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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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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7-01-11 16:41 조회4,8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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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이여민

들어가며

나는 겁이 많다. 누가 나를 간섭하는 것도 싫어한다. 그래서 나는 약 10년 전부터 위내시경과 복부 초음파를 직접 하지 않는다. 더 젊은 의사들에게 보낸다. 혹시라도 검사를 하다가 암을 놓쳐서 책임지기 싫고, 그럴 때 항의하는 환자와 보호자가 무서운 것이다. 물론 그 이전 15년 동안에는 이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말이다. 또한 나라에서 하는 의료사업에도 동참하지 않는다. 무료 독감이나 영유아 건강검진을 하면 나라에서 돈이 나온다. 어려운 의원 경영에 도움이 많이 된다. 그러나 나는 하지 않는다. 보건소의 관리감독에 들어가서 잔소리 듣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의원 수입이 적어서 아이 둘을 대학 보내는 동안 가정경제가 좀 힘들기도 했다. 나의 성격이 이런 진료를 선택하게 만들었지만 ‘월든’의 소박한 삶을 읽어보니 내가 하는 진료도 내 나름의 좋은 선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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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28세에 콩코드 강가 숲 속으로 들어가서 통나무집을 지어 2년 간 자급자족을 하고 살면서 ‘월든’을 발간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사회의 상식, 지배적 가치평가를 가볍게 떨쳐내고 자신만의 삶을 소박하게 사는 모습을 보인다. 책 서두에 그는 숲에 들어가서 살아보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으며,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2016). 월든, 강승영 옮김(3rd). 서울: 은행나무 p.139

이 부분을 보는데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간디, 법정스님과 같은 인생의 멘토들이 ‘월든’을 꼭 읽어야 한다고 추천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회적 통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월든’에서 했던 소로우의 시도가 부러웠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어떤 사회적 상식에 영향 받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그 가치는 진실인지?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길에 계속 가지고 가야하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월든’ 서문에 소로우가 말하였다. 자기 인생에 대한 소박하고 성실한 이야기를 해 줄 것을 부탁하고 싶다.’ 그래서 나도 ‘월든’ 속의 성찰들을 빌려서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나만의 소박한 삶을 그려 보려한다.  


나를 사로잡았던 두려움, 외로움

나는 이혼하여 두 딸을 키우고 있다. 이 아이들이 25세가 넘어서 항상 집을 떠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나는 아이들이 떠나고 혼자 남는 것이 두려워서 누군가 내 곁에 있어 줄 사람을 찾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인연은 없어서 사람을 만나지는 못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가족이라는 프레임(frame)에 견고하게 갇혀 있었던 것이다. 그 이상의 인간관계를 알지 못했고 깨진 틀을 복구하는데 마음을 두었었다. 다행히 ‘감이당’에 접속하게 되고 공부를 매개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고 나니 마음이 충만해졌다. 배우는 기쁨을 알게 되고 책을 읽으며 집중하는 시간이 생기니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엷어졌다. 인생의 후반에 내가 좋아하면서 할 일이 생긴 것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이런 내게 ‘월든’의 고독에 대한 성찰은 우주에 대한 열려있는 몸이었다. 
 
나는 외로움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고독감 때문에 조금이라도 위축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꼭 한번 내가 숲에 온지 몇 주일이 지나지 않아서였는데 그때 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것이 명랑하고 건전한 생활의 필수 조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 속에 한 시간쯤 빠져 있었다. 혼자 있는 것이 언짢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는 내 기분이 정상적이지 않음을 의식했으며 이 기분에서 곧 벗어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조용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나는 갑자기 대자연 속에 후드득 떨어지는 빗속에 모든 소리와 또 집 주위의 모든 소리와 경치 속에서 진실로 감미롭고 자애로운 우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2016). 월든, 강승영 옮김(3rd). 서울: 은행나무 p.200

소로우도 처음 숲에 들어가 ‘곁에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한 생각이 올라 왔었다. 필요를 느끼는데 필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지듯이 그도 감정이 살짝 상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불쾌한 감정에 따라가지 않으면서 곧 벗어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소로우는 자연 속에서 감미로운 우정의 기운이 존재함을 느낀다. 여기에서 그가 자연과 교감하는 열려있는 신체라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배울 점이 아닌가 한다. 내가 혼자 있으면 외롭다는 전제가 허구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오히려 혼자 있음으로서 더 풍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을 공부하면서 알았다. 내가 있는 곳이 어느 곳이든지 감정에 침몰되지 않고 마음을 열면 소로우처럼 우주적 친근함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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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으로 혼자 4박 5일의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혼자 있는 나와 만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은 고독에 대한 아름다움으로 바뀌는 중이다. 


건강한 평판에 대한 집착 

그가 하루 종일 움츠리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막연한 불안에 휩싸여 있는 모습을 보라. 불멸이나 신성은커녕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 즉 스스로의 행위에 의해 얻어진 평판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2016). 월든, 강승영 옮김(3rd). 서울: 은행나무 p22

나는 의학적으로 아주 건강하다. 그래서인지 아픈 것에 대해서는 유독 취약하다. 내가 아프면 아픈 것이 지속되는 것이 싫고, 주위에도 알리기 싫어 약을 먹고 증상을 없애는 편이다. 스스로 ‘건강’하다는 평판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갱년기가 오니 잠이 잘 안 오고 소화기능이 떨어지는 등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한 달 전부터는 귀에서 약한 소리가 들렸다. 이비인후과에 가니 오른쪽 귀의 청력이 조금 낮아져 중저음의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영양불균형과 노화가 원인이란다. 노화! 이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과정이다. 이 와중에 4박 5일간 명상 수련을 다녀왔다. 하루 6시간 동안 좌선을 하는데 다리가 쪼개지듯이 아팠다. 호흡을 관찰하는 수식관을 배우는데 망상보다 다리 아픈 것이 가장 힘들었다. 가르치시는 분이 “몸에 집착이 많은 사람이 다리가 많이 아픕니다. 다리가 아프다는 불쾌한 감정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호흡을 관찰하기만 하세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내가 다리가 유독 아팠던 것은 불쾌한 통증이 싫어서 빨리 없어지기만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쾌한 상태는 빨리 사라지기를, 유쾌한 상태는 오래 지속되기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비를 치고 다리를 풀면 어느 사이엔가 다리의 통증이 말끔히 사라졌다. 

우리가 서두르지 않고 분별력을 발휘 할 때 오직 위대하고 가치 있는 것들만이 항구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며 사소한 두려움이나 사소한 쾌락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숭고한 진리는 항상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2016). 월든, 강승영 옮김(3rd). 서울: 은행나무 p.147

나는 나에게 쾌락을 주는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런데 몸은 노화가 되고 자연스럽게 늙어 간다. 항상 젊은 에너지를 가질 수는 없다. 아픈 것에 대한 것은 사소한 두려움이며 지금 건강한 것에 집착하는 것은 사소한 쾌락이다. 이런 것들이 그림자란 것은 환영이라는 것이다. 아프고 늙는 것은 세포 노화를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당연한 것인데 나는 나의 건강 이미지에 현혹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눈을 감아버리거나 졸거나 허식적인 것에 속아 넘어가기로 동의함으로써 자신의 인습적인 일상생활을 확립시킨다. 아직도 이 일상생활은 순전히 허구의 토대 위에 세워져 있다. <중략> 어른들은 인생을 가치 있게 살지 못하면서 경험에 의해서 바꾸어 말하면 실패에 의해서 자기들이 아이들보다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2016). 월든, 강승영 옮김(3rd). 서울: 은행나무 p.147

쾌락상태를 지속시켜 주는 편리함을 추구함으로서 지금 내 상태에 대한 진실을 보지 않는다. 그리고는 습관적으로 살아간다. 광고로 주입되는 자본의 주사를 맞으면서 취한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일상생활은 허구의 토대 위에 있게 된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는 “성실히 살아야해. 직장은 그만 두면 안 돼.”하고 마치 진리인 것처럼 떠든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소로우는 하루의 평온을 유지하며 주위에 휩쓸리지 말고 “진실이라는 이름의 단단한 바위에 닿을 때까지 내려가 보자.”(p.150) 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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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일상이 허구의 토대 위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한다.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은 그 순간에 집중을 하게 되어 잡념들이 사라진다. 이제 이렇게 공부 한 것들이 내 일상의 삶 속에 섞여 들어와서 깨어 있게 되면 ‘진실이라는 이름의 바위까지 닿는 것’의 길이 조금씩 열릴 것이다. 


나가며

글을 쓰면서 자꾸 ‘월든’을 인용하게 된다. 그만큼 소로우의 삶에서는 배울 것이 많고 아직 나의 언어는 빈약하다는 뜻일 것이다. 처음 ‘들어가며’에서 이야기했던 내가 의원을 경영하는데 소박하게 진료하는 것처럼 보인 것은 공부해보니 ‘월든’과는 전혀 달랐다. 나는 돈을 적게 버는 것에 민감하지 않았던 것뿐이었지, ‘월든’처럼 사회적 시스템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에 저항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소로우와 다르게 어떤 상황이 싫으면 그 상황을 자세히 따져보지 않고 피해버린다. 왜 싫은지, 왜 두려운지 깊이 있게 보지 않는 편이었다. 소로우의 태도 중 가장 탐나는 것은 어떤 사실이 진짜 나에게 필요한지, 필요 없는지 곰곰이 따져 보는 것이다. 나는 그런 혜안은 없다. 그렇다면 열심히 공부해서 지혜를 가진 사람들의 생각을 배우는 수밖에 없다. 그 다음은 내가 배운 데로 해 보는 것이다. 
 
강의 시간에 채운샘께서 “숲으로 들어가서 ‘월든 오두막’을 짓는 것만이 진리가 아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자신이 있는 곳을 ‘월든’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씀하셨다. 가슴이 찌릿해 왔었다. 내가 주로 생활하는 곳은 집, 의원, 감이당 이 세 곳이다. 이곳에 사는 내가 ‘숲에서 살면서 관찰하고 사색하면서 글을 써서 진리에 도달하려는 소로우’를 잊지 말고 계속 배우는 태도를 가져야겠다.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되게 아는 것이다.”(p.28) 이렇게 앎을 점검하면서 계속 공부하고 글을 쓰고 배움을 사람들과 나눌 것이다. 이번에 ‘월든’을 읽으면서 ‘혼자는 외롭다’는 상식과 건강한 상태에 집착하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 이렇게 내가 붙잡은 사회적 통념들이 무엇인지 점검하면서 깨트려 나간다면 앞으로의 삶도 재미있을 것 같다. 머물러 있고 반복하는 삶은 지루하다. 계절이 변화하듯이 나도 자연의 흐름에 따라 변하면서 살고, 죽음이 내 앞에 왔을 때 소로우처럼 큰 기쁨과 평화로움으로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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