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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사이버 원탁의 선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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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7-10-28 11:28 조회2,7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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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의 용량이 부족하여 두 편으로 나누어서 올립니다!



 

국면의 전환 뜻밖의 갈등을 마주하다


계속 좋을 수만은 없다수시변역(隨時變易)은 세상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법칙이다갈등은 서로가 가까워지면서 촉발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났다면 사실 알지도 못했을 너무 다른 서로의 전제를 알아버린 것이었다처음에는 하하호호 웃고좋은 게 좋은 거라는 물렁한 태도로 덮여 있던 다름과 차이는 갑자기 날카롭게 날아와 박혔다이때 벌어지는 갈등에는 하나님 부처님 논리를 다 갖다 붙여도 귀에 안 들린다결국 짜증으로 커진 목소리 끝에 한 명이 영상통화방을 박차고 나가버렸다호감이 답답함으로격려가 빈정거림으로인내가 분노로 변한 순간처음의 확신과 순조로움은 산산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이 순차적인 복합 세포 형성 과정의 마지막 단계는 산소 호흡을 하는 이 생물이 초록색 광합성 세균을 삼키고 그것을 소화시키는데 실패하면서 이루어졌다이 합병은 엄청난 투쟁을 벌인 뒤에야 이루어졌다결국 소화되지 않은 초록색 세균은 살아남았고그것까지 몸에 지닌 융합체는 번성하게 되었다.

-공생자행성린 마굴리스사이언스북스, 75

 

초록색 광합성 세균을 삼키고 소화불량에 걸린 초기 세포를 보라낯선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그야말로 소화불량에 가까울 것이다. 함께 하는 세상공생하는 삶 같은 아름다운 슬로건은 사실 엄청난 갈등과 상상할 수도 없는 불편함을 함축하고 있다우리는 각자가 너무나 이질적인 존재이기에만나면 싸우는 것이 당연함을 감수해야 한다공생진화론을 주장한 린 마굴리스도 공생 자체의 과정은 너무나 폭력적이고 급격하며 갑작스러운 변화라고 설명했다공생은 싸움이고함께함 자체가 그런 도화선을 감추고 있는 폭탄이었다게다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아무런 예고도 없다.


영상통화가 문제없이 진행되었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동화되어 한 몸처럼 동의하는 전제다 같이 일치하는 글을 써낼 수 있으리라 확신했었다하지만 갑자기 터진 갈등으로 배는 좌초할 것만 같았다당연히 서로가 합의되었다고 생각한 부분의 불일치가 갑자기 발견되었고완벽히 이해했다고 생각한 부분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력함에 부딪쳤을 때 우리가 느꼈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풀하우스-다양성이 알려준 깨달음


하지만 갈등 이후에 밴드에서는 의외의 현상이 관찰되었는데바로 영상통화 참여율이 최고 수준에 다다랐다는 점이었다. 거의 모든 조원이 평일 내내 영상통화에 참석한 것이다통화방은 항상 다섯의 스크린 화면으로 꽉 차서 북적거렸다왜 그랬을까사실 격렬한 감정의 충돌 이후가 서로 궁금한 것이었다. 갈등이 터졌다그 이후는 과연 어떻게 될까글은 쓸 수 있으려나서로 예전처럼 마주할 수 있을까갑작스러운 갈등은 밴드의 방향성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모두는 예전보다 달라진 태도로 한층 더 진지하게 사이버 원탁에 앉았다.

신중하게 변화된 양상은 퍽 긍정적이었다그와 별개로 우리는 언제까지고 이 모임을 지속할 수 없었고결과물을 제출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점점 더 우왕좌왕하며 방향키를 잡지 못해 헤맸고글쓰기는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매 토론 시간마다 우리 이제 글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제안되었지만, ‘도대체 어떻게?’라는 질문 속에서 다들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56일의 여정에서 딱 반환점을 돌던 순간에 침체되고 서로 눈치만 보던 상황그 와중에 우리가 들었던 강의가 바로 풀하우스와 공생자행성이었다.

 

사물의 분류문제에 관련해 우리는 플라톤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즉 하나의 이상형이나 평균을 그 시스템의 <본질>로 추상화하고 전체 집단을 구성하는 각 개체들 사이의 변이를 무시하거나 평가 절하하고 있다. -풀하우스,스티븐 제이 굴드사이언스북스, 65

 

시작점부터 마지막 결론의 방점을 찍기까지 모두가 동의하고 만족스러운 박수를 칠 수 있는 밴드 글쓰기는 불가능하다풀하우스가 우리에게 알려준 해결책은 이러했다우리는 새롭게 이 관점을 받아들여야 했다다섯 명의 작은 모임에서도 변이와 예외적인 상황은 항상 발생하는 법이었다굴드에게 밴드글쓰기에서 의견 일치를 보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을 것이다. "풀하우스를 읽는다는 사람들이 '일치'를 이야기하다니완전 헛소리야!'라고. 객관적이고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중간값을 발굴해야한다는 집착을 다양성의 관점으로 다시 깨야 했다누군가는 나머지가 제시하는 글의 방향에 동의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하지만 그 사람은 밴드에서 질문을 던지고 내부자이지만 외부자의 눈으로 글쓰기의 조정자가 되어 줄 수 있다. 각자의 불완전한 다양함 그 자체로 완전해지는 밴드글쓰기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모든 이야기가 잘 진행되고 그저 즐겁기만 했던 초반의 평화는 지나갔다우리는 약간의 소화불량과 조심스러움텍스트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뱃속에 지닌 채로 한 걸음 더 진화했다그리고 만장일치가 되는 글보다는 사이버 원탁을 운영하며 마주했던 감정과 변화를 온전히 담아내는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공부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그리고 그것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이번에 느꼈어공부 하면서 내 생각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게 정말 재미있었는데특히 매일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 하니까즐거움이 배로 증가하는 느낌이었어갈등도 있었지만 다양한 인간 군상을 겪어볼 수 있다는 점도 참 좋았어.”

 -9/9 영상통화 최선미 대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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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겪어왔던 싸움과 다르게밴드에서의 갈등은 여기서 무엇을 공부할 수 있는?’하는 진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예전에는 한 번 싸웠다 하면 누구 하나에게 잘못이 있기 때문이라 여기고인과관계를 밝혀 명명백백하게 잘잘못을 가리려고 했었다그래서 싸움 후에는 상대가 먼저 사과할 때까지 전혀 모르는 사람인 척 냉담하게 굴곤 했다.갈등의 원인은 너니까하지만 여기서는 한 사람의 잘못만을 캐낼 수 없었다. 모두가 부분이자 전체였고그간 영상통화를 하면서 다들 바쁜 와중에도 열심이라는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갈등은 다음날 수그러들었다분열이 아니라 다시 관계를 이어보려는 노력 속에서조원 한 명은 놀랍게도 우리들의 사주를 하나씩 분석해왔다그녀의 해석은 상당히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심지어 갈등의 원인과 양상까지 명쾌하게 설명되는 느낌에 우리는 감탄했다그 후로 사주명리와 별자리작년의 텍스트와 사건들,튜터의 강의들각자가 써온 조각글들까지 온갖 종류의 감이당에서 배운 공부와 글들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 총동원되었다그렇게 우리는 그야말로 이해 못할 서로를 더 이해하려는 온갖 몸부림을 쳤다. 4권의 텍스트 위에, 5명의 서로를 또 다른 텍스트로 두고 각자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개별성과 총체성그 사이의 밴드 글쓰기


56번의 만남에 30분을 곱해보면 1,680, 28시간이 나온다한 시간을 훨씬 넘겨서 토론을 끝낸 적도 꽤 있어서아마 쌓인 시간은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감이당의 한 학기 오전 강의와 낭송 시간을 뺀 글쓰기 강의를 합친 것과 맞먹는 시간이다어떤 조원은 우리 다섯이서 만난 시간이 감이당 전체 1년 과정에서 학인들을 만나는 것보다 더 많을 거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이렇게 긴 시간 동안 함께 한 다섯은 어떤 결론을 얻었을까?

 

개인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또 한편으로 개인은 개인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지나친 후함과 공산주의는 현대인의 개인주의 또는 근대법의 개인주의와 마찬가지로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해로울 것이다. (중략이 새로운 도덕은 확실히 현실과 이상이 현명하게 잘 섞여 있는 중간에 있을 것이다.

-증여론마르셸 모스한길사, 256

 

마르셸 모스가 말하는 '중간'은 어떻게 가능할까우리는 그 답을 밴드 글쓰기를 통해 내릴 수 있었다한 몸으로 글을 쓰려는 총체성을 시도하면 지나친 개인주의를 방지할 수 있다그리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긴장과 부딪침을 받아들이는 노력을 통해 집단주의를 경계할 수 있다개별성과 총체성 사이를 중도의 미덕으로 잘 건너가는 과정 속에서 제 3의 길이 생겨날 것이다. 밴드 글쓰기는 그 길을 체험하는 실험의 장이었다.

밴드6조는 다섯이 하나의 몸을 이루어 글을 쓰자는 결의 아래 출발했으나예상치 못한 의견 차이를 겪으면서 총체성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점은 홀로 섬에서 탈출하려는 로빈슨 크루소에 있지도단결성만 폭압적으로 주장하는 나치에 있지도 않다너무 분리되어 각자의 몫만 가지고 사는 것에 익숙한 신체적 윤리를 하나의 글쓰기로 어떻게 깰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다또한 하나의 글쓰기를 추구하면서 부딪친 문제들을 다시 다양성의 관점으로 해결하려 했다밴드 글쓰기는 지나치게 분리된 개체도파시즘적 동일성도 아닌 중간을 알려주었다우리는 한 몸으로 글쓰기를 추구했지만 각자의 이질성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고민 역시 병행했고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그동안 배워왔던 감이당 공부들의 도움이 컸다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그리고 공부하는 공동체에서는 새로운 실험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또 다른 답을 얻었다공부를 통해 기존의 습을 계속해서 내리치고달라진 전제를 공동체에서 연습해보는 것거기서 학습된 새로운 신체는 우리를 좀 더 자유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우리만의 포틀래치-밴드 글쓰기

 

증여의 원초적 형태로서 종종 거론되는북아메리카대륙 북서해안의 선주민인 틀링깃족이나 하이다족 등이 옛날에 성대하게 거행하던 포틀래치’(본래 소비한다라는 뜻으로자녀의 탄생이나 장례신분과 지위의 계승식 등의 의식에 사람들을 초대하여 베푸는 축하연)를 생각해보면 그 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포틀래치에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한 부를 선물의 형태로 단번에 소비해버리고자 합니다그것만으로 부족해 일부 과격한 수장들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가장 귀중한문장이 들어간 동판을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산산조각내거나 바다 속으로 던져버리곤 했습니다.

-대칭성 인류학나카자와 신이치동아시아, 265

 

우리는 각자가 글의 부분을 맡아서 써오고한 명이 도맡아서 편집하는 방식을 지양했다따로따로 정해진 몫을 분배하려 하기 보다는 함께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나와 남을 구분하고 할 일을 정해두는 n분의 1의 전제와 다른 방식을 실험해 보는 것이 밴드 6조의 목표였다영상통화방에 전체적인 프레임이 잡힌 글을 스크린에 띄우고토론을 하면서 실시간으로 글을 쓰고 고쳐나갔다. 즉 글쓰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것이다한 명도 빠지지 않고 계속 글을 다듬고제안했고토론했다그 과정에서 갈등도 있었고너무 지겨운 적도 있었기에이 시도가 마냥 좋았다고만 할 수는 없다영상통화 때문에 저녁 약속을 잡는데 신경을 써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고서로의 생각들을 그나마 일치된 방향으로 써나가는 데에는 참으로 지난한 의견 교환과 설득 과정을 거쳐야 했다에세이 발표를 앞둔 일주일 동안 잡히지 않는 글의 흐름과 샛길로 새는 결론 부분을 수정하느라 우리는 너무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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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밴드 글쓰기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줄글들과 문장들이 퇴짜를 맞고 스쳐 지나갔는지 생각해보면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다개인 에세이였다면 끝나도 한참 전에 끝났을 에세이를 아주 느리고 세세하게 의견 조율을 해가면서 써나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수행에 가까웠다. 각 단락의 내용부터 문법들여쓰기인용문문단의 배치와 글의 순서에 이르기까지 이 글에 담긴 모든 것에 밴드 6조 조원이 한 명이라도 빠진 건 아무것도 없다우리는 사이버 원탁 속에서 펼쳐진 56일을 이 글에 담아냈다어느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함께 이 길을 걸어왔음을그 동안 우리가 나누었던 것들이 우리를 포기하지 못하게 묶어두었음을결국은 이 여정을 끝내게 했음을 깨닫는다그래서 이 글은 우리의 증여 실험을 마무리하는 축제의 장이지만그 동안 쌓아왔던 소중한 지식과 시간과 노력을 다 털어버리고 아낌없이 흘려보내는 사치와 파괴의 장이기도 하다밴드 6조는 n분의 1을 넘어서 모두의 역할과 경계가 무화되는 밴드 글쓰기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그것은 부분이 전체가 되고또 전체가 부분이 되는 함께하기이다그래서 이 글쓰기가 포틀래치로 작용해 다른 조들의 증여 실험을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힘들고 피곤해서 때려 치고 싶은 마음이 수십 번은 들 것이다그러나 "공동체가 비록 삶의 전부를 채워주지는 않지만즐거운 여정을 약속한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함께하는 글쓰기의 색다른 재미와 갈등을 모두 맛보게 될 것이다.

 

에필로그


우리는 56일간 텍스트의 개념에 흠뻑 젖어들어 각자의 이야기와 생활과 삶을 텍스트의 언어로 다시 말하고 글로 썼다자신과 다르게 텍스트를 인식하는 조원들에게 질문하고 답을 주고그 방법에 감탄하며 배우기도 했다지금껏 우리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전제로 더 풍부하게 텍스트와 타인을 마주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갈등을 마주하는 새로운 방법도 찾아냈다이 글은 일종의 체험 후기이자 관찰기이며앞으로를 향한 밴드6조의 출사표가 될 수 있다. 56일의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달리는 화살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앞으로 이 멤버로이 텍스트로 사이버 원탁에 마주 앉을 기회는 다신 없을 터다우리의 실험은 끝났지만각자의 삶에서 어떤 전제를 마주하든 자유롭고 풍부한 시선을 가질 수 있는 변화의 출발점이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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