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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사랑, 그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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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7-07-29 20:49 조회2,8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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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힘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를 읽고-


정은희(화요 감이당 대중지성)

1867년 메이지 천황은 메이지유신을 선언하고, 이 선언을 시작으로 일본은 근대국가를 향해 달려 나간다. 서구 열강들이 이룬 근대 국가의 모습을 고스란히 따라가면서 일본국가와 국가 안의 개인들은 앞만 보고 엄청난 속도로 달린다. 그러한 길목에서 근대인으로, 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너무도 깊이 고민하고 번민했던 소세키는 소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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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근대 국가에서 자유롭고 독립된 개인으로 자신의 부와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 눈길한번 주지 않고 달려가던 그때에 그 길에 함께하지 못한 소세키. 그는 왜 자리에서 머뭇거렸을까? 그리고 마치 소세키처럼 머뭇거리는 사람들, 결정하지 못하는 듯이 보이는 사람들, 시대와 거리를 두는 사람들 등등이 그의 소설에는 등장한다. 그런 인물들이 답답해보였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한편, 묘하게도 그들은 내 가슴 속에 잔영으로 남아 계속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들을 통해서 나는 나를 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의지의 인간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 그는 메이지 시대의 흐름을 잘 타고 자수성가한 아버지의 경제적인 보조를 받으며 살고 있는 백수다. 그는 도쿄에서 대학을 나왔고, 이 시대에 대학을 나왔다는 것은 곧 사회적으로 성공할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는 사회적 성공에는 관심이 없다. 

히라오카는 다이스케와 함께 대학을 다닌 형제와 같은 친구이다. 그는 다이스케의 또 한명의 친한 친구인 스가누마의 여동생 미치요와 결혼을 했다. 결혼과 동시에 다른 지방에 취직을 하여 다이스케를 떠났었다. 그 부부가 직장을 잃고 도쿄로 돌아왔다. 히라오카는 3년 전 도쿄에서 헤어질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붉은 눈빛을 자주 보이는 히라오카는 “인생에서 처세라는 사다리를 한두 계단 오르다가 헛디뎌 떨어져,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돌아왔다.”(『그 후』, 나쓰메소세키, 66쪽, 현암사)
 
그리고 다이스케에게 지금은 실패했지만, “내 의지를 현실 사회에서 실현하려고 하고 내 의지 덕분에 이 현실 사회가 내가 원하는 대로 변했다는 확신을”(102쪽) 가지며 또 살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묻는다. 자네는 왜 일하지 않는 건가?

그건 내 탓이 아니야. 즉 세상 탓이지. (중략)일본은 서양에서 빚을 얻지 못하면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나라야. 그런데도 선진국이라고 자처하고 있지. (중략) 모두 빡빡하게 교육을 받고 그 후에는 눈이 돌 정도로 혹사를 당하니 모두가 하나같이 신경쇠약에 걸려버리지. (중략) 자신의 일과 자신의 현재, 단지 눈앞의 일 외에는 아무 생각도 없지. (중략) 일본의 어디를 바라보아도 밝게 빛나는 구석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지 않은가? (중략) 그 속에서 나 한 사람이 무슨 말을 한들 무슨 일을 한다고 한들 소용이 있겠나.                                                                                                                       
『그 후』, 105쪽, 나쓰메 소세키, 현암사

근대사회에서 개인은 의지를 발휘하여 자신의 삶을 개척하여야함을 말하는 히라오카. 그는 본인의 의지와 능력으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생계를 해결하고 그 토대위에서 자신의 삶을 자유와 독립된 것으로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길이라는 것. 이에 반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다이스케는 의지를 발전시킬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공허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다이스케는 일본이 서구 열강을 따라가는 그 모습은 마치 소의 배와 경쟁하는 개구리의 배와 같다. 개구리의 배가 터지면 그 피해는 일본 안의 개인들이 다 질 수밖에 없다. 일본이 근대 국가를 위해 달려가는 그 속에서 개인들은 그 제도에 규정받고, 경쟁하며, 혹사를 당하고 있다. 개인들은 교육을 받고, 이를 바탕으로 일터에 나가며, 개인으로써 눈이 뱅뱅 돌며 살아가고 있다. 하여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늘 지쳐있는 개인들 속에서 다이스케 자신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자신이 그런 의지의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세상 탓이다. 때문에 “자신은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살 수밖에 없”(108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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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오카는 사회가 제시하는 삶의 방식을 살며 나름 고학력자로 사회에서 앞서서 살고 싶은 사람이다. 그는 잠시 코스에서 이탈했지만, 곧 자신의 의지로 또 다른 코스에 진입하여 근대인으로 살 것이다. 히라오카의 입장에서는 먹고 사는 일이 해결된 한가한 다이스케는 우리들의 타락을 걱정하지만, 그것은 방관자의 변명일 뿐이다. 


사랑, 그 자연스러움.
 
의지의 인간인 히라오카와의 만남 후, 다이스케는 과거 자신이 의지의 인간이었던 때가 떠올랐다. 태어난 아기는 곧 죽고, 심장이 나빠져 얼굴이 창백한 미치요, 다이스케는 그녀가 너무도 가엾었다. 가엾은 그녀가 다이스케는 보고 싶고 만나고 싶어졌다. 3년 전 히라오카와 미치요 사이에 중매를 선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다이스케도 미치요에 대한 깊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갑자기 엄마와 스가누마 오빠의 장례를 치른 미치요를 사랑한다는 히라오카의 고백을 받은 다이스케는 친구와의 우정을 저버릴 수 없었다. 
 
다이스케는 그때의 자신이 “어렸기 때문에 자연의 순리를 가볍게 생각”(312쪽)했음을 떠올렸다. 그때 자신이 유치한 의협심을 발휘하는 의지를 냈기 때문에 이렇게 자연의 순리에 따른 복수를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치요에 대한 자신의 깊은 마음은 전혀 없어지지 않았고, 단지 자신의 깊은 곳에서 웅크리고 있었을 뿐이다. 굳게 묻어두었던 그 감정은 자신의 통제 따위와는 상관없이 불쑥 불쑥 자신을 행동하게 했다. 그래서 일까. 얼굴이 창백한 미치요를 만날 때마다 자신 안의 자연스러운 에너지가 전체를 휩싸고 돌며, 그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 기분을 느꼈다. 그 한편 그 사랑이 얼마나 자신을 위협하는 에너지인지도 또렷이 인식하고 있었다. 이 사랑에 순응하는 순간 그는 현재의 제도에서는 배척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그는 자신과 미치요의 관계를 직선적으로 자연이 명령하는 대로 발전시킬 것인지, 아니면 그와 정반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옛날로 돌아갈 것인지, 어느 한 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삶의 의미를 잃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중략) 전부 사회적으로 안전하지만 전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무능하고 무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미치요와의 관계를 하늘의 뜻에 따라, 그는 그걸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발전시켰을 때 뒤따라올 사회적 위험을 알고 있었다.            

『그 후』, 240쪽, 나쓰메 소세키, 현암사

다이스케에게 미치요와의 사랑은 자신 안에 있던 자연스러운 에너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바로 하늘의 뜻이며, 다이스케에게는 순리가 된다. 지난 시절 이 자연의 순리를 의지로 눌렀던 다이스케. 그는 자기 안의 자연의 에너지가 발휘될 통로를 막아버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다이스케는 생생한 삶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지 못했다. 하여 관념으로만 자기 생각들을 다듬어갔을 뿐이다. 
 
다이스케는 근대 제도를 비판하면서도 그 제도에 의탁하는 삶을 고상한 삶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살아왔었다. 가족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그들을 냉정하게 비판적 시선으로 보면서도 그들의 경제력이 아니라면 자신의 삶은 전혀 유지할 수 없는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았다. 다이스케는 그러한 자신의 이중성을 가끔씩 느끼고는 있었지만, 자신이 속한 그 세계를 박차고 나갈 만큼의 열정은 갖고 있지 못했다.
 
다시 만난 미치요는 자신 안에 내재되어 있던 아니 어쩌면 꼭꼭 가둬 두었던 자연이었던 다이스케를 깨어나게 했다. 하여 다이스케는 드디어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을 만났다. 그는 열정이란 “완성된 상태로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돌과 쇳덩이가 맞부딪치면 불꽃이 튀듯이 상대에 따라 마찰이 잘되었을 때 두 당사자 간에 일어나는 현상이다”(51쪽)이라고 평소에 생각해왔었다. 그리고 미치요라는 상대를 만나 불꽃이 튀었다. 두 당사자 사이에 정신적 교류작용인 열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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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스케는 이제 이 자연의 뜻에 따라 자신안의 에너지를 의지의 인간으로 가두어 버렸던 때와 결별하려 한다. 근대 제도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인간이 되어 그 제도 속에서 돈을 벌고 미치요와 살아가야한다. 사회로부터 추방당할 것이며, “개인의 자유와 저마다의 사정을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는 기계같은 사회”(273쪽)와 대결하며 그 안에서 살아가야한다. 다이스케가 살아갈 삶은 위험한 사랑을 택한 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무슨 행동을 할지 다른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사람이라는 손가락질 속에 살아가야 한다. 
 
근대국가 제도 속에서 사람들은 의지의 인간으로 재탄생되며, 그 의지의 인간들은 제도 속에서 자신을 실현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예측 가능한 제도들, 경제 발전, 기술 발전 그리고 사람의 삶까지 예측 가능한 근대 문명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다이스케는 예측불가능한 자연의 인간이 되기로 했다. 근대 문명이 야만이라는 이름으로 철저히 밟았으며, 정복했으며, 없애버리기에 혈안이 된 예측불가능성의 인간. 자연 안의 그 예상 불가능함이 항상 인간을 위협하고, 인간을 불안에 떨게 한다고 믿는 제도의 인간들은 다이스케와 함께 살아갈 수가 없다. 그가 자연을 따르기 때문이다. 이런 다이스케를 찾아와 형 세이고는 이제 가족들과 다이스케는 가족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이스케와 같은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인간처럼 위험한 건 없기”(322쪽) 때문에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고 말하며 결별을 선언한다.


붉은 세상 속으로
 
『그 후』의 마지막 장면은 다이스케가 가족으로부터 결별을 선언 받고, 일자리를 구하러 거리로 뛰어나가는 장면이다. 다이스케가 나간 거리는 어제와 분명 같은 거리, 같은 전차 안인데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있었다. 다이스케가 변했기 때문에 세상도 달라져있었다. “전신주도 빨갰다. 빨간 페인트 간판이 계속 이어졌다. 나중에는 세상이 전부 빨개졌다.”(같은 책, 325쪽) 온통 붉은 빛깔로 가득 찬 세상으로 다이스케는 발을 내딛었다. 
 
다이스케의 붉은 세상은 불안과 혼돈으로 가득 찬 세상의 색깔이다. 이 불안과 혼돈의 세상에서 다이스케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책임을 지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아니 어쩌면, 다이스케만이 아니라 나도 그리고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도 나름의 선택을 하고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그것을 자각하지 못해왔을 뿐이다. 다이스케는 이제 자신의 선택과 그로 인해 질 수밖에 없는 책임 앞에 서게 되었다. 이것은 다이스케가 평소에 말해왔던 인간의 목적이란 것을 붉은 세상 속에서 실현해야만 하는 지점에 서게 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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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스케는 인간이 태어나면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오히려 “인간의 목적이란 태어난 본인이 스스로 만든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그 목적을 마음대로 만들 수는 없다. 자기의 존재 목적은 자기 존재의 과정을 통해 이미 세상에 발표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같은 책, 174쪽)라고 생각해왔다. 다이스케는 미치요와의 사랑을 선택함으로써 제도의 인간이지만, 자연의 힘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이 또한 인간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은 스스로 자신의 목적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미치요와의 사랑은 자연스럽지만 거부할 수 없게, 그를 찾아와서 그가 자연의 일부분임을 알게 했다. 허니 자신 스스로 자신의 목적을 만들 수 없음을 또한 보여준다. 하여 이제 다이스케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서 펼쳐지는 삶속에서, 자기 존재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존재목적을 발표하게 된다. 이것이 그의 선택이며, 그에 따른 그의 책임이며 동시에 그의 존재 과정의 발표가 된다. 그의 붉은 세상은 선택도 책임도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갈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인 자가 만나는 세상의 빛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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