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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아들에게는 더 이상 나의 주의력이 필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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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8-06-25 13:40 조회2,1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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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는 더 이상 나의 주의력이 필요치 않다



 정은희(감이당 장자 스쿨)



  아들은 20살이 되었다. 아들은 중학교까지 대안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는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가 2년을 다니고 중퇴했다. 아들은 행동이 느린 편이다. 뭘 물어도 좀 늦게 대답하고, 밥도 아주 천천히 먹던 아이였다. 말도 많이 없는 편이라, 꼭 필요한 말이 아니고는 좀체 하지 않는다. 일반계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 나는 걱정이 좀 되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 공부도 속도가 매우 느린데 따라갈 수 있을지, 학교의 촘촘한 시간 관리 체계에 적응할 수 있을지 등등.

  학교와 학원을 다니며, 학교 수업을 따라가고 낯선 고등학교에서 많은 숙제를 하며 아들은 좀 힘겨워보였다. 그래도 어찌 어찌 다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숙제를 다 못해가는 날이 되면, 아들은 학교나 학원에 몸이 아프다고 말하고 안가는 날이 생기게 되었다. 나는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싶은 마음에 어쩌다 한번이니까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며 아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아들이 좀 더 치열한 마음으로 힘든 학교생활을 돌파했으면 하는 마음과 생활 리듬이 느린 아이가 학교생활을 따라가느라고 많이 힘들 텐데 하는 짠한 마음이 매번 교차했다. 그리고 2학년이 끝나갈 무렵, 아들은 학교를 그만 다니겠다고 말했다. 힘들기도 하고, 성적이 좋지 않으니 내신공부를 하지 않고 매일 수능공부를 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 좋은 선택 같다고 말했다. 나도 아들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학교를 그만 다니게 된 아들은 점점 느슨한 생활리듬으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지금 정도의 성적만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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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아들을 보며 나는 많이 답답했지만 아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했다. 아들의 삶을 내가 치열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아들의 느슨한 삶을 보면서 나의 가슴은 묵직해져갔다. 아들이 그날 자신이 하고자 한 공부와 운동을 좀 하는 것 같은 날은 가슴의 묵직함이 좀 줄어드는 기분이 들었다. 아들이 하루 종일 빈둥대는 것처럼 보이는 날에는 내 가슴의 묵직함은 2,3배 무거워졌다. 아들에게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도 해보았지만, 아들은 그건 엄마의 방법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대답을 한다. 20살이 된 아들을 나는 이렇게 계속 쳐다봐야만 하는 것일까에 절망하고 있었다.

  가슴 한 구석에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감이당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갈 일이 있었다. 친구들과 요즘 서로 공부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아유르베다(인도의 의학체계)에서 마음의 특징을 공부했던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마음은 우리가 주의력을 보내는 특정한 대상을 향하고, 그 대상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는 것이 특징이라고 책에 씌어있더라. 그리고 이때의 마음의 이름을 에고라고 한데내 입에서 나온 이 말이 바로 내 상황과 딱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아들을 걱정하고 아들의 하루하루에 일희일비하는 나의 마음은 아들과 나를 동일시하는 그 마음의 특징이며, 에고의 작동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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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이 아기였을 때, 나의 주의력은 온통 아기인 아들에게 향해있었다. 보호해야할 것도 많았고 돌봐줘야 할 일도 많았다. 그렇게 아들이 자라 이제는 나의 주의력을 많이 필요로 할 때를 지나갔다. 오히려 나의 주의력을 아들은 부담스러워하는 때가 되었다. 아들은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엄마인 나와 분리되어가고 있었다. 아들의 키가 나보다 더 커지게 되었을 때부터 아들은 이전보다 더 단호하게 나의 주의력을 오는 것을 차단했다. 헌데 나는 아들과 나의 관계를 여전히 아들이 아기였을 때의 동일시하는 마음 거기에 그대로 머물러있었다.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까? 나는 아들이 보이는 모습이 분명 게으르고 미루는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게으르고 미루는데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들의 모습을 합리화하고 있었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에게 내가 해야 할 말은 치열하게 살아라, 니가 니 삶을 책임져라 이런 말이 아니었다. 그날의 약속을 지키는 것, 그 하루가 모여서 바로 아들의 삶이 되고, 나의 삶이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필요했다. 아들, 니가 게으르니까 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가 많잖아. 그 약속을 지키는 것, 그것뿐인 것 같아.” 아들은 나도 지키려고 하는데, 미룰 때가 많으니까 미리 미리 해 볼려고” “그래~” 아들은 자신이 지킬 약속을 지키는 하루를 만들어가고, 나도 역시 내 약속들을 지키는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이제 어른으로 한 발 내딛은 아들은 이 약속을 지키는 과정 속에서 점차 더 어른스러워질 것이다. 자기 나름의 실험과정을 통해서 자신에게 가능한 선의 약속을 정하고 지켜나가는 경험을 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나의 주의력을 나에게로 집중시켜 나의 약속을 지키며 내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우선이다. 나의 주의력은 더 이상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에게 집중시켜야 할 에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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