첩을 향하여 쭈욱~~~고고씽!!

감이당님의 댓글

감이당 작성일

김무웅 선생님의 오타 퍼레이드(최계숙 선생님의 이름을 최겨숙, 회계숙 선생님으로 쓴 사건^^)에 주인공으로 등장하셔서 이름과 얼굴이 매치되었는데 글까지 읽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공부와 자립이라는 주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마침표 없이 계속하는 것이라는 말. 선생님의 이름과 함께 기억될 거 같습니다. 최계속 선생님으로^^(저도 오타를 냅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