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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아웃사이더의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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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8-07-03 12:56 조회3,3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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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의 갑질



강지윤 (감이당 장자스쿨)

  회사 생활 25년째다. 회사에 진료비 소급분을 청구했더니 담당자가 규정에 맞지 않다고 줄 수 없다고 했다. 내가 회사를 위해서 밤낮을 바꿔가며 일을 했는데 그깟 규정 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 게 말이 되나! 담당자라는 사람이 직원을 위해 있는 건지 아닌지 이해할 수 없다. 마치 돈을 안 주기로 작정한 사람 같다. 이래서 회사가 안 되는 거다. 자기 돈도 아니면서 회사를 위해 일하다 병이 난 사람을 위해 규정 하나 바꾸지 못한단 말인가! 불면증. 이것이 내 병명이다. 지들이 잠을 못 자는 고통을 알 수나 있을까? 별 수 없다. 더 높은 팀장이랑 통화해야겠다. 이래서 내가 팀장에 본부장, 사장까지 직접 전화하겠다고 하는 거다. 
  팀장이라는 사람과 통화했다. 그 사람은 어떻게 그 자리에 있는지 모르겠다. 아예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이랬다저랬다 한다. 그래서 소급분을 준다는 말인지 안 준다는 말인지 모르겠어서 확~ 화를 냈더니 규정을 바꿔서 소급분을 준다고 했다. 그럴 거면서 몇 번이나 말을 반복하게 하는지. 게다가 제출하라는 진단서는 발급받는데 돈이 든다. 담당자는 진단서를 떼면 몇 달간 사용가능하다지만 매달 몇 만원짜리 진료비를 받자고 2만원짜리 진단서를 뗀단 말인가. 또 요즘 같은 세상에 그걸 우편으로 보내란다. 담당자는 규정을 바꾸겠다며 그전까지는 원본증빙을 위해서 보내달고 했지만... 이놈의 회사 정말 마음에 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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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진료비 소급분이 들어왔다. 주변에서는 어떻게 다 받아낼 수 있냐며 대단하다고 했다. 규정을 읽어보면 틈이 보이고 그걸 물고 늘어지면 된다. 이미 2번이나 성공하지 않았던가. 큰 소리 몇 번만 치면 회사 쪽에서 해결해 주었다. 그런 걸 못하다니 그게 오히려 바보다. 어차피 회사 돈이고 눈 먼 돈이다. 실제로 담당자는 권한도 없다. 그러니 윗선을 자극하도록 해서 돈을 받아내면 되는 것이다. 회사는 시끄러워지는 것을 싫어한다.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든 빨리 덮기를 원한다. 그것을 관리자의 능력이라고 하니 큰 소리 내고 억지를 부릴수록 빨리 해결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 쉬운 것을. 사람들은 그 정도도 안 하고 어떻게 돈을 받아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내 불면증을 돈으로라도 보상을 받는 것이 내 권리다.  
  돈을 받고 난 뒤 기분이 좋았었는데 금세 시들해졌다. 일상은 똑같이 흘러가고 있다. 회사 이놈들은 나를 깐깐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볼 게 틀림없다. 규정을 바꾼다고 하더니 어떻게 바꿀지 지켜볼 것이다. 그동안 내가 돈을 받은 규정들은 아주 협소하게 바뀌었다. 그래서 같은 조건으로는 이제 돈을 받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지들이 내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닌데 뭐. 승진을 포기한 이후로 회사에 잘 보일 이유도 없고 내가 크게 잘못하지 않는 한 회사는 나를 자를 수도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그렇지만 생각할수록 회사 놈들은 괘씸하다. 이렇게 회사를 위해 일하다가 병이 난 사람을 위해 적극적으로 돈을 주지 못할망정 어떻게든 안 주려고 했다니. 책상에 앉아 펜대나 굴리는 저들은 우리 같은 사람의 고충을 모른다. 사소한 일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사장이라면 통 크게 돈을 주고 그걸 언론에 적극 홍보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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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나도 처음부터 싸움꾼은 아니었다. 나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대우해 주지 않는 회사를 다니다보니 내가 싸움꾼이 돼 버린 것이다. 맘에 안 드는 일마다 하나하나 고쳐가다 보니 여기저기 싸움도 많았다. 회사뿐만 아니라 동료들과도 몇 번 트러블을 겪다보니 나와 가까운 사람들도 어느 샌가 멀어졌다. 직장 동료들은 내가 쳐다보기만 해도 딴 곳을 쳐다본다. 그래도 관계없다. 내 능력으로 내가 잘 살면 되는 것이다. 그들을 신경 쓰기엔 세상에 고쳐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사소한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날이 올 때까지 나는 계속 따져볼 것이다. 아니 내가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아도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아! 맞다. 잊고 있었다. 오늘 택배로 운동화가 오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아직 오지도 않고 연락도 없다. 이놈의 택배. 오라는 시간까지 오지도 않고! 택배가 또 속을 썩인다. 시간 약속 하나 지키지 못하다니. 이렇게 약속한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택배회사들은 그만두어야 한다. 내가 또 전화기를 들어야겠다. 이래서 내가 따지기를 그만두지 못하는 거다. 진짜 세상은 엉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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