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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화성] 공부, 성공을 넘어 몸과 우주에 접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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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유자적백수 작성일19-04-30 09:29 조회1,7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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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성공을 넘어 몸과 우주에 접속하다.


 강보순(감이당 화요대중지성)


의역학에 접속하기 전 내 공부의 행로는 성공학이었다. 성공학은 문자 그대로 성공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 비결을 다각도로 분석해 자기 삶에 적용하기 위함이다. 보통 리더십·부자마인드·인맥관리·시간관리·이미지메이킹·스피치 등을 공부한다. 누구나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근사한 학문인가. 성공의 척도는 단연 이다. 그것도 많은 돈! 허나 중요한 건 성공학에서 말하는 부()는 재벌 2세와 같은 물려받은 가 아니라 자수성가의 富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태어나자마자 금수저인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부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단칸방 출신의 자수성가 기업인 다음카카오 김범수 의장의 부가 궁금한 것이다.


배우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이 믿음에 사로잡혀 무려 9년 동안 이 공부를 배회했다. 25살의 나에겐 ‘과연 성공한 자들의 습관과 능력이 내 신체에 덧씌워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인가?’ ‘사람마다 타고난 기운이 다른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등의 합리적 의심이 없었다. 오직 성공만 있었을 뿐! 이러한 믿음으로 당시 유명하다는 성공학 강의를 수강함은 물론, 자기개발서만 약 500여권 탐독에, 일백만 원을 호가하는 성공캠프도 여럿 이수했다. 게다가 이러한 열정으로 어찌나 많은 자격증을 땄는지, 컴활 1·정보처리기능사·한자능력2·금융FP·방사선 비파괴(1)·정교사 2·운전면허·원동기면허·디스크·에니어그램·스피치·마술지도사자격에, 이 보다 더 많은 수료증까지. 난 왜 그토록 성공에 집착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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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의 도피로


누군가 나에게 왜 삼수까지 해서 교대에 입학했는가?’라고 물으면 늘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서라는 상투적인 말로 답하곤 했다. 하지만 교대입학은 내 수능 점수로 갈수 있는 대학 중 가장 네임벨류가 높았기에 갔을 뿐, 전공에 대한 비전이나 좋은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 따윈 조금도 없었다. 중요한 건 오직 대학 이름뿐! 혹 누군가 인생은 학교 이름과 전공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고’, ‘취득한 자격증이 밥벌이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말해주었다면 달라졌을까? 아마 그래도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에겐 무엇보다 지켜내야 할 모범생이라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삼류대학의 부끄러움(쪽팔림)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이것이 내 수능 삼수의 이유였다


대학이라는 새로운 시공이 열렸지만 공부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공부를 송두리째 바꾼 한 사건이 발생한다. 군대를 전역하고 입학한 교대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곳에 있던 내가, 한 순간에 여자들로 가득한 공간에 놓이게 되다니. 배치는 욕망을 낳는 법이다. 그런 공간에 머물게 되자 전에 없던 CC에 대한 마음이 찾아왔다. 게다가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CC가 되는 건 의외로 쉬워 보이기까지 했다. 과내에 남자가 거의 없었으니 경쟁자가 없는 셈이고, 나이가 많은 오빠의 위치에다, 과외를 4개나 하고 있어서 지갑도 두둑했다. 무엇보다 나쁘지 않은 외모에, 연애에 대한 경험도 있던 터라 자신감 역시 있었다. 그러나 이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남자 교대생이 가장 경계해야할 마음이 CC의 욕망이라는 것을.


난 같은 과의 여학우들에게 밥을 사주기 시작했다. 사실 학기 초반이라 밥 먹을 일이 많기도 해, 약속을 잡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4명에게 밥을 샀을 때 쯤, 한 명의 여학생에게 호감의 이 왔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친구에게 고백을 하게 되었다. 허나 예상과는 달리 퇴짜를 맞았는데, 어찌나 상심이 컸는지 3일간을 앓아누웠다. 학교는 당연히 결석. 이성 간에 고백과 거절이 뭐 그리 특별한 일이겠는가! 그러나 내가 고백한 상대는 다름 아닌 4년간 함께 지내야할 같은 과의 여학우.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관계가 더 좋아질 수도 있지만, 당시 내 생각은 여기에 미치지 못했다. 오직 차인남에 대한 꼬리표와 ‘4년치의 놀림감이라는 망상만이 가득했다. 나에게 쪽팔림은 비단 공부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었다. 실로 연애와 관계를 넘어, 내 삶을 추동하는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3일간 결석한 사이, 학교에서 난 모든 이들의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내 결석의 이유가 차임에 있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 예상했던 바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이것이 아니라 나와 한번이라도 밥을 함께 먹은 여학생들에게서 터졌다. ‘너한테도 사줬어? 나한테도 사줬는데, 그 오빠 그렇게 안 봤는데...’ 그녀들은 내가 자신들에게 밥을 사준 이유가 어장관리라 여기며 과내에서 의견을 공유했다. SNS도 없던 시절이었건만 소문은 어찌나 빨랐는지, 그 효과는 무척 즉각적이었다. 교실에서는 나의 등장과 함께 찬바람이 쌩쌩 불어왔고, 내가 지나가는 곳은 어디든 홍해의 기적이 펼쳐졌다. 나의 밥사줌이 탄핵정국과도 같은 엄청난 이슈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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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왕따생활이 시작되었다. ‘청춘은 푸르지 않다더니 나에게도 그러했다. 관계로부터의 어그러짐과 무리로부터의 소외가 이토록 엄청난 고통일 줄이야. 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25살까지의 내 경험DB에는 솔루션이 없었다. 미적분은 잘 풀 수 있었지만 관계의 문제를 풀어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풀어줄 사람도 없었다. 오로지 혼자 뚫고 나가야할 상황.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난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 도피를 택했다. 휴학을 한 것이다. 그것이 오해라고, 내 말 좀 들어달라고 항변할 용기가 없었다.

휴학 이후, 난 나의 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난 그 해답을 2000년대 초반, 당시 우리나라에 불어온 유례없는 성공학열풍에서 찾았다. 그 중에서도 성공학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이미지메이킹에서 말이다. 내가 성공학과 만난 지점이 바로 여기다. ‘이미지를 만들고 관리할 수 있다니! 이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난 흥분했다. 드디어 소외의 생활을 청산하고 구겨진 내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겠구나. 난 나의 왕따됨의 원인을 이미지 관리처세의 실패에서 찾았다. 내 욕망과 마음자리를 되돌아봐야 할 부분에서 처세와 이미지만을 들여다 본 것이다.


결과만 놓고 보니 성공을 공부하는 나의 근원적인 욕망은 삼수때와 다르지 않았다.난 늘 문제와 반응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부에 접속했다. 하지만 그 공부는 항상 문제의 구체적인 현장이 아니라 그 현장으로부터 벗어나는 공부, 도피하는 공부였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쪽팔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공부가 성공학이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었다. 보여지는 것이 중요했으니, 성공은 보여짐의 끝판왕 아닌가. 나의 평가는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고, 남이 한 평가는 내가 아님에도 내 행동의 척도는 늘 타자의 시선이었다.

 


몸과 우주를 공부하다

 

성공학을 공부한 지 5년이 지났을 무렵, 실제로 난 돈을 잘 벌게 되었다. 인풋에 대한 아웃풋의 효율이 좋았던 것이다. 게다가 하는 일마다 잘 풀리다보니, 난 그것이 성공학의 효과인 줄 알았다. 그런데 훗날 주역과 명리학을 공부해보니 그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시대가 나에게 기회를 준 것이었고, 내 기운의 리듬이 우주의 리듬과 같은 차서를 달리고 있을 때였기에 가능했던 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그것을 몰랐으니 얼마나 우쭐했겠는가. 친구들이 일할 시간에 홀로 스노우보드를 타러 다녔고, 남들 일할 시간에 캠핑을 하며 이것이 성공한 자의 여유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꼭 스마트폰 사진으로 담아 프사(카톡프로필)에 걸거나, 친구들에게 전송해주었다. ‘나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과연 잘 살고 있었던 것일까? 이러한 삶이 그토록 내가 갖고자 했던 성공한 자의 이미지였던가? 아니었다. 난 성공을 논하며 시간과 여유를 들먹였지만, 그저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즐기는 자이자, 그런 욕망을 채우는 자였다. 한마디로 성공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알 수 없는 헛헛함이 찾아왔다. 이유가 뭘까? 돈을 덜 써서일까? 아니면 더 신나는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었다.

 

밥을 같이 먹을 수 있으면 존재는 그 자체로 충만하다. 서로의 기운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혼밥족은 기운이 고착되면서 점점 경직되어간다. 그럴 때 느끼는 감정이 슬픔이다. 슬픔은 수동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이다. 그래서 더 강력한 무엇으로 보상받고 싶어진다. 중독이 만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고미숙, 프론티어, 99

 

나의 헛헛함은 혼자에 있었다. 혼자 하는 공부, 혼자 하는 여행, 혼자 하는 사업. 내 삶에 관계는 증발되었고, 몸은 관계로 흐르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돈과 얽힌 인연은 늘 외로웠다. 그러나 계속해서 혼자를 고수 할 수밖에 없었다. 상처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함께 하는 것에 대한 상상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복학 후, 새로운 친구들과는 잘 지내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를 왕따로 생각했던 친구들과는 대화할 수가 없었다. 과대표가 되었어도 그 친구들 앞에서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관계의 어그러짐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성공학이었는데, 정작 그 문제 앞에서는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끝내 그 친구들과는 관계 개선을 하지 못하고, 졸업을 하게 되었다. 이 문제는 집요하게 내 심층부를 건드리고 물고 늘어졌다. 그리고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중요한 것은 성공과 돈이 만들어주는 이미지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앞으로 무엇을 공부해야하는 것일까?

 

끊임없이 질문하고 배우는 수밖엔 없다. 본성과 욕망, 식욕과 성욕에 대하여, 화폐와 성, 권력과 충동에 대하여, 부디 명심하라, 무지가 모든 번뇌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은 훗날로 미룰 일이 아니다. 인생의 첫발을 내디디는 청년기에 바로 시작해야 한다. 취업보다, 성공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고미숙, 프론티어, 226

 

34살까지의 내 공부는 오로지 성공이었다. 이것 외에 다른 공부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찮게 한권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 책은 바로 고미숙 선생님의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한 권의 책이 사람의 행로를 바꾼다고 했던가. 이 책을 3번쯤 읽게 되자, 이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 감이당을 찾아왔다. 그리고 이것을 인연 삼아 지금까지 공부하고 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순환하지 못함은 곧 병증이다. 성공만 갈구하고, 화폐 양의 증식만 욕망하는 것은 몸의 기운을 치우쳐서 사용하는 바, 그 자체로 병증이다. 마음의 헛헛함과 우울증은 내 몸이 삶의 현장과 제대로 접속하는 법을 모르는 것에서 오는 것이었다. 이것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역시 공부에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의 핵심은 무엇을 공부하느냐다. 그것은 성공과 돈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본성과 욕망, 식욕 성욕, 화폐와 성이라는 우리 몸과 분리할 수 없는, 생리적이면서도 지극히 자연적인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한 번도 내 식욕과 성욕에 대해 궁금한 적이 없었는데, 이런 것을 공부해야 내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 살 수 있게 되다니. 감이당과 접속 후 내 공부의 행로는 성공에서 몸과 우주로 변해 있었다. 주역을 읽고, 한서를 읽고, 유목을 읽는다. 공부에 돈과 환상이라는 결합을 끊어내니 몸과 우주라는 새로운 결합이 생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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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배치가 변하니 삶의 리듬이 변했다.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성공과 돈을 탐착하는 식으로 몸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홀로 공부하지 않는다. 함께 공부하는 것의 즐거움을 알아버린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혼자 하는 공부에는 현장성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혼공에는 관계가 없다. 모든 공부는 결국 관계로 흘러들어가 순환해야 현장성을 확보한다는 이 평범한 진리를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일례로 얼마 전 겪었던 부친상은, 고전을 함께 공부하는 것의 힘이 죽음이라는 삶의 현장을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마지막 호흡까지 온전히 아버지 곁을 지키며, 죽음의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여 죽음을 배움의 기회로 삼을 수 있던 배경에는, 죽음이 결코 무섭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신비롭고 경이로운 것이라는 시선전환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고전함께의 힘이 자리하고 있었다. 동의보감과 티벳불교를 통해 몸과 죽음에 대해 공부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텍스트를 도반들과 함께 읽으며 내 언어로 입 밖에 내지 않았다면, 결코 죽음을 이렇게 대할 순 없었을 것이다.

에세이를 다 적고 보니 감이당에서의 공부의 이유 역시 이전 공부의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발견했다. 벗어나기 위한 공부! 그렇다! 난 무엇인가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만 지금 하는 공부에 다른 것이 있다면 인정욕망을 중심에 둔 문제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성공이라는 환상으로부터의 도주라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겠다. 난 앞으로도 계속해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 할 것이다. 나로부터, 내 욕망으로부터, 내게 익숙했던 관계들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그 모든 공부를 말이다. 단연 고전이 1순위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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