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세이]공동체를 믿지 못했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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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8-07-05 09:35 조회2,809회 댓글0건본문
공동체를 믿지 못했던 나
최혜정(감이당 장자스쿨)
나는 해인네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곳은 경력이 단절된 주부들이 모여서 경제활동과 함께 인문학 공부도 하는 곳이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공부와 관련된 곳이라면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나는 다방면으로 지식이 풍부하고 똑똑한 사람을 좋아한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다 인문학 공부를 하는 해인네까지 왔다. 그런데 이곳에는 내가 원했던 사람은 드물었다. 이런 나의 생각 때문에 해인네 생활이 힘들었다.
2016년부터 해인네 선생님 두 분이 ‘낭송 Q시리즈’ 프로젝트 일환으로 충청남북도의 옛이야기를 낭송 책으로 엮는 작업을 했다. 이 작업은 『한국구비문학대계』에 포함되어 있는 충청남북도의 옛이야기를 선별하여 내용을 추리고 낭송에 적합하도록 윤문하는 것이다. 방대한 자료들 속에서 적합한 이야기를 선별하고 윤문하는 작업들은 해인네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글을 못 쓴다는 핑계로 그 일에 아주 소극적이었다. 내 일도 아닌데 나의 시간을 따로 내서 그 작업을 도와주는 것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가끔은 외톨이가 되기 싫어서 윤문 작업에 들어 갔지만 애정 어린 말들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그 공간에서 소통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한동안은 그 곳에 가지 못하고 주위만 겉돌았다.
이렇게 겉돌다 보니 사무실에서 하는 일들이 다 불만스러웠다. 팀으로 하는 일에서 어떻게 하면 일을 좀 덜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또 내가 조금이라도 준비를 더 많이 한 것 같으면 속상했다.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큰 일이나 작은 일들은 공간 매니저나 주방 매니저 등-공동체에서 돈을 받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내가 하던 논술, 생태수업 등이 하나씩 정리되어가고 있었다. 혼자라는 생각이 드니 공동체에 대한 믿음도 점점 사라졌다. 나에게는 일을 계속 끌고 갈 힘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곳에 돈 벌러 온 사람이 아니라 공부하러 온 사람’이라고 혼자 허세를 부렸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공부하러 온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해서 이곳에 있다가 나간 동기들을 만나서 미주알고주알 뒷담화를 했다.
2016년 하반기부터 나는 독서 멘토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작년 겨울쯤 해인네로 들어 온 멘토 일 중 일부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맡겨졌다. 나만의 일이고 내 비전이라 생각했는데. 서운했다. 해인네를 그만두자. 하지만 겨울 세미나를 하면서 공부에 대해 처음으로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친구들과도 가까워졌는데 아쉬웠다. 멘토 일도 미련이 남았다. 나는 공동체 생활, 공부, 내 일 등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생각해 봤다. 세미나 글쓰기를 통해 나의 성급한 성격과 멘토 일에 대한 욕심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올 초 해인네에서는 ‘사주명리 심층세미나’가 있었다. 미니강의 형식으로 친구들 앞에서 직접 발표하는 세미나였다. 그런데 세미나 과정에 미션 하나가 추가되었다. 미션은 강의하기 며칠 전부터 두세 번 시연을 해 보는 것이다. 드디어 내 차례. 강의하기 며칠 전 해인네 친구들 앞에서 1차 강의 시연을 했다. 나는 평소 사주에 관심이 없다 보니 기본적으로, 공식처럼 알아야 하는 것들도 입에서 술술 나오지 않았다. 참고교재를 그대로 베꼈기 때문에 원고에 적힌 말들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1차 강의 시연은 중단되었다. 친구들은 원고 수정을 요구했다. 2차 시연 원고는 내 주변 사람들의 사주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서 준비했다.
30분 정도의 미니강의를 끝내고 나니 뿌듯했다. 나 혼자 강의 준비를 했으면 예전처럼 원고도 대충 쓰고 강의도 대충 때우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들과 같이 했고 나 또한 문제들을 고민하고 해결해 보려 했다. 모자란 부분들은 서로 채워주면서. 나도 모르게 친구들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나의 부질없는 편견 때문에 그동안 사람들과의 관계도 불편했으며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모습 또한 제대로 보질 못했었다. 이번 세미나 미션을 통해 친구들의 이런저런 모습들을 보았고, 그 다양한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친구들과의 관계가 한결 수월해졌다. 내가 바랬던 지식이나 똑똑함이란 무엇이었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방패쯤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그러던 어느 날 세미나가 끝나고 사무실 정리를 하고 있던 나에게 갑자기 선생님이 “어머, 언제 이렇게 몸이 쑥 들어왔어. 저번에는 차 같이 타고 가자고 해도 먼저 가더니. 지금은 왜?, 어떻게 된 거야.”라며 웃으셨다. 나도 쑥스러워서 같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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