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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장자스쿨] 연민을 극복하는 자의 자유
 글쓴이 : 승차라 | 작성일 : 19-04-30 21:42
조회 : 170  


연민을 극복하는 자의 자유



한 승 희 (2019 장자스쿨)


   

   고통스러워하는 약자에게 느끼는 연민. 수많은 갈등들을 겪고 나서야 나는 선하다고 믿어온 이 마음을 의심하게 되었다. 내가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의 고통을 치유하거나 이해하고, 다시 자기 삶을 스스로 살아가는 과정에 ‘연민’은 과연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하기까지 나는 약자에 대한 연민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내가 최근 4년간 일한 곳은 학교폭력 가 ‧ 피해 학생들을 위해 설립된 돌봄과 치유 중심의 대안 특성화 고등학교이다. 이곳의 교사로서 어떤 학생도 차별받지 않고 행복한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개교 초기부터 온갖 폭력 사건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사건이 생길 때마다 교사들은 밤늦게까지 회의를 하며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그런데 회의 과정에서 교사들 사이에 의견이 대립되어 강하게 부딪치는 일이 자주 생겼다. 학생이 안전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폭력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에게 평등하게 실현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면 우리는 누구를 먼저 보호해야 하는가? 이 문제가 쟁점이었다. 사건 직후, 가해 학생을 집으로 귀가시키는 것부터 찬성과 반대가 갈려 좀처럼 결정이 나지 않았다. 가끔은 학생과 교사 간에도 폭력 사건이 났기에 가해 학생과 피해 교사 중 어느 쪽의 인권을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도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나는 언제나 폭언이나 폭행을 당한 피해자의 편에서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처벌 위기에 놓인 가해 학생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원인이 가정 결손으로 인한 상처나 정신적 질병에 있다며 그들 또한 약자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사들도 많았다.


   자신이 약자를 보호하는 선한 자라 믿는 교사들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우고 있을 때, 싸움의 바탕에 깔린 연민들은 과연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가해 학생들은 자신을 연민하는 선생님들을 이용하여 사건의 책임을 피하려고 했고, 피해 학생들 역시 위로와 휴식의 시간을 계속 보장받고 싶어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건의 당사자인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의견이 대립되었던 교사들까지 서로 감정이 남아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기도 했다.


   회복적 생활교육이라는 체계를 도입하면서 학교에는 사건을 해결하는 매뉴얼이 생겼으나, 내 답답함은 여전했다. 때마침,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참여하던 춘천의 공부 모임에서 니체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니체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드디어 내 속의 답답함을 언어로 구체화하여 나 자신을 비춰볼 수 있었다. 어느 입장에서 싸웠든, 약자에 대한 ‘연민’에 흔들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소모적인 싸움을 했다는 사실.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나. 이런 내가 문제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니체의 책 중에서도『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내게 가장 강렬한 외침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연민을 극복하지 못한 사랑은 고통을 겪고 있는 자에게도, 그를 사랑하는 자에게도 더 많은 고뇌를 가져다줄 뿐이라고 말한다. 차라투스라에게 연민은 극복해야 하는 마음이다. 보다 위대하게 사랑하고, 창조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자라면 누구든 극복해야 하는 것! 어디로도 도피할 수 없는, 오직 지금 여기만이 전부인 우리의 삶 속에서 고통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약자를 불쌍히 여기는 연민은 고통을 끝없이 부정하는 마음이 되어, 그 길을 가는 자에게 방해가 될 뿐이다. 차라투스트라의 확신에 찬 말들은 결국 나 자신을 연민 없이 서늘한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더 이상 어떤 기존 가치의 보호도 받지 않으며, 그것으로 타인을 보호하지도 않으며, 연민을 극복하는 길을 차라투스트라와 함께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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