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세이] 내 본성에 맞게 살기, 2년 > 감성에세이

감성에세이

홈 > 커뮤니티 > 감성에세이

[감성에세이] 내 본성에 맞게 살기, 2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7-02-19 17:18 조회6,493회 댓글0건

본문


본성에 맞게 살기, 2년


전미숙(감이당 토요 대중지성)


들꿩의 본성은 스스로 수고해서 먹고 사는 것이다. (...) “깊은 숲속에서 살게 하고, 물가를 거닐게 하며, 무리를 따라 왔다갔다 하면서 자연스럽게 살게 해야”한다. 이건 결코 심오한 말이 아니다. 자신의 본성에 맞게 살아야 ‘살맛’이 난다는 지극히 평범한 이치다. 

 고미숙,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북드라망, 2016, 152-153쪽


서른 살 때 올빼미족으로 살며 해오던 화실 일을 정리하고 동네에 생긴 대형마트에 취직했다. 낮에 몸을 움직이며 일을 해서 그랬던지 일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몇 년 일하다보니 지치기 시작했다. 정규직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이미 비정규직으로도 충분히 힘든 상태였다. 잠시 쉬면서 출판사 일을 해보고 싶어 편집디자인을 배웠다. 취직을 해서 출근한 첫날 모출판사와 이름이 같은 그냥 디자인회사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냥 다녔다.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고 마우스를 만지며 앉아있자니 부정맥과 하지정맥류가 도지는 게 느껴졌다. 그건 컴퓨터로 그림 작업을 할 때 내게 생기던 증상이었다. 몇 개월 일했을 때쯤 갑상선암이 걸려서 그길로 냅다 쉬어버렸다. 병도 병이지만 그때의 기분은 ‘아 이제 쉴 수 있겠구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주사바늘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껏 치과 빼고는 병원 한번 가지 않고 살아온 인생이었기에 내게는 큰 수술이었다. 나는 씩씩한 척 혼자 병원을 다녔는데 병원 의자에 앉아 있노라면 생각이 많아서 오히려 멍했다. 그래도 그때 병원을 다니면서 어떤 일이든 하나씩 해나가면 된다는 것을 배웠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무서운 주사바늘도 계속 찔리다보면 나중에는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아는 고통’이 되면 할 만하다는 것을 배웠다. 수술 이후에 나는 별 수 없이 또 일을 구하려고 나섰는데 그때 공부운을 만났다. 그리고 지금 ‘먹이를 찾는 수고로움’을 자처하며 ‘자유롭게 살려는 본성에 맞게’『바보돈』,152쪽 들꿩처럼 살기 위해 애를 쓰며 살고 있다. 



birds-1216039_640.jpg



내 인생에서 할 일 찾기


갑오년은 갑상선 수술 이후 또다시 구직 작업이 한창이던 때였다. 그해 내가 계속 지원을 하던 회사가 외국계이기는 했지만 유독 독특한 자기소개서를 요구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해야 했다. 그 작업이 몇 번 반복되던 가을쯤에는 ‘정말 난 어떤 사람이지?’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강신주 철학자가 자기 자신이 궁금하면 자신의 욕망리스트를 보라는 말이 생각나 그것도 작성해보았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내가 가장 좋아하고 평생 하고 싶은 일은 자유롭게 여행하고 책보고 공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열심히 하거나 효율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책을 보아왔다. 책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그때 곰샘의 세바시 강의 ‘백수의 정치경제학’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꼭 남들만큼 일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도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도시락을 싸서 도서관에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 후 책을 보고 감이당에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중요한 것은 내 인생에서 나의 ‘할 일’을 찾는 것. 그것을 발견하는 것 같다. 내 인생에서 할 일을 발견하자 다른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나도 내 직업은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밥벌이로는 프리랜서로 살 기술이 없었으니 그냥 조건이 맞는 알바를 하기로 하고 작년에는 주방알바를 올해는 도서관알바를 주 2,3일씩 했다. 적어진 수입에 생활을 맞춰야 했다. 처음에는 늘 해왔던 것을 못하고 사던 것을 못사는 상황이 구차하게도 느껴졌다. 하지만 집안의 잉여물은 너무 많았고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안사도 죽지 않았다. 가장 큰 변화는 내가 살림을 제대로 하게 된 점이었다. 시간을 들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집안일을 했다. 그 일은 어차피 내가 돈을 벌어서 사야하는 것을 직접 내손으로 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런 생활을 내 신체는 분명히 좋아하고 있었다. 수입이 줄어들어서 이런 생활을 시도해보지 못했다면 내게 이런 생활이 잘 맞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우리는 먼저 자기 자신을 찾아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누군가 알려주기를 기다리다가는 지옥불이 다 얼어붙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 우리가 무엇이 중요한지를 찾아낸다면,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싸우고 심지어 죽을 각오가 되어있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 아무도 다시는 우리의 마음을 식민화하지 못한다. 

스콧 새비지 엮음, 『그들이 사는 마을』, 강경이 옮김, 느린걸음, 2015, 289-290쪽



필요한 만큼 벌고 살기


소로우의 『월든』을 읽으며 ‘필요한 만큼 벌고 산다’는 세련된 표현을 배웠다. ‘1년 중 약 6주일간만 일하고도 필요한 모든 생활비용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108쪽 쓴 부분에서도 참 좋았다. 내가 굶어죽기는 힘들겠구나 싶었다. 나는 필요한 만큼 벌며 자유롭게 살게 된 만큼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굶어죽지는 않을지 한번 생각해보는 일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하루 중 가장 햇살 좋을 때 두세 시간씩 산속을 매일 걸으며 ‘건강을 누릴 자유를 지켜낸’ 이반 일리치,『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느린걸음, 2014, 96쪽 다는 게 어디 보통일인가? 그러니 나는 투덜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럼에도 내일에 대한 두려움은 불쑥불쑥 찾아왔는데 현재 생활을 포기하게 할 만큼 위협적인 것은 아니나 상처를 찔러대는 통증이 있었다. 


그럴 때는 책을 보면 되었다. “머릿속을 책으로 채우느라 번뇌가 들어올 틈이 없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실로 효력이 있었다. 우리 머리는 한가지만을 담을 수 있다. 또는 의역학 수업에서 배운 것처럼 그럴 땐 다음 절기까지 할일을 하면서 묵묵히 일상을 살다보면 기운은 바뀌고 마음은 다시 담담해져 있었다. 또한 암송은 불면증에 좋았다. 잠자리에 누워 산책길에서 외워둔 구절을 읊조리다보면 마음에 꼭 드는 그 구절을 닮은 꿈속으로 금세 빠져들었다. 돈 걱정이 생겨 괴로울 때면 정말 그것 때문에 걱정인건지, 아니면 일상은 제대로 살지도 않고 공부도 최선을 다해 하지도 않으면서 돈 핑계를 대고 지금의 생활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닌지 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면 문제는 늘 다른 곳에 있었고 내일 당장 굶어죽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 생활이 좋은데 뭔가 습관적인 걱정이 떠오르고, 그것을 파헤쳐보면 정작 실체는 없었다. 그런데 또 어느 순간 걱정이 떠오르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언젠가 부터는 걱정이 생겨날 때, 그것의 실체 없음을 기억해냈다. 그렇게 점차 그 간극을 좁혀갈 수 있었다. 


독서.jpg


이런 시간들을 지내오면서 요즘에는 이 생활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알겠다는 느낌? 그리고는 세상에 무엇이든 간에 익숙해지면 할 만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하나 눈치 챈 듯 기분이 좋아지고 조금은 더 여유가 생겼다.


무게중심은 확고해야 한다. 하지만 위기가 오면 유연하게 중심을 옮길 수 있어야 한다. (...) 어깨에 힘을 뺄 것, 어떤 경우에도 유머를 잃지 말 것. 허리케인이건 금융위기건 혹은 그 어떤 모순이건, 자신이 맞서 싸우는 대상이 아무리 힘겹고 역겹더라도, “투사가 되기 위해서는 슬퍼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푸코의 조언을 환기할 것. 진정 삶을 바꾸는 건 비장한 포즈가 아니라 “욕망과 현실”의 유연한 연결이기 때문이다.

고미숙,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북드라망, 2016, 231-232쪽


직장이 없으면 활동영역이 좁아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다. 그것도 내가 원할 때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나처럼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갈 곳이 없어서 걱정인 일은 없었다. 또 직장이 없으면 시간이 많이 남아돌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주변에서 그 사실을 알고 오만가지 부탁을 해오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닐 스케줄이 나름 꽉 차 있는데 ‘혹시’라는 부사도 없이 불쑥 너 시간되지? 하고 부탁을 해오면 내 시간을 자기 시간처럼 쓰려는 태도 같아 처음에는 화가 났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로우의 콩밭에서 ‘콩들의 일부가 우드척을 위해 자라고 있는 것’처럼『월든』251쪽 나의 여유로운 시간의 일부도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실, 오히려 그 부탁들 덕에 생활이 심심하지 않으니 좋고 공덕도 쌓으니 좋을 일이었다.


1126709822.jpg



살아가는 공부


내가 만나는 사람이, 또 그 사람과 맺는 관계가 곧 나다! 이것이 운명의 법칙이다. 그런 점에서 배움이란 그 자체로 ‘공동체적 신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고미숙,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북드라망, 2016, 156쪽


번뇌가 찾아오면 책을 보고, 마음이 어수선할 때는 다음 절기까지 그냥 살아보는 것. 일상의 균형을 잡는데 공부가 많은 힘이 된다. 처음에는 공부를 해서 사는 방법을 터득하려 했었지만, 지금은 삶을 사는 공부를 하고 있다. 어떤 삶도 살 수 있는 공부를 한다. 공부를 하기 위해 시작한 이 삶이, 오히려 지금 공부가 된다. 감이당에서 많은 학인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과 비교하면 예전에 내가 혼자 책을 보고 공부했던 것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시간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그때의 공부가 지금 많은 도움이 된다. 


내가 선택한 삶을 2년 살았다. 이제 조금은 익숙하다고 느끼는 시점에 있다. 우선은 내가 필요한 만큼 벌고 함께 공부하는 이 생활을 5년을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시 그만큼을 채울 수 있기를, 또 그 시간 동안 여유를 가지고 유머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미래가 현재의 평면적 연장’이 아니고 ‘시간은 직선으로 진행’되는『바보돈』,47쪽 것이 아니기에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보려고 한다. 어느 아미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일단 내리막길을 내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기만 한다면 신이 나를 도울 것이라 믿었고 그로부터 새로운 선택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스콧 새비지 엮음, 『그들이 사는 마을』, 강경이 옮김, 느린걸음, 2015, 29쪽고. 나도 눈을 감고 햇볕을 쬐고 있노라면 이 천지자연의 신이 나를 도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나 또한 이 세상의 한 부분으로서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끝)

 

htm_2010080623360511001140-001.JPG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