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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금성] 周易, 내가 찾던 ‘매직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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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희씨 작성일19-04-29 22:19 조회1,8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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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 내가 찾던 ‘매직아이’

오창희(금요대중지성)


내겐 스물한 살부터 지금까지 40여 년 류머티즘을 앓으면서 품게 된 몇 가지 질문이 있다. 백약이 무효이던 투병초기, 언젠가 걸을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오지도 않을 날을 기다리며 헛고생만 하는 건 아닐까, 다른 치료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러고 시간만 보내는 건 아닌가,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알’ 수 없던 그때, 그 끝도 없고 답도 없는 의문에 명쾌히 답할 수 있는 눈, ‘무엇이 내 에 좋은지 꿰뚫어볼 수 있는 눈을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을까’를 간절한 마음으로 묻고 또 물었다.  

20년 만에 독립도 하고 돈도 벌며 생활인으로 제법 안정을 누리던 무렵, 차츰 이게 다는 아닌 것 같다는 공허함이 파고들었고, 경미한 교통사고 후유증이 1년간의 치료로 이어지면서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때 어떤 책에서, “한가로운 삶에는 반드시 기반이 있어야 하며, 그 기반이란 인간적 성숙이다”라는 글귀를 보는 순간, 아, 내게 이런 기반이 없어서 흔들리는 거였구나, 인간적으로 성숙하면, 돈이 없어도 건강하지 않아도 편안할 수 있구나 싶어서 크게 안도했다. 그 후 '인간적 성숙이란 어떤 상태며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하는 게 새 화두가 됐다.

10년 간의 명약 순례를 끝내고, 인공관절 교체술로 방향을 바꾼 직후, 다시 관절을 차례로 바꿔야 하나 싶어 암담하던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꼭 나아야 돼? 이대로 살면 안 돼?’하는 물음은, ‘환자’에서 ‘생활인’으로 내 일상을 180도 바꿔놓았다. 2007년,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대퇴부 골절로 2년간 휠체어를 타면서 다시 미래가 불안했던 때 갑자기 올라온, ‘왜 바보같이 30년 동안이나 내 몸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지?’하는 자각은 감이당과 접속케 했고, 몸과 삶을 탐구하는 ‘학인’으로 나를 또 한 번 바꿔놓았다. 이 두 번의 전환으로 공부가 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나으려 애쓸 때보다 오히려 몸이 더 편안해졌고, 생각이 변해야 삶이 바뀌고 병도 달라진다는 걸 깨달았다. 그 뒤 ‘겪을 대로 겪고 막다른 지점까지 몰려서야 일어났던 생각의 전환, 존재의 변이를 지성의 힘으로 이루어낼 수는 없을까' 하는 새로운 질문을 하게 됐다.

이런 질문들을 품은 채, ‘글쓰기로 수련하기’라는 감이당의 모토 아래 인류 지성사에 빛나는 고전들을 만났다. 그 중, 『주역』의 입문과정은 특별했다. 본경 64괘 384효를 몽땅 외워 쓰기. 생소한 한자는 차치하고, 그렇게 연결이 안 되는 문장(괘사·효사)들이 하나의 의미 단락(괘)을 이루고, 앞뒤를 어떤 연결사로 이어야 할지 난감한 문장들이 수두룩한 텍스트는 처음이었다. 논리와 이해로는 접근불가. 무조건 외웠다. 간신히 몇 괘 외웠다 싶으면 괘사가 넘나들고 효사가 뒤섞이는 건 기본. 4괘->30괘->64괘로 갈수록 뒤죽박죽. 핸드폰에 녹음하고, 쪽지에 적어서 어딜 가나 들고 다녔고, 눈 뜨면서 잠들기까지 자투리 시간엔 주역을 외웠다. 그러기를 1년. 드디어 64괘를 모조리 외웠다. 그 통쾌함과 뿌듯함이란! 몸으로 찐하게 만나선지 더 공부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점서(占書)로 지성을 연마할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찜찜함이 남아있었다.

그 무렵, 『계사전』을 만났다. 공자님은 주역이, 인생사 힘든 문제를 두고 점괘를 뽑아 길흉 판단이나 하는 단순한 점서가 아니라 하셨다. 점서가 아니라면? 도올 선생과 남회근 선생도 ‘계사전' 강의에서 주역이 동양철학의 최고봉이며, 주역에는 우주와 생명, 자연의 물리법칙, 통치원리, 삶의 이치들이 망라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배우고 이해하면 마음이 편안해져 고통이나 번뇌가 없어지고, 점을 치지 않아도 인생사 모든 걸 훤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아, 주역의 이치를 깨달아 체득하면 내가 바라던 인간적 성숙을 이룰 수 있고, 고도의 지성도 연마할 수 있겠구나. 무엇보다 모든 이치를 꿰뚫어볼 수 있는 눈, 매직아이를 『주역』을 통해 얻을 수 있다니! 

그간 품어온 질문들이 쫘르륵 꿰어지면서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다. 이제 흔쾌히 공자님의 가르침 따라 가벼운 마음으로 384효를 가지고 놀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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