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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자주 화가 나서 불편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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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8-06-12 20:31 조회3,0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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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화가 나서 불편하다면





이세경 (감이당 장자스쿨)


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 사람을 통해 몰랐던 자신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직장 상사 A가 그랬다. 그때 나는 웬만한 상황에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고, 공부 덕에 성격도 나아졌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A를 대하고 있는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A와는 2년 전부터 일하게 되었다. 업무는 모르면서 욕심만 많던 그는 늘 엉뚱한 일을 벌였다. 일을 정리해보려 A를 설득하지만 고집을 부리다 결국 일이 잘못되고서야 “사실은..” 하며 전임자들과 임원까지 들먹이며 다른 사람들을 탓한다. 이런 일을 자주 겪으니 “곧 내 욕도 하겠군” 싶어 기분이 나빴다. 

  결정적으로 A에게 격분하게 된 이유는 그가 같이 일하는 사람의 뒤통수를 치기 때문이었다. 내가 맡아했던 일로 몇 번이나 사장 칭찬을 받았으면서도 이런 내용을 모르는 사람에게 “내가 온지 얼마 안 돼 일을 몰라 힘들어 한다” 하고, 누군가 자리를 비우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그 직원을 헐뜯는다. 

  A 때문에 엉뚱한 일에 엮이고 뒷수습하고도 험담을 들으니 화가 났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이 당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확신이 들면서 내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또 무슨 일을 벌이려 하나 싶어 화가 났다. 그러나 사실 내가 괴로웠던 것은 A보다 ‘화내는 내 모습’이었다. 감이당에서 공부하면서 예전보다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았는데 금방 화내고 감정이 흐트러지는 내가 실망스러웠다. 평정심은커녕 자꾸 이렇게 만드는 A가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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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기 짝이 없지만 그때 나는 ‘화를 내면 나쁘다’, ‘평정심을 유지해야 좋다’를 신봉하고 있었다. 물론 ‘화를 내면 나쁘다’는 내 경험의 결론이었다. 크게 화가 날수록 감정에 사로잡혀 욱하다 보면 반드시 후회했다. ‘그렇게까지 화낼 필요가 있었나’ 싶어 미안하기도 하고 내 자신의 실수들이 되새겨져 불편하기 짝이 없다. 반면 화낼만한 상황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하는 사람을 보면 정말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이래저래 현명하니 평소 평정심을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본래 계획대로 화를 참아 실수를 막았다는 측면에서는 소득이 없다 할 수 없지만 A의 경우에서 보듯 마냥 속이 편하지도 않았다. 화를 참을 수 없으면서 ‘화를 내지 말자’ 하다 보니 거기에 쏟는 에너지도 이만저만 아니었다. 직장상사에게 격의 없이 화를 내는 실수는 면했지만 대신 힘겨운 상황에 빠지게 한 그가 더 미워졌다. A와의 관계도 회복 불가능에 가까웠다. 화를 참아 관계를 망가뜨리지는 말자는 본래의 의도대로 되지도 않은 것이다. 격하게 싸웠다 해도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화도 내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감정이 있는 한 영원히 불가능하다. 화, 분노는 기쁘고 슬픈 것처럼 자연스런 감정의 일부이다. 흔히 ‘좋고 나쁨’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실상 좋고 나쁨으로 평가할 수 없다. 어떤 상황을 받아들이는 내 몸의 전체적인 반응일 뿐이다. 그렇기에 어떤 감정이 일어났다는 그 자체보다 그다음 어떻게 할 것인가가 훨씬 중요하다. 한의학에서 몸을 상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화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몸을 상하게 할 만큼 지나치게 되면 독이 된다. 평정심은 감정을 일으키지 않고자 애써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감정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무게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이후의 시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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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자연스런 감정이기에 화를 낸다는 그 자체는 나쁘다 할 수 없지만 유쾌하지 않는 경험이긴 하다. 화를 낸다는 것은 굉장히 강렬한 감정의 표시인데 표정은 험악하고 목소리도 커져서 화를 내는 입장에서도 꽤 많은 힘이 들어간다. 인간이 오랜 시간 이렇게까지 애를 써온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강한 불쾌감과 거부의 의사라는 점에서 분노는 가장 강한 저항의 의사표현이다. 만약 누군가에게 분노의 감정을 없애버린다면? 무엇보다 아마 어떤 상황이 되어도 주어지는 대로 그냥저냥 살아가는 족속이라 여길 것이다. 

  내가 A에게 화가 났던 것도 A의 의도대로 하고 싶지 않고 앞뒤 다른 그가 싫었기 때문이다. 분노의 감정이 없었다면 나 역시 A의 어떤 행동에도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부당한 처사를 당해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고 있을 수도 있다. 남은 감정들이 그것뿐이라면. 인간관계에서 솔직함은 최고의 미덕이다. 누구나 서로에게나 또 스스로에게 속임이 없는 관계를 원한다. 그런 측면에서 화를 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를 건 반응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꾸밈을 넘어서 존재를 걸고 의사소통해야 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A를 통해서 내가 지나치게 감정적인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이 실망스러워 그런 감정이 없는 양 애쓰고 있었다. 친한 동료는 늘 같은 일에 한결같이 화를 내나고 묻기도 했다. 그도 A와 접할 일이 있었지만 대개 어이없어 하며 웃어 넘겼고 A가 맥락 없는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 자리를 피했다. 물론 다른 부서의 직원이라 가능한 일이었지만 같은 일도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강도와 의미가 된다. 대부분은 이처럼 좋은 게 좋다며 잡음 없이 지내려 한다. 물론 나도 그렇다. 하지만 그렇게 지내기 위해 지금의 감정을 부정하다 보니 실망감과 자책감은 더 커졌다. 나 스스로를 속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에 와서 보니 이 소소한 사건은 모두 ‘사람은 모름지기 솔직해야 한다’는 내 소견에서 시작되었다. 겉과 속이 다른 A가 얄미웠고 순순히 그의 의도대로 맞춰주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의 잘못이라 이야기하고 싶어 내 감정에 대해서도 솔직하지 않았다. 내 안에서 정리되지 않은 문제들은 내버려두고 밖의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강렬한 문제는 대개 자신과 밀접하고 오래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들이다. 화를 잘 내는 내게 필요한 것은 평정심보다 감정과 상황에 대한 인정과 더불어 나의 어떤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돌아보는 긴 시선과 호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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