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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금성] 선정과 지혜로 들어간 한마음의 세상(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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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짱숙 작성일19-04-29 22:25 조회2,0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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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과 지혜로 들어간 한마음의 세상 


장현숙 (금요대중지성)
 
 
10여년전 『금강경』을 사경하며 가장 인상에 남은 말은 ‘是名’이었다. ‘그 이름’이란 뜻이다. “부처는 부처가 아니다. ‘그 이름’이 부처다.” 등과 같은 구절들 속에 ‘그 이름’이란 말이 있었다. 그때 처음 수많은 이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이 세상은 ‘그 이름’ 자체였다. 명상 중 ‘그 이름’ 속의 세상을 사유하다가, 어느 날 문득, 예상치 못한 희열감과 가벼움, 밝음, 자유로움과 같은 신체적 감각을 체험했다. 이름 속 세상에서 벗어나는 경험이었을까?
 
‘유식(唯識)’을 공부하면서 다시 ‘그 이름’을 만났다. 유식에서는 ‘명언종자’란 이름으로 그 뜻을 사용하고 있었다. 명언종자는 ‘이름과 말의 씨앗’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깊은 의식인 ‘아뢰야식’엔 명언종자와 업종자(행위의 씨앗)가 흐르고 있는데, 이 종자들이 식의 전변에 의해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만든다는 것. 그러니 내가 경험하는 세상은 내 무의식이 펼쳐진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에 의하면 나와 세상은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나 따로 세상 따로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의존하여 존재한다는 것. 이것이 유식의 핵심이었다. 『금강경』의 ‘그 이름’과 유식의 ‘명언종자’는 모두 사유하여 분별한 것에 별도의 자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경향성에 대한 이야기다. 『금강경』을 사경하며 체험했던 신체적 감각은 명상의 힘으로 그러한 분별경향성에서 놓여날 때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체험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 특이한 신체적 감각에만 의미를 두는 마음의 습(習)은 분별경향성에서 놓여지는 순간조차 그 경험을 다시 분별하여 의미화하였다. 감이당에 다니면서, 서울-창원을 오가는 일정과 매주 감당해야하는 공부의 양에 일상에서 유지하던 집중의 상태가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처음으로, 명상의 집중 상태에서 발생하는 희열감과 같은 신체적 감각에 연연해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희열 상태를 ‘좋은 것’으로 분별하고 이를 연장하고 유지하려는 내 마음의 습을 봤다. ‘집중상태가 사라져버려도 할 수 없다.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을 분별하는 내 마음의 습을 바꿀 수 없다면 희열감은 공허한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행(좌선)시간은 점점 줄어들거나 못하는 날도 많아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좌선시간은 줄었는데 집중상태는 더 잘 유지되는 것이었다. 따로 노력하는 것도 아닌데 세상은 그 자체로 그냥 기쁘게 청정하였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유식’을 공부하면서 그 이유를 알았다. 감이당에서의 공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수행이었던 것이다. 좌선이 선정수행이라면 공부는 지혜수행에 해당되었다. 감이당에서 수년 동안 읽었던 동, 서양 고전과 역사, 동의보감, 사주명리 등은 내 마음과 느낌, 몸 그리고 그것이 존재하는 세상을 세밀하게 통찰하게 하였다.이러한 통찰로 나와 나 아닌 것,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으로 나누고 분별하는 마음의 경향성이 해체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경향성이 해체된 자리에 ‘지금여기’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집중의 힘이 생긴 것이다.    
 
마음은 얼마나 클까? 『유식』은 모든 것이 내 마음이라고 한다. 이는 내가 보고 내가 알고 내가 경험하는 만큼이 내 마음이라는 것이다. ‘유식’이 대승불교인 이유는 선정과 지혜를 통해 이 마음을 크게 깨우기 때문이 아닐까? 선정의 힘으로 마음의 분별경향성에서 벗어나더라도 지혜로 그 마음이 만들고 있는 세상을 다시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와 세상이 온전히 하나로 연결되어 한 생명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깨달음만큼이 내 마음이다. 그러니 유식을 공부해서 살아보고 싶은 세상은 선정과 지혜로 들어간 한마음의 세상이다. 나와 나 아닌 것 좋은 것과 좋지 않음을 분별하지 않는 한생명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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