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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금성] 성가정으로부터 탈주하라
 글쓴이 : 담담혜정 | 작성일 : 19-04-30 08:28
조회 : 1,181  

 성(聖)가정으로부터 탈주하라



                         신혜정(감이당 금요 대중지성)


결혼 전부터 난 가정에 대한 나름의 롤모델이 있었다. 바로 가톨릭에서 말하는 ‘성(聖)가정’. 근엄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하느님 아버지, 온화하고 희생적인 성모마리아,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구원받는 자식들. 이렇게 구성된 가족 삼각형이 내가 꿈꿔오던 이상적인 가정의 이미지였다. 그래서 결혼할 때 직장부터 그만두라는 시아버지의 일방적인 통보도 별 말 없이 따를 수 있었다. 시댁 어른들에게 복종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열심히 케어하는 게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억압하면서 또 한편으론 원하는 가정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나의 기준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했다. 불교신자였던 시어머니를 가톨릭으로 개종시키고 남편에게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아이들에게는 자식의 도리를 끊임없이 요구하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회적으로 학습된 욕망을 마치 내 것이라고 착각하며 내면화해서 그걸 또 가족에게 이입하려고 했던 것 같다. 늘 억압받으며 가정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나 역시 다른 이들의 욕망을 탄압하는 파시스트였던 거다. 가족의 삶을 촘촘히 관리하고 거기에 끊임없이 개입하면서 이것이 모두를 위한 최선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춘기 아들이 과한 스트레스로 인해 기쿠치라는 병에 걸리고 원하는 것들을 지키고자 늘 노심초사하고 불안해하던 나도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가는 일이 생겼다. 앞만 보고 달리던 ‘성가정’이라는 이름의 열차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껏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존경받고 성공한 사회인이지만 집 안에서는 한 끼 식사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시아버지. 평생을 남편의 보호 아래 풍족하게 살았음에도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무기력한 어머니. 심신이 병들어 수동적이고 슬픈 신체가 되어버린 가족들을 보면서 내가 그토록 지키기 위해 애썼던 가족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금성 공부를 시작하면서 만난 『안티오이디푸스』는 나에게 가족 삼각형, 오이디푸스의 적나라한 민낯을 보여 주었다. 들뢰즈, 가타리는 이 책에서 가족이란 자본주의의 생산물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핵가족화가 되면서 자본주의라는 사회체가 나온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체제 유지를 위해 가족 삼각형을 조직했다는 논리이다. 그리고 거기에 성가정, 스위트 홈과 같은 이미지를 덧씌워 환상과 망상을 조장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왜 그것을 의미화하는 작업이 필요했을까? 그 이유는 다양한 욕망의 흐름들이 자본의 내적 극한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포획하기 위해서이다. 

이때 자본주의가 이용하는 것이 바로 정신분석학이 내세우는 '인간주의' 즉 사랑, 배려, 희생이라는 휴머니즘과 '사유화'라는 공리체계다. ‘엄마라면, 며느리라면, 자식이라면 이렇게 해야 돼. 그리고 네가 그렇게 한다면 이건 다 너의 것이야.’ 라는 은밀한 속삭임 말이다. 그렇다. 내가 시아버지나 남편의 권력에 순종하며 내 역할을 수행했던 것도 그 대가로 주어지는 물질적인 보상과 칭찬, 또 거기서 느끼는 쾌락을 끊임없이 교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엔 성스러움도 서로에 대한 구원도 없다. 화폐와 쾌락을 중심으로 한 지배와 복종이 있을 뿐. 들뢰즈, 가타리는 자본주의가 정신분석학과 공모해 우리를 억압하는 데 맞서 욕망기계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왜 하필 욕망과 기계일까? 들뢰즈, 가타리에게 욕망은 결핍이나 금지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것과 연결접속하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지는 에너지의 흐름이며 기계는 해체와 조립되기를 반복하면서 무언가를 쉬지 않고 생산하는 존재이다. 욕망기계는 존재의 생명활동이며 비전이다. 이제는 나도 반생명 공동체인 성(聖)가정을 탈주해 다양한 존재들과 만나 인식의 지반을 넓히고 ,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생산하고 생성하는 욕망기계 되기를 시작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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