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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간의 역사 thera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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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6-10-13 22:17 조회3,6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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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간의 역사 therapy!

이은주(대중지성 토요반)

들어가며

10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을 덮었다. 8월 하순부터 꼬박 한달 동안 나는 이 두 권의 책 ‘봉건사회I,Ⅱ’와 함께 지냈다. 직장에서 일하고,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한 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이 책을 읽었다.

사실 ‘봉건사회’를 읽기 전에는 이번 학기의 공부 주제인 ‘역사’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예전 중학교 때 세계사시간이 떠오른다. 카리스마 넘치고 지적인 30대 여자 선생님의 수업은 알차고 재미있었다. 세계사 교과서에 실린 과거에서 뽑아낸 역사적 사건들은 변하지 않을 확고한 지식의 결정체들이었다. 매시간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선생님은 지난 시간에 배운 내용을 학생들에게 줄줄이 질문하셨다. 대부분 아이들이 침묵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몇 번 내가 맞추고 난 후부터 선생님은 학생들이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마지막에 가서는 나를 지적하며 대답을 하라고 하셨다. 지극히 평범하면서 무언가 인정받고자 했던 사춘기 소녀였던 나는 그 순간이 흥분되고 기다려졌다.

그래서 열심히 복습과 예습을 하며 지난 시간에 배운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연도와 그 사건의 원인, 경과, 결과 등을 외웠다. 십자군 전쟁의 원인과 영향, 하인리히 4세가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파문을 면하기 위해서 눈밭에서 3일간 무릎 끓고 빌었다는 ‘카놋사의 굴욕’ 등이 적힌 교과서를 외우던 나의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그 때문인지 35년 이상이 지났어도 ‘세계사’는 내가 좋아하고 남보다 잘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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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역사’에 대한 고정관념!

지금까지 나에게 역사란 ‘6하 원칙’에 따라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가를 배우고, 과거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 중에서 후대에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는 자료들만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또한 역사적 사실과 가치는 엄중하므로 왜곡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한다고 믿었다.  

그런 고정관념을 가진 ‘나’였기에 무턱대고 읽기 시작한 마르크 블로크의 ‘봉건사회’는 읽으면 읽을수록 정리가 되지 않았고 맥락을 잡기가 어려웠다. 맥락을 잡는다는 것은 커다란 역사적 사건이 서로 이어져서 질적으로 다른 역사적 단계를 거치면서 진보를 했다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봉건시대가 끝나면 르네상스 혁명이 일어나고 절대왕정시대와 구체제의 억압, 부르주아의 성장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성립과 발전, 마지막으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사회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음 단계는 어떤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할까를 고민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 있어 역사를 공부하는 의미였다. 

그런데 이 책은 마치 고구마 줄기처럼 이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저 이야기로 두리 뭉실 넘어가버리고 사건이 발생하게 된 집단 심리에 관한 서술은 있어도 딱히 뚜렷한 행위의 주체가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 보던 역사책에서 중심 내용이 되었던 등장인물들의 행적은 모두 각주로 밀려나서 적혀져 있었다. “무슨 역사책이 이렇담?” 아리송하기만 했다. 그래도 한 글자 한 글자, 한 문장 건너뛰지 않고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서 읽었다. 처음에는 정말 몇 장만 읽어도 잠이 와서 그냥 쓰러져 자버렸다. 이러기를 일주일! 계속 이 책을 읽어야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채운쌤 강의 후 마음을 가다듬고 계속해서 읽다보니 조금씩 진도가 나가기 시작하고 몸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하지만 중세 봉건사회의 역사를 읽는 것이 지금 현재, 나의 삶을 살아가는데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은 계속되었다.


현재를 사는 나와 봉건사회의 연관성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뉴스에서 ‘스폰서검사’니 ‘권력의 실세’니 하는 보도나 ‘내부자들’같은 영화를 보면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재가 봉건사회가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힘이 약한 존재가 자신보다 강한 주변의 존재에게 충성을 서약하고, 그가 시키는 대로 하면서 자신은 보호를 받는 ‘신종신서’는 봉건시대 사회구조를 이루는 인간관계의 특징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지금 우리는 예전사람들이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과학기술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고, 각 개인은 독립된 주체로서 사회를 구성한다고 함에도 우리사회의 의식구조는 중세 봉건사회와 거의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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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고 하자. 섬기기를 원하는 한 사람과 우두머리가 되기를 수락했거나 또는 그렇게 되기를 갈망하는 또 한 사람 말이다. 전자는 두 손을 한데 모으고 이 맞붙여진 두 손을 후자의 두 손 안에 놓는다. 이는 종속의 명백한 상징이었으며 때로는 무릎을 꿇어서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하기도 하였다. 이와 동시에 두 손을 내민 사람은 자기가 마주 보고 있는 사람의 ‘복속인’임을 자인할 만한 아주 짧은 몇 마디 말을 선언한다. 그런 다음 우두머리와 종속자는 서로의 입에 키스한다. 이는 곧 동의와 우정의 상징이다.      
            『봉건사회Ι, 마르크 블로크, 한정숙 옮김, 한길사, 357쪽』

제2책 제1장 ‘타인에게 속하는 사람’에 나오는 신종신서를 하는 장면이다. 이 구절을 읽는데 방금 뉴스에서 본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연상되었다. 실제로 ‘스폰서’관계라는 것을 은밀히 자신을 후원해주는 사람에 대해 봉사를 한다는 의미라고 볼 때,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주변의 권력자에게 자신을 종속시키는 ‘가신관계’와 거의 동일한 것이다. 이러한 ‘가신관계’와 ‘충성서약’과 같은 행위는 아래와 같은 시기에 유행하게 된다고 블로크는 적고 있다.

자기의 보호자를 구한다는 것과 기꺼이 다른 사람을 보호한다는 것, 이는 어느 시대에나 찾아볼 수 있는 갈망이다. 그러나 이러한 갈망이 독자적인 법률적 제도를 탄생시키는 것은 거의 오로지, 여타의 사회적 골격이 느슨해진 문명체계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국가도 혈족도 이제는 더 이상 충분한 보호의 손길을 뻗쳐주지 못하고 있었다. <중략> 약한 자는 자기보다 강한 자에게 몸을 내맡겨야 할 필요를 도처에서 느끼고 있었다. 강한 자는 강한 자대로 설득에 의해서이건 또는 강제력에 의해서이건 간에 자기를 도와줄 의무가 있는 하급자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는 한 위신이나 재산을 유지할 수 없었고 심지어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조차 없었다. 
             『봉건사회Ι, 마르크 블로크, 한정숙 옮김, 한길사, 361쪽』

마치 현재 우리 사회에서 ‘스폰서’가 유행하는 원인을 진단하고 있는 학자의 해설 같지 않은가. 이와 같은 글을 읽고 ‘봉건사회’의 내용이 점점 나의 현재 삶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저자가 써놓은 한 구절 한 구절을 읽어가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아예 추석 연휴 때는 마음먹고 천천히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았다. 두 번째라 조금 빠르게 읽히고 핵심 정리가 될 것 같았지만, 처음 읽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내용들이 보여 길을 헤매듯이 상상에 빠지기도 해서 결국 400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다시 한 구절 한 구절 읽으며 흥미로웠고 매순간 즐거웠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 경험 밖에는 당장 내세울 것이 없다. 


4주후 달라진 변화들

그렇게 매일 매일 ‘봉건사회’는 혼자 사는 나의 공백이 되는 시간을 채워주었다. 마치 제품체험수기 같지만(^^) 천천히 매일 밥 먹듯이 꾸준히 두꺼운 책을 읽어가면서 신기하게도 나는 곰쌤이 말한 신체적인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차를 운전할 때 끼어드는 차량에 대해서도 화가 나지 않고, 차가 막혀서 지각을 할 것 같아도 예전이면 ‘왜 차가 막히는 거야. 지각하면 어떡하지?’라고 초조해하던 것도 이제는 차가 막히는 전체의 흐름이 팍 연상되면서 막히는 도로위에 서있는 수많은 차들의 행렬이 느껴졌다. 어차피 앞의 어느 부분이 차가 막혀 있으니 그쪽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그렇게 내가 걱정하나 안하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니 화가 나고 불안해하는 것이 줄어들었다. 실제로 내가 평생 해결해야할 과제로 생각했던 ‘자의식’도 책 읽는 일에 몰두하느라 그냥 신경 쓰지 않고 방치(?)하다 보니 그다지 의식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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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글쓰기로 수련하라!’는 말은 익히 들어 왔지만 책 읽기도 수련이 되겠구나 하는 것은 이번에 처음 느꼈다. 다소 집중해서 몇 페이지를 흥미롭게 읽었다고 뿌듯한 것도 잠깐, 수없이 남아있는 뒷장을 보면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잠시 딴 생각을 하거나 이렇게 어려운 책을 읽는 스스로를 의식하는 할 때에는 글자들이 전혀 의미가 와 닿지 않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맥락을 놓쳤던 곳으로 돌아가서 마음을 비우고 자의식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책에 익숙해지자 몸이 좀 더 편안해지면서 페이지 한 구절, 한 구절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고 이해하면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또한 고정된 주체도 특출하게 뛰어난 사람도 없이 그저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흐름으로서의 역사’라는 것을 새로이 인식하게 되었다. 

실제로 그의 책을 읽은 후 굳이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았어도 문득 문득 수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이민족의 침입에 몸살을 앓는 사람들, 자기의 상관의 부인을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기사, “우리는 즐거워지게 된다. 귀족들이 우릴 심히 아껴줄 터이므로“ 라고 말하며 흥겹게 들떠서 전쟁터로 나서는 기사들. 학식이 있다고 주변의 존경을 받지만 실제로는 서투르고 틀리게 라틴어를 사용하는 이국언어 생활자로서의 당시 지식인들. 법정에서 가장 오래 기억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법정 증인으로 불려나와 집중 안한다고 뺨을 맞는 어린이들. 정확하게 시간을 측정할 수 없었기에 결투시간 9시를 넘겼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 고심하던 재판장. 시간을 똑같이 재기 위해 같은 길이의 여러 개의 초를 가지고 다녔다는 영국의 알프레드 왕. 요새로 지어진 좁은 성에서 자신이 거느리는 가솔들과 하인들에 둘러싸여 부부생활을 했던 영주들. 그동안 획기적 사건과 위인들에 의해 묻혀있던 이 수많은 존재들은 블로크에 의해 과거의 역사에서 불려 나와 나에게 자신들의 삶을 보여주었다. 
 

블로크의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다

우리가 사는 근대는 모든 면에서 정확하고 확실한 것이 중요시되는 사회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도 확실성이 가장 중요시되는 분야가 ‘역사’일 것이다. 어쩌면 법을 위반한 사람보다도 역사를 왜곡시키는 사람이 더욱 비난을 받는 것 같다. 오늘날의 ‘역사왜곡’은 마치 신성모독죄에 해당하는 정도의 무게를 가진다. 엄숙한 역사적 사실을 훼손하면 안된다는 우리들의 가치관에 대해 중세 사람들이 지금 이곳에 온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토록 많은 허위문서가 그 당시 만들어졌다는 것. 그리고 독실한 신앙심을 가진 그 수많은 사람들과 의심할 바 없이 고상한 인격을 가진 그 수많은 사람들이 당시의 법과 도덕으로도 분명히 비난받을 만한 이런 흉계들에 가담했다는 것, 여기에는 그야말로 숙고해볼만한 심리학적인 조짐이 있다. 즉 기이한 역설적 현상이기는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과거를 숭앙한 나머지 과거가 당연히 그렇게 존재했어야 마땅하리라고 생각된 대로 과거를 재구성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봉건사회Ι, 마르크 블로크, 한정숙 옮김, 한길사, 251쪽』

블로크는 당시 중세에 기록된 문헌들은 잘못 기록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그런 사실을 알았을 때 역사가의 임무는 무엇일까? 가라지를 골라내듯 여러 문서들 속에서 허위로 기록된 것을 식별해내고 확실하고 명증한 사실로 다시 새로운 역사를 쓰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바와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블로크의 생각은 어떠할까? 오히려 ‘학식을 바탕으로 하여 장대하게 논쟁을 펼치는 역사가들 때문에 역사가 뒷전으로 물러가는 것을 참을 수 없다(같은 책, 68쪽) ’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블로크는 새로운 차원의 질문을 던진다. ‘왜 그렇게도 중세의 고귀하고 인품을 갖춘 수많은 사람들도 이렇게 역사를 잘못 기록하는 것에 동조했었을까?’라고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 그는 수많은 자료들을 열정을 가지고 관찰하고 탐구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삶의 상황에 비추어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세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를 너무나 동경하는 공통된 심리기저를 지니고 있었기에 ‘과거를 실제 있었던 사실보다는 있었으면 좋았을 것으로 기록하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였던 것이 아닐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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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이러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 바로 역사였던 것이다. 즉, ‘역사책은 갈망을, 즉 배우고자 하는 갈망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탐구하고자 하는 갈망을 불러 일으켜야만 한다.’(같은 책, 68쪽) 이러한 새로운 인식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묻혀있던 수많은 존재들과 사건들이 역사 속에 드러날 수 있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나는 블로크가 보는 방식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백마 탄 왕자는 어디로 가던 중이었을까

마지막으로 그가 말한 대로 나의 현재 삶에 대한 관심에 의해 새롭게 이해하게 된 역사의 한 장면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들을 보면 모두 비슷한 결말로 끝난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든 ‘백설공주’든 그 곳을 우연히 지나가던 백마를 탄 이웃나라 왕자의 도움을 받고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고 그 후, 왕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오래 오래 잘 살았다라고 끝난다. 질리지도 않고 들었던 이웃나라 왕자님의 등장으로 끝나는 해피엔딩! 생각 없이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접했고 동화책을 좋아했으니 아마도 나의 무의식에는 머나먼 곳에 사는 왕자님에 대한 동경의 심리구조가 있을지도 모른다. 낯선 곳에서 오는 존재가 나를 이곳에서 벗어나게 하리라는 환상도 함께 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우연히 ‘봉건사회’를 읽으면서 뜻하지 않게 왕자님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봉건시대 제1기의 왕들은 문자 그대로 여행의 과로로 죽어갔다. 예를 들면 1033년 (신성로마)황제 콘라드2세는 부르고뉴지방에서 폴란드 국경지대에 갔다가 거기에서 다시 상파뉴 지방으로 갔고 마지막으로 리우지츠로 계속 순행하였다.<중략> 제후는 종자들과 함께 자기 영지의 이곳저곳을 끊임없이 돌아다니곤 하였다. 그것은 영지를 좀 더 잘 감독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생산물을 수레에 실어 전체의 중심지로 운반하는 것은 불편할 뿐 아니라 비용도 많이 들것이었으므로 현지에서 소비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봉건사회Ι, 마르크 블로크, 한정숙 옮김, 한길사, 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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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다. 백마 탄 멋진 왕자님이 실은 다크 서클이 가득한 왕자님이었다. 우리가 ‘봉건사회’라는 역사책에서 보았듯이 그 당시 왕들은 실제적으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길이 좁고 험해서 자신의 수하에 있는 영주들이 생산물을 가져올 수 없기에 직접 자신의 가신들을 찾아가야만 하는 고달픈 속사정! 그야말로 생계밀착형 ‘왕’과 ‘왕자’가 아닌가. 그러니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만난 왕자님은 어쩌면 피곤에 지치고 허기져서 다음 영지를 찾아가던 중이 아니었을까. 이처럼 무의식속에 있는 ‘멋진’ 왕자님‘이 역사 속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조건을 배우게 됨으로써 나는 역사와 무의식이 만나는 지점을 발견했다. 예전에 어떤 지인이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공주병’ 증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을 듣고 엄청 열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냥 ‘아니다’라고 하면서 가볍게 넘기면 될 일을 나는 꽤 예민하게 반응했었다. 어쩌면 내 무의식속에 ‘백마 탄 왕자’에 대한 환상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기면서 말이다. 이제 새로이 내가 공부할 것이 보인다. 나의 무의식을 들여다보고 제대로 직면해보는 일이다. 

이렇게 역사는 지금 이곳의 나의 ‘삶’과 연관되어 있었고, 이제부터 좀 더 나 자신의 ‘삶’을 탐구하고자 하는 갈망을 불러일으켰다. ‘테라피’의 체험후기에는 꼭 이런 말이 나온다. “좋아요. 꼭 사용해보세요!!” 정말이다. 자의식과 불안과 몽상이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효능이 있다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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