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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장자스쿨] 결핍의 늪에서 생의 가능성으로
 글쓴이 : 고은비 | 작성일 : 19-04-30 21:29
조회 : 626  
   글쓴이.hwp (16.0K) [8] DATE : 2019-04-30 21:29:19

결핍의 늪에서 생의 가능성으로
                고혜경(토요 대중지성)


한 때 어설프게 아는 프로이드이론을 신봉했다. 사람은 태어나 오랫동안 외부의 도움으로 살아야 한다. 부모 특히 엄마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 과정에서 누구나 상처를 겪으며 성장한다. 프로이드는 우리가 전 생애에 걸쳐 이 상처를 반복하며 산다고 한다. 이 학설은 프로이드가 탄생시킨 무의식과 함께 정신분석계의 왕좌를 차지했다. 나도 살면서 곤란한 문제들이 닥칠 때마다 가족들을 원망했다. 특히 엄마를. 애착관계형성 시기에 동생이 생겨 불완전한 양육으로 뭔가 잘못되었다고 믿었다. 『안티오이디푸스』는 이런 믿음이 허상이었음을 조목조목 파헤친다. 완전한 유년시절을 상상하는 것은 자신의 현재를 결핍된 상태로 인식하는 것과 동시적이다. 더하여 행복한 가정, 완전한 삶 등의 표상은 현재의 결여를 전제로 한다. 현실의 불만을 유년과 연결 짓는 것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늪에 빠지는 것과 같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시시각각 변하는 시공간에 연결되어 있는 우리 모두는 작동만이 있을 뿐이라 한다.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외친다. 삶에 어떤 중심이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안티오이디푸스』는 어떤 이상적 세계도 그리지 않는다. 인간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독신기계’ ‘사회기계’ ‘~기계’라는 단어로 사물의 위계도 지워버렸다. 세계는 오직 밀쳐냄과 끌어당김의 작동만이 존재 한다. ‘들뢰즈’가 ‘가타리’를 만나 『안티오이디푸스』를 생성하듯 만남과 생성뿐이다. 몇 년 전『안티오이디푸스』 세미나를 한 적이 있다. 프로이드이론을 반박하며 가족에 대한 표상을 깨는 것과 삶을 대하는 경쾌한 태도가 인상 깊었으나 익숙지 않은 문장을 넘지 못하고 하차했다. 이번엔 꼭 독파하고 싶다. 삶을 무겁고 결핍으로 해석하려는 내게 삶은 명랑성과 유머가 가득한 광맥이 곳곳에 있다고 알려준 책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딸은 월차를 내고 하루를 온전히 나와 함께하기로 했다. 호텔 점심뷔페-갤러리 탐방-쇼핑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짰다. ‘부루조아 코스프레’라 할까? 식사까지는 매우 흡족했다. 엽엽한 딸은 게살을 발라주고 맛있는 소스를 추천해주었다. 더 할 수 없는 모녀의 풍경이었다. 문제는 다음 코스로 향하는 택시에서 일어났다. 기사와 얘기를 주고받다 딸이 너무 동안이라는 말에 “머리에 든 것이 없어 나이만큼 보이지 않는 것이에요.” 순간 ‘아차차’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내가 이런 식으로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잖아!” 일그러진 얼굴에 벌써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자괴감이 뭉클뭉클 올라왔다. 

우리의 관계가 이런 농도 못할 처지인가? 딸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춰진 것일까? 나는 왜 나름 성의를 다하는 딸에게 그렇게 말했을까? 나에 대한 투사일까? 나는 사회적 정상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마음이 늘 깔려있다. 그런 열등감 때문에 비아냥거리는 말투가 습이 되었을까? 열등감은 위계적 사고방식이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세계는 결핍의 세계이고 시선은 피라미드의 끝을 향하게 한다. 결국 이 자본주의 구조에서 위로 가고 싶은 욕망이 채워지지 않은 것이 내 불만의 원천인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삶을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 치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스멀거리는 불쾌감에 몸을 맡겼다. 

들뢰즈와 가타리는『안티오이디푸스』를 통해 ‘정신 차려!’라고 메가폰을 잡고 외친다. 너의 불쾌, 결핍감이 어디서 오는지 똑바로 보라고. 그들은 정신분석이 만들어낸 결핍에서 오는 욕망의 기존개념을 새롭게 해석한다. 욕망이 결핍에서 오는 것이라는 착각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자본주의는 결핍이라는 엔진으로 유지된다. 불안을 소유와 축적으로 해소하려하기 때문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을 긍정하라 한다. 욕망은 어떤 목적이 없는 힘이자 생명력이라고. “과거에 집착하면서 전진한다는 것은 쇠사슬에 금속구를 부착한 족쇄를 질질 끌고 가는 것과 같다.(63)” 과거에서 벗어나 미지의 세계에 자신을 여는 것은 생명의 잠재성과 가능성에 도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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