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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과 제리가 함께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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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5-05-19 23:32 조회6,880회 댓글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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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과 제리가 함께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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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감이당 대중지성 1학년)

톰의 골탕 먹는 일상

누구보다 친절한 젠틀맨 타입의 상사A는 인기가 좋았다. 여직원들의 가정사를 꿰뚫고 있고 직원들의 뒷담화도 최신 버전으로 알고 있었으며, 전날 밤 누가 누구와 술을 마시며 누구를 안주로 씹었는지도 다음날이 되면 알고 있었다. 누구는 직원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는 이상적인 상급자시며, 어버이 같으신 분이라고 추대했고, 누구는 손사래를 치며 머리를 저었다. 

실상은 이러했다. 상사A는 아부와 선물 받는 것을 좋아했다. 직원 톰은 아부나 선물하는 것보다 기획서를 잘 만들어 올리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믿음으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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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A는 보이는 일들만 중시했다. 일을 지시한 후 단시간 내에 결과를 꾸며 만방에 알리는 것을 좋아했다. 반면 톰은 일이 떨어지면 그간에 해왔던 일을 답습하지 않고 새롭게 만드느라 시간이 걸렸다. 자정이 넘어서까지 사무실에 남아 눈이 벌겋게 충혈 되도록 컴퓨터를 노려보며 일을 했다.

상사A는 B를 불러 C를 흉보고, C를 불러 D의 문제점을 나열했다. E에게는 톰의 무능함에 대해 걱정을 늘어놓았다. 톰에게는 비밀이 없었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속내를 다 드러내고, 그 사람의 속내도 알고 싶어 했으며 누군가의 비밀을 들으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애정과 사랑을 전하기 위해 그 비밀을 알려주었다. 그러다가 톰이 B와 C와 D, 그리고 상사A까지 흉보고 다닌다고 죄를 뒤집어 썼다.

상사A는 톰의 주변사람들에게 톰이 무능력하고 불순한 행동을 하고 다니며, 위에서 톰을 한심하게 여기고 있어 진급은 어려울 거라고 알렸다. 톰을 회생시킬 사람은 전지 전능한 본인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톰을 조직에서 따돌리기 시작했다. 다른 부서와의 배드민턴 경기나 탁구 시합에서 지면 톰이 조직의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후배들을 이끌지 못해서라고 했다. 그는 날마다 톰을 괴롭혔다. 출장을 다녀오면 책상을 바꾸어 놓고, 한참 후배를 톰의 윗자리에 앉혀놓고 시치미를 떼었다. 후배들도 톰을 무시하고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상사A는 술을 사겠다고 직원들을 몰고 나가 계산은 자신이 하고, 돈은 톰이 내도록 몰아갔다. 너에게 돈을 낼 기회를 주는 것조차 영광인줄 알라고 외쳤다. 다음날이 되면 어김없이 톰이 조직생활을 똑바로 못한다고 혀를 끌끌 차며 회의석상에는 톰을 뺀 나머지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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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A는 제리였다. 톰의 소시지를 빼앗아먹기 위해 덫을 놓고 폭탄을 설치하고 엉덩이에 불을 붙여 화상을 입히는 제리였다. 모든 공은 제리의 것이고, 모든 과실은 톰의 것이었다. 톰이 괴로워할수록 제리는 비웃음을 띄우며 내려다보았다. 톰이 믿고 따르던 선배들은 제리에게 톰을 잡을 때 사용하라고 폭탄 등을 미리 구해다 바쳤다. 실리와 우정 사이의 갈림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리를 선택했다.

“실리가 앞서고 서열이 작동하는 순간, 우정은 잠식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떠난다.”
고미숙,「두개의 별, 두 개의 지도」, P.51

톰은 47년을 살았다. 톰은 그동안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생각했다. 톰은 절망과 좌절의 구렁텅이로 기어들어 갔다. 자신이 세상 어디에도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꼈다. 참아야하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다. 톰에게 화병이 생겼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고 머릿속은 무거운 바윗덩어리가 짓누르는 느낌에 밤마다 가위에 눌리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어느 날 톰은 서울의 남산 골짜기에 살아가는 힘을 키워주는 학당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곳과 접속하여 처음으로 배운 것은 의역학 사주명리학이었다. 무당이나 점집에서 돈을 주고 구걸하듯 얻어 듣는 사주풀이를 본인이 풀어볼 수 있었다. 톰은 자신이 용광로처럼 타오르는 빛과 열정을 상징하는 병화의 사주를 타고 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톰은 예의를 중시하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힘을 갖고 태어 났다. 톰은 나쁜 기운은 해석하지 않고 좋은 기운만 풀이하면서 기뻐했다. 그것은 미신이 아니라 과학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손도 대지 않았던 고전과 철학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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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서 만난 낯선 자들과 시공간을 함께하니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벗들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톰은 자신이 인생을 잘못 산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톰은 다르게 사유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옆문을 박차고 나올 때, 즉 그 중심에서 ‘외부’를 사유할 때 그때 비로소 출구가 열릴 것이다.”
고미숙,「계몽의 시대」, P.7

책 속에서 길 찾기

수업교재로 선택된 책 「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다」을 보면서 톰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사람을 이토록 벼랑 끝으로 내 몰 수가 있는가. 자유롭게 개성적인 문장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문체반정의 ‘화살받이’로 살다간 이옥의 삶과 진부함 대신 새로움을 좋아하고 복지부동을 거부하고 아부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능의 죄를 뒤집어 쓴 자신의 삶이 오버랩 되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옥이야 한미한 일개 유생이므로 그렇게 심하게 꾸짖을 것까지야 없다”(정조16년 10월24일)
채운,「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다」,p.19

톰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톰이야말로 일개 말단 공무원이므로 그렇게 심하게 닦달할 것까지야 없다.”(톰 47년 4월 22일)

그랬다. 이 곳에서 만난 책들은 톰의 뒤죽박죽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머리를 식혀주었다. 톰에게 사유하는 힘을 불어주었다. 톰이 당하는 것은 이옥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조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도 천만 다행이라 생각했다. 톰은 이제 외롭지 않았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어디에든 타자들로 왜곡되어진 삶을 살아낸 자들이 있었다. 왜곡 자체를 억울해하고 탄식하며 사느냐 이를 뛰어넘어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을 사느냐는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톰은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과연 자신이 옳기만 하고 왜곡만 당한 것인가. 톰을 힘들게 한 것은 제리 때문 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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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옭아매고 있는건 다른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렇기에 그것을 풀어 낼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삶의 정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 바로 내 스스로가 삶의 길을 만들지 않는 한. 그리고 그 길이 시작되는 자리는, 내 아집과 집착을 버린 바로 그곳이라는 것을."
신근영, 「칼 구스타프 융, 언제나 다시금 새로워지는 삶」, p.17 

톰은 한걸음 뒤로 물러나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았다. 톰을 힘들게 한 것은 자신이었다. 인정욕망에 들떠서 주위를 잘 살피지 못했다. 그리고 편견으로 상대를 바라 보았으며 자신을 합리화하기에 급급했다. 톰은 타인의 기준에 맞추어진 길을 걸으며 자신이 그 길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단정 하에 질질 끌려 다니고 있었다. 지금 걷고 있는 길만이 정도라고 앞만 보고 걸었지만 타인이 만들어 놓은 길을 자신의 길인냥 걷고 있었다. 톰의 길은 어떻게 찾아야 할 까? 톰은 한번도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책임과 의무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내기 위해 노력했다. 톰이 하고 싶어하는 일은 무엇일까.


“...바로 글쓰기다. 굴곡 없는 일상을 경험하면서, 나는 역으로 왜 ‘쓰기’가 ‘살기’일 수밖에 없는지를 알았다. 일상은 항상 반복된다. 이 반복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시간은 당연히 점점 더 무뎌지고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다. 글쓰기는 이 일상의 반복 속에서 차이를 포착한다. 삶에서 재료를 끄집어내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조형해서, 그 결과물을 삶에게 다시 선물로 돌려주는 과정이다. 이 사이에서 타자와 만날 수 있는 여백이 생기게 된다.”

김해완, 「리좀, 나의 삶, 나의 글」, p.282

톰은 자신이 타고난 오행중 과한 화기운을 덜어내고 부족한 수기운과 금기운을 채워가며 자신의 길을 걷고 싶었다. 그리고 답은 글쓰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하면 자신만의 언어로 쓰는 글쓰기가 가능해 지는 것일까? 도서관에 근무하면서도 일주일에 책한권 읽기가 어려웠다. 가정을 꾸리며 분산되어 있는 자신의 생각들을 한 곳으로 모으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선무당이 사람잡을 생각들이 자꾸 올라왔다. 사주명리학을 잘 풀이해서 다른 사람의 고민도 덜어주는 제2의 직업(일명 유원지에서 좌판깔기 또는 철학원 운영)도 갖고 싶어졌고, 공직생활을 접고 공부에 전념해서 10년 후 곰샘처럼 강의를 다니고 싶다는 욕심도 올라왔다. 그러나 책에서 만난 카프카가 살아온 삶은 헛된 욕망을 잘라버리기에 충분했다.

“공무원이었던 카프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평생을 주경야서하는 삶을 살았다. 일상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잠식하는 그 삶 한가운데에서 삶을 구속하는 인식의 그물들을 걷어내려고 애썼다. 그는 자신의 장편소설이나 일기 등이 출판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고,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도 글을 쓴다는 그 사실 하나였다.”

오선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한 작가의 배움과 수련」,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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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제리는 다른 부서로 옮겨갔다.

갈림길에서 선택한 길

새로운 출구를 찾은 톰은 자신의 일상을 옭아매는 다양한 것들에 대해 느긋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진급이 안 되고 늦어지는 것은 모든 것이 시절인연이라 때가 되지 않았음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직장에서 자신을 알아주지 않거나 무시하는 것은 존재의 빛이 너무 밝아서라는 것으로 알고 좀 더 자신을 낮추고 주위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감이당에서 낯선 타자들과의 만남과 앞서 길을 닦은 선배들을 따르며 서서히 변해가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주변이 평화로워진 어느 날 톰은 원하던 자리의 책임자로 진급하게 되었다. 인사발령이 나던 날 그 시간은 우주의 시간도 멈춘 듯 느껴졌다. 정말 기뻤던 톰. 그때 톰의 머릿속에 “좋은 것이 꼭 좋기만 한 것인가요? 나쁜 것을 꼭 나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요?” 라고 묻는 도담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제리도 승진하여 자신의 상급자로 다시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톰의 책상은 전보다 1.5배는 넓어졌다. 그 책상 위로 선물이 쌓이기 시작했다. 여러 종류의 화분들과  손가방, 핸드크림, 커피 상품권, 파우치, 향수 등... 그리고 후배들은 친절해졌다. 톰의 입꼬리는 며칠째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제리가 좋아했던 아부와 선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왜 제리를 아부와 선물만 좋아하는 자라고 규정 지었을까. 

톰이 제리를 보고 화가 나는 것은 제리의 문제가 아니다. 톰의 분노는 자신 안에 있으나 그것을 보려하지 않았다. 제리와 잘 관계 맺지 못한 톰 안의 타자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톰과 제리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톰 안에 제리가 있고 제리 안에도 톰이라는 타자가 들어 있다. 모두 자신을 들여다 보지 않고 상대라고 규정지어 자신을 투사 시킨 것이다. 제리를 피할 수는 없다. 어디를 가나 또 다른 제리 즉 톰이 불쾌하게 여기는 무의식의 자아를 만날 수 있다. 톰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적대시하고 우매한 틀로 가두고 살아온 시간들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이러한 우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체험한 것을 쓰고, 외부에서 생각하고, 고전에서 길을 찾는 배움의 길이 한구간을 넘어서 다른 한구간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톰은 내면 속 제리를 안고 다시 길을 떠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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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리락꾸마님의 댓글

리락꾸마 작성일

새삼 재밌고 유쾌합니다. 토성 조장으로 모신 인연으로 한번 더 읽었네요. 어렸을 때부터 왠지 톰이 끌렸어요. (내 안에 제리 있다. 나 잡아봐라~)

수로부인님의 댓글

수로부인 작성일

감동입니다. 톰의 사유가 고양이로서 넘칩니다. 제가 좀 받아가도 될런지...

이현정님의 댓글

이현정 작성일

병화팀장님~ ㅋ
감동적인 글이에요-
대중지성의 힘이 이런걸까요?
저도 열씸히 책 읽고 글쓰고 싶어지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시영님의 댓글

시영 댓글의 댓글 작성일

♥♥

안윤진님의 댓글

안윤진 작성일

울 시영샘
글 참 좋아요
함께 글쓰기했던게 엇그제였는데
대중지성에 들어가시더니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군요
잘 읽었습니다
제리는 어케됐나요~
ㅎㅎ
톰은 자유로워 지셨나요?

톰님의 댓글

댓글의 댓글 작성일

지금의 이 자리에 있게 해주신 제리에게 감사드립니다. ^^;;

안윤진님의 댓글

안윤진 작성일

나의 모습이 투영되어 나타나고...
모든것이 내안에서 시작되는구나
그래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