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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장자스쿨] 연민을 극복하는 자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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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승차라 작성일19-04-30 21:42 조회1,9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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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을 극복하는 자의 자유

한 승 희 (감이당 토요 대중지성)

  고통스러워하는 약자에게 느끼는 연민수많은 갈등들을 겪고 나서야 나는 선하다고 믿어온 이 마음을 의심하게 되었다내가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삶에 연민은 과연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일까그가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고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과정에 말이다.

  이런 질문을 하기까지 나는 약자에 대한 연민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그곳은 내가 작년까지 4년간 일한 곳으로학교폭력 가‧피해 학생들을 위해 설립된 대안 특성화 고등학교이다이곳의 교사로서 어떤 학생도 차별받지 않고 행복한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그러나 바람과는 달리개교 초기부터 온갖 폭력 사건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사건이 생길 때마다 교사들은 밤늦게까지 회의를 하며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자신이 약자를 보호하는 선한 자라 믿는 교사들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우고 있을 때, 싸움의 바탕에 깔린 연민들은 과연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그런데 회의 과정에서 교사들 사이에 의견이 대립되어 강하게 부딪치는 일이 자주 생겼다학생이 안전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폭력 가‧피해 학생 모두에게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문제였다사건 직후가해 학생을 집으로 귀가시키는 것부터 찬성과 반대가 갈려 좀처럼 결정이 나지 않았다가끔은 학생과 교사 간에도 폭력 사건이 났기에 가해 학생과 피해 교사 중 어느 쪽의 인권을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도 첨예하게 대립되었다나는 폭언이나 폭행을 당한 피해자의 편에서 이들을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러나 가해 학생 또한 약자이기에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사들도 많았다우리에게는 가정 결손정신 질환 등으로 인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학생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약자를 보호하는 선한 자라 믿는 교사들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우고 있을 때싸움의 바탕에 깔린 연민들은 과연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가해 학생들은 자신을 연민하는 선생님들을 이용하여 사건의 책임을 피하려고 했고피해 학생들 역시 위로와 휴식의 시간을 계속 보장받고 싶어 했다시간이 흐르면서 사건의 당사자인 학생들뿐만이 아니라의견이 대립되었던 교사들까지 서로 감정이 남아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기도 했다.

  회복적 생활교육이라는 체계를 도입하면서 학교에는 사건을 해결하는 매뉴얼이 생겼으나내 답답함은 여전했다때마침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참여하던 춘천의 공부 모임에서 니체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니체의 책을 읽으면서나는 드디어 내 속의 답답함을 언어로 구체화하여 나 자신을 비춰볼 수 있었다약자에 대한 연민에 흔들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소모적인 싸움만 했을 뿐폭력과 고통을 이해하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런 내가 문제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의 생생한 변화만이 전부인 우리의 삶. 그렇기에 갈등과 고통 역시 필연적이다. ... 고통을 새롭게 이해하는 자신의 가치를 창조하는 것만이 우리의 삶을 연민하지 않고 긍정하는 길이다.

  니체의 책 중에서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내게 가장 강렬한 외침으로 파고들었다그는 연민을 극복하지 못한 사랑은 고통을 겪고 있는 자에게도그를 사랑하는 자에게도 더 많은 고뇌를 가져다줄 뿐이라고 말한다차라투스트라에게 연민은 극복해야 하는 마음이다보다 위대하게 사랑하고창조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자라면 누구든!

  왜 그런가지금 여기의 생생한 변화만이 전부인 우리의 삶그렇기에 갈등과 고통 역시 필연적이다이를 연민하는 것은 삶의 현실을 부정하는 도피에 불과하다고통을 새롭게 이해하는 자신의 가치를 창조하는 것만이 우리의 삶을 연민하지 않고 긍정하는 길이다상대를 부정하는 싸움판에서 피해자를 향한 연민이라는 가치의 보호를 받으며 정당성을 입증 받으려 했던 나차라투스트라의 확신에 찬 말들은 내가 가치의 보호 속에 비겁하게 숨어 있었다는 걸 보게 한다이런 나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 창조의 시작일 것이다이제차라투스트라와 함께 연민이라는 딱딱한 가치의 껍질을 시원하게 내리쳐 볼 용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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