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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일성] 매뉴얼 넘어서기-장자 지음, 이희경 풀어 읽음 『낭송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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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재영 작성일19-05-01 23:26 조회2,3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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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 넘어서기


장자 지음, 이희경 풀어 읽음 낭송 장자』 



조 재 영 (일요대중지성)

 



작년 전시 때 겪은 일이다. 전시장의 첫 번째 공간, 이상적인 배치를 떠올리며 작품을 계획했다. 딱 봐도 무리인데... 포기할 수 없지. 맞춤형 매뉴얼 준비하고!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부지런을 떨며 꾸역꾸역 했다. ‘드디어 완성!’ 두 번째 공간, 물론 이 공간에도 완벽한 작품의 청사진이 있었다. 그러나 이 또한 살짝 무리. 또 다시 부지런을 떨 차례. , 그런데 이건 다르다. 전시 오픈은 임박한데, 마지막에 덧붙일 조각이 완성될 기미가 안 보인다. 전시 일정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 ‘대참사!’ 그리고 며칠 뒤 뜻밖의 상황, 막상 설치 해 놓고 보니 완벽하다고 생각한 작품은 공간에 어울리지 않게 버겁게 느껴졌고, 실패했다고 단정한 작품은 원래가 그 자리인 듯 조화롭게 공간에 녹아들었다. ‘내가 뭘 한 거지?’ 맥이 탁 풀렸다. 낭송 장자에는 나와 같이 자신이 정해 놓은 틀, 그 이상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종종 등장한다. 이들에게 장자는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을까? 일화 속 인물들의 대화를 따라가며 한 수 배워보자.

 


다른 듯 같은 두 사람, 안회와 자고


무도한 군주에 의해 어지러워진 위나라, 성인의 뜻을 펼치고자 위나라로 길을 나서는 안회顏回에게 공자는 그곳에서의 구체적인 계획을 묻는다.


태도를 단정히 하고 마음을 비우며, 힘써 노력해서 오로지 한결 같으면 괜찮을까요?”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위나라 왕은 자기를 거스르는 것을 참지 못하고, 내키는 대로 행동해야 직성이 풀린다겉으론 듣는 척 해도 속으론 거들떠보지도 않을 텐데 어찌 괜찮겠느냐?” 안회가 다시 말했습니다. “그러면 안으로는 곧지만 겉으로는 굽히며, 말을 할 때엔 옛사람의 가르침에 의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안으로 곧게 하는 자는 하늘과 동료가 됩니다겉으로 굽히는 자는 사람들과 동료가 됩니다말을 할 때공자가 대답했습니다. “! 너무 복잡하다. 법도에 맞고 치우치지는 않았으니 고루해도 비난 받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뿐이다. 그것으로 어떻게 상대를 감화시키겠느냐? 넌 여전히 자기 마음을 지주로 삼고 있구나.” (장자 지음, 이희경 풀어 읽음, 낭송 장자, 북드라망, 2016, 46)

 

안회는 흡사 성인되기 매뉴얼이 있기라도 한 듯, 흐트러짐 없이 정답을 달달 왼다. 그러나 현실이 매뉴얼대로만 되나? 안하무인 위나라 왕은 저곳에 있는데, 잘해보겠다고 마음을 낸 안회는 이곳에서 잘하겠다는 일방적 다짐으로 마음이 꽉 차버린다. 빈틈없는 매뉴얼이 어찌 위나라 왕에게 통할까. 위나라 왕의 마음 따로, 안회의 마음 따로. 이쯤 되면 안회는 성인을 단단히 오해한 것이 분명하다.


여기 또 한 사람이 있다. 왕명으로 제나라 사신으로 가게 된 섭공 자고子高, 일을 빨리 처리하지 않는 제나라 사신들 때문에 난항을 겪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아직 일이 닥치지도 않았는데 노심초사로 병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일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세상의 법으로 처벌까지 받겠지요. 이중의 재앙이 한꺼번에 닥친 셈입니다어찌해야 할지 가르쳐 주십시오.”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군주를 섬길 때 상황을 따지지 말고 편안하게 받들어야 합니다양쪽 모두 기뻐하거나 양쪽 모두 노여워할 말을 전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양쪽 모두를 기쁘게 하려면 입에 발린 말을 많이 해야 하고, 양쪽 모두를 노여워하게 하려면 헐뜯는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재주로 능력을 보이려는 자는 처음에 승승장구해도 결국엔 집니다. 기어이 이기겠다고 술수를 쓰기 때문입니다.” (앞의 책, 52)

 

지금 자고는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꼴이다. 뭔가 열심히 배웠던 것 같은데 이 실제상황에 꼭 맞는 재앙 대응 매뉴얼은 찾아봐도 없는 모양이다.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에 짓눌려 버린 자고는, 현실이 닥치기도 전에 어떻게든 이 재앙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막다른 상황에서 공자가 정답을 던져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덜컥 물 태세다. 그도 안 되면 기어코 술수라도 쓰려 들지 않을지자고가 재앙을 피하려 할수록 실제상황을 해결할 길은 요원하다.


새로운 것을 익힐 때 매뉴얼의 유용함이야 말할 필요가 없다. 운전을 배울 때나, 낯선 나라로 여행을 갈 때 매뉴얼 덕분에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된다. 그러나 계속 유용함 안에만 머문다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안회는 매뉴얼이 있어 정답을 가졌다 착각하며 현실감이 떨어져 무모해지고, 자고는 매뉴얼이 없어 정답을 찾을 수 없자 시도도 안 해보고 피하려고만 든다. 다른 듯 보이는 두 사람은 정해진 답과 매뉴얼에 갇혀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없다는 점에서 꼭 닮았다.

 


응하라, 시시각각의 변화에


성인이 되려는 안회의 굳은 의지나 죽음을 피하고 싶은 자고의 간절한 마음을 누가 탓할까? 행복이라면 이루고 싶고, 불행이라면 피하고 싶은 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도 똑같다. ‘SKY대학 이렇게 잡아라’, ‘부자의 5가지 비밀대한민국은 온갖 매뉴얼로 넘쳐난다. 그러나 현실은? 6개월이면 영어천재가 된다 했는데 여전하고, 연애비법대로 공을 들인 여자 친구는 딴 놈에게 가버리고. 수시로 발생하는 변수, 불협화음, 의외의 기회까지매뉴얼만으로 어찌 이런 현실을 다 감당할 수 있을까?


삶과 죽음, 지킴과 잃음, 부귀와 빈곤이런 것들은 사태의 추이가 바뀌는 것이며, 자연의 운행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밤낮으로 눈앞에 번갈아 펼쳐지지만 우리의 지혜로는 그것의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시시각각의 변화에 완벽히 응하게 되면 만물과 함께 늘 새로 탄생합니다.” (앞의 책, 125)

 

내가 완벽하다 생각했던 작품은 전시장을 겉돌고, 실패했다 단정했던 작품은 공간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전시장 벽면과의 거리, 조명의 위치, 관객의 움직임... 작품은 현장의 여러 변수들과 관계 맺으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실체처럼 보이는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도 예측할 수 없는 사태의 변화 속에서 그 의미를 달리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지혜로는 그것을 다 알 수가 없다. 매뉴얼로 현실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믿음도 그 앞에서는 허망하다. 그래서 일까, 장자는 세상만물에 무리하게 애쓰지 마라.’고 일러준다. 왜 애쓰는가? 이루려 하면 할수록, 피하려 들면 들수록, 애쓰는 그 마음에 갇혀 우리는 꼼짝할 수가 없다. 밖으로 나와 현실의 수많은 변수들과 한데 어울릴 수도 없다. 자연에서 변화는 필연이다. 이 필연을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자. 기꺼이


낭송 장자에서 만난 성인들은 한 가지 경계를 고집하는 법이 없었다. 사계절이 변하듯 자연의 이치를 따라 변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시각각의 변화에 응하며 그 변화에 자신을 유연하게 배치시킬 수 있다면, 우리 사는 매순간이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 되지 않을까. 이제 매뉴얼 따라 하기에서 매뉴얼 넘어서기로 방향을 바꾸어 보자. 세상 변화와 함께 리듬을 타듯, 자신의 인생 매뉴얼을 다채롭게 변주 할 수 있다면 우리도 종종 그 새로운 탄생과 마주칠 수 있을 것이다.

 



낭송 장자는 우리 사회의 온갖 매뉴얼들이 부서지는 소리로 가득했다. 건강한 몸 만들기 매뉴얼, 쓸모 있는 사람 되기 매뉴얼... 이 소리를 들으니, 맞춤형 매뉴얼과 씨름하느라, 잦은 체기로 고생하는 이 몸도 조금씩 유연해지는 것을 느낀다. 몇 년 전 두어 권의 해설서로 접했던 장자가 이번에는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낭송하며 책 속 현장과 인물들을 만나니 거창하기만 했던 장자가 조금 친숙해진다. 장황한 설명 대신 생생한 일화를 통해 상상하고 음미하는 맛이란! 작은 것이라도 내가 직접 더듬어 가며 발견하는 재미가 이런 거구나 싶다. 무심한 마음으로 낭송 장자를 소리 내어 읽는 사이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를 여러분도 경험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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