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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헤라클레이토스-로고스로 로고스를 알아라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8-12-23 12:40
조회 : 1,094  

헤라클레이토스

-로고스로 로고스를 알아라







박정복 (감이당 화요대중지성)


감각만으론 알 수 없다

  

올 해로 감이당에서 공부한 지 6년째다. 시간이 갈수록 여기서의 공부는 지식을 많이 아는 게 아니라 자의식을 덜어내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자의식이란 ‘나’라는 것이 있다는 전제하에 나의 감정들에 집착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6년 정도 지나면 굉장한 진전이 있을 줄 알았다. 물론 많이 달라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비교, 질투, 자책, 죽음의 두려움 등의 감정에 휘둘리는 자신을 보며 이게 아주 먼 길이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흔히 ‘아는 만큼 자유롭다’ ‘아는 만큼 살게 된다’는 말이 있다. 6년이나 공부를 하는데도 무엇을 알지 못하기에 자유롭지 못한 걸까? 우선 나는 어떻게 아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우리는 감각으로 안다. 눈으로 보아서 알고 귀로 들어서 알고 코로 냄새 맡아서 알며 혀로 맛보아서 알며 몸으로 접해보아서 안다. 그러나 감각으로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일정한 거리를 넘어서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만날 수 없다. 작은 미생물 같은 것은 보지 못하고 우리 몸 안도 들여다 볼 수 없다. 더구나 이 광대한 우주가 어떤 원리로 운행하는지, 이 세상은 왜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인간의 자의식은 왜 발생하는지 감각으로는 어림도 없다. 오히려 감각은 감각으로 아는 것만이 전부라고 집착하게 한다. 알지 못하면 혼란스럽게 마련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른다.  

  

그런데 이 감각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세계의 질서를 알 수 있다고 설파한 철학자가 있다. 기원전 6C 고대 그리스의 ‘헤라클레이토스’다. 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우주의 비밀을 알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이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다. 그것은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깊이 생각하기를 반복하면 알 수 있다는 것. 사유하고 성찰할 수 있는 능력. 바로 ‘로고스’다. 그는 인간 누구에게나 로고스가 주어진 이유를 인간도 우주의 일부분이어서 우주의 운행원리가 인간에게도 내재되어 있기 때문으로 본다. 자신 안에 이 질서가 있으므로 알 수 있다는 것. 

  

그는 내 안에도 있는 이 우주의 공통원리를 알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 원리에 순응하야 하나가 될 때에만 우리의 삶은 자유로와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만물을 관통하는 이 세계의 원리 또한 ‘로고스’라 부르며 ‘불’로 이미지화했다. 그러나 로고스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만물에 ‘언제나 그러한 것으로 있지만 징표만 보일’ 뿐이다. 그래서 감각으로는 알 수가 없다. 로고스로만 로고스를 알 수 있다. 이 세계의 로고스가 어떤 것이길래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신의 로고스로 알아내라고 하는 걸까? 




만물은 하나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보기에 세계는 한 순간도 머무름 없이 끊임없이 변하는 중이다. 감각으로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게 만물이 발생했다가 사라지고 또 발생하기를 반복한다. 그 발생과 소멸의 차이가 변화이다. 꽃이 피고 낙엽이 지는 자연현상뿐 아니라 눈으로 보이는 형상이나 귀로 들리는 소리, 누군가의 마음에서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도 발생이고 소멸이다. 전쟁을 하고 파괴를 하는 것도 변화이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이러한 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세계. 이 잠시도 멈추지 않는 무한함을 그는 강물의 흐름에 비유했다. “우리는 결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강물의 흐름은 연속적이어서 어떤 순간도 같은 강물일 수가 없다. 그 정도로 변화는 빠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빠르고도 다양한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해보여도 그것들을 관통하는 어떤 원리, 즉 로고스가 있지 않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로고스를 발휘하는 헤라클레이토스를 상상해본다. 로고스로 그가 발견해낸 것은 ‘대립자의 투쟁’으로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대립하는 것은 한 곳에 모이고 불화하는 것들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모든 것은 투쟁에 의해 생겨난다’. 하지만 이걸 이해하기는 힘들다. 대립자란 서로 반대되는 성질의 것 아닌가? 어떻게 반대되는 것들이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질까? 더구나 투쟁으로. 모순인데. 그러나 그는 말한다.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 깨어있는 것과 잠든 것, 젊은 것과 늙은 것은 동일하다’고. 그리고 그 이유를 ‘이것들이 변화하면 저것들이고 저것들이 다시 변화하면 이것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컨대 그의 ‘변화’는 아무렇게나 된 것이 아니라 이것이 저것으로, 다시 저것은 이것으로 된 것이다. 이것과 저것이라는 두 항으로 번갈아 변화하기를 반복한다는 뜻이다. 이때 이것과 저것은 대립되는 것들이다.   

  

그런데 살아있는 것이 변하면 죽게 되고 깨어있는 것이 변하면 잠들게 되고 젊음이 변하면 늙음이 되는 것까지는 이해가 된다. 감각으로 경험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반대는 이해하기 힘들다. 죽음이 삶으로 변하는 것은 감각으로 경험할 수 없으니 이해하기 힘들다. 도대체 그는 ‘대립자들의 투쟁’을 어떻게 보길래 이런 변화를 모순이 아닌 것처럼 말하는 걸까?

  

그는 대립자들을 독립된 두 개의 실체로 보지 않았다. 철학에서 ‘실체’, 즉 ‘존재’, 혹은 ‘있음’이란 파르메니데스의 개념을 따르는데 파르메니데스는 고정불변하여 변하지 않는 것만을 ‘존재’라고 부른다. 헤라클레이토스에게 삶과 죽음은 실체가 아니다. 실체가 아니라는 것은 사람은 삶의 속성과 죽음의 속성을 ‘동시에’ 가진다는 뜻이다. 자석 하나에 상반된 두 개의 극이 동시에 있듯이. 자석을 둘로 잘라도 두 개의 극이 각각으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자석에 두 개의 극이 생기는 것처럼 한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죽음의 속성과 삶의 속성으로 나눌 수 없다. 그렇다면 죽음에는 이미 삶이 포함되어 있고 삶에는 죽음이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닐까? 이 반대되는 속성들 간의 차이, 삶과 죽음의 에너지의 차이에서 변화는 가능하다고 헤라클레이토스는 생각했음직하다. 

  

죽음의 힘이 삶의 힘에 비해 세면 그 센 차이만큼 죽음이 겉으로 드러나고 삶의 힘이 세면 그 센 차이만큼 삶이 겉으로 드러날 뿐이다. 그 힘의 강약에 따라 엎치락 뒤치락 서로 교차하며 변해가는 과정을 그는 ‘투쟁’이라고 했다. 이게 바로 그가 말하는 조화이다. 

  

이 대립자의 힘의 차이로 인해 이 세상은 대립적인 두 항으로 옯겨가더라도 매번 다르게 변한다. 마치 올해의 가을이 작년 가을과 다르듯이. 아니 우주엔 한 번도 같은 가을이 없었다고 유추해볼 수 있다. 그런 것처럼 우리는 매번 다른 죽음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삶과 죽음은 인간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우주 삼라만상의 변화가 사실은 이러한 죽음과 삶의 끝없는 변화가 아닐까? 그가 로고스를 끊임없이 타오르고 사그라지는 ‘불’에 비유한 이유이다.

 

  

산다는 것은 죽음으로 변해가는 중이며 죽는 것은 삶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즉 산다는 것은 살기도 하고 죽어가기도 하는 것이며 죽는다는 것은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것이다. 시작도 끝도 없이 삶과 죽음의 무한 반복이 있을 뿐, 삶이 있어 죽음으로 변하는 게 아니고 죽음이 있어 삶으로 변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 사실은 삶도 죽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삶과 죽음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이 무한 반복의 원운동에서 우리가 어느 부분을 잘라내어 삶이라고 혹은 죽음이라고 언어를 빌려 대립자라고 명명할 뿐이다. 

 

그렇다면 삶과 죽음의 동시성은 모순이 아니게 된다. 시간의 흐름을 고려하지 않고 분별을 위주로 하는 언어논리만으로 볼 때는 모순이지만 끝없이 변하며 서로가 서로를 포함하여 넘나드는 관계로 볼 때는 대립자가 두 개가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이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도 그 변화의 과정일 뿐이며 시신도 혼백도 끊임없이 변할지 모른다. 감각이 알지 못하는 분자나 원자의 차원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사실 세포는 끊임없이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하면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 삶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집착하지 않게 되며 두렵지 않기도 하다. 감각으로만 알 때 죽음은 단절이며 두려운 것이다. 감각으로는 알지 못하는 로고스를 알면 이처럼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며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게 해준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 것이리라. “나에게 귀를 기울이지 말고 로고스에 귀를 기울여 ’만물은 하나‘라는 데 동의하는 것이 지혜롭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는 로고스 즉 대립자의 투쟁으로 끊임없이 변하는 우주는 만물의 그 어느 것도 스스로 혼자 힘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모두가 대립자로 짝을 이루어 투쟁하며 살고 있다. 관계 속에서만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여러 겹으로 대립자의 관계를 이루며 살고 있는 게 나다. 사람뿐이랴. 식물, 동물, 지나는 한 줄기 바람과도 대립자의 관계로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 안에는 무수한 대립자들이 있다. 타자들이 있다. 아니 시작도 끝도 없이 삶과 죽음을 반복한 억겁의 세월까지 감안하면 나야말로 우주이다. 감각으로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나는 순수하지 않다. 나에게는 수많은 타자가, 수많은 세계가 포함되어 있는 채로 살고 있으며 나는 지금 대립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해가는 중이다. 나는 고정된 나가 아니다. 타자도 그렇게 변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타자의 말이나 행동에 상처받을 필요도 없고 비교하고 질투할 필요도 없다. 그가 바로 나이므로. 또 그는 즉시 변해버릴 것이기에 그의 말이나 행동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나만 손해다.^^

  

기쁜 일도 나혼자 이룩한 일이 아니다. 수많은 대립자, 타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니 온 우주가 동참해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혼자 이룬 일인양 기뻐할 일이 아니고 우쭐할 일이 아니다. 슬픔도 나 혼자 만든 일이 아니라 세계의 끝없는 흐름속에서 필연적으로 닥친 일이다. 그러므로 그다지 슬퍼할 필요 없고 자책할 일이 아니다.  


  

럼에도 불구하고 비교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자책하는 것은 나와 타자를 분리된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를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 나도 있고 타자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과 행동이 나의 말과 행동과 관계 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니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기쁘거나 슬프거나 분노에 빠진다. 그리고 상대가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감정에 오래 머무른다. 집착하는 것이다.

  

만물이 하나임을 알지 못하고 존재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은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다. 오늘 한 번의 글쓰기로 앞으로 나의 자의식이 완전히 깨질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 번 로고스를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훨씬 가벼워졌다. ’로고스는 한계가 없으며 누구에게나 있으며 ’깊은‘ 사유능력’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새겨본다. 로고스는 일회성이 아니라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좋은 전망이다. 아는 만큼 자유로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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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오우   2018-12-27 10:14:42
 
'만물이 하나'임을 알게 해 준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 정복 선생님의 글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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