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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일성] 나의 '논어/맹자' 사용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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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하영 작성일19-05-01 14:28 조회3,0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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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논어/맹자’ 사용설명서

『낭송 논어/맹자』


신하영(일요대중지성)



나는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20대까지 성공을 위한 시험공부만 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워보니 밑천이 달렸다. 갓 백일 지난 둘째 아이가 폐농양에 걸린 적이 있다. 아기가 파랗게 질려 넘어가는 것을 두 번이나 봤다. 죽음, 생명의 유한함, 시간의 소중함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 그러니 슬픔으로 그 시간을 채우고 싶지 않았다. 병원 안에서 최대한 즐겁게 보내기로 했다. 아이를 안고, 눈 맞추고, 웃고, ‘까꿍’하고, 주물러주었다. 그래도 두려움을 떨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때 병원 도서관에서 『채근담』을 만났다.


   하늘이 나에게 복을 적게 주면 내 덕을 후하게 하여 적은 복을 맞이하고,
   하늘이 내 몸을 수고롭게 하면 내 마음을 편안히 하여 수고로움을 보익하며,
   하늘이 내 처지를 불우하게 하면 내 도를 형통하게 하여 불우함을 뚫고 나가니,
   하늘인들 나를 어찌하겠는가?   (홍자성, 『채근담』, 홍익출판사, 2005년, 59쪽)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힘이 되었던 부분이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을 것 같던 절절함은 퇴원 후 금방 사라졌지만, 이때 책을 통해 위로받은 경험, 까마득한 낭떠러지에서 나를 잡아준 든든함은 마음 깊이 남았다. 


다시 일상이 반복됐다. 씻어라, 뛰지 마라 등 잔소리는 끝이 없다. 애들에게 ‘꽥’하고 소리 지르고, 미안해하고, 다시 ‘꽥’하는 답답한 일상 속에 우연히 28권의 낭송Q시리즈를 알게 되었다. 『채근담』을 읽었을 때의 감동 때문인지 『낭송 논어/맹자』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힘든 지금의 생활을 현명하게 바라 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무조건 읽고써먹고가르쳐주기


『낭송 논어/맹자』는 무거운 글이 아니다. 필자는 ‘논어/맹자’의 유쾌함과 당당함을 최대한 살려 재구성했다. ‘논어’부분은 “인간 공자의 진솔한 모습”과 공자와 제자들이 “함께 토론하고 고민했던 삶의 문제들”을 중심으로, ‘맹자’부분은 “맹자의 인간적인 면”과 그가 “만나고 논쟁하고 토론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공자,맹자 지음, 류시성 풀어읽음,『낭송 논어/맹자』,북드라망,2014,15쪽) 


『채근담』을 읽었을 때만큼의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읽었다. 그런데 상황이 절박하지 않아서인지, 그때처럼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서론부터 꼼꼼하게 다시 읽어보니 낭송집의 필자는 부지런히 읽고, 써먹고, 가르치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낭송 논어/맹자』를 세 번 정도 소리 내어 반복해서 읽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메모지에 필사하여 짬 날 때마다 읽었고, 틈 날 때마다 써먹었다.


-어진 게 뭔데요? 
학교에서 돌아 온 큰아들이 ‘친구가 화장실서 똥침을 놓고 문을 막았다.’고 엉엉 울었다. 똥침에서 좀 웃겼지만 아이 표정이 하도 심각해서 꾹 참았다.
“선생님한테 일러도 또 그래요 헝~. 선생님 없으면 또 그래요 헝~.”

지금 울고 있는 놈도 이유 없이 친구의 잠바를 핥은 적이 있다. 그 때는 가해자로 친구를 울렸는데 자기가 당해보니 속상한가보다. 잠시 고민하다가 공자님 말씀이 생각났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남을 좋아할 수도 있고, 남을 미워할 수도 있다’
(65쪽)라고 공자님께서 말씀하셨어.” 아들이 묻는다. “어진 게 뭔데요?”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야.” 자기는 똥 침도 안 놓는 어진 사람이라서 최지율을 미워하겠다고 한다.


-‘교언영색’ 대충 써먹기
등원 준비하는데 둘째 딸아이가 계절에 안 맞는 롱패딩을 입고 싶다고 떼를 썼다. 세 놈 감기약 먹이고, 막내 기저귀도 갈아야 한다. 큰 아들 건우는 외투도 안 입고 엎드려서 뒹군다. 막내 수환이는 아침 반찬이 종류별로 고루 묻은 얼굴로 블럭을 때려 부수고 있다. 할 일은 많고, 시계를 보니 늦었다. 
‘확 마, 사자후로 이것들을 제압해버릴까?’ 또 공자님을 떠올렸다. 
“지원아 공자님께서 말씀하셨어. ‘듣기 좋은 말만하고 얼굴빛을 잘 꾸미는 사람 가운데 어진 사람은 드물다’
(65쪽)라고, 옷은 보기 좋은 것보다 날씨에 맞아야지. 보라색 잠바 입고 가자.” 뜻밖에도 아이는 순순히 보라색 잠바를 입고 갔다.


-똥 닦을 때부터
밥을 먹던 둘째가 갑자기 일어서서 다리를 꼬았다. 
“똥이 마려우면 참지 말고 가서 싸.” 아이가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간다. 똥을 금방 싸는데 한참을 끙끙댄다. 
“다 쌌어?” 
“아니요. 안 나와요.” 
“그러면 이따가 싸.” 
“엄마, 팬티에 똥이 묻었어요.” 
“똥 좀 참지 말라니깐!” 똥을 참다가 지려서 궁둥짝이랑 팬티만 버려 놨다. 엉덩이에 이겨 놓으니 냄새가 역대급이다. 휴지를 두껍게 말았는데도 똥이 ‘물컹’하고 그대로 느껴진다. “쫙!” 도저히 못 참고 궁둥짝을 때렸다. 놀란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엉덩이를 만지다가 똥까지 비비적댔다. 아이는 소리 지르고, 나는 씩씩대고, 짠한 궁둥이는 빨갛게 부풀었다. 똥 닦을 때부터, 공자님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솟구치는 화를 누르기가 힘들었다. 보통 때 같으면 팔팔하게 화내며 더 시간을 끌었을 텐데, 중간에 맥아리가 탁 풀렸다. 아이 목욕 시키는 것으로 이 난리를 마무리 지었다.


말이 달라지니


사실 아이들은 내가 하는 말을 전혀 못 알아듣는다. 하지만 공자님의 말씀을 써먹는 동안 감정을 ‘잠시 멈춤’하게 되어, 아이들에게 화를 예전만큼 낼 수가 없었다. 아이들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엄마의 말에 어리둥절해하다가, 떼쓰는 대신 “엄마 무슨 말인데요?”하고 묻는다. 『낭송 논어/맹자』를 꾸준히 낭송하면 공자님 말씀이 일상에서 떠오른다. 나처럼 다급하게 써먹다가 상황과 안 맞는 말이 튀어나와도 괜찮다. 2,500년 이상 사람들에게 선택 받은 고전, ‘논어/맹자’이기 때문이다.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긍정적 변화를 보장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돌이켜보니, 그동안 ‘빨리’로 시작해서 ‘그렇지 않으면’하고 협박으로 끝나는 말이 대화의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군자, 인, 도’ 같이 안 쓰던 말을 하니, 기존의 삭막한 대화에 변화가 생겼다.
“엄마는 군자가 되고 싶어.” 
“꺅~ 군자래.”
“나도 엄마처럼 군자가 될 거야.” 군자라는 말을 하면, 진짜 군자가 된 듯이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배움이 즐겁다’고 얘기하는 공자의 말을 따라 낭송하는 그 순간에는, 마음속에 배움의 기쁨이 가득 찼다. 공자님 말씀을 조금 써먹었을 뿐인데 이런 변화가 생기다니.......

 

선부터 긋지 말고


한정된 대화만 주고받으며, 짜증내고 후회하고를 반복하느라 감정의 소모가 심한 엄마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상한 감정을 육아퇴근 후 치맥으로밖에 풀지 못했던 나와 같은 엄마들에게,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운 사람들에게 이 낭송집을 권한다.


염구가 말했다.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따라가기에는 힘이 부족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힘이 부족한 사람은 중도에 그만두게 된다. 지금 너는 해보지도 않고 미리 선부터 긋는구나!”(43쪽)


노나라 석문을 지나는 자로에게 문지기가 물었다.  “어디서 오시오?”  자로가 공씨의 집에서 왔다고 했다.  문지기의 말,  “아, 그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해보려고 하는 사람 말이오?”(27쪽)


염구와 공자의 차이는 ‘선을 긋고 하지 않은 사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보는 사람’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많은 사람이 읽어보지도 않고 ‘논어/맹자’는 어렵고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한다. 막상 읽어보면, 의외로 문장이 간결하고 내용이 쏙쏙 들어와서 놀랄 것이다. 공자의 제자 중에는 자로 같이 씩씩하지만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제자도 있고, 재여처럼 게으른 제자도 있었다. 그런 제자들이 두루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내용이 어렵지 않다. 그러니 선을 긋지 말고, 일단 써먹어 보라! 기분이 바뀌고 튀어나오는 말이 바뀔 것이다. 언어가 바뀌면 삶이 바뀐다. 그러다 보면 그 언어들의 뜻을 깨닫게 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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