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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수성] 계사전이 나에게 들려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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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달무리 작성일19-05-03 14:10 조회2,3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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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전이 나에게 들려주는 말

'낭송 계사전' 리뷰쓰기


김연정(수요대중지성)



‘탐나는’ 정규직 일자리 공채가 났다. 그동안 오직 정규직! 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산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역할들을 위해 배의 평형수를 맞추듯 살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놓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해 왔을 뿐이다. 앞에서 내가 탐난다고 했던 것은 내가 생각해 오던 이상적인 ‘공부의 실천’, ‘세상과의 나눔’을 펼쳐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막상 부딪혀 보면 현실의 벽은 차가울 수도 있겠지만 주위에서 이런저런 권유를 들으면서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누가 붙여준다는 보장도 없지만 상상은 자유이니 정규직이 되어 살아갈 삶을 그려보았다. 큰 변화의 현장을 맞닥뜨린 순간 막상 주저하는 나를 보았다. 삶의 관성이란 것이 이런 걸까. 그리고 우습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운이 바뀐다 했었는데... 주역점이라도 쳐 봐야 하나... 내 스스로 뜻을 세우지 못했는데 점에 기대려는 마음이 든 것이다. 어설픈 공부가 나를 삼키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복잡하고도 쉽고 간단한

『주역』은 점(占)서이면서도 더할 나위 없는 철학서이다. 또한 상수학(象數學)이기도 하면서 의리학(義理學)이기도 하다. 『계사전』은 이러기도 하면서 저러기도 한 주역이라는 경전에 대한 심도 깊은 해설서이다. 이렇듯 주역은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 것 같아 보이지만 결국은 그 두 특성이 하나의 총체적인 모습으로 존재한다. 공자는 말년에 책 묶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져 다시 묶을 정도(韋編三絶)로 왜 좀 더 일찍 이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아쉬워하며 주역 공부에 매진하였다고 한다. 계사전은 공자가 해석한 오묘한 의미들을 적은 글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공자가 아니면 이렇게 탁월하고 멋진 글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그 글이 쓰인 방식으로 봐선 후대에 편집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있다. 이렇든 저렇든 계사전은 매우 깊으면서도 신묘한 책이다. 나는 그런 모호함이 맘에 든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모호함’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애매모호한 그런 모호함이 아니다. 무엇 하나로 똑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성질과 저런 성질이 함께 존재하여 전체로 어우러진 통합성을 말한다. 계사전이 공자의 저작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계사전이 존재함으로써 주역은 동양 최고의 철학서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전체로 어우러진 통합성에 대해 좀 더 설명해 보자면 양(陽)이 양으로만 고정된 것이 아니고 음(陰)이 음의 역할로만 멈추어 있지 않아 양과 음이 함께 존재하며 태극을 이루는 것과 같다. 낮과 밤이 하루이듯, 자벌레가 굴신(屈伸)하며 앞으로 나아가듯 말이다. 이러기도 하고 저러기도 한 것이 하나가 되었을 때 우주 자연의 단순한 법칙이 나온다. 역은 항상 변화하면서(變易) 또한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不易). 매우 복잡하고 어려우면서도 또한 쉽고 간단(簡易)하다.  


건은 쉬움으로 주관하고 곤은 간단함으로 완성시키니 쉬우면 주관하기 쉽고 간단하면 따르기 쉽고 주관하기 쉬우면 친함이 있고 따르기 쉬우면 공이 있으며 친함이 있으면 오래갈 수 있고 공이 있으면 클 수 있으니 오래갈 수 있는 것은 현인의 덕이요 클 수 있는 것은 현인의 업적이다. 쉽고 간단하여 천하의 이치를 얻으니 천하의 이치를 얻으면 하늘과 땅 가운데에 자기 자리를 이룬다. 

『낭송 도덕경/계사전』, 북드라망, 2015, 140쪽


너무나도 크고 원대한 천지자연, 우주의 원리가 바로 쉽고 간단함에 있다니, 그래서 오래 갈 수 있고 클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역설의 역설인가. 현인의 덕은 이리도 깔끔하고 간단한데 범인의 삶은 복잡하고 어렵다. 그 간이(簡易)함으로 천하의 이치를 설명하는 아찔한 순간이 범인과 현인이 통하는 장이 될 것이다. 번다하고 세세한 것들에 현혹되지 않고 본질적인 중심만 잘 알아 볼 수 있다면, 내 안의 복잡성과 변화의 신묘함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는 힘을 키운다면 내 삶도 간이해지지 않을까. 복잡하게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투명하게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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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흉은 내 마음에 있는 것 

정규직 공채 문제로 마음이 오락가락하고 있을 때였다. 홈쇼핑에서 아이들도 쉽게 간단히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팔길래 큰 고민 없이 바로 구입했다. 추첨하여 꽤 좋은 경품도 준다는 말로 쇼핑 호스트들이 열을 올리고 있었지만 워낙 동창회 경품행사에서 조차 당첨 한번 되어 본 적 없는 터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다음 날 “축하합니다. 어제 물건 사셨죠? 경품에 당첨되셨구요 상품 보내드리겠습니다.”하는 경쾌한 안내원의 전화를 무덤덤하게 끊고, 조금 지나 현실감이 들자 ‘정말 누군가를 뽑아서 보내주긴 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고 저녁에 들어온 가족들에게 이야기하자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하며 모두들 신기해했고, 정규직 지원신청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던 남편은 “거봐, 뭔가 되려나봐”하며 한 마디 던진다. 그러자 아, 나의 관운이 이렇게 트이는 건가, 대운이 드디어 들었나,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정말, 뭔가 잘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평소 아직은 공부할 때가 안됐다는 소신을 굳건히 지키던 중2 아들 녀석이 중간고사를 얼마 앞두고 이제는 공부를 좀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동네 서점이 문을 닫았다며 참고서를 사러 대형 서점에 가자고 했다. 서류준비도 해야 하고, 수성 글쓰기도 해야 하고, 수업준비도 해야 하고... 마음이 바빴지만 그래도 어떻게 일어난 발심이냐 싶어 순순히 함께 나섰다. 평소 가는 길이 너무 복잡하여 꺼려하던 대형 서점에 차를 가지고 갔다. 빽빽하게 종류도 많은 참고서와 문제집들 앞에서 어떤 것을 사야할지 난감해 하는 아이와 그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엄마 둘이서 열심히 책을 골랐다. 책을 산 것만으로도 해야 할 공부를 다 한 것 같은 뿌듯한 마음으로 주차장에 나왔다. 옆에 바짝 붙어 주차되어 있던 차는 온데간데없고 차 옆구리가 주욱 긁혀 있었다. 이런 젠장! 뺑소니라니. 아무런 고지 없이 그냥 사라져 버린 차주에게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것보다 매일매일 빡빡한 일정 속에 보험처리와 차 수리로 인해서 앞으로 해야 할 번잡한 일들과 버려야 할 시간들에 생각이 미치자 그것이 더 괴로웠다. 안 그래도 몸과 마음이 분주한 때에 왜 이런 시련은 항상 나를 빗겨가지 않는지. 대운이 들기는 개뿔!


성인이 괘를 배치해 상을 살피고 말을 붙이니 길흉이 분명해졌다. 강과 유가 서로 밀어 변화가 생겨나니 길흉은 잃고 얻는 상이요 회린은 염려하고 걱정하는 상이요, 변화는 나아가고 물러가는 상이요 강유는 낮과 밤의 상이요, 육효가 움직이는 것은 천지인 삼극의 도이다. (중략) 군자가 거처할 때는 상을 관찰하여 그 말뜻을 완미하고 움직일 때는 변화를 관찰하여 그 점을 완미한다. 이런 까닭에 하늘로부터 도움이 있으니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같은 책, 141-142쪽


우리 삶은 끊임없는 길흉의 변주다. 길흉이란 인간의 마음이 이득과 손실에 대해 반응하는 감정의 변화작용이다. 사소한 득실에 의미를 부여하고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나의 길흉을 점치려는 것이 얼마나 얄팍하고 가벼운가. 천지간에 절대적인 길흉은 없으며 절대적인 좋고 나쁨도 없다. 주역점도 마찬가지다. 남회근에 의하면 역경을 배우는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상으로써 살펴 효사로써 가지고 놀기 위함이지 점을 치거나 산명(算命)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말한다(남회근, 『주역계사강의』, 부키, 2011, 71쪽). 글로 읽는 말씀은 높고 귀하다. 마음에도 쏙 들어온다. 그러나 길흉회린의 득실이 내 일상으로 들어올 때 여지없이 롤러코스터에 올라타 있는 나를 본다. 언제쯤이나 말씀과 일상의 간극을 조금이라도 줄여볼 수 있을지.  


역의 글은 사람에게서 멀지 않으나 역의 도는 수시로 옮겨 다닌다. 변하고 움직여 머무르지 아니하며 육허의 공간에 두루 유통되어 오르고 내림에 항상함이 없고 강과 유가 서로 바뀌고 고정된 틀이 없이 오직 변화하며 나아간다. 그 드나듦을 법도로 삼아 안팎으로 두려움을 알게 하고 우환과 연고를 밝혀 놓는다. 가르침과 보살핌이 없으나 부모가 임하듯 하니 처음에 괘사와 효사의 말을 따라서 방법을 헤아려 보면, 이미 항상된 법칙이 있으나 진실로 그 사람이 아니라면 도가 비어있음으로 행해지지 않으리라

같은 책, 185-186쪽


역은 ‘변화(變)의 도(道)’를 깨치는 것이다. 64개의 상징과 그 안에 나타나는 효사들, 이들의 변화과정에서 드러나는 삶과 우주의 이치, 끊임없는 길흉의 변주,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이다. 역은 그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라(觀其象)하고 때에 따라 변하라(隨時變易)고 한다. 우주의 법칙에는 영원불변한 것은 없다. 이는 곧 만물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하며 일체의 현상 또한 모두 변화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변화하면서 어디 한 곳에도 고정되거나 머무르지 않고 온 우주 공간 상하 사방에 충만하여 끊임없이 변한다. 생각도 몸도 고정된 것은 굳게 마련이며 딱딱해지는 것은 곧 불통(不通)이다. 서로 소통하지 않고 변화하기를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이미 살아도 살아있다고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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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해야 할 것은 불변의 진리나 확정된 무엇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면서도 간단한, 전체로 어우러진 통합성을 깨닫고 변화를 계속 주시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이루어 가는 것은 천지신명도 아니고 주역점도 아닌 진실된 바로 나 자신이다. 그래서 계사전은 나에게 말한다. ‘변화의 순간에 두려워하지 말기를. 모든 일어나는 현상과 과정을 찬찬히 들여다보기를. 그리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나 스스로를 믿고 의지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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