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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내 안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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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8-06-07 18:01 조회2,3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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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적


김나영 (감이당 장자스쿨)

  “어떻게 너는 너를 돌아보는 힘이 하나도 없냐? 이번 글도 저번 글이랑 똑같잖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했는가만 있고, 네가 어떻게 했는지는 하나도 없어. 어떻게 넌 그동안 하나도 변한 게 없냐?”
  내 글에 대한 연구실 튜터샘의 코멘트다. 나는 지금 장자스쿨에서 루쉰-되기 글을 쓰고 있다. 루쉰처럼 자기를 해부하는 글을 쓰려고 하는데, 잘 되지가 않는다. 불편한 관계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보려고 했는데, 도반들도 내 글에 내가 전혀 없다는 같은 말을 했다. 나를 보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이쯤 되면 루쉰 되기는 고사하고, 자기를 본다는 게 무슨 말인지 더욱 감이 오질 않았다. 연구실 생활 3년 동안 변한 게 하나도 없다는 말도 억울했다.
  피드백을 받은 이후, 선생님들과 도반들에게 들었던 말을 계속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변한 게 없다는 말을 듣는지, 내 글이 매번 똑같다고 하는지를. 
  “이런 글을 써서 너한테 무슨 도움이 되냐?”
  튜터샘의 저 한마디가 계속 뇌리에 남았다. 이걸 화두로 붙잡고, 나는 왜 나를 보지 못하는지 생각하려고 애를 썼다. 나는 왜 이 글을 썼는가? 그러고 보니 나는 내 미움과 분노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글을 쓰고 있었다. 나를 화나게 한 상대방이 얼마나 이상한 사람인지, 그래서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이해받고 싶어 했다. 나는 본래 좋은 사람이고, 잘못한 게 없는데, 상대방이 이상한 사람이라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 됐다고 말하고 싶어 했다. 상대가 나에게 어떻게 했는가만 있고, 내가 그에게 어떻게 했는가는 없었다. 나는 상대방 탓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 한 페이지짜리 글은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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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지성이 하나도 없어요.” 
  처음 튜터샘께 저 말을 들었을 때 부끄러운 감정이 일어났다. 지성을 연마하는 공간에서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연구실은 공부 공동체이고, 공부로 관계를 맺는 곳인데, 나는 감정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에 휩싸여, 어떻게 하면 나를 화나게 한 상대방을 누를 것인가에 골몰했다. 마음이 화로 가득 차 있으니 얼굴 표정이 편할 리 없었다. 나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피하는 사람도 생겼다. 누군가와 불편해진 관계는 다른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워하는 사람을 누르고 싶은 나의 태도는 다른 관계로도 확장되었다. 나는 매일 감정싸움을 하며, 공부를 하러 들어온 이곳을 싸움터로 만들었다. 결국 어느 새 나는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었다.
  나는 왜 감정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나? 삶에 중심이 없기 때문이었다. 삶에 중요한 것이 없으니 감정에만 힘을 쏟았던 것이다. 이것은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태도도 아니었다. 5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점점 의미를 찾을 수 없었고, 다르게 살고 싶은 생각에 비전을 찾아서 연구실에 들어왔지만, 정작 공부로 나 자신을 바꿔보겠다는 마음은 절박하지 않았다.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부모님께 언제든지 기댈 수 있었다. 이런 의존적인 태도가 관계에서도 상대방이 나에게 어떻게 하는가에 골몰하여 감정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미움이라는 수동적인 감정과 내 힘으로 자립할 생각이 없는 의존성이 내가 싸워야 할 내 안의 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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