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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금성] 가족 극장 영구폐쇄 사유서
 글쓴이 : 단주 | 작성일 : 19-04-30 07:00
조회 : 896  
                   

가족 극장 영구폐쇄 사유서

                                                이한주(금요 대중지성)



 
나는 가족 극장 운영자이다. 금일 자로 가족 극장을 영구 폐쇄하려고 한다. 최근에 『안티오이디푸스』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극장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을 바탕으로 운영했다. 나에게 일어나는 현재의 모든 사건, 사회적 관계를 아버지, 어머니, 나로 연결된 오이디푸스 가족 삼각형에 구겨 넣고 그 틀에 맞게 의미를 재해석하여 재현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마음먹은 대로 일이 풀리지 않거나, 관계가 꼬여 분노, 자책감, 결핍감 등이 일어날 때, 가족 극장의 무대에 나를 세우고 심리적 보상을 얻는 식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상영이 끝난 뒤에는 매번 심한 두통과 우울감이 후유증으로 찾아 왔다.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던 중에 몸과 인문학 공부에 접속하게 되었다. 그러자 가족 극장을 통해 얻고자 하던 보상심리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게다가 다년간 공부가 이어지자 사회적 활동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기뻤다. 놓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섬뜩한 목소리가 내 발목을 잡아당기는 것이 아닌가? 네 가족 극장이 부도가 나면 어떻게 해? 두려움이 왈칵 덮쳐왔다. 가족 극장을 재개해야 하나? 또다시 후유증이 오면 어떻게 하지? 머뭇머뭇!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안티 오이디푸스』를 만났다. 그리고 나는 가족 극장의 충격적인 실체를 알게 되었다. 
 
들뢰즈와 가타리에 의하면 가족 극장은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인간은 ‘나’라고 하는 주체 이전에 무한한 생산성을 가진 무의식, 욕망 기계로 작동하며 흐르고 있다. 우리의 삶이란 알고 보면 역동적인 힘으로 작동하고 있는 집단 욕망의 물리적인 장인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 장에 거대한 오이디푸스의 덫을 던졌다. 오이디푸스 가족 삼각형과 유사한 자본씨(아버지)와 대지여사(어머니), 그리고 노동자(아이)의 폐쇄 구조의 가족 삼각형의 덫이다. 일종의 소우주 미니어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이 진짜 우주인 줄 알고 무의식에 새겨 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영악한 자본주의가 기계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인간의 무의식의 흐름을 교묘하게 파악하고 침투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무의식을 장악한 자본주의의 그다음 행보는 무엇일까?
 
자본주의는 인간 무의식의 무한한 생성의 흐름을 그대로 흉내 낸다. 그리고 흐름의 중심에 물신(物神)을 세운다. 물신은 인간 무의식 흐름에 빨대를 꽂고 생산적 힘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돈이면 네가 원하는 모든 등가물을 교환 받을 수 있어. 기쁘지 않아? 이 달콤한 유혹을 받아들이는 순간, 무한한 생산성은 무한한 결핍감으로 교체된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원했던 것. 
 
오만방자해진 ‘이놈! 자본주의’는 생명성에 반하는 모든 망측한 행위를 불사한다. 물신의 추종자가 되어버린 인간은 이를 알 리가 없다. 현재의 삶을 끊임없이 소비하며 쾌락을 좇는다. 하지만 결핍감은 채워지지 않고 인간은 더 우울해지고, 점점 더 무력감을 느낀다. 이때, 교활한 자본주의는 행복의 비법이라며 가족 극장을 열어준다. 
 
너의 결핍감의 원인은 너의 부모님과 연결된 가족 구조가 불완전했기 때문이야. 넌 원래 결핍된 존재로 태어났던 것이지. 너의 결핍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돈밖에 없잖아? 돈만 있으면 너는 완전한 가족 삼각형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아뿔싸! 종영되는 순간 인간은 깨닫는다. 극장의 내용과 현실의 삶이 뭔가 삐걱삐걱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뒤이어 찾아오는 두통과 우울감……이 악순환의 삶, 이 비논리적이고 부도덕한 덫, 이것이 내가 운영한 가족 극장의 실체였다.
 
가족 극장의 실체를 알았으니 폐쇄 조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손에는 『안티오이디푸스』를, 한 손에는 망치를 들고 가족 삼각형을 허물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더 넓은 세계로 나가 보려고 한다. 물론 자본주의는 사활을 걸고 새로운 탄압 방식을 생산하겠지? 하지만 나는 이 시도를 멈추지 않겠다. “그 자체로 저도 모르게 자신이 바라는 것을 바람으로써 충분히 혁명적인 존재”인 욕망 기계의 힘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여기에 무슨 의미가 더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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